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수저와 금수저라는 말이 요즘 유행처럼 많이 쓰인다. ‘노력해도 변변치 못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누구는 좋은 부모님 밑에서 호위호식한다’는 뜻의 다소 자조적인 표현이다. 하지만 이러한 현실을 그저 원망한다면 삶은 늘 제자리일 터. 성공과 행복도 발돋움을 해야 오게 되어 있다.

흙수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 인생을 나타내는 아주 적합한 단어였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노력보다 결실은 부족했고, 힘겨운 생활은 출구가 보이지 않는 터널 속에서 헤매는 것과 같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때보다 마음이 무척 편안하다. 세상은 여전히 각박하지만, 부와 능력을 앞세우는 세상의 통념보다 더 중요한 진실을 깨우쳤기 때문일까.

아파야만 청춘입니까?
나는 자영업을 하시는 부모님 밑에서 1남 1녀 중 첫째로 태어났다. 어렸을 때는 딱히 부족한 거 없이 자랐지만, 우리 집은 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IMF 사태로 가세가 점점 기울었다. 이 때문에 나는 어려서부터 집안 사정을 생각해 먹고 싶은 게 있어도 부모님 앞에서 입을 다물곤 했다. 사춘기 시절에도 체념하는 게 습관이 들어 또래 아이들처럼 휴대전화나 액세서리를 갖고 싶어도 선뜻 사지 못했다.

대학은 취업전망을 고려해 보건계열로 진학했다. 선생님과 상담 후 임상병리학을 선택했는데 등록금이 한 학기당 350만 원이 넘었다. 학과 공부도 전과를 떠올릴 만큼 너무 어려웠다. 나는 그럴 때마다 ‘지금은 힘들지만, 병원에 취직하면 다른 직업보다 살림살이가 빨리 안정될 거야!’라며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하지만 현실은 내 생각과 너무나 달랐다.

우선 임상병리사는 구직자들이 일자리보다 넘칠뿐더러 한번 취업을 하면 좀처럼 이직을 하지 않기에 자리 구하기가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였다. 게다가 업무의 기계화로 점점 사람이 필요한 부분도 점점 줄어드는 추세였다. 나는 좋고 나쁜 자리를 가리지 않고 입사지원을 했지만, 이미 합격자가 정해져 있는 면접을 보는 등 불합리한 경우를 많이 보게 되었다. 또 설사 합격했다 하더라도 입사 이틀전에 취소되는 등 낭패를 봐야 했다.

‘다른 친구들은 다들 잘 사는 거 같은데, 나는 왜 이리도 되는 일이 없을까?’

하루 9시간 내내 서서 하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마음이 점점 지치고 힘겨웠다. 나중에는 자신감을 잃고 우울해져서 아예 집 안에서만 틀어박혀 지냈다. 나로서는 어떤 방법도 생각나지 않아 자살을 떠올리기도 했다.

금수저를 갖는 비밀
굿뉴스코는 그맘때쯤 우연히 친구를 통해 알게 됐다. 사는 게 지긋지긋해 어디론가 떠나버리고 싶을 시점, 아르바이트로 벌어두었던 돈을 모두 비행기 삯으로 치르며 호주로 떠났다.

처음 시드니에 도착했을 때는 주변 사람들에게 유능한 사람으로 비치고 싶어서 마치 금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난 양 명랑한 척했다. 하지만 그러다 보니 현지적응과 단체 생활 속에서 어려운 점이 있어도 잘 내색하지 못했다. 다른 단원들이 이런 나를 위해 해주는 충고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한국에서처럼 속을 꾹꾹 누르며 힘들어져서야 단원들을 지도해주시는 현지 지부장님을 찾아가 상담을 청했다.
지부장님은 평소 나를 지켜보시며 느끼셨던 점을 조언해주셨다.

“민선아, 이 세상에는 크게 세 가지 사람이 있단다. 첫 번째는 내가 옳다고 믿어서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듣지 못하는 사람이야. 이런 사람들은 네가 그랬던 것처럼 남의 말을 통 들을 수 없단다. 두 번째는 내가 틀릴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지. 이 경우는 남의 말은 들을 수 있지만 자기 안에서 옳고 그름을 따지다 자칫 오류를 범하게 되어 있어. 마지막은 열등감과 우월함을 모두 버린 겸손한 마음이다. 이런 마음이 오면 어디를 가든지 주변 사람들과 부딪히지 않고 화합할 수 있지. 결국, 마음가짐에 따라 인격과 삶도 달라지는 거야. 나는 네가 이곳에서 세 번째와 같은 마음을 갖게 되기를 바란다.”

지부장님의 말씀을 들으며 나는 한국에서 지냈던 날들에 대해 돌이켜볼 수 있었다. 늘 넉넉지 못한 형편을 원망하면서도 이러한 마음이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을. 사실 내가 흙수저라 여기며 비관했던 것도 나보다 잘난 사람에 대한 열등감에서 비롯된 일종의 욕구불만이었다.

지역 축제 참가, 마인드 강연 도우미와 캠프 스태프 봉사, 굿뉴스코 홍보 등 1년간의 활동을 하며 나는 조금씩 주변 사람들과 있는 그대로 마음을 나누며 주변 사람들과 하나가 되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알 수 있었다. 학점, 스펙, 경제력이 나를 행복하게 해줄 것처럼 보여도 그것은 그저 안정된 생활을 하기 위함이라는 걸. 진정한 행복은 사람들과 소통하며 어울려 살아가는 것이라는 것과 도전정신으로 부담을 뛰어넘었을 때 온다는 걸. 열등감으로 점철됐던 내 마음속 수저는 호주에서 순도 100%의 금이 되었다.
 

강민선
올해 스물여섯. 재작년 학교를 졸업한 뒤 우연히 알게 된 굿뉴스코를 통해 14기 단원으로 호주에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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