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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꿈 키워주고 싶어요"도미니카에서 웃음 되찾은 이주애
신요한 기자 | 승인 2016.05.14 10:34

5월호 표지의 주인공 이주애는 청순한 미소로 주위의 시선을 확 사로잡는다. 한때 세상을 비관해 표정 없이 살았던 그녀가 이토록 밝게 웃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앞으로 한국인이 도미니카에 세운 그라시아스 음악학교에서 음악가를 키워낼 멋진 꿈을 가진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어린시절부터 음악을 좋아했던 이주애는 초등학교방과 후 수업에서 배운 것을 시작으로 중학교 때까지 바이올린을 배웠다. 기자의 요청에 멋지게 폼을잡는 그녀. 도미니카에서 가장 많이 연주한 곡은 ‘Amazing Grace’라고 한다.

이주애는 요즘 들어 부쩍 말수가 늘었다. 학교 교수님들도 ‘이게 바로 내가 원하던 것’이라며 그녀가 해온 과제를 칭찬한다. 왜 이 과제를 주셨는지 교수님의 마음을 더듬어보며 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이제 하루하루가 행복하다고 말한다. 해외봉사를 다녀온 뒤 이주애에게 일어난 변화에 가족과 주변 친구들은 깜짝 놀랐다.

“도미니카에서 1년 살다 와 보니 한국에서 지내는 게 정말 감사해요. 날씨도 좋고, 밥도 맛있고, 무엇보다 따뜻한 물과 전기를 마음껏 쓸 수 있다는 게 감사해요!”

이주애는 작은 일에도 고마워하며 주위 사람들에게 행복을 퍼뜨리는 긍정 바이러스의 소유자다. 그녀를 만나는 사람들은 마음이 편안해지고 얼굴에 절로 미소가 번진다고. 하지만 그런 그녀에게도 남에게 말 못할 어두웠던 과거가 있다고 한다.

늘 나에게 좋은 것을 양보해 주었던 이스멜다(가운데)는 내가 마음을 열도록 도와준 고마운 친구다.

웃을 수 없었던 학창시절
이주애는 자신이 학창시절에 웃어본 기억이 없다고 말한다. 한창 친구들과 어울려 놀 나이에 가난함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제가 중학생 때 아버지가 하시던 사업이 잘 안 됐어요. 그 뒤 부모님도 자주 다투시고, 가정형편이 어려워져 큰 집에서 작은 집으로 이사를 갔어요. 집이 좁아 한방에서 가족들이 다 같이 생활하고, 방에 누우면 입김이 날 정도로 추웠지만 난방을 할 여유도 없었어요. 그렇게 지내다보니 제 입에서 웃음이 안 나오더라고요.”

또래 친구들이 유명 상표의 신발을 사달라고 부모님을 조를 때, 이주애는 당장 학교 갈 차비가 없어 난감했다. 친구들과 자신이 비교돼 서럽기도 했지만, 그런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아 힘든 마음을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그런 그녀의 사정을 알 리 없는 친구들은 돈이 없어 같이 놀 수 없는 그녀가 콧대 높은 줄로 오해했다고 한다.

“그런 시간을 보내면서 많이 힘들었어요. 학교에서 밝게 지냈던 적이 많이 없어요. 대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는 친구들과 이야기도 나누고 지냈지만, 학과 공부에 도저히 흥미가 생기지 않더라고요. 전공대로 보육교사가 되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러던 어느 날, 꿈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던 그녀가 마음속에 희망을 품게 된 일이 있었다.

“하루는 굿뉴스코 해외봉사단원들의 귀국발표회를 봤어요. 무대 위 학생들의 웃음이 정말 아름다운 거예요. ‘이제껏 웃지도 않고 어둡게 지내던 나도 해외봉사를 갔다 오면 저 학생들처럼 밝아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곧바로 해외봉사에 지원했어요.”

그렇게 그녀는 작년 봄 중미의 도미니카 공화국으로 떠났다.

도미니카 유명 TV 프로그램 Show de Nelson에서 1년간 배운 스페인어로 굿뉴스코를 소개하였다.

카리브 에메랄드 빛보다 더 아름다운 사람들
도미니카 공화국은 카리브 해에 둘러싸인 아름다운 섬나라로 멋진 관광명소가 많다. 하지만 고립된 이주애의 성품을 변화시켰던 건 그곳의 순수하고 친절한 사람들이었다.

“길을 걸어가면 반갑게 인사해주고, 서툰 저희 말도 귀 기울여 들어주더라고요. 청소년 행사를 홍보하느라 지친 저희들에게 경찰이 와서 괜찮은지 물어보고, 장사하시는 분들은 팔다 남은 거라며 과일도 주셨어요. 정이 많고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이에요.”

이렇듯 도미니카 사람들에게 푹 빠져버린 그녀지만 사실 처음에는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난생 처음 들어보는 스페인어는 인사말도 할 줄 몰랐고, 외국인 공포증이 있어서 사람들이 말을 걸면 피하기도 했어요.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제가 항상 방에만 들어가 있고 또 말도 안 하고 웃고만 있어서 사람들이 제가 이상한 아이인 줄 알았대요.^^”

3개월이 지나자 한국에서 온 단원들 대다수가 웬만한 스페인어는 읽고, 쓰고, 말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주애는 여전히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현지 친구들은 계속 다가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제 친구 자미는 저보다 한 살 어린데 가족 문제로 많은 아픔을 겪었어요. 저라면 부끄러워서 못했을 이야기를 제게 들려 주더라고요. 잘 알아듣지 못해 몇 번을 되물었지만, 저한테 마음을 열고 다가와주는 게 고마웠어요.”

의자부터 바닥까지 굿뉴스코단원들이 활동했던 지부를 깨끗하게 대청소 하던 날.

마음이 순수한 도미니카 사람들과 지내면서 이주애는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었다고 한다. 혼자 다니면 창피하니까, 같이 밥먹을 사람이 필요하니까 친구를 사귀었지, 깊이 마음을 알려 하지 않았던 자신의 마음이 얼마나 차갑고 딱딱한지도 알게 되었다. 그녀에게 도미니카에서의 1년은 자신을 향한 주위 사람들의 사랑을 발견하는 시간이었다.

“함께 지내면 사람들이 저희를 배려해주고 위해주는 게 눈에 보여요. 저희보다 더 저희를 걱정해주고 보살펴줘요. 어떤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라 티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다가와주는 게 고마워요. 그런 친구들과 지내다보니 제 속에 밝은 기운이 커지는 거예요. 어느 날 사진을 봤는데 제 웃음이 정말 밝아서 저도 깜짝 놀랐어요.”

참 신기하게도 어느새 그녀는 해외봉사 가기 전 자신이 바라던 그 미소를 가지고 있었다.

크리스마스 칸타타 공연을 홍보하며 도미니카 제2의 도시 산티아고를 누볐다.

어두웠던 과거를 훌훌 털고!
이주애는 지난 1년간의 봉사활동이 한국에 돌아온 지금 더 큰 힘이 된다고 한다. 대학교 강당을 빌려서 한국어 캠프를 열고, 무더운 날씨 속에도 길거리를 활보하며 홍보하고, 현지 자원봉사자들을 모아한-도미니카 문화교류의 밤을 여는 등 크고 작은 부담에 도전하면서 상처는 아물고 마음은 더욱 성숙해졌기 때문이다. 뜨거운 햇빛 아래 봉사하며 피부는 조금 까무잡잡해졌지만, 이주애의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따스하다.

“얼마 전 한 음악학교의 후원 콘서트에 갔어요. 저 역시 음악을 좋아했지만, 집안이 어려워서 그만둔 기억이 있어 가슴이 많이 아팠어요. 도미니카에서도 한국인이 세운 그라시아스 음악학교와 함께 활동을 했었어요. 가난한 환경에도 음악이 가진 변화의 힘을 믿고 꿈을 향해 달려 나가던 학생들과 선생님들을 보며 많은 감명을 받았어요. 학생들이 가정형편이 어려워 음악공부를 그만두는 일이 없도록 후원해주는 것이 제게 새로 생긴 꿈이에요!”

굿뉴스코 해외봉사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자신은 없었을 거라는 이주애. 어두웠던 과거는 훌훌 털어버렸다. 그리고 자신을 ‘세상을 밝게 비추는 별’이라고 자신 있게 소개한다. 그녀의 밝은 미소와 멋진 꿈을 계속 응원한다.

신요한 기자  syh953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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