광활한 대지와 푸른 하늘, 아름다운 자연과 자유로운 그들의 삶!아프리카의 심장 말라위는 단번에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하지만 전혀 다른 환경과 입에 맞지 않는 음식, 한 번의 샤워를 위해 1시간 동안 물을 길러야 하는 현지에서의 삶은 내게 어렵고 서툴기만 했다.그런 나에게 그들은 '축복'이라는 뜻의 TADALA라는 이름을 선물했다.100원짜리 빵을 나누어 주며, 줄수 있는 게 없어 미안하다고 했다.미안한 마음에 선물이라며 노래를 불러주고 나를 꼭 안아주던 아이들..외롭다고, 불행하다고만 생각했던 내가 그들에게는 축복이었
멕시코에서 해외봉사를 하며 태권무 선보이기, 음악 가르치기, 트루스토리 연기하기 등 못할 것만 같았던 일은 무조건 포기하려고 했던 예린 씨. 단원들, 현지 친구들과 지낸 지 약 2개월이 지난 요즘 그가 배운 건, 못해도 친구들에게 도움을 받고 함께 고쳐 나가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것. 하나씩 배워가고 있는 그가 9개월 뒤 한국에 돌아올 때쯤에는 과연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나는 멕시코로 봉사하러 온 김예린이다.학생들에게 태권무를 선보이고 포즈를 취해봤다. 멕시코는 고추의 원산지라고 한다.고추로 만든
5월호 표지의 주인공 이주애는 청순한 미소로 주위의 시선을 확 사로잡는다. 한때 세상을 비관해 표정 없이 살았던 그녀가 이토록 밝게 웃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앞으로 한국인이 도미니카에 세운 그라시아스 음악학교에서 음악가를 키워낼 멋진 꿈을 가진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이주애는 요즘 들어 부쩍 말수가 늘었다. 학교 교수님들도 ‘이게 바로 내가 원하던 것’이라며 그녀가 해온 과제를 칭찬한다. 왜 이 과제를 주셨는지 교수님의 마음을 더듬어보며 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이제 하루하루가 행복하다고 말한다.
멕시코에 온 지도 벌써 두 달이 훌쩍 지났다. 현재 멕시코는 K-팝이나 K-드라마뿐만 아니라 한글, 태권도, 한국 음식 등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 하는 멕시코 사람들의 수는 매년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며, 한국문화를 배울 수 있는 행사는 늘 젊은이들로 붐빈다. 한국 정부에서 운영하는 한국어 및 한국문화 교육기관인 ‘세종학당’ 외에도 (사)국제청소년연합의 해외봉사 프로그램인 굿뉴스코Good News Corps에서 진행하는 한국어 아카데미도 현지 청소년들 사이에 큰 인기를 얻고 있었다.올해 멕시코에
섭씨 40도를 웃도는 날씨, 물 한 바가지도 귀한 환경, 말라리아와 장티푸스 등 풍토병….아프리카의 낯선 땅이었던 탄자니아가 불과 1년 만에 이준경 단원의 ‘마음의 고향’이 되었다. 다음은 ‘한국에서는 몰랐던 많은 행복을 알게 됐기에 그곳에서 지냈던 시간이 절대 아깝지 않아요!’라는 그의 추억들. 난생처음 해보는 하수구 청소.어설픈 손놀림으로 힘들었지만, 굿뉴스코 슬로건처럼 젊음을 ‘제대로’ 팔 수 있는 일이다. 행동이 굼뜬 현지인들이 이해되지 않았다.그러나 언젠가부터 정신없이 사는 한국 사
흙수저와 금수저라는 말이 요즘 유행처럼 많이 쓰인다. ‘노력해도 변변치 못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누구는 좋은 부모님 밑에서 호위호식한다’는 뜻의 다소 자조적인 표현이다. 하지만 이러한 현실을 그저 원망한다면 삶은 늘 제자리일 터. 성공과 행복도 발돋움을 해야 오게 되어 있다. 흙수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 인생을 나타내는 아주 적합한 단어였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노력보다 결실은 부족했고, 힘겨운 생활은 출구가 보이지 않는 터널 속에서 헤매는 것과 같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때보다 마음이 무척 편안하다. 세상은
20년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혼자 있는 것이 편했던 연지희 씨. 코리아 캠프를 준비하며 만난 보민 언니 그리고 독일 학생들과 마음을 나누는 동안 자연스럽게 마음을 표현하기 시작했다는 그녀의 변화기를 전한다. 1년간의 봉사활동을 마친 후에도 현재 독일에 남아 유학을 준비 중인 지희 씨가 소식을 전해왔다. 여전히 말보다 글로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조금은 더 익숙하다는 지희 씨.“안녕하세요?” 하고 밝게 인사한 후 한참 말이 없었던 그녀였지만 20년간 말하지 않았다는 그녀가 요즘 들어 조금씩 입을 떼는 연습을 하고 있단
스물두 살의 나이에 연봉 8천만 원을 번 김보민 씨. 등록금 2백만 원만 벌어보자고 생각했던 아르바이트에서 3백만 원, 5백만 원... 그런데 돈을 벌면 벌수록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한다는 욕심과 경쟁심이 생겼다. 마치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처럼 달렸다. 하고 싶은 것은 다 해봤는데 왜 행복하지 못했던 걸까? 영등포에서 소문난, 150평이 넘는 양주집의 매니저로 일했던 김보민 씨. 3년 전 연봉 8천만 원인 그녀는 어느 날 바지 주머니가 찢어질 만큼 돈을 구겨 넣다가 문득 기쁘지만은 않은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등록금
병원, 기술학교, 라디오 방송국 등이 들어설 깔라비 청소년센터는 베냉은 물론 아프리카를 바꿀 변화의 진원지가 될 전망이다. 완공 전부터 이웃나라들로부터 ‘우리도 같은 청소년센터를 지어달라’는 요청이 이어지고 있다. 준공식에 참석한 베냉 청소년부 장관은 ‘이 센터가 베냉 국민을 위한 교육, 문화, 의료의 허브가 될 것’이라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국민 1인당
1년을 여행한다면 많은 사진과 기록과 이야기가 남을 것이다. 1년을 해외에서 봉사한다면 더 많은 이야기와 감동이 마음속에 쌓일 것이다. 작년 한 해 세계 각지에서 봉사를 다녀온 400여 명의 젊은이들이 귀국 콘서트를 준비했다. ‘행복이 가득한 그들 자신을 느껴보라’는 준비 현장을 찾아가 보았다. 고양시 덕양구 대자동에 위치한 IYF강북센터. 이곳에서 약 4
182cm의 훤칠한 키, 맑고 깨끗한 피부색, 조막만한 얼굴 크기…. 3월호 본지 표지 모델이 된 박규영은 순정만화에서 나온 듯해 보였지만, 인터뷰 내내 솔직한 모습으로 자신의 흑역사를 이야기했다. “저는 고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늘 주눅 들어 있었어요. 그때만 해도 키도 작고, 뚱뚱했어요. 말투도 어눌해서 친구들 사이에서 늘 혼자였지요.”지금은
대부분의 대학생들이 지금껏 자신을 둘러싼 테두리에서 벗어난 색다른 경험을 갈망한다. 굿뉴스코는 바로 이런 면에서 청춘을 마음껏 투자할 수 있는 프로그램! ‘내 젊음을 팔아 그들의 마음을 사고 싶다!’라는 슬로건부터 얼마나 근사한가! 굿뉴스코 가족이 된 여러분! 평생잊지 못할 1년을 만드십시오따뜻함은 주변을 변화시킵니다. 요즘 추위에 얼어붙은 땅도 봄기운을
새해가 시작됐다. 2016년에는 복잡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낯선 나라로 떠나보는 건 어떨까? ‘대학생활에 회의감을 느낄 때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던 도니미카 공화국으로 떠났어요’ 김태영 씨는 재작년 이맘때 해외봉사를 지원했던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지난 12월 19일 본지 신년호의 표지 촬영 현장. 김태영은 알록달록한 한복 차림에 고운 자태가 돋보였지만,
의 저자인 송태진 씨는 굿뉴스코 출신으로 2008년에 아프리카 부룬디에서 봉사했다. 인터넷방송국에서 뉴스 팀장으로 재직하던 그는 지난달 아프리카 케냐방송국으로 발령받아 최근 출국했다. 이번호에 부룬디에서 보낸 크리스마스의 추억을 끝으로 일 년간 연재했던 수기를 마친다.아프리카의 크리스마스12월 25일, 뜨거운 햇볕이 쨍쨍한
해외봉사를 통해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는 대학생들의 도전이 넘치는 굿뉴스코 워크숍, 20대 고민과 꿈, 열정을 쏟아낸 현장을 소개한다.11월 19일, 경북 김천의 국제청소년연합 대덕수련원에는 전국에서 모인 4천 명의 대학생들이 굿뉴스코 2차 워크숍에 참석했다. 어항에서 키운 물고기 코이가 5cm 정도로 자란다면 강에서 자란 코이는 1m 20cm로
의 저자인 송태진은 굿뉴스코 출신으로 2008년에 아프리카 부룬디에서 해외봉사를 하고 돌아왔다. 현재 인터넷방송국에서 뉴스 팀장으로 재직하며 본지를 통해 자신의 경험을 대학생들에게 소개하고 있다. 이번 달에는 그가 부룬디의 작은 시골로 떠났던 여행담을 들려준다. 해외봉사활동 중에는 좋든 싫든 새로운 일에 도전해야 한다. 처음
조만간 세계 1위 경제대국을 놓고 중국과 경합을 벌일 지도 모를 인도. 인구가 12억이 넘는 데다 언어도 1천 종류에 다다른다. 공용어인 힌디와 영어를 대부분이 사용하고 있지만, 시골마을에서는 지역 언어나 부족 언어만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그 특성에 맞춰 어떻게 습득해야 할까? 나갈랜드, 델리, 하이데라바드에서 활동 중인 한국 대
2004년 벌어진 종족전쟁으로 100일 만에 100만 명이 살해됐던 르완다. 세계사에서도 그 유례를 찾기 힘들만큼 참혹한 상처를 갖고 있다. ‘돈 되는 일이면 무엇이든 하겠다!’고 벼르던 이정훈은 이곳의 어떤 점에 매료되었던 걸까?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걸까? 나는 학창시절 소위 불량아였다. 내가 비뚤어지기 시작한 건 IMF 경제 위기가 불어 닥쳤던 초등학
캐나다 인디언 캠프에서 만난 원주민 아이들은 산만하고 마음을 한번도 꺾어 보지 않은 야생마와 같았다. 그런데 너무 신기한 것은 아이들이 캠프를 참석하면서 하루 하루 달라지기 시작했다. 마지막 날에는 아이들의 손에 이끌려 부모들도 왔다. 언제 다시 볼까 싶어 만나는 아이들마다 마음껏 대화를 했다. 인디언 마을이 분명히 변화하는 것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