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멘토링을 하고 있는 학생들과 어떤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부분 본 영화여서 저마다 감상을 한마디씩 했다. ‘재밌었다’, ‘무섭다’, ‘싫다’, ‘그냥 머리가 아팠다’ 하지만 자신이 왜 그렇게 느꼈는지 근거를 들어 설명하는 학생은 없었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이것은 글쓰기의 육하원칙이다. 우리는 기사 글을 쓸 때 이와 같은 원칙에 따라 써야 한다고 배웠다. 다른 실용적인 글들도 이 원칙에 맞출 때 글이 윤곽을 갖추면서 메시지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구조로 글을 쓰거나 이야기하는 데에 익숙하지 않다. 특히 요즘 청소년들 사이에선 말과 글을 축약하고 합성해서 사용하는 게 유행이다. 그런 까닭인지, 말할때 제대로 된 문장을 완성하지 못하고 말끝을 흐리거나 이어가지 못하는 청소년들이 많다.

이 빠진 말과 글은 이 빠진 생각과 같다. 마음과 생각은 언어와 글로써 표현되기 때문이다. 표현이 서툰 이유는 생각의 뼈대를 갖추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럴 때 육하원칙을 생각의 뼈대로 삼아 정리해 보면 여러가지 장점을 얻을 수 있다. 하나의 사건을 육하원칙에 맞게 서술해보면 사건의 주체, 배경이 되는 시간과 공간, 그 속에서 일어난 사건의 양상 같은 외형적 상황뿐 아니라, 그 사건이 일어난 원인과 목적 같은 내부적 상황도 파악할 수 있다.

육하원칙 중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야 할 요소는 ‘왜?’이다. ‘왜? 무엇 때문에?’에 따라 나머지 요소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어느 지역에 기근이 들어 도둑이 들끓고 치안이 무너졌다면, 기근과 굶주림이라는 강력한 동기가 그런 상황을 야기한 것이지 그 지역이 특별하거나, 그 사람들이 유독 악해서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은 아니다. ‘무엇 때문에’라는 동기와 목적이 전체 상황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인 것이다. 그래서 좋은 글과 기사들은 ‘왜’에 집중해서 보다 객관적이고 정확한 근거 자료를 제시하고 상황을 입체적으로 조명하려고 노력한다. 반대로 자극적이고 질이 떨어지는 기사일수록 ‘누가’에 초점을 맞춰 대서특필할 뿐, ‘왜’에 대해서는 정확하지 않은 자료를 무책임하게 인용하는 경우가 많다.

사고의 시작도 ‘왜?’에서 출발한다. ‘왜’라는 질문에서 사고력이 자라나기 시작한다. 끊임없는 ‘왜’가 사고의 그물을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짜서 의미를 부각시켜준다. 뿐만 아니라, 부각된 의미들 중에 더 높은 가치를 ‘선택’하게 해준다. 예를 들어보자. 나는(누가) 집에서(어디서) 오전 9시경부터 오후 3시까지(언제) 컴퓨터 게임을(무엇을) 점심도 안 먹고 쉬지 않고 했다(어떻게). 이렇게 써놓고 마지막

‘왜?’에서 막힌다. ‘재미있어서’라고 하기에는 몰골이 폐인 같다. 그래서 솔직히 ‘중독되어서’라고 쓴다. 이렇게 자기가 보낸 하루를 육하원칙에 맞게 기술해 보기만 해도, 내 문제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알 수 있다. 그래서 써보는 것, 특히 육하원칙에 맞춰 일기를 써보는 것은 사고력을 기르는 데 있어서 더 없이 좋은 방법이다. ‘왜?’에서 어쩔 수 없이 한 번 더 돌아보게 되고,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왜? 무엇 때문에?’로 시작되는 2차적, 심층적 사고가 선택하는 삶, 주도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쓰기를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일기는 더욱 그렇다. 쓸 말이 없다는 것이다. 그럴 때 띄엄띄엄 더디더라도 지난 하루를 떠올리며 육하원칙에 맞게 있었던 일들을 기술해보자. 그리고 쓰면서 ‘왜’를 한 번 더 생각해보자. 그러면 ‘어떻게’가 바뀌고 ‘무엇을’이 바뀌고 ‘언제, 어디서, 누가’가 바뀐다.

엄마가, 어제, 내 방에서, 나에게, 야단을 쳤다. 자기 가슴을 치면서. 왜? 컴퓨터 게임 좀 그만하라고. 왜? 그러면 중독된다고. 왜? 중독은 나를 망하게 한다고. 왜? 내가 망하는 게 엄마에겐 못 견딜 일이니까. 왜? 나를 사랑하니까….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면 ‘나는, 일요일에 한 시간, 거실에서, 컴퓨터 게임을, 알람을 맞춰 놓고 한다. 왜? 잠시 즐기기 위해서’로 바뀔 수 있다.

요즘은 전자기기에 사로잡혀서, 마주 앉은 사람을 향하지 못하고 고개 숙인 얼굴, 진지한 응시가 사라진 흐린 눈동자, 사고력이 바닥난 멍한 표정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주도적이고 주체적인 사고가 힘들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거나 경험을 공감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물론 디지털 기기들의 편리함은 감탄스러울 정도이다. 하지만 그 편리함에 홀려서 내주지 말아야 할 ‘생각할 시간’을 내줌으로써 우리는 엄청난 낭패를 맛보고 있다. 그러므로 디지털 기기에 빼앗긴 시간을 되찾아 와서 조각난 언어를 깁고 추스르며 계속 질문해야 한다. 질문을 통해 사고력을 기르고, 그 생각의 과정을 즐길 수 있을 때, 나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고, 몰랐던 나의 새로운 모습도 만나게 된다. 나아가 다른 사람의 언어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게 된다. 그 첫걸음으로 서툴더라도 육하원칙에 맞추어 차분차분 일기를 써보자. 생각이 분명해지고 머리가 가벼워지는 걸 느낄 것이다.

글=김현희 (청소년 심리 상담사, 인성교육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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