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시절, 나는 프랑스 소설에 푹 빠진 적이 있었다. 그렇다고 반드시 불어불문학을 전공하겠다는 큰 뜻은 없었다. 하지만 내가 합격한 대학에 지원했던 전공이 불어불문학과였다. 대학 입학 이후, 프랑스 문학에 흥미가 있었지만 문학을 배우기에 앞서 불어라는 생전 처음 보는 낯선 언어 때문에 약간의 고난이 있었다.

문학수업은 불어 텍스트를 직접 독해해야 했기 때문에 3학년을 마칠 무렵에야 비로소 수업을 제대로 따라갈 수 있게 되었다. 뒤늦게 맛본 프랑스 문학의 매력은 너무나 달콤했고, 직감적으로 ‘이게 내 길이다’라는 묘한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대학원에 간다.

그러나 이렇게 멋들어지게 포장한, 대학원을 가게 된 표면적인 이유 뒤에는 다른 이유가 하나 더 있다. 4년 동안 프랑스 문학을 배웠다지만, 나는 아는 게 없다.

불어를 잘하느냐? 그것도 아니다(처음 내 불어 발음을 들은 한 친구는 내가 중국어를 하는 줄로 알았을 정도다). 문학을 잘하느냐? 이제야 제대로 배우게 된 초짜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취직할 만한 스펙이나 경력도 없고, 컴퓨터 하나도 능숙하게 못 다룬다. 그래서 나는 대학원에 간다.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배우러 대학원에 간다는 것이 나의 실제 이유이다.

한편으론 나의 대학생활이 그저 평범하다고 생각되지만, 아쉬움이나 후회는 남지 않는다. 20살 땐 성인이 되어 누릴 수 있는 자유도 나름대로 느껴봤고, 21살 땐 코트디부아르로 해외 봉사를 다녀와 그저 영위하기에 바빴던 삶에 활기와 목적을 얻었다. 복학해서는 D부터 A+까지 다양한 점수를 받으며 내가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을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존경하는 교수님에게 수업을 들을 수 있었고, 성적이 뛰어나게 우수한 건 아니지만 소정의 장학금도 받았다. 무엇보다 졸업하기 전에 태어나 처음으로 공부에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사실 고등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지난 6년은 불확실의 연속이었다. 불문학과가 내게 잘 맞을지도 불확실, 해외 봉사를 가는 게 좋을지도 불확실, 내가 대학원 가는 게 좋을지도 불확실했다. 그 과정이 설레일 때도 있었지만, 절망을 맛봐야 할 때도 많았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내 마음 속에는 ‘좀 더뎌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면, 반드시 내 길을 찾게 될 거야’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리고 그 믿음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2020년, 수많은 흔들림 끝에 드디어 나의 길이 조금씩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이젠 불확실함을 덜고, 더 씩씩하게 내 길을 걸어가 보려한다. 마지막으로 늘 나를 응원해준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존경하는 교수님께 감사를 표한다.

글=이영선
대학교 졸업과, 대학원 입학을 앞둔 채 불어 자격증 준비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이영선 씨. 새로운 길 앞에서 두려움보단 기대감이 앞선다고 말한다.

 

저작권자 © 데일리투머로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