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들이 설계도를 그린 후 집을 짓듯 사람들도 마음에 저마다의 그림을 그린다. 발달장애와 대인기피증으로 인해 그림 그리기를 포기했던 대학생 이윤섭은 이제 환하게 웃는다. 그리고 말한다. 자신에게 맞는 아름다운 그림을 자유롭게 그리노라고. 저 넓은 창공에 무지개빛 청춘을 그리는 그를 소개한다. 소년은 어릴 적 조산아로 태어나서 발달장애를 겪었다. 부모님의
네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엄마는 병원에 가고, 동생은 일가 친척집에 맡겨져 있었지. 그래서 혼자 열쇠를 목에 걸고 학교를 다녀와 문을 열고 들어섰을 아들을 생각해 보았다. 아빠는 회사에 가고 나면, 너 혼자서 아파트 문을 따고 들어 와서 가방을 놓고 공부하다가 앞집 우성이 아줌마한테 저녁을 얻어먹었지. 넌 그렇게 학교를 다녔는데 기억나니? 그 외에도 엄마의
2008년은 중국의 환경이 상당히 열악했다. 특히 기차를 타보면 사람이 가득 찬 구간에서는 물을 뜨러 나가는 게 여간 쉽지 않다. 기차 안에 같이 타고 있던 중국인들이 무슨 약속이나 한 듯 컵라면을 착착착 전달하면 수도꼭지 근처에 있는 사람까지 전해진다. 그리고 그 곳에서 물을 담아서 컵라면을 준 사람에게 다시 돌아오는 일사불란한 공동체 의식이 신기할 정도
개그 중 이 요즘 핫 하다. 연애 심리를 아주 잘 표현해낸 썸과 쌈(사랑이냐 싸움이냐)의 스토리에 사람들은 박장대소했다. 조용한 물리학도로 숫기 없던 한 청년이 중국을 사랑해 ‘썸’을 타게 된 사연이 있다. 급기야 전공까지 중국어학과로 바꿔서 몰입했다. 현재 대학교 4학년인 이영표 씨는 중국으로 해외봉사를 다녀오면서 외국어의 보고寶庫를 발견했다.
중국의 기업인들 중국과 왜‘썸~’탔을까?“중국하면 사람이다!” 강서림(취준생)언론을 통해 접하게 되는 중국 사람들에 대한 좋지 않는 소문이 무성하다. 특히 ‘사기꾼과 나쁜 짓만 하는 사람들’이란 유언비어가 많다. 하지만 내가 만난 중국 사람들은 대륙의 기질을 가진 넓은 마음의 소유자였다. 어디서나 쉽게 친해질 수 있고, 때론 한국인보다 순수하게 느껴지는 건
개발도상국이면서 사춘기의 홍역을 앓고 있는 중국. 그런 중국이 기지개를 펴고 세계 정상을 향해 10년째 마라톤 중이다. 2~3시간 거리를 옆 동네라고 표현하는 중국인. 때로는 명품 구매에 열을 올리지만 자존심과 과시욕 속에 사회적 책임이 뛰어난 기업을 선호하는 두 얼굴의 중국인. 하지만 그런 중국인들의 마음을 읽어내지 못해 핑크빛 중국 사업에 낭패를 보는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연초에 계획했던 일들을 하나둘 점검하게 되는 시기이다. 전진희 양은 지지난달 소원했던 ‘교환학생’이 되었다. 현재 한국 교민들을 위해 틈틈이 통역활동을 하는 등, 민간외교관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아침을 거른 사람들은, 식사하며 설명을 들으세요~!”대만 생활은 학기 첫 수업부터 내 고정관념을 무너트렸다. 곰실곰실, ‘향차이(
내가 인도로 간 세 가지 이유내가 해외봉사 파견국으로 인도를 선택한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큰 나라’였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서 건축업을 하셔서 나는 중국에서 5년 정도 생활했고, 중학교도 중국에서 마쳤다. 내가 중국에서 지내면서 느낀 것은 ‘인구가 많은 나라는 대개 땅도 넓고 자원도 풍부해서 느리지만 꾸준히 발전을 계속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도심과 마을, 산, 강, 들판 어딜 가도 사람이 없는 곳이 없으며 196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문화를 한꺼번에 경험할 수 있는 인도. 1년 동안 다양하고 재미있는 갖가지 봉사활동을 하며 봉사단원들이 얻었던 수많은 가치는 무엇이었을까. 오랜 가식을 벗었던 인도 시간솔직하게 자신을 표현하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동경했지만 정작 자신은 가식뿐이라 괴로워했던
지난 한 해 동안 내가 봉사했던 영국은 1년의 반은 비가 왔을 정도로 항상 우산을 가지고 다녀야 했다. 그런데 나머지 화창한 날들은 한국보다 더 날씨가 좋았다. 봉사하는 동안 힘든 시간도 많았지만 보람되고 뜻 깊게 마쳤기 때문에 ‘우중충한 영국’이 아닌 ‘화창한 영국’으로 기억된다. 한국어 클래스와 양로원에서의 추억내 기억에 가장 즐거웠던 봉사는 고등학교
#1. 공연 무대 설치 (2013.2~2013.5)무릎 깊이만큼 눈이 내렸던 2월. 한국에서 온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할 일이 태산같이 쌓여 있었다. 당장 5월에 굿뉴스코 영국지부에서 공연될 굿뉴스코 공연 무대를 만드는 일이 급선무! 시차 때문에 졸음이 쏟아졌지만 온종일 페인트칠을 하고 스티로폼 조형물을 다듬었다. ‘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렸
세계에서 가장 부강한 나라들이 모인 곳, 서부 유럽! 하지만 그곳에도 자원봉사자들의 손길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 붐을 일으키고 있는 한국 문화를 배우고 싶어하는 젊은이들부터 인생의 노년을 쓸쓸하게 보내고 있는 노인들까지…. 진심을 담아 봉사하는 동안 인생의 꿈도 찾은 세 청년의 이야기! 내 귀를 솔깃하게 한 굿뉴스코 해외봉사2010년 대학에
무더운 여름이 저물어가던 지난달, 서울 용산구 한남동 Light House Pictures 스튜디오. 찰칵찰칵! 카메라 플래시가 쉴 새 없이 터진 지 몇십여 분이 흘렀을까. 생전 처음으로 경험하는 모델 일에 잔뜩 긴장해 있었던 수현 씨의 자세가 점점 자연스러워졌다. “해외 봉사를 하며 보냈던 1년이 지금의 저를 만들어줬어요!”라며 수줍게 웃는 얼굴, 세트장
해외봉사는 봉사국 사람들을 도와주는 일을 하는 일이지만 오히려 도움을 받기도 한다. 조영준 씨는 인도 해외봉사를 떠나서 그 인생에 꼭 필요한 전환점을 만났다. 2011년 2월 초, 조영준 씨는 인도 캘커타 공항에 도착해 비행기 밖으로 향하는 문을 지나고 있었다. 설렘 반, 기대 반으로 무거운 짐 가방을 메고 출국장에 다다랐을 때 그는 느꼈다.‘덥다!’그리고
2012년부터 굿뉴스코 미국 해외봉사단원들은 ‘아이티에 희망을Deliver Hope to Haiti‘이라는 모토로 지진으로 무너진 아이티로 영어캠프 봉사를 떠난다. 아이티 학생들에게 영어캠프는 새로운 언어에의 도전을 넘어 삶에 희망을 주는 캠프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올해는 6월 16일부터 25일까지 열흘간 미국 전 지역에서 모인 304명의 봉사자들과 아이티
스물아홉, 1년을 해외에서 보내다 오기엔 다소 늦은 나이였지만 20대의 마지막 해를 뜻깊게 보내고 싶은 마음에 지원한 임영광 씨. ‘인도에서의 1년은 내 인생에서 최고의 터닝포인트였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그의 마인드 힐링 스토리를 듣고 우리도 행복 바이러스에 전염되어 보자. 더럽고 냄새나고 고생만 하다 온 나라에 다시 가고 싶다니?임영광 씨가 처음 굿뉴스
김한솔 모잠비크 대학생들은 대부분 긴바지, 특히 청바지를 즐겨 입습니다. 반바지는 잘 입지도 않지만 학교에서 허락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해요. 이맘때의 모잠비크는 겨울이기 때문에 대부분 반팔티나 민소매 위에 점퍼를 걸치고 다녀요. 남학생들은 후드티 하나 입고 짧게 자른 머리로 단정하게 다니는 편이에요.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이 길면 지저분해 보이거든요. 여학
느닷없이 불어오는 바람처럼, 가슴이 나에게 말해왔다 천 개의 언덕을 가진 아프리카 르완다. 바람은 나의 머리칼을 스치고 지나가며 저 하늘 위 손만 뻗으면 잡힐 듯 가까이 흘러가는 구름은 나의 기분을 상쾌하게 한다. 그렇게 나는 매일 수도 키갈리 언덕을 넘는다. 굽이굽이 능선마다 위치한 마을의 소소한 일상에 담긴 선한 시선과 진실한 마음들을 나의 두 눈과 카
중간고사를 갓 마치고 서울과 부산에 사는 대학생들이 대학로의 한 카페에 모였다. 그들은 지난 한 해 동안 아프리카에서 봉사하고 돌아온 굿뉴스코 해외봉사단원들로, 아프리카를 그리워하는 그들의 얼굴엔 행복이 가득하다. 기자가 던진 몇 마디 질문에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이들의 이야기들을 간추리고 간추려 보았다. 전 세계 다양한 국가 중에 특히 아프리카로 해외봉사를
2013년 2월, 우다겸 씨는 시원한 바람이 있는 케냐 나이로비 공항에서 남동쪽 해안에 위치한 도시 몸바사로 이동했다. 다리를 지나 몸바사 섬으로 들어갈수록 습하게 더워지는 날씨 속에서 그는 앞으로 봉사하게 될 1년이 가슴 두근거리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했다. “3~4kg 정도의 쓰레기 더미 옆에서 사람들이 소를 잡아 먹고 있는 모습을 봤어요. 그리고 항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