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cm의 훤칠한 키, 맑고 깨끗한 피부색, 조막만한 얼굴 크기…. 3월호 본지 표지 모델이 된 박규영은 순정만화에서 나온 듯해 보였지만, 인터뷰 내내 솔직한 모습으로 자신의 흑역사를 이야기했다.

“저는 고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늘 주눅 들어 있었어요. 그때만 해도 키도 작고, 뚱뚱했어요. 말투도 어눌해서 친구들 사이에서 늘 혼자였지요.”
지금은 양호한 편이지만, 평소 말을 더듬는 부모님을 닮아서인지. 박규영은 어려서부터 무슨 말을 하든 버벅대는 편이었다. 성격도 급해서 말의 속도 또한 다른 사람들이 알아듣기 힘들 정도로 빨랐다.

그가 자신의 모습에 움츠러든 건 사춘기였던 중학교 1학년부터였다. 입학한 지 얼마 안 되던 어느 날, 국어 시간에 선생님이 그를 지목하며 교과서를 읽게 한 것. 평소에도 말을 더듬거리던 그는 이때 당황한 나머지 책을 잘 읽지 못했고, 금세 친구들에게 또래보다 약간 모자란 아이로 낙인찍혔다.

“원래 성격은 밝았는데요. 이후로도 몇년간 놀림과 따돌림을 받으며 인상이 어두워지더라고요.” 그는 자연스레 자신보다 강해 보이는 사람 앞에서는 잔뜩 긴장하게 됐다. 심각한 건 이러한 현상을 지속하며 그가 심리적으로 무척 고립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보는 게 싫어!’ 하고 되뇔수록 정말로 사람들과 시선을 마주하고 대화하기가 힘들어졌다.

떼오띠우아깐Teotihuacán은 신들의 도시라는 뜻. 도시 전체가 188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만큼 고대 문명사회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사진은 관광 중만난 그 곳 아이들과 함께 한 모습.
떼오띠우아깐Teotihuacán은 신들의 도시라는 뜻. 도시 전체가 188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만큼 고대 문명사회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사진은 관광 중만난 그 곳 아이들과 함께 한 모습.
내가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였구나!
“저는 늘 피해 의식이 가득했어요. ‘더 이상은 상처받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자기방어도 심했어요. 그러다 보니 친구들이 농담 삼아 하는 말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화내게 되더라고요. 나중에는 누군가 무심코 제 책상을 치더라도 가볍게 흘려버리지 못하고 온종일 ‘쟤가 나를 싫어하나?’ ‘내가 나중에 가만두나 봐라!’라며 서운해 했어요.”

그가 해외봉사에 지원한 것은 강해지고 싶은 마음에 지원했던 입대에 죄다 낙방하면서이다. 육해공을 통틀어 열 번 이상 고배를 마시자 그는 지구 반대편인 멕시코로 도피하듯 떠났다.

“저는 수도인 멕시코시티로 파견됐는데요. 처음에는 아주 힘들었어요. 현지 적응을 떠나 단체생활 속에서 제 모난 성격이 수시로 터져 나왔거든요. 하루에도 몇 번씩 감정 기복이 심해져서 자괴감에 시달렸지요.” 그는 처음에는 맡은 일에만 매달릴 뿐, 주변 사람과 통 말을 섞을 줄 몰랐다. 다른 사람과 교류 없이 살아온 탓인지, 현지 대학생들이 친해지고 싶어 하는 관심도 거북스러워했다.

“굿뉴스코의 슬로건이 ‘내 젊음을 팔아 그들의 마음을 사고 싶다’인데, 저는 오히려 사람들의 마음을 닫히게 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처음으로 20여 년의 제 삶을 되돌아보게 됐어요.”
그는 자신의 성격을 두고 고민하던 중 사춘기 시절의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걸 깨달았다. 실제 그는 자기 보기에 상처를 덜 줄 것 같은 사람만 골라 사귀려 하고 있었다. 설사 가까워진다 하더라도 언젠가 자신을 떠날까 늘 상대를 의심하기 급급했다. ‘내가 지금껏 잘못된 마음으로 인생을 살았구나!’
지부장님은 이런 그를 곁에서 보시고 ‘앞으로는 네 마음을 솔직히 이야기해보라’며 조언해주셨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이 주전, 멕시코시티에서 한국어캠프를 열었다. 내가 담당했던 기린반 학생들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가기 이 주전, 멕시코시티에서 한국어캠프를 열었다. 내가 담당했던 기린반 학생들과 함께.
마음속 성벽에서 나오다
“그제야 현지인들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었어요. ‘나는 말을 잘 못해’라는 마음도비우고, 통 입을 떼지 않던 스페인어도 열심히 공부하고요. 주변의 많은 멕시코분들이 저를 응원해주셨지요. 급한 마음에 말을 더듬거릴 때도 제 손을 따뜻이 잡아주셨어요. ‘괜찮아, 천천히 배우면 돼’라고 격려해주시는데 어찌나 가슴이 뭉클하던지….”

현지인의 따뜻한 마음을 느끼니 그제껏 느끼지 못했던 멕시코 사람들의 순수함이 보이기 시작했다. 늘 별다른 계획 없이 흥청망청 사는 듯 보이지만, 멕시코 사람들은 자신과는 정반대로 사심 없이 마음을 터놓고 나누었다. 박규영은 멕시코 문화에 조금씩 마음을 열었다. 그러면서 자녀를 안고 등교하는 여러 중고등학생 미혼모의 모습에 이전에는 눈살을 찌푸렸지만, 이를 가슴 깊이 안타깝게 여기게 됐다.

나중에는 멕시코시티의 중고등학교를 방문해서 800여 명의 학생이 참가한 가운데 한국어 교실, K-팝 강습의 진행을 도왔다. 처음에는 낯가림에 진땀을 흘렸지만, 부담을 피했던 예전처럼 지내기는 싫었다. 그는 어색함에 거듭 부딪히며 자신을 단련시키려 노력했다.

‘내가 지금껏 잘못된 마음으로 인생을 살았구나!’ 지부장님은 이런 그를 곁에서 보시고 ‘앞으로는 네 마음을 솔직히 이야기해보라’며 조언해주셨다.
‘내가 지금껏 잘못된 마음으로 인생을 살았구나!’ 지부장님은 이런 그를 곁에서 보시고 ‘앞으로는 네 마음을 솔직히 이야기해보라’며 조언해주셨다.
그 결과, 모국어인 한국어도 말하기 싫어했던 그는 한국으로 오기 전 굿뉴스코 교육센터의 송별회에서는 스페인어로 200여 명의 사람 앞에 담담하게 자신의 소감을 밝힐 수 있었다.
“Oigan, Yo no hablo bien en publico por eso recibi mucha ayuda de ustedes. Muchas gracias por convivir conmigo el ano pasado. No podre olvidar el tiempo que pase con ustedes. 여러분, 저는 사람들 앞에서 말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의 도움을 많이 받을 수 있었어요. 지난 1년간 저와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영원히 이곳을 잊지 못할 거예요.”

신기하게도 속 깊은 이야기를 할 때는 스스로가 놀랄 정도로 말이 술술 나왔다. 그가 구사하는 스페인어 역시 매우 유창한 수준이어서, 이날 함께한 사람들도 그의 변화에 매우 기뻐해 주었다.

멕시코의 대표적인 휴양지인 톨루카데레르도Toluca de Lerdo에서 2015 한국어 캠프가 열렸다. 친해진 현지 봉사자들과 휴식 시간에 주변을 산책하면서 포즈를 취했다.
멕시코의 대표적인 휴양지인 톨루카데레르도Toluca de Lerdo에서 2015 한국어 캠프가 열렸다. 친해진 현지 봉사자들과 휴식 시간에 주변을 산책하면서 포즈를 취했다.
“한국에 오니 많은 친구들이 제가 솔직해졌다면서 좋아해 주더라고요. 집안에서도 마음을 쉽게 말하니,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졌어요. 이제 어떤 사람을 만나든지 마음이 편해요. 앞으로의 바람은 말을 잘하는 것을 넘어서 다른 사람들의 말을 잘 들어주는 거에요. 긍정적인 소통은 저와 타인의 마음을 모두 밝게 만드니까요.”

박규영은 해외봉사로 자신의 치명적인 단점도 고쳤지만, 이전에는 없었던 행복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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