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냉 깔라비 청소년센터 개관
병원, 기술학교, 라디오 방송국 등이 들어설 깔라비 청소년센터는 베냉은 물론 아프리카를 바꿀 변화의 진원지가 될 전망이다. 완공 전부터 이웃나라들로부터 ‘우리도 같은 청소년센터를 지어달라’는 요청이 이어지고 있다. 준공식에 참석한 베냉 청소년부 장관은 ‘이 센터가 베냉 국민을 위한 교육, 문화, 의료의 허브가 될 것’이라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교민들로부터 전해들은 베냉 주민들의 생활상 역시 심각했다. 수돗물조차도 값이 비싸 맘놓고 쓰지 못한다. 베냉의 평균적인 가정이 약 한 달 동안 아끼고 아껴 썼을 때 부과되는 요금은 1만4천 세파(약 2만3천 원) 정도. 공립학교 교사의 월급이 6만 세파(약 10만 원)임을 감안하면 엄청난 부담이다. 이 때문에 주민들은 대부분 우물물이나 강물을 길어다 사용한다. 하지만 우물물은 누런 흙탕물이라 식수로는 사용이 불가능하며, 강 주변에는 쓰레기장과 도축장이 있는 경우도 많아 안전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봉지에 넣어 파는 ‘퓨어 워터’ 정도가 그나마 안심하고 마실 수 있는 물이다.
“인천공항에 도착해 이곳까지 오는 동안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한국의 발전상을 보며 감탄했습니다. 한국이 언제부터 이렇게 잘살게 된 걸까요?”
매년 7월, 부산의 APEC 누리마루하우스에서 열리는 세계 청소년부 장관 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장관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다. 특히 아프리카출신 장관들의 부러움은 더할 수밖에 없다. 감비아에서 온 한 장관은 ‘1950년대만 해도 아프리카에 뒤져 있다가 오늘날 경제대국으로 발전한 한국은 우리에게 가장 큰 벤치마킹 대상’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한국이 이처럼 초고속 성장을 거듭한 원동력은 무엇일까. 장관들은 그답을 ‘사람’에서 찾았다. 6.25전쟁으로 폐허가 된 나라를 일으켜 자손들에게 풍족한 미래를 물려주겠다는 각오로 뭉친 리더들, 뚝심 하나로 세계적인 기업들과 경쟁하며 국민들의 먹거리를 마련한 기업인들. 유학파 출신 인재들도 선진국의 안락한 삶을 포기하고 귀국해 정부기관과 학교, 연구소에서 일하며 조국에 헌신했다. 국민들은 그런 리더들을 믿고 따르며 하나가 되었다.
베냉 청소년 교육·문화·의료의 허브, 깔라비 센터
2015년 7월, 국제청소년연합IYF 베냉 지부가 코토누 북쪽 20km에 위치한 깔라비 지역에 다목적 청소년센터 건축을 시작한 것도 아프리카의 미래를 이끌 인재를 길러내기 위해서다. 그간 IYF 베냉 지부는 한국에서 파견된 굿뉴스코 해외봉사단 단원들과 함께 청소년 캠프, 영어캠프, 현지 학생들에게 태권도·댄스·컴퓨터를 가르치는 무료 아카데미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실시해 왔다. 베냉 정부또한 자국의 부족한 교육인프라 극복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IYF를 눈여겨보고 있었다.
야이 보니 대통령도 2013년 7월 IYF 월드캠프 행사장을 찾아 참가자들에게 50분동안 격려사를 전하는 등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그리고 2015년 1월, 베냉 정부는 IYF에 3만 평의 토지를 기증하며 교육, 보건의료, 방송을 아우르는 종합센터의 설립과 운영을 의뢰해 왔다. 이는 그동안 IYF가 펼쳐온 마인드 및 각종 교육, 의료봉사, 문화교류 등 민간외교의 성과를 정부차원에서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깔라비 청소년센터의 건립 취지에 공감한 가나·토고·나이지리아·코트디부아르 등 이웃나라 IYF 지부에서도 자원봉사자 70여 명을 파견해 왔다. 100여 명으로 불어난 ‘다국적군’은 모두가 한마음으로 골조공사, 시멘트공사를 진행했다.
12월 들어 정부로부터 ‘2016년 4월 대통령 임기 종료 전까지 청소년센터에 들어설 각종 시설에 대한 인·허가를 받을 수 있도록 공사를 하루빨리 마무리하면 좋겠다’는 요청이 들어왔다. 현장은 더욱 바빠졌다. 골조와 콘크리트 공사가 건물의 뼈대를 튼튼하게 쌓는 일이라면, 벽돌쌓기와 인테리어 공사는 그 뼈대에 살을 입히는 일이다.
이 과정에서 건물의 내·외관이 결정되는데, 베냉에서 생산되는 인테리어 자재들은 수입산에 비해 품질이 많이 떨어졌다. 그렇다고 외국으로부터 자재를 수입할 형편도 아니었다. 고심 끝에 공사팀은 베냉의 질 좋은 목재를 인테리어 자재로 활용해 이 문제를 해결했다. 현지에서 판매하는 페인트에는 물이 많이 섞여 있어 쉽게 변질될 뿐 아니라 색상을 맞추기가 여간 까다롭지 않았다고 한다.
이렇게 모두가 지혜를 모아 여러 번 한계를 넘는 동안 깔라비 청소년센터는 지금의 모습을 갖출 수 있었다. 이 센터에서 유난히 이목을 끄는 것은 아이보리색 벽면과 조화를 이루는 붉은 벽돌이다. 베냉 특유의 적색토와 시멘트를 혼합해 벽돌을 만들자는 아이디어는 IYF 설립자인 박옥수 목사가 제안한 것이다. 적색토 벽돌은 색상이 아름답고 보온 및 단열효과도 뛰어나다. 더구나 흙은 오래 전부터 선진국에서 각광받고 있는 친환경소재다. 무엇보다 베냉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어 비용절감에도 기여한다. 실제로 청소년센터 건축에는 6만여 장의 벽돌이 사용되었는데, 이 적색토를 사용한 덕에 수억 원의 공사비를 아낄 수 있었다고 한다.
차비가 없어 병원에 오지 못하는 사람들
깔라비 청소년센터에는 병원, 음악·건축·축구 등을 가르치는 학교, 라디오 방송국 등의 시설이 입주해 마인드교육 등 베냉 청소년들을 위한 각종 프로그램을 실시할 예정이다. 특히 야이 보니 대통령도 큰 관심을 갖고 있는 새나라 메디컬센터는 굿뉴스의료봉사회 소속 황효정원장(운화생명과학한의원)이 베냉을 찾아 2월 15일부터 닷새간 90명의 환자들을 진료를 실시했다. 굿뉴스의료봉사회는 이미 베냉에서도 여러 차례 봉사활동을 한 적이 있어 현지인들에게도 친숙했다. 새나라 메디컬센터에서 환자들을 진료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지난해 8월 의료봉사 때 황 원장으로부터 진료를 받았던 이들이 다시 이곳을 찾았다.
아프리카에는 이처럼 원인과 발병 기전이 알려지지 않은 괴사성 질환을 앓는 환자들이 많다. 토쑤 파르민 할아버지도 마찬가지다. “지난번에 제가 다른 약은 절대 바르지 말라고 말씀 드렸는데, 왜 이렇게 하셨어요?” 황 원장의 물음에 할아버지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할아버지는 지난해 치료제를 받아 복용하면서 상태가 많이 호전되었다. 하지만 약이 떨어지면서 풀을 짓이겨 바르는 민간요법을 썼고 증세가 되려 악화되었다. “차비가 없어서 약을 받으러 오지 못했습니다.” 베냉 사람들의 가난한 사정을 잘 아는 황 원장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치료비는커녕 차비조차 없어 병원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아프리카의 슬픈 현실이다.
하지만 이제는 희망이 있다. 아프리카는 ‘인류에게 남은 마지막 기회의 땅’으로 불린다. 아프리카에 있어 풍부한 천연자원보다 더 큰 재산은 사람이다. 베냉 젊은이들이 깔라비 청소년센터에 와서 질병을 치료받고, 각종 기술을 배워 문맹과 실업에서 벗어나고, 리더에게 필요한 마인드까지 터득해 나간다면? 그 젊은이들은 베냉, 나아가 아프리카 발전에 밑거름 역할을 할 더 없이 소중한 자원이 될 것이다. 이미 아프리카의 잠비아와 말라위에서도 정부의 요청으로 센터 건립이 추진 중이다.
박소영(새나라 메디컬센터 원장)
아프리카는 내게 제2의 고향이다. 의대 재학 중이던 2003년 IYF 월드캠프에 참석했다가 남아공에서 온 ‘두두’ 언니와 친구가 되었다. 몇 년 후 남아공 해외봉사단원이 되어 언니를 찾아갔지만, 에이즈와 결핵 등 합병증을 앓던 언니는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그때부터 고통 받다 죽어간 언니를 위해, 그리고 봉사단원으로 활동하는 동안 내게 조건 없는 사랑을 베풀어준 아프리카 사람들을 위해 훌륭한 의사가 될 꿈을 품게 됐다.
졸업 후 응급의학과 전문의로 근무하며 틈틈이 아프리카 의료봉사를 다녀왔다. 그러던 중 베냉 새나라 메디컬센터의 원장으로 일하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아프리카로 돌아가서 아프리카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치료하며 살고 싶다’는 꿈이 있었지만, 그 날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다. 2월 15~18일에는 베냉을 방문해 현지상황을 체크했고, 현재 진료과목을 결정하고 장비를 선정하는 등 센터 운영에 필요한 준비를 하나씩 해나가고 있다. 해외봉사는 공부기계처럼 앞만 보고 달려가던 내게 진정한 행복을 알려준 전환점이었다. 베냉 새나라 메디컬센터는 내게 새로운 행복을 알려줄 제2의 전환점이 될 것이다. 앞으로 쉽지 않은 길이겠지만, 가치가 있다면 다른 사람들이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이라도 도전하려고 한다. 단지 내가 받은 사랑을 나누고픈 마음을 따라간 것뿐이었는데 어느새 막연히 꿈꿔왔던 길들이 눈앞에 펼쳐져 있다는 게 신기하고 감사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