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들이 설계도를 그린 후 집을 짓듯 사람들도 마음에 저마다의 그림을 그린다. 발달장애와 대인기피증으로 인해 그림 그리기를 포기했던 대학생 이윤섭은 이제 환하게 웃는다. 그리고 말한다. 자신에게 맞는 아름다운 그림을 자유롭게 그리노라고. 저 넓은 창공에 무지개빛 청춘을 그리는 그를 소개한다. 

▲ 숭실대학교 3학년 이윤섭 씨. 아프리카를 다녀온 이후 삶을 정면 돌파하는 법을 배웠다는 그는 남미로 활동 무대를 넓힐 계획이다.
▲ 숭실대학교 3학년 이윤섭 씨. 아프리카를 다녀온 이후 삶을 정면 돌파하는 법을 배웠다는 그는 남미로 활동 무대를 넓힐 계획이다.

소년은 어릴 적 조산아로 태어나서 발달장애를 겪었다. 부모님의 별거로 자신감까지 잃어버렸고, 친구들에게 놀림감이 되기도 했다. 소년은 모든 면에서 남들보다 한 박자 늦었다. 상황을 인식하면서 자랄 때 즈음엔 따뜻한 배려를 받고 싶었지만 항상 외로웠다.
학교에서 가족 이야기를 하는 시간에는 소년은 화목한 가족을 이야기했다. 뭐든 솔직하게 말하지 못했다. 차라리 그게 마음이 편했다. 어눌했던 그, 엄격한 아버지, 과잉보호가 지나친 예민한 어머니. 그에게 아버지는 두려운 대상이었다. 소년의 어머니는 때때로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과잉보호가 지나쳤는데 아들에게는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소년은 더욱 움츠러들었고, 피해망상과 자격지심 때문에 관계도 원만하지 못했다. 그는 날아보지도 못한 새처럼 자신감을 상실했다.
‘쓸쓸하다. 하지만 누가 알까?’
그는 푸른 창공을 날고 싶었지만 날개가 없었다. 그리고 날 생각도 하지 못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서 조용하게 지냈지만 결국 소년에게는 심각한 대인기피증까지 생겼다. 친한 친구들이 있었지만 때때로 상처를 주는 존재였다.
“야, 너 이 새끼야, 불쌍해서 놀아준 것뿐이야.”
친구들이 내뱉은 가벼운 한마디가 소년의 마음에 비수처럼 꽂혔다. 그는 입을 다물었고, 어둠 속으로, 상상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달라지고 싶었다
시간이 흘렀다. 사람들은 바삐 발걸음을 움직이는데 소년이 바라보는 시간계는 천천히 지나갔다. 소년은 더 이상 소년이 아니었다. 수염도 제법 자랐고, 전문대학에도 입학했다. 하지만 썩 바라던 만족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새로운 세계에 적응하고 싶었지만 학교는 덩그러니 덩치만 큰 공간처럼 느껴졌다.
‘대학에서 난 뭘 할 수 있는 거지?’
대학의 자유로움은 오히려 그에게 무한 이탈의 가능성을 부여했다.
‘심심한데, PC방이나 가자.’
청년은 수업에 빠지는 날 수가 많았다.
하루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청년에게 4년제 대학에 가도록 권했다. PC방을 다니던 청년은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무표정한 얼굴, 초췌해 보이는 눈가. 청년은 그날 PC방으로 가던 발걸음을 멈췄다.
“윤섭아, 4년제 대학에 들어가 보면 달라질거야. 공부를 계속해야 하지 않겠니?”
조부모님의 바람으로 청년은 4년제에 들어갔지만 여전히 내면 깊숙이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는 불안감이 올라왔다. 자학이 시작됐고, 패배감도 느꼈다. 심하게 마음이 허기졌다. 그럴 때즈음, 청년은 국제청소년연합이란 곳을 알게 됐다. 우연히 알게 된  단체의 사람들을 별 생각 없이 만났다.
‘도대체 이 사람들은 왜 이렇게 친절한 거야? 왜 이런 관심을 갖고 물어보는 거지?’
가식적인 관심이라고 생각했는데 만나면 만날수록 마음이 따뜻해졌다. 처음 만난 사람들과도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눴다. 청년의 단점은 그들에겐 전혀 문제되지 않아보였다. 한 분이 해외봉사를 추천했다. 워크숍에도 참석했는데, 청년은 수백 명의 학생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는 광경에 놀랐다. 이미 해외봉사를 다녀온 선배 단원들의 이야기는 신선했다. 포인트는 하나였다. 각박한 세상에 얽매이지 않고 도전하는 마인드를 가진 단체였다.
‘저 사람, 왜 저리도 밝아? 저 사람은 상처같은 걸 모르는 사람같아’
청년은 점점 그들에게 매력을 느꼈다. 늘 자신의 부족함에 웅크리고 산 그였다. 그들처럼 발을 내딛어 보는 것에 겁도 났지만 바뀔 수만 있다면, 변할 수만 있다면 개조하고 싶었다. ‘부담스럽지만, 떠나야 해’
내면의 목소리가 그에게 용기를 주었다. 반은 현실 도피, 반은 가고 싶은 마음으로. 그렇게 청년은 아프리카 잠비아로 해외봉사를 떠났다.

▲ 일주일에 한번 만나는 친구 저스틴은 늘 윤섭에게 가족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의 어려운 가정사를 듣다 보면 우리는 국가만 다를 뿐 공감할 수 있는 공감대의 폭이 비슷했다.서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작은 것의 소중함을 실감한다.
▲ 일주일에 한번 만나는 친구 저스틴은 늘 윤섭에게 가족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의 어려운 가정사를 듣다 보면 우리는 국가만 다를 뿐 공감할 수 있는 공감대의 폭이 비슷했다.서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작은 것의 소중함을 실감한다.

청년을 부른 아프리카
아프리카에 도착한 청년은 첫 느낌에 ‘살 만하다’고 생각했다. 얼마 되지 않아서 눈앞에 펼쳐진 광경 때문에 충격에 휩싸이기 전까지. 비포장 도로, 판자로 지은 집, 시멘트로 짓다 만 집, 철판 지붕. 문화적인 쇼크는 그게 다가 아니였다. 아프리카 음식을 처음 접해 본 그는 막막했다.
‘무슨 떡 같기도 하고, 쌀로 만든 밥은 아닌 것 같은 이 음식을 어떻게 1년간 먹지?’
청년이 먹기에는 음식이 밍밍하게 간이 맞지 않았다. 손으로 음식을 집어 먹는 문화도 찝찝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듯했다. 아프리카의 현실이 어떻게 개척해야 할지. 한 사람이 들어가면 꽉 찰 정도의 좁은 공간에서 물을 길어 와서 샤워를 해야만 했다. 갈아입을 옷을 갖고 들어가면 새 옷이 더러워지는 협소한 곳이었다.
그뿐만 아니었다. 센터에서 청년이 첫 번째로 봉사해야 하는 임무가 있었다. 아카데미를 홍보해야만 했는데, 언어를 배우지 않은상황에서 사람들을 만나야만 했다. 손짓 발짓을 다 해가며 홍보를 해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말도 못하는데 어떻게 우리를 가르치려느냐?”
어이가 없다는 듯 되묻는 현지인도 있었다. 그런 소리에 주눅이 들었지만 봉사의 기본은  ‘마음을 다해 하는 것’이었다.
‘나도 남자인데 1년은 깡으로라도 버텨야겠다.’

사랑받았던 그, 또 다른 자아를 발견했다
창피한 이야기지만 청년은 멤버들 간에 작은 사건들을 만날 때마다 부딪혔다. 참을 수도 없었고, 감정을 숨길 수도 없었다. 결국 그도 모르는 사이 짜증을 부렸다. 청년의 얼굴은 수시로 일그러졌다. 그런 일이 잦아질수록 청년의 고민은 커져만 갔다. 문득 청년의 머릿속에 아프리카로 오기 전 워크숍이 떠올랐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연극에서 본 주인공, 문제의 아이들이 해외에 나가서야 비로소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달라진다는 이야기.
 ‘그 사람들이 모두 나와 같았어!’
청년의 고민은 깊어갔다. 결국 지부장님에게 털어놓았다. 그가 아주 조심스럽게 조언했다.
“윤섭아,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하나씩 들어 봐. 그러면 너는 달라질 거야.”
청년은 속으로 묻어 둔 속삭임을 내동댕이쳐야만 했다.
‘자존심, 그 자존심이 나를 병들게 만들었어!’
청년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경청해야만 했다. 그리고 곱새겼다. 또 다시 생각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한국에 있었다면 이런 일들은 얼마든지 숨기고 도피할 수 있었지만 아프리카에서는 그럴 수 없었다. 친구들의 진심 어린 충고 앞에서 그는 자신을 옭아매는 문제들을 직시해야만 했다. 

▲ 해외봉사를 다녀온 친구들과 함께. 한국에서도 봉사의 기쁨을 다시금 알리고 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삶의 활력이 된다는 이들과 있으면 즐겁
▲ 해외봉사를 다녀온 친구들과 함께. 한국에서도 봉사의 기쁨을 다시금 알리고 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삶의 활력이 된다는 이들과 있으면 즐겁
 
아프리카에서 순수를 만났다
하루는 무전여행을 떠났다. 물론 혼자가 아니었다. 하지만 무일푼이었다. 마치 낯선 곳으로 덩그러니 던져진 느낌도 들었다. 히치하이킹을 하며 몇백 킬로미터 떨어진 다른 도시로 이동했다. 청년은 굶기도 했지만 희열을 느꼈다. 매사에 두려웠고 움츠렸던 과거의 자신에게서 서서히 벗어나는 것 같았다. 현지 음식을 선물해주는 이에게도 고마웠고, 음식도 맛있었다. 천상 아프리카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퉁퉁했던 청년은 어느덧 뼈가 보일정도로 앙상하게 말라갔다. 하지만 햇빛을 받아서인지 면역력이 높아져서 오히려 청년은 단단해져 있었다.
청년은 무전여행에서 한 친구를 알게 됐다. 이름은 알프레드. 그는 청년을 집으로 초대했다. 옆집에서 의자와 테이블을 빌려와서 맛있는 옥수수를 대접해 주었다. 이유는 없었다. 알프레드는 사소한 것에도, 낯선 외국인에게도 마음을 열고 사는 건강한 청년이었다. 청년은 알프레드에게 점점 물들어 갔다. 잠비아 사람들 중에는 알프레드처럼 순수한 사람이 많았다. 가끔 잠비아 사람들에게 초대를 받으면 즉석 요리를 대접받았고, 기다리는 동안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청년은 잠비아 사람들이 좋았다. 그들과 있으면 작은 것에 감사하고, 웃을 수 있었다. 가난하다는 것이 꼭 나쁘지만 않다고 생각했다. 적은 것도 기쁘게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사실이 새삼 기뻤다. 청년은 봉사하는 게 즐거웠다. 건물 보수공사, 화장실 보수공사, 밭 일궈서 채소를 심으며 봉사 등 돈독하게 우정을 나누는 법도 배웠다. 그런 시간 하나하나가 청년에게 소중했다.

아프리카가 사랑한 청년
청년이 사랑한 아프리카

청년은 이제 사람을 보면 눈길을 피하지 않는다. 아버지를 향해 두려워했던 마음도 사라졌다. 아버지의 입장을 생각해보니 예전과 달리 이해도 됐다. 한국에 돌아온 후 끊임없는 가슴앓이를 했다. 아프리카가, 어느 나라가 마치 그를 부르는 듯했다. 청년은 다시 용기있게 새로운 나라에도  가보고 싶었다. 메마른 한국의 정서를 벗어나, 자신의 부족함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진정한 우정은 그런 터 위에 세워지는 것이다. 청년은 아프리카에서 마음의 로드맵을 그렸다. 청년은 행복했다. 그리고 이제 또 다른 행복한 여행을 꿈꾼다.

사진 | 홍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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