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학교 다녀왔습니다.”책을 싼 보자기를 풀어 휙 집어던지고 신발은 거의 내동댕이치듯 하고 부엌문을 열고 외친다. 어머니는 바느질을 하시다가 보는 둥 마는 둥 이렇게 말씀하신다.“오야! 배 고프재?”“안방 이불 밑에 밥공기 있대이. 얼른 먹어라.”군불을 지펴서 뜨끈뜨끈한 안방 아랫목 이불을 들쳐보면 예외 없이 뚜껑 닫힌 은색 밥공기가 식구 숫자대로 빼곡히 놓여 있었다.어쩌다 “엄마!” 하고 불렀는데 아무도 없는 빈집일 때면, “엄마! 엄마!” 하면서 텃밭에 갔다가 산 밑에 있는 큰 밭이 보이는 못 둑에 달려 올라가서 저 멀리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자. 코로나로 뒤덮인 하늘은 어두움만 보이지만 사이사이 별빛이 존재한다. 그 별은 우리 눈엔 작지만 실제 곁으로 가보면 지구보다 훨씬 크다.부모를 떠나 살지만 가까이 가보면 내가 알던 것보다 훨씬 깊은 사랑이 기다리고 있다. 지구의 재난 속에서 시간이 흐르길 기다리는 지금, 멀리 있었던 것들에게 다가가 보자. 작아 보였지만 가까워질수록 짙은 감동을 만날 것이다.세상이 각박해지고 있는가?‘같이’의 가치를 강조하던 사회 분위기가 순식간에 바뀌었다. 마스크에 나홀로 산책, 혼밥은 필수, 다른 사람과 물리적 거리 2미터
자신을 위하려는 마음 때문에 삶이 뒤틀린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뭅니다. 많은 사람이 자신을 위할 수 있다면 어떤 길이든지 주저없이 가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걷는 인생길에는 아픔과 고통이 있습니다. 하지만 누구든지 자신을 위하려는 마음을 버리면, 사랑과 행복으로 집을 지을 수 있습니다.몇 년 전 도미니카공화국에서 IYF 월드캠프를 개최했을 때, 푸에르토리코에서도 정부 관계자 여러분이 참석하셨습니다. 그때 아레시보 시의 시장님은 캠프에서 큰 감명을 받아 “푸에르토리코의 청소년들을 위해 아레시보에서도 월드캠프를 꼭 개최하고 싶습
한자로 ‘받을 수’에 ‘뜻 정’을 써서 내 이름은 수정受情이다. 어른들의 마음을 받아 살길 바라시며 아버지가 손수 지어주셨다. 나는 내 이름의 한자 의미를 좋아하지만, 똑같은 발음이지만 ‘고치고 정돈한다’는 뜻의 수정修整도 좋아한다. 내가 그릇된 마음으로 흘러갈 때 올바른 마음으로 수정하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모르고 짐작만으로 오해할 때 마음을 열고 진심을 나누면서 서로의 마음을 수정한다.오늘도 사랑하는 이들이 나의 이름을 부른다. “수정 선생님~, 수정 씨~, 수정아~” 그럴 때마다 “제 마음을 받아주세요~, 마음을 조금만 바꿔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도 청소년들은 기성세대의 눈에 항상 불안하고 부족해 보이는 법이다. 행복한 미래를 만들 수 있는 젊음과 열정을 가지고 있는 반면, 그것을 잘못 사용하면 형편없이 망가질 수 있고 주위를 크게 해치는 사람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바른 판단이나 결정을 내리기에 인생 경험이 부족하고 정체성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청소년들은 잘못된 환경에 휩쓸려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문제를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좋은 환경을 제공하려고 하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사회나 국가에서도 미래의
얼마 전, 멘토링을 하고 있는 학생들과 어떤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부분 본 영화여서 저마다 감상을 한마디씩 했다. ‘재밌었다’, ‘무섭다’, ‘싫다’, ‘그냥 머리가 아팠다’ 하지만 자신이 왜 그렇게 느꼈는지 근거를 들어 설명하는 학생은 없었다.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이것은 글쓰기의 육하원칙이다. 우리는 기사 글을 쓸 때 이와 같은 원칙에 따라 써야 한다고 배웠다. 다른 실용적인 글들도 이 원칙에 맞출 때 글이 윤곽을 갖추면서 메시지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구조로
‘말을 타고 먼 길을 가려거든 말편자부터 고치라’는 말이 있다. 편자란 말발굽을 보호하고 갈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 발바닥에 고정시키는 C자 모양의 쇠붙이다. 말의 신발이라고 보면 이해하기 쉽다. 사극이나 영화 등에도 말을 타고 가던 사람이 생각지도 못하게 편자가 떨어져 낭패를 보는 장면이 등장한다.인생도 마찬가지 아닐까. 별 것 아닌 것 같은 사소한 습관이나 잘못된 자세가 우리의 발목을 잡는 바람에 인생이란 경주에서 힘차게 달려가지 못하는 경우를 우리는 자주 접한다. 이번호에서는 이런 방해요소 3가지를 살펴보겠다.방해요소#1: 트렌
초등학생 때 가족들과 함께 제주도에 여행을 갔다가 한 카페에서 독특한 디저트를 만났다. 독일의 전통 과자 ‘슈니발렌’으로, 초콜릿으로 뒤덮인 과자와 망치가 놓여 있었다. 어색한 도구 대신 이를 사용해 과자를 맛보고 싶다는 생각이 일어나 과자를 한 입 베어 물었다. 그런데 내 이가 부러질 것 같았다. 그제야 망치의 용도를 깨달았다. 나는 망치로 과자를 한참 부순 후 한 조각을 맛볼 수 있었다. 그날 배운 교훈은, ‘어떤 것은 깨져야만 달콤함을 맛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시간이 흘러 진학할 고등학교를 결정해야 했던 때, 나는 힘든 중학
시간은 정말 빠르다.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젠 대학생이 된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나는 지극히 평범한 학생이었다. 계획을 짜긴 하지만 실천으로 옮기는 것을 어려워하는 10대, 좋은 일이 있을 땐 마냥 기뻐하고 힘들고 짜증나는 일이 있을 땐 그냥 화를 내는 학생이었다. 내 주위에 있는 대부분의 친구들이 나와 같았기에 내가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을 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 기숙형 고등학교에서 3년을 지내며 그 평범했던 삶의 방식이 내 삶을 얼마나 엇나 가게 하고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고등학교에 들어온 뒤 처음
사고를 깊이 하면 유혹이 와도 휩쓸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유혹에 휩쓸리지 않는 더 좋은 길이 있습니다. 탕자처럼 아버지의 사랑을 느끼며 사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 고마운 사람들이 많아지면 함부로 사는 것이 힘들어집니다. 멋대로 살아서 그분들의 마음에 아픔을 남기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대부분의 학교에서는 지식이나 정보를 가르칩니다. 그런데 성경은 인간 마음이 어떤 모양을 하고 있으며 어디로 흘러가는지에 대해 가르쳐 줍니다. 이것을 우리는 마음의 세계라고 부릅니다. 성경에 나오는 탕자 이야기는 널리 알려진 내용으로, 많은
졸업의 계절 2월이다. 영어로는 졸업을 graduation 또는 commencement라고 하는데, ‘커멘스먼트’라는 단어엔 졸업말고 시작의 의미도 있다. 초등학교 졸업 후 중고교 입학이 순차적으로 연결되는 현행 제도에서, 졸업은 종착점이자 동시에 출발점인 것이다.대학 졸업은 이와 상황이 약간 다르다. 갈 길을 정한 경우도 있는 반면, 사회 진출의 문을 찾지 못해 서성대는 친구들도 많기 때문이다. 이들은 졸업과 함께 지난날을 ‘리셋’하고 새롭게 출발하고 싶지만, 얼마 뒤 다시 진흙탕 같은 미래를 맞닥뜨릴 것 같아 불안하다고 말한다.
대학 입학 후, 시간이 흐르면서 주변 친구들이 하나둘 남자친구를 사귀기 시작했어요. 처음엔 별생각이 없었는데, 점점 친구들을 만나기 힘들어지고 어렵게 한번 모이면 남자친구에 대한 이야기만 나누더군요. 점심시간에 함께 밥 먹을 친구도 점점 사라지고, 외톨이가 된 기분이었어요. 그런데 한 달 전 교양 수업을 함께 듣던 선배가 제게 고백을 했어요. 갑작스럽긴 했지만, ‘계속 보다보면 좋아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사귀기 시작했어요.그렇게 한 달이 흘렀습니다. 오늘도 남자친구와 함께 밥을 먹고 왔어요. 그런데 여전히 설레거나 좋아하는 마음
‘진짜 전문가’ 핵심역량 #1: 호환성Compatability지금이야 음악을 들으려면 스마트폰이나 MP3를 사용하지만, 2000년대 초까지 음악마니아들이 즐겨 쓰던 것은 미니디스크 플레이어였다. 당시 주류였던 카세트테이프나 CD에 비해 크기가 작아 휴대가 간편하면서도 음질은 더 뛰어났다. CD는 최대 90분, 테이프는 120분 정도 녹음이 가능했지만, 미니디스크는 8시간까지 녹음이 가능했다.하지만 MP3가 대중화되면서 미니디스크는 점점 소멸해 갔다. 승패를 가른 것은 ‘호환성’이었다. 파일형태로 소리를 담는 MP3는 전용플레이어는
호주에서 북동쪽 약 3천 킬로미터 떨어진 섬나라 ‘나우루 공화국Republic of Nauru’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지상낙원’으로 불렸다. 단지 남태평양 특유의 수려한 경관과 오염되지 않은 자연 때문이 아니었다. 이 나라 국민들은 세금을 전혀 내지 않았다. 교육비와 의료비도 무료였으며, 유학생은 정부가 학비를 전액 부담했다. 각 가정에는 매년 1억 원씩 연금이 주어졌고, 신혼부부에게는 무료 주택이 제공되었다. 단칸방 수준이 아닌, 방 2칸에 부엌과 거실까지 붙은 번듯한 집이었다. 1980년대 나우루의 1인당 국민소득은 2만
엄마는 내가 1살 때 이혼을 하시고 나를 쭉 혼자 키워 오셨다. 너무 어릴 때 부모님이 이혼하셨기 때문에 나는 아빠에 대한 기억이 없다. 어릴 땐 남들도 다 나처럼 사는 줄 알았다. 하지만 엄마가 많이 사랑해주셨기 때문에, 아빠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지진 않았다.고등학교 선생님인 우리 엄마는 늘 바쁘셨다. 야간자율학습 감독을 하고, 출장을 가고, 수업 준비며 시험 채점이며, 일과를 마치고 매일 밤 10시가 되서야 집에 돌아오시곤 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엄마의 역할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전날 늦게 귀가해 몸이 고단해도, 내가 소풍
고등학생 시절, 나는 프랑스 소설에 푹 빠진 적이 있었다. 그렇다고 반드시 불어불문학을 전공하겠다는 큰 뜻은 없었다. 하지만 내가 합격한 대학에 지원했던 전공이 불어불문학과였다. 대학 입학 이후, 프랑스 문학에 흥미가 있었지만 문학을 배우기에 앞서 불어라는 생전 처음 보는 낯선 언어 때문에 약간의 고난이 있었다.문학수업은 불어 텍스트를 직접 독해해야 했기 때문에 3학년을 마칠 무렵에야 비로소 수업을 제대로 따라갈 수 있게 되었다. 뒤늦게 맛본 프랑스 문학의 매력은 너무나 달콤했고, 직감적으로 ‘이게 내 길이다’라는 묘한 느낌을 떨칠
늘 편하고 부담 없는 삶을 산다면 우리는 작은 문제도 이기지 못하고 작은 불편도 견디지 못하는 약한 존재가 되고 말 것입니다. 인생에 어려움이 찾아와도 ‘늘 편하고 부담없는 일만 하며 살 수는 없어’ 하고 그 어려움을 기꺼이 감내할 수 있다면, 어려움 뒤에 찾아오는 기쁨을 맛볼 수 있습니다.사람은 대부분 어려움이나 문제가 없는 삶을 살고 싶어 합니다. 시련이나 어려움은 되도록 피하기를 원하고, 그런 시련이나 어려움이 없는 삶이야말로 이상적인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현대인들은 이전보다 물질적으로 풍족하고 편리한 삶을 삽니다. 커피
같은 하루도 어떤 날은 빈둥거릴 때가 있고, 어떤 날은 바늘 하나 꽂을 틈도 없이 보낼 때가 있다. 내 경우에 그 차이는, 대체로 목표 유무로 나뉜다. 할 일이 많아도 오늘까지 끝낼 이유가 없으면 일의 속도가 달 위를 걷듯이 느릿해진다. 하지만 죽을 일 생겨도 원고는 쓰고 죽어야 한다는 마감일이 도래하면 부수적인 일에 마음을 분산시킬 수 없다. 달려갈 길이 급하고 또 분명하니까 흥분할 일에도 휩쓸리지 않는다.하루를 살아도 이렇게 목표가 있는 것과 그냥 사는 것은 차이가 난다. 공부를 하고 운동을 하고 노래를 부르더라도, 하고 싶어서
1970년 9월, 세계 역도 선수권대회가 열린 미국 오하이오주의 어느 체육관. ‘세계에서 가장 힘센 사나이’를 가리는 이 대회에서 관중들의 시선은 한 사람에게 쏠려 있었다. 소련에서 온 바실리 알렉세예프였다. 그해 1월에 세계 신기록을 세운 그는 당대 110kg 이상급의 최강자였다. 관중들의 관심사는 단 하나, ‘알렉세예프가 용상에서 몇 파운드를 들어올리느냐?’였다.역도에서 용상聳上이란 역기를 일단 가슴까지 들어올렸다가 머리 위로 들어올리는 종목이다. 당시에는 운동의학자와 트레이너들을 중심으로 ‘인간이 용상으로 들어올릴 수 있는 무
작은 일에 안절부절못하고, 친구들의 농담에도 심각하게 반응하는 제가 싫어요ㅠㅠ저는 무슨 일이 생기면 겁부터 나고 초조해지는가 하면 별 것 아닌 일에도 고민하느라 잠을 못 자곤 합니다. 동글동글한 외모 때문인지 사람들은 제가 속이 아주 넓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저는 자주 오해하다가 심각해지고, 그런 제 못난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일부러 더 괜찮은 척합니다.한번은 사귄 지 얼마 안 된 친구와 사소한 일로 다투었습니다. 사실 몇 마디 이야기만 하면 웃으며 화해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문득 ‘얼렁뚱땅 넘어갔다가는 사이가 틀어질 수 있겠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