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stern Europe_내 인생의 꿈을 만난 대륙에서! (3)

지난 한 해 동안 내가 봉사했던 영국은 1년의 반은 비가 왔을 정도로 항상 우산을 가지고 다녀야 했다. 그런데 나머지 화창한 날들은 한국보다 더 날씨가 좋았다. 봉사하는 동안 힘든 시간도 많았지만 보람되고 뜻 깊게 마쳤기 때문에 ‘우중충한 영국’이 아닌 ‘화창한 영국’으로 기억된다.

▲ 한국어 클래스로 친구가 된 자밀라와 크리스마스 때 하이드 파크에서 열린 벼룩시장에 갔다.
▲ 한국어 클래스로 친구가 된 자밀라와 크리스마스 때 하이드 파크에서 열린 벼룩시장에 갔다.

한국어 클래스와 양로원에서의 추억
내 기억에 가장 즐거웠던 봉사는 고등학교 방과후 시간에 한국어 클래스를 진행한 일이다. K팝을 무척 좋아해 이미 한국말을 인터넷으로 배워서 대화가 되는 수준의 학생들도 있었는데, 영어를 못하는 내가 어떻게 수업해야 할지 무척 막막했다. 긴장된 표정으로 수업에 들어갔는데 학생들은 내가 이해할 수 있도록 한국말로 질문했고, 나는 그 말 중에 틀린 부분을 가르쳐주면서 자연스럽게 한국어 회화수업이 시작됐다. 또한 내가 영어로 하는 말에서 틀린 부분은 학생들이 직접 지적하고 가르쳐주면서 영어에 대한 부담도 즐겁게 덜어낼 수 있었다. 영국에는 아직도 한국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데 한국을 사랑해주는 학생들을 만나 한국어를 가르쳐줄 수 있다는 것이 행운 같았다.
그리고 봉사기간 막바지에 우리는 어느 작은 양로원에서 일하기로 했다. 백인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동양인 대학생인 우리가 인사를 하면 ‘어디서 왔냐’고 반겨주셨다. 병 때문에 편찮으신 분들도 많았지만 건강하게 운동하시면서 자기 취미생활도 하시는 모습이 한국의 양로원보다 자유로운 모습이었다. 하지만 주름이 자글자글 잡힌 하얀 얼굴로 죽음을 기다리며 사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무척 안쓰럽게 보였고 한국에 계시는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가 생각나서 배식과 청소 등을 더욱 열심히 했다.

누구보다 겸손하게 배울 수 있다면
봉사하면서 실수도 많이 했다. 무조건 ‘하면 되겠지’ 했다가 터무니없는 사고를 내는 것이었다. 내가 일에 서툴다고 솔직하게 인정하지 못한 것이 원인이었다. 그래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하나씩 물어가며 일을 하기 시작했는데 그때서야 별 탈 없이 일을 진행할 수 있었고 사람들도 기뻐해줬다. 세상에서 나는 아직도 모르는 것이 많고 배워야 할 것도 수두룩하다는 사실을 영국에서 봉사하며 알 수 있었다.
한국에 돌아와서 전공인 뮤지컬을 기획하고 연습하느라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나는 뮤지컬을 늦게 시작했기 때문에 아직 기술적으로 부족하고 모르는 것이 많다. 그래서 영국에서 배웠던 마인드로 아직 부족한 내 자신을 인정하고 작은 역을 맡아도 최선을 다하는 중이다. 훗날 내 연기를 보고 기뻐할 사람들을 생각하며 오늘도 즐겁게 연습하고 있다.

글 | 김우정(대경대학교 뮤지컬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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