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30일 일본 문부과학성은 독도를 일본 영토라고 주장하는 내용 등을 담은 고등학교 교과서 296종을 통과시켰다. 내년부터 일본 고등학교 1학년 사회 교과서 대부분에 일본 정부의 독도 영유권 주장이 실리게 됐다. 4월 27일에는 일본 정부가 스가 요시히데 내각 출범 후 처음 발간한 외교청서를 통해 독도가 일본 영토라는 기존 주장을 반복했다. 외교청서는 독도에 대해 “다케시마(竹島일본이 주장하는 독도 명칭)는 역사적 사실 및 국제법상으로 명백하게 일본 영토”라며 “한국이 국제법상 근거 없이 다케시마 불법 점거를 계속하고 있다”
‘아프리카의 스위스’라고 불릴 만큼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나라,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나라, 아프리카의 마지막 왕정 국가, 이런 수식어들의 주인공은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모잠비크 사이에 위치한 작은 내륙 국가 ‘에스와티니’이다.어진 군주가 다스리는 태평한 시대를 태평성대太平聖代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살펴보면, 태평한 시대를 이루기 위해서는 ‘왕이 얼마나 훌륭한가’도 중요하지만 ‘어떤 사람들이 왕을 보필하는가’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음피와 들라미니 왕자는 선왕先王인 소부자 2세Sobhuza Ⅱ의 손자이다. 에스와티니에서는 선왕의
청소년들이 바람직한 가치관을 확립하고 미래의 꿈을 키워가도록 진주뉴스(발행인 송창순)와 한마음마인드교육원(원장 전봉숙)은 ‘제1회 투머로우 독후감 공모전’을 공동 주최하였고, 지난해 12월에 시상식을 가졌다. 공모전에 총 121편의 원고가 접수되었고, 그중 최우수상 수상작을 여기에 소개한다.행복이란 무엇일까요? 제가 질풍노도의 사춘기 시절을 지날 때 가끔 던지던 질문입니다. 행복은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 또는 그러한 상태’를 일컫는 말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사전적 뜻으로는 제가 만족하는 이 질문의 답을
올해 83세인 이종열 조율사는 피아노 조율 부문 대한민국 명장 1호다. 그는 지난 65년간 ‘피아노 조율’이라는 외길을 걸어왔다. 사람들은 그 정도 오래 했으면 눈감고도 조율을 할 수 있지 않느냐고 그에게 묻는다. 대답은 단호하다. “쉬웠던 적이 한번도 없었어요. 지금 제 나이가 여든이 넘었는데 작년보다 올해, 어제보다 오늘이 더 발전하고 있어요.” 그가 같은 일을 오래 하고 있으면서도 날마다 새롭게 대하는 비결은 무엇일까. 현재 전속 조율사로 근무하는 예술의전당에서 그를 만났다. 인터뷰 일정 잡기가 쉽지
코로나19 이후 우리 삶에 많은 변화가 생겼고, 예상치 못했던 ‘처음’을 맞아야 했다. 김정윤 씨 또한 코로나로 사업이 어려워져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올해부터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전주시 곳곳을 다니며 견과류 제품을 소개하고 거래처를 확보해 물건을 납품하는 일이다. 낯선 일을 한다는 것이 어색하고 불안할 텐데, 그는 어디를 가든지 ‘우리 제품을 알아보는 사람이 반드시 있다’는 믿음으로 사람을 만나며 즐겁게 일한다. 업종 전환 두 달 만에 고정 거래처 150군데를 확보했다는데, 그에게 어떤 특별함이 있는 걸까? 혼자
김보혜 씨의 아침은 조금 이르게 시작된다. 두 달 전부터 새벽 5시에 일어나 출근 전까지 공부를 한다. 올해 새로운 목표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는 2년 전 적막한 방안에 앉아 썼던 일기를 이따금 읽어 보는데, 요즘 잠을 줄여가며 무엇인가에 몰두하고 즐거워하는 자신의 모습이 그때와 너무 달라 신기하다고 한다. 그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따스한 봄볕이 내리쬐던 날, 인터뷰를 하려고 작은 벤치에 마주앉은 그는 자주 밝은 웃음보를 터트리고 가벼운 농담으로 상대를 편하게 해주는 사람이었다. 그런 유쾌한 그에게 담긴 사연이 무엇일지 더욱
1인의, 1인에 의한, 1인을 위한 방송이 익숙한 지금은 바야흐로 1인 미디어 전성시대이다. 이젠 누구나 혼자서도 콘텐츠를 제작하고 방송할 수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어딘가에선 수백 명이 수개월간 동고동락하며 최고의 영화, 한 편의 드라마를 만들어 내고, 그걸 보기 위해 시사회 앞자리와 본방 사수의 열정 또한 사그러들지 않고 있다. 어느 때보다 ‘영상 콘텐츠’에 대한 관심도가 높은 요즘, 엣지 있는 영상으로 사람들에게 재미와 감동을 선사하고 있는 촬영감독 박기현을 만나 본다.김포에 위치한 박기현 감독의 사무실로 향하는 길에, 기자는
최근 코로나19가 몰고 온 경제 위기로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고 희망도 잃고 있다. 이런 가슴 아픈 뉴스를 접할 때면 그 슬픔에 공감하면서도 ‘절망, 여기가 마지막일까?’라는 생각이 든다.‘종이 잡지’ 또한 타격을 크게 입은 분야 중 하나이다. 1997년 IMF 사태 때 해외에 잡지 수출을 시작해 위기를 기회로 바꿨다는 (사)한국잡지협회 정광영 회장은 지금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눈이 펄펄 내리던 1월의 어느 날, 여의도에 위치한 잡지협회 건물에서 그분을 만났다. 출판사 건축세계(주)의 대표이기도 한 그는 사진에서 보았을 땐 근
“초등학교에 막 입학했을 때부터 문방구에 가는 게 제 하루 일과였어요. 문방구 문을 열면 제 세상이 펼쳐졌거든요. 알록달록하고 아기자기한 문구들을 구경하다 보면 시간가는 줄 모르고 막연히 나도 이런 걸 만드는 사람이 돼야지 생각했어요.”초등학생 시절부터 예진 씨의 팬시 사랑은 남달랐다. 하지만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도 ‘재능이 없는 것 같아서…’, ‘내 길이란 확신이 생기지 않아서…’ 등등의 이유를 대며 포기하고 싶은 순간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녀도 그런 순간들마다 꿈에서 돌아서려 했지만 선물처럼 찾아온 특
수학교육을 전공한 김재일 씨는 임용고시 대신 창업을 선택했다. 2019년 1월, 위드림은 부산 수영구에서 첫걸음을 내디뎠다. 사람들은 취미생활을 하고 싶어서, 고민이 있어서, 사람을 만나고 싶어서 등등 여러 가지 이유로 위드림을 찾는다. 그리고 이곳에서 고민에 대한 해답을 찾고, 취미생활과 더불어 친구를 사귀고, 위로를 얻는다.위드림wedream은 어떤 곳인가요?위드림은 청년들이 공통된 취미와 관심사를 기반으로 모이는 소통 커뮤니티입니다. 청년들의 주요 관심사인 취업, 퇴사, 인간관계, 사랑 등을 비롯해 취미생활인 영화, 독서, 글
2015년, 여든다섯의 남편이 쓰러졌다. 15년 넘게 앓은 파킨슨 증후군이 악화된 것을 비롯하여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이 고장났다. 혼자 걸을 수도, 소변을 볼 수도 없었다. 그렇게 병원에서 남편과 140일을 보낸 뒤 아내는 퇴원하겠다고 말했다. 모두가 반대했다. 여든이 된 아내 혼자 간병을 한다는데 누가 반대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반대를 무릅쓰고 아내는 남편을 데리고 집으로 왔다. 아내는 하루 세끼 밥을 차리고, 하루 세 번 제시간에 맞춰 약을 먹인다. 그렇게 어느덧 5년의 시간이 흘렀다.Q. 안녕하세요 작가님, 요즘 가장 행복한
전신을 감싸는 레벨D 방호복을 입고 고글을 쓰고, 숨이 턱 막히는 N95마스크를 끼고, 라텍스 장갑 두 겹을 착용하고 이중 덧신으로 신발을 감싼다. 이 모든 장비를 착용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15분. 고글에 눌린 머리가 지끈거린다. 찜질방에 온 듯 온몸이 습하고 숨이 막힌다. 그 상태로 환자들을 확인하다 응급상황이 발생하면 달려가 처치를 하고, 한숨 돌리자마자 정신을 집중해 다른 환자의 혈관을 찾는다. 숨가쁜 이 현장은 코로나19와 싸우는 의료진들의 일상이다. 지난해 봄, 의료진이 부족하다는 뉴스를 보고 대구 의료현장에 파견을 다녀
‘130만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브 크리에이터’, ‘AP통신, BBC방송국이 주목한 인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장관 표창 수상’, ‘유튜브 CEO가 직접 한국까지 와서 만난 인물’, ‘자서전과 요리책 두 권의 책을 출간한 저자’, 이 모든 타이틀의 주인공은 73세 박막례 할머니이다. 늘 새로운 것에 거침없이 뛰어들어 ‘도전하는 삶’의 아이콘이 된 할머니. 73세에 세계 여행이라는 색다른 꿈을 꾸며 손녀와 열심히 유튜버로 활동 중이다.고단한 세월을 걸어오다 어느새 70대가 된 박막례 할머니, 삶의 변화의 시작은 병원에서 받은 치매 위험
퇴근길 꽉 막힌 도로를 지나 경기도 양주에 자리하고 있는 ‘커뮤니티 케어센터’를 방문했다. 그곳에서, 만 18살이 되어 아동양육시설에서 나온 안지안 씨와 그의 멘토 역할을 하고 있는 조한나 씨를 만났다. “오느라 고생 많으셨죠? 식사는 하셨어요?” 조한나 씨의 물음에서 따뜻한 배려가 느껴졌다. 얼굴의 반을 마스크로 가린 채 진행된 인터뷰였지만, 두 사람의 말간 얼굴이 눈에 선하게 그려졌다. 기자가 본 그들은 친구이자, 자매이자, 인생의 선후배 같았다. Q. 두 분은 어떻게 만나게 되었나요?조한나: 저와 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 대학교 1학년 때까지, 나의 지난 시간은 기나긴 밤과 같았다. 어릴 적부터 소심하고 행동이 느렸던 나는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했다. 느린 내가 싫었다. 그럴 때마다 내게 가장 큰 위로가 되었던 분은 부모님이었다. 엄마는 몸이 불편했지만 막내딸인 나를 무척 사랑하셨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나는 엄마와 나란히 걸어가다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지면 잠시 엄마와 떨어져 걸었다. 엄마에게 너무 미안했다. ‘나를 가장 사랑하시는 부모님에게 내가 상처를 주다니….’ 스스로를 자책했고, 미워했다. 그때부터 나는 누구
유난히 추웠던 날, 소방관 권세준 씨를 만나러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 위치한 소방서를 찾았다. 야간 근무를 마친 뒤 잠깐 단장하고 나온 그가 노곤하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하지만 그는 시종일관 환한 미소로 진지하게 고민하며 질문에 답했다. “한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는데 질문을 들으니 생각하게 되네요.” 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히 풀어놓았다.그는 20대의 대부분을 무얼 하면서 살지 고민하고 선택하고 방황하면서 보냈다. 그런 시간이 있었기에 어떤 일을 할 때 심장이 뛰고 즐거운지 알게 됐다며, 갈팡질팡하며 보낸 시간에 고마움을 전했다
갑작스러운 시작고등학생 시절 나는 누구보다 씩씩한 학생이었다. 운동도 곧잘 했기 때문에 건강에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머리가 깨질 듯한 두통이 시작됐다. 심한 두통 탓에 음식도 먹는 대로 게워냈다. 증상이 점점 심해져 병원에 찾아가 척수염이란 진단을 받았다. 뇌와 팔다리의 신경을 관장하는 척수에 염증이 생겨서 몸에 마비가 오고 감각을 잃어가는 병이다. 병마는 순식간에 내 몸을 덮쳤다.이마의 세로 3cm를 제외하고 모든 신경이 마비됐다.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없고, 한쪽 시력과 청력도 잃어갔다. 죽는 것보다 사는 것이 더
2020년은 코로나를 빼놓고 이야기하기 어려운 한 해다. 나는 대구에서 치위생사로 일하고 있다. 평소 여느 사람들보다 건강에 대한 걱정이 많은 편이라 코로나바이러스가 발생하자 누구보다 재빨리 마스크를 썼고, 손이 건조해질 정도로 부지런히 씻었다. 주변에서 “너는 절대 안 걸리겠다.”라고 말할 정도였다.그런 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올해 3월 나는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았다. 코로나 감염 위험을 피해 카페 대신 갔던 친구의 집에 코로나 확진자가 있었던 것이다. 신기하게도, 나와 함께 있었던 친구들이나 나와 함께 일하는 동료들은 모두 정
이지은 씨를 만나기 위해 서울 중랑구에 위치한 대안학교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학교 정문을 지나 교무실로 가는 길에 만난 학생들은 처음 보는 기자에게 하나같이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인터뷰가 시작되고, 호기심 가득한 학생들이 교무실 창문으로 고개를 삐죽삐죽 내밀었다. 촬영이 시작되자 “선생님 이뻐요!” 하는 응원 소리가 들렸다. “학생들이 예쁘네요.”라고 하자 이지은 씨는 웃으며 “그래서 제가 여기에 있을 수밖에 없어요.”라고 답했다. 대안학교 교사가 된 것을 후회한 적 없다는 26살의 초보 교사, 어릴 적에 별다른 꿈이 없었던
1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간 것 같다. 나는 한 중소 광고회사에서 2년차 사원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내가 전공했던 분야는 미디어 아트였지만, 이 회사에서 우리 팀이 주로 하는 업무는 시나리오, 제안서 작성 등이었다. 그런데 올해 초, 코로나 바이러스가 확산되면서, 우리 회사 사정은 점점 어려워졌다. 1차 구조조정이 이루어졌고, 곧바로 2차 구조조정이 있을 거라고 했다. ‘설마 나일까?’ 생각했다. 그런데 3월 어느 평일 오후, 부사장님이 갑자기 나를 부르셨고 권고사직을 언급하셨다.그 당시에는 담담한 것 같았지만, 이후 일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