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뉴스코 러시아 9기 심수현

무더운 여름이 저물어가던 지난달, 서울 용산구 한남동 Light House Pictures 스튜디오. 찰칵찰칵! 카메라 플래시가 쉴 새 없이 터진 지 몇십여 분이 흘렀을까. 생전 처음으로 경험하는 모델 일에 잔뜩 긴장해 있었던 수현 씨의 자세가 점점 자연스러워졌다.
“해외 봉사를 하며 보냈던 1년이 지금의 저를 만들어줬어요!”라며 수줍게 웃는 얼굴, 세트장의 가을 분위기와 어울려 보는 이들로 하여금 수수한 들꽃을 연상시킨다.

 
 

“제 성격이 원래 내성적이에요.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으로 대학교를 진학했는데요. 말주변이 없어서 신입생 때 대학친구를 거의 사귀지 못했어요. 러시아에서 돌아온 후 복학해서 들은 말이지만, 친구들 대부분이 제가 같은 과였는지도 몰랐대요(웃음).”
9월호 표지모델 심수현 씨의 말이다. 매일 지나치던 학과 사무실조차 방문하기를 어색해했다니, 낯가림이 얼마나 심했는지 짐작이 간다. 어렸을 때부터 무서움을 잘 타서 작은 소음에도 깜짝깜짝 놀라고 울었단다. 도대체 러시아에서 어떤 일을 겪었던 걸까? 마음을 졸이면서도 모델에 지원한 용기가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외로웠던 스무살
“처음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착했을 때 날씨를 보고 놀랐어요. 을씨년스러울 만큼 우중충한 분위기가 마치 제 마음을 비추어주는 듯했어요. 그곳에서 저의 소심한 성격을 꼭 고치고 싶었어요.”
코끝이 얼얼할 정도로 찬바람이 매섭게 부는 나라, 러시아. 누군가가 말해주지 않아도, 문학과 음악, 발레 같은 실내 예술이 이곳에서 발전한 이유를 자연스레 알 수 있었다. 러시아의 국민성 또한 자연환경과 비슷했다. 백옥처럼 흰 피부와 금발…. 러시아 사람들은 마론 인형처럼 예뻤지만 무표정한 인상이 무척 냉정해 보였다.

▲ 왼쪽: 지난 여름, 한국을 방문했던 친구 마샤와의 즐거운 한때 오른쪽: ‘안동 국제 탈춤 페스티벌 2013’ 기간 수행통역을 맡았던 러시아 댄스팀의 공연 후
▲ 왼쪽: 지난 여름, 한국을 방문했던 친구 마샤와의 즐거운 한때 오른쪽: ‘안동 국제 탈춤 페스티벌 2013’ 기간 수행통역을 맡았던 러시아 댄스팀의 공연 후


그가 러시아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게 되기까지는 몇몇 사연이 있다. 그가 머물던 상트페테르부르크 IYF 센터 주변에는 병원과 요양소가 많았다. 마피아 조직원이었거나, 마약을 복용했던 사람들이 그곳에서 새 삶을 준비했다. 그는 굿뉴스코 활동으로 다양한 위문공연을 많이 다녔다. 싫든 좋든 사람들과 대화를 시도하고 위로했다. 한 번은 정신병원을 방문했다가 식당에서 근무하는 아주머니를 만났다.
“다운증후군을 가진 딸이 오랫동안 같은 병원에 입원해 있어서 병원비를 벌기 위해 일을 하고 계셨어요. 그날 저희의 공연을 보고 감격스러워하며 큰 위안을 얻으셨지요.”
그는 그날 아주머니가 지었던 표정을 잊지 못한다. “병을 가진 내 딸과는 달리, 너희는 참 밝고 희망차구나!” 아주머니는 딸과 나이가 같은 그를 무척 아껴주셨다. 병원에서의 인연을 계기로 상트페테르부르크 IYF 센터를 방문하시고 다른 행사에도 참석하셨다. 
어설픈 러시아어였지만, 그는 아주머니와 대화하며 따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지금까지 사람들을 외형만 보고 판단했구나! 누구든 선입견 없이 마음을 열고 다가가면 친구가 될 수 있는 거구나!’ 자신의 고립됐던 마음도 돌이켰다. 아주머니와 대화하고 싶어서 그는 러시아어를 열심히 익혔다. 다른 러시아 사람들과도 친해지고 싶어 마음을 열고 다가가게 됐다.  

소울메이트Soulmate가 되어줄게요
“성격이 점점 변했어요. 전에는 작은 일이라도 마음속에 담아두고 끙끙거렸는데, 조금씩 터놓고 얘기하게 됐어요. 친화력도 생겼고요. ‘다른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할까?’ 듣고 싶어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도 경청했어요.”
2010년 5월, 그가 러시아에 온 지 5개월 째였다. 러시아 월드캠프가 열리는 기간이어서 댄스교실 강사로 현지 학생들에게 댄스를 가르쳐주고 있었다. 학생들 사이로 낯익은 여학생이 눈에 띄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에서 월드캠프를 홍보할 때 우연히 만났던 마샤였다. 뚱한 표정으로 혼자 와서 홍보물을 받았던 마샤는 캠프에 참가해서도 늘 다른 사람들을 외면하고 혼자 다녔다.
“제가 먼저 말을 걸며 마샤에게 다가갔지요. 친해지고 싶어서 간식도 몰래 남겨서 가져다주었어요. 한국에서 있을 때 제가 겁이 많아 친구를 많이 못 사귀었던 얘기도 하고요.”
그의 진심 어린 친절에 마샤도 느끼는 바가 있는지 조금씩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어렸을 때 척추 수술을 받고 장애를 앓아온 마샤는 병을 숨기기 위해서 친구들과 일부러 나이트클럽을 다녔다. 늘 술을 마시고 춤을 추었지만, 마음이 공허해 홀로 우울해했다.
‘사람의 맛을 느낀다는 게 이런 거구나!’ 그는 마샤와 마음을 나눌 수 있어서 기뻤다. 상처를 터놓고 나누게 된 후, 마샤와는 가장 친한 친구가 됐다. 단짝처럼 붙어 다니며 무슨 일이든 함께 나눴다. 마샤의 성격도 변해 무척 밝아졌다. 후에 상처에서 벗어난 자신의 이야기를 짧은 연극으로 만들어 굿뉴스코 행사에서 공연하기도 했다.

▲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소재한 이삭 성당의 모습
▲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소재한 이삭 성당의 모습


“복학한 후엔, 학과에서 많은 사람과 친해졌어요. 교내외 봉사활동도 많이 하고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러시아어 통역도 하러 다녀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1년간 해외봉사를 했다고 저를 소개하면, 많은 러시아 방문객이 마음을 활짝 열어주세요.”
그는 해외봉사로 그토록 갈망했던 친화력을 얻었다. 지금은 러시아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며 터득한 외국어로 새로운 미래를 준비한다. 현지 생활했던 인재로서 한국에 온 후, 각종 국제포럼과 스포츠 경기에서 통역사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깊이 있는 지식을 섭렵하기 위해 같은 학과 대학원 진학도 앞두고 있다. 가장 순수한 마음으로 한국을 방문한 러시아인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 한다.

사진 | 이규열 (Light House Pictures 실장)  
헤어&메이크업 | 차경희   의상협찬 | Roem   액세서리 협찬 | S.RA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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