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는 청년들에게

같은 하루도 어떤 날은 빈둥거릴 때가 있고, 어떤 날은 바늘 하나 꽂을 틈도 없이 보낼 때가 있다. 내 경우에 그 차이는, 대체로 목표 유무로 나뉜다. 할 일이 많아도 오늘까지 끝낼 이유가 없으면 일의 속도가 달 위를 걷듯이 느릿해진다. 하지만 죽을 일 생겨도 원고는 쓰고 죽어야 한다는 마감일이 도래하면 부수적인 일에 마음을 분산시킬 수 없다. 달려갈 길이 급하고 또 분명하니까 흥분할 일에도 휩쓸리지 않는다.

하루를 살아도 이렇게 목표가 있는 것과 그냥 사는 것은 차이가 난다. 공부를 하고 운동을 하고 노래를 부르더라도, 하고 싶어서 또는 해야 할 사명을 띠고 하는 것과 그냥 하는 것은 다르다. 어떤 일에 분명한 목표를 가지면, 같은 일도 즐겁게 하고 힘들어도 견딜 강단이 생긴다. 마음에 꿈을 품은 자는 제자리에 있는 것처럼 보여도 나아갈 방향을 알고 있기에 그냥 서 있는 게 아니다. 하루를 사는 것도 목표 유무에 따라 이렇게 같지 않은데, 하물며 백세 시대에 꿈이 있고 없고는 얼마나 큰 차이를 가져오겠는가!

나는 20대를 만날 기회가 제법 많다. 그들을 마주하면 이름보다 꿈부터 묻는다. 이 질문에 주저하지 않고 대답하는 청년이 드물다는 걸 안다. “꿈이 없어요” “나도 꿈을 갖고 싶어요”라고 말꼬리를 흐리는 청년들의 심정도 이해한다. 어린 시절의 장래희망이 아닌 이상, 수능점수에 맞춰 대학에 왔고, 스펙에 따라 취업하고, 조건을 따져 상대를 고르는 것이 인생의 평균율로 아는 그들에게 언제 꿈을 심고 키워볼 기회가 주어졌나 싶기도 하다.

그래도 꿈은 숨겨두지 말고 자꾸 외쳐야 새로운 힘을 얻는다. 원래 꿈이란 깜깜한 밤에 보이는 별과 같은 존재다. 꿈은 현재가 아닌 내일의 영역이라서 얼토당토않고 우주처럼 광활해도 좋다. 마음에 꿈을 품은 사람은 지금의 삶이 어렵고 어둡더라도 함부로 살지 않는다. 현실이 힘들다고 스스로를, 주위 사람들을 마구 자근거리거나 주변 상황을 쉽게 팽개치지 않는다. 그래서 만나는 청년들에게 크든 작든 어떤 꿈이라도 가져보라고, 외쳐보라고 권한다.

“모든 것은 꿈에서 시작된다. 꿈없이 가능한 일은 없다. 먼저 꿈을 가져라.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

<인간의 조건> 저자이자 프랑스 문화부 장관을 지낸 앙드레 말로가 남긴 말인데, 곱씹을수록 희망이 솟아난다. 그러니 일단 꿈부터 꾸고 보자. 자신의 꿈이 뭔지 모르겠으면 해보고 싶은 모든 리스트를 열거해 본다. 버킷 리스트든, 목표노트든 어떤 이름이라도 괜찮다. 모두 모아놓고 보면 자신이 원하는 것들의 공통분모가 드러날 것이다. 실현 가능성은 뒷전에 두고, 꿈을 가지는 것부터 시작했으면 좋겠다. ‘꿈이 있는가?’ 이 단계를 거쳐야 꿈의 방향과 종류를 논할 수 있다. 마음에 담긴 꿈은 가만히 있지 않고, 다른 모습으로 성장하든지 아니면 중간에 사라지는 과정을 밟는다. 그래서 꿈은 심리적 유기체이다.

우리가 태어나면 저절로 나이를 먹듯이, 마음에 꿈이 생기면 그 순간부터 꿈도 나이를 먹기 시작한다. 예컨대 5살에 처음 스케이트를 접한 김연아는 7살 때 세계 최고의 피겨 스케이팅 선수라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리고 신체나이 20세 되던 벤쿠버 동계 올림픽에서 드디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꿈나이 13년 만의 결실이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 역시 10살 때 대통령이라는 꿈을 가졌고 48살에 미국 최연소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당시 꿈나이 38세였다. 꿈을 이룬 이들은 지금 또 다른 꿈을 그리며 살고 있다. 인생에서 일찌감치 꿈을 찾고 실현한 이들이 특별한 것은 사실이다. 비록 자신의 꿈나이가 ‘제로’라고 해도 주눅들지 말자.

오늘부터 당장 꿈을 꾸면 된다. 누구나 인생은 한 번뿐이지만, 꿈인생은 여러 번 주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이다.

실제 삶에서 꿈은 계단과 같다. 층층계단을 밟고 왔는데 어느덧 높이 와 있거나 다른 영역으로 이동해 있는 경우를 본다. 계단 하나하나는 살면서 만나는 작은 기회들이다. 이들을 밟고 오르면서 점점 큰 꿈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계단을 오를 때마다 아랫계단에서는 볼 수 없었고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꿈이 기다리고 있다. 이것이 꿈의 무한세계다.

우리나라에서 반기문이란 이름을 모르는 청년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에 관한 책들을 읽고 강연을 들어보면, 그의 삶이 아름다운 이유는 유엔 사무총장이라는 높은 자리에 올랐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 꿈을 이뤄가는 과정 자체가 아름답고 감동적이어서 그렇다. 처음부터 그가 ‘유엔 사무총장’을 꿈꾼 것은 아니었다. 초등학생 때 변영태 외교부 장관의 연설을 들으면서 ‘저 장관님처럼 나라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마음이 생겨 꿈의 계단에 진입한다.

중학교 때 그가 살던 충주에 큰 비료공장이 세워지면서 미국인 엔지니어들도 들어왔는데, 그들이 지역 주민들을 위한 영어회화반을 열면서 그도 실전 영어를 배울 기회를 얻는다. 충주고 3학년 때 그는 외교관의 꿈을 확증할 결정적 계기를 만난다. 전국 영어에세이 대회에 출전해 수상했고 미국 방문 프로그램인 ‘비스타’에 선발된 것이다.

그는 백악관을 방문한 자리에서 당시 케네디 대통령으로부터 꿈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고, 씩씩하게 “외교관입니다”라고 답했다. 이쯤 되면 꿈의 계단이 어렵지 않다. 성큼성큼 오르면서 어느 순간부터는 가속도가 붙는다. 이듬해에 그는 서울대 외교학과에 입학, 1970년 졸업과 함께 외무고시에 합격해 외교관의 꿈을 이룬다. 이후 37년간 외교관과 외교부 장관을 역임했고, 2007년 한국인 최초로 유엔 사무총장에 당선된다. 연임까지 잘 마무리한 그는 현재 국가기후환경회의 위원장직을 맡고 있다. 그는 세계 평화와 지구 보존 등 인류의 보편적 가치 구현을 위해 계속 열정적인 노력을 보여 줄 것이 분명하다.

점선 안의 인물이 당시 고3이었던 반기문 전 총장의 모습.
점선 안의 인물이 당시 고3이었던 반기문 전 총장의 모습.

반기문 총장을 비롯한 세계적인 리더들의 일생을 보면, 꿈이 자신의 내부에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어떤 사람과의 만남이나 어떤 사건에 영향을 받아 생겨난다. 그래서 꿈이 없는 청년들에게 ‘좋은 꿈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라’고 말해주고 싶다. 꿈은 교류하면서 잉태되기 때문이다.

나 역시 기자, 편집장, 편집주간, 본부장, 발행인이라는 계단을 하나하나 거쳐 왔다. 그 꿈은 모두 주변분들이 만들어준 선물이다. 올해 나는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한다. 세계 최고의 잡지 발행인, 종이 잡지가 힘을 잃는 이 시대에 더 많이 발행해서 더 많은 젊은이들의 손에 쥐여주고 싶다. 그들이 <투머로우>를 읽고 마음이 맑고 밝게 정돈될 때 이 사회의 행복수치가 올라갈 것을 믿는다. 잡지 흐름을 아는 분들은 황당한 발상이라시겠지만, 좋은 꿈을 꾸는 분을 알면서 나에게 생긴 새로운 꿈이다. 그래서 누구를 만나느냐가 인생의 꿈을 만드는 데에 가장 중요하다.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에 나오는 시구詩句로 끝을 맺는다. 한 사람을 제대로 만나는 것은 꿈을 꾸려는 자에게 필수 요건이다.

사람이 온다는 건
사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글=조현주|발행인·편집인

저작권자 © 데일리투머로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