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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도 당신과 함께해서 행복했다우”<한 평 반의 행복> 유선진 작가
최지나 기자 | 승인 2021.02.01 13:27

2015년, 여든다섯의 남편이 쓰러졌다. 15년 넘게 앓은 파킨슨 증후군이 악화된 것을 비롯하여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이 고장났다. 혼자 걸을 수도, 소변을 볼 수도 없었다. 그렇게 병원에서 남편과 140일을 보낸 뒤 아내는 퇴원하겠다고 말했다. 모두가 반대했다. 여든이 된 아내 혼자 간병을 한다는데 누가 반대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반대를 무릅쓰고 아내는 남편을 데리고 집으로 왔다. 아내는 하루 세끼 밥을 차리고, 하루 세 번 제시간에 맞춰 약을 먹인다. 그렇게 어느덧 5년의 시간이 흘렀다.

Q. 안녕하세요 작가님, 요즘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남편의 병간호를 하며 지낸 지 벌써 5년이 넘게 흘렀네요. 시간이 참 빨리 가요. 맞아요. 남편이 아프면서 저는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맛있는 밥과 늙은 아내만 있으면 천국이라는 남편과 사니, 저도 그럴 수밖에요. 우리 부부는 아침에 눈을 뜨고 저녁에 다시 눈을 감을 때까지, 그리고 잠들어 있는 순간에도 함께합니다. 이렇게 사는 게 이토록 좋을 줄이야…. 젊을 때, 건강할 때엔 느끼지 못했던 행복을 맘껏 느끼고 삽니다.

Q. ‘함께라서 행복하다’는 이야기처럼 들립니다.

어느 날, 남편이 “당신 분명히 내 옆에서 곤히 잠들어 있었는데, 내가 잠깐 화장실 가고 싶은 걸 어찌 알고 일어나요?”라고 묻더라고요. “내가 당신으로 사는데 소변 마려운 것도 모른다우?”라고 대답했죠(하하).

젊을 때는 각자의 개성, 각자의 옳음, 각자 가지고 있는 가치관이 다르다 보니, 몸은 함께 있어도 마음이 따로 있을 때가 많았어요. 그래서 저희도 참 다르게 살았습니다. 그런데요, 나이가 드니까 인지력이 떨어지고, 몸도 내 마음대로 안 되고, 자기 의견도 사라지고요. 그러니까 우리가 같아지더라고요. “자기 것이 사라지는 것” 전 이게 노후의 축복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내가 남편에게 맞추고, 남편도 내가 해주는 대로 불만이 없고. 그러다 보니 서로를 따뜻한 사람으로 만들어요. 신기하죠? 젊을 땐 그렇게 행복해지려고 아등바등 살았는데, 늙고 병들고 가난해져서야 여태껏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행복이 찾아왔어요.

Q. 남편이 쓰러졌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어떠셨나요? 지금과 같진 않았을 것 같아요.

그 당시 남편이 하던 사업이 여러 가지 일에 휘말려 6개월 간 소송을 하고 있었고, 원래 가지고 있던 지병과 극도의 스트레스에 결국 그이가 쓰러졌어요. 몇몇 병원에 다니며 검사를 하고 치료법을 찾기 위해 뛰어다녔죠. 저도 공황장애에 걸린 사람처럼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었어요.

어찌나 답답하고 절망적인지요. 저라고 안 어려웠겠어요? 두려웠죠. 그런데 병원에 누워 있는 남편을 옆에서 지켜보며 ‘평생을 가족 부양하며 살아온 남자, 20년 간 직장에 다니며 박봉의 월급쟁이로 살았지만 아내에게 생활비를 전하는 즐거움으로 버틴 남자, 일흔이 넘도록 생활비를 벌기 위해 새벽같이 나가던 남자, 힘들다는 말 한마디 꺼내지 않은 남자’가 보이더라고요. 그런 남편을 뒤로 두고 아내가 아닌 어미로서만 산 제 모습이 얼마나 고약한지…. 미안함에 기운을 차리고 간병을 자청했어요.

그리고 두 달 뒤 남편을 요양병원으로 옮겼는데, 그 병원은 간병인만 환자를 돌볼 수 있고 가족은 그럴 수 없는 구조였어요. 남편이 이 구조에 적응하지 못하고 지내는 걸 보는데…, 남편도 저도 지옥이 따로 없더라고요. 그래서 퇴원을 감행했지요. 병원에서의 삶은 삶이 아니었으니까요. 얼마를 더 살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집에서 가족과 함께하는 삶을 이 남자에게 선물하고 싶었어요.

그때를 생각하며 현재를 삽니다. 가장 어려웠던 때를 기억하니, 현재의 평안과 나아짐이 어찌나 감사한지요. 항상 좋기만 했다면 좋은 줄 몰랐을 겁니다. 남편은 삶이 회복되니 몸도 좋아졌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삶을 선물한 셈이지요.

2020년은 남편이 90세가 되는 해였다. 코로나바이러스로 멀리 집 밖을 나가진 못했지만, 가족들과 오손도손 모여 구순잔치를 벌였다. 내 곁을 지켜주는 남편이 고맙다.

Q. 이쯤 되니 젊은 부부 시절에 어떻게 사셨는지 궁금합니다.

제게 남편은 갈등과 불만의 대상이었죠. 제가 책에도 썼지만 ‘이건 아니다’ 싶은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같이 살지만 서로를 이해하기가 태산준령 넘기보다 힘든지…. 남편은 ‘안 쓰고 안 버리는’ 사람이에요. 제가 사용 기한이 훨씬 지난 약 설명서를 버려도 그걸 도로 주워왔고, 생활필수품 외의 물건을 사는 건 낭비라고 생각하고, 회사에서 버리는 월간지는 모두 집으로 들고 왔죠. 변화도 싫어해서, 아이들이 낙서한 벽지를 도배해도 꼭 똑같은 벽지로 해야 했어요.

저라고 뭐 좋은 아내였겠어요? 고약한 아내였죠. 결혼 후 아들 넷을 낳았어요. 아이들이 제 삶의 전부였고, 누가 봐도 지나칠 정도로 아이들 곁을 지켰죠. 제 기쁨, 제 삶의 이유가 자식이다 보니 남편은 ‘투명 인간’으로 대했죠. 그러면서도 우린 각자 서로의 위치에서, 서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곳을 바라보며 성실히도 살았어요. 그게 우리 인생의 전부였어요.

Q. 그런데도 아픈 남편 옆에 있기를 선택하셨어요.

처음 시작은 ‘모성’이었어요. 애들이 다 자라 지금은 분가했지만, 부모가 따로 떨어져 산다면 걱정할 게 뻔하니까요. 그리고 남편이 딱 쓰러지니까 자식들의 걱정과 근심이 깊어지더라고요. 며느리들이 저에게 와서 “애들 아빠가 안정을 못 찾는다”라고 이야기하더라고요. 당연하죠…. 자식들에게 안정을 찾아주기 위해서라도, 제가 남편 곁에 있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아프고 난 뒤에야, 우린 서로의 내면에 자라지 않은 ‘어른 아이’가 있다는 걸 발견했어요. 맏아들이었던 남편은 소심한 성격에, 동생들을 대신해 혼이 나며 자랐어요. 칭찬에 목말랐던 아이는 자신의 용돈을 모아 어머니께 드렸어요. 어머니는 그런 아들을 칭찬하셨죠. 자신을 보며 기뻐하는 어머니의 모습, 처음 들은 칭찬에 ‘돈은 소중한 것, 절대 쓰면 안 되는 것’이란 걸 좌우명 삼았죠.

남편이 그렇게 돈을 아끼고, 40년 동안 한 달도 거르지 않고 월급봉투를 준 이유였죠. 저는 어땠게요. 제 나이 아홉 살에 열 살 많은 둘째 언니가 사고로 죽고, 3년 뒤 셋째 언니가 병사했어요. 두 딸을 잃은 어머니는 하루하루를 통곡으로 보내셨죠. 그걸 보며 자라서 절대 자식을 낳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아들 넷을 연거푸 낳고 자식에 목매며 살았죠.

겉은 다 자라다 못해 늙은 모습이지만, 내면엔 자라지 못한 아이가 있었어요. 그걸 여든이 넘어서야 만났고, 이제야 그 사람을 이해하고 안아줄 수 있게 됐죠. 너무 늦게 안아줘서 미안할 따름이에요.

유선진 작가는 내게 “결혼했어요?”라고 물으셨다. 그러고는 “결혼은 두 사람이 하는 것 같지만 네 사람이 해요. 누구에게나 ‘어른 아이’가 있거든요. 그걸 알고 나면 상대방을 이해하지 못할 부분도 없고, 상대방도 나의 약한 부분을 보듬어줄 수 있어요.”라고 하셨다. 삶의 지혜와 연륜이 묻어나는 이야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음 질문을 이어갔다.

남편이 퇴원해서 집으로 돌아온 지 한달이 좀 넘었을 무렵, 2016년 새해가 밝았다. 병원이 아닌 집에서 온 가족이 모였다. 한달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기적 같은 일이었다. 건강을 회복중인 남편, 든든한 네 아들과 함께.

Q. 저에게 해주신 것처럼, 청년이나 젊은 부부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까요?

젊었을 땐 지금 제가 이야기하는 걸 이해하는 것도 어렵고, 행하기도 어려워요. 젊을 땐 의욕도 넘치고, 지향하는 목표가 있잖아요. 그거 하면서 살아야 해요. 갈등도 겪으면서요. 다만 내 것만이 정답인 듯, 내 방법이 옳다고 다른 방법들을 다 막아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제가 살아보니까 나와 다른 사람들도 많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도 다양하더라고요. 그런데 그걸 모르면 답답하고 도망치고 싶잖아요. 그런데 사방이 꽉 막힌 곳은 없어요. 아무리 답답하고 어려운 순간에도 공기가 들어오는 숨구멍은 반드시 있어요. 그곳에 코를 대면 질식하지 않을 수 있거든요.

요즘 많은 사람들이 안 맞는다, 함께하면 괴롭다는 이유로 쉽게 등을 돌리는데, 그거 말고 좋은 점에 코를 대보면 어떨까요. 그런 지혜를 가지면 좋겠어요.

Q. 다시 삶을 사신다면 어떻게 살고 싶으세요.

다시 살게 되면…, 글쎄요. 내 젊은 시절이 더 나아질 거란 자신이 없네요(하하). 전 또 실수하고, 또 내 마음대로 살고, 맞지 않으면 화내고…. 그렇게 살지 않을까 요? 다시 산다고 해서 지금처럼 행복하게 살 자신이 없어요. 여든에 배운 마음을 잊지 않고 살면 좋겠지만, 젊은 사람이 제가 알고 있는 걸 다 알고 있으면 징그럽잖아요. 미숙한 게 젊음의 특권이니까요.

실수하면서 한 단계씩 오르며 사는 거죠. 급하게 가다가 넘어지기도 하고, 천천히 가다가 깨우치기도 하면서요. 그렇게 살다가 나중에 나이를 먹어 지금 배운 것들을 자산으로 삼는 사람이 된다면, 그걸로 만족하면서 살 것 같아요.

인터뷰를 마치며 ‘이분이 정말 여든 여섯에, 병간호를 하는 분일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시종일관 부드럽고 따뜻한 음성에, 발음 하나 새는 곳 없이 또박또박했다. 그리고 하실 말씀을 차분히 일목정연하게 전해주시는 모습이 감탄스러웠다.

유선진 작가는 오늘도 노부老夫가 좋아하는 주현미의 ‘야래향’을 한 소절 부르고, 갖가지 세상사로 남편과 대화를 나누고, “오늘 하루도 당신과 함께해서 행복했다우.” 하며 잠이 드실 것이다. 내일은 얼마나 즐거울까 소망하며.

<한 평 반의 행복>스스로 움직일 수 없게 된 85세의 남편을 80세 아내가 간병하며 사는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결혼 53년 만에 완전 일체의 부부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진솔하게 담았다. 인생의 온갖 고비를 함께 넘으며 늙어가는 부부, 그리고 지금도 같이 산다는 것에 축복이 있음을 가르쳐준다.

유선진

193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경기여중·고를 거쳐 이화여자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고, 1987년 <월간문학> 수필 부문에서 신인상에 당선되며 등단했다. 2002년에 첫 수필집 <섬이 말한다>를 발표, 2009년 산문집 <사람, 참 따뜻하다>, 2014년 수필선집 <쓴맛 단맛>, 2020년 어르신 이야기책 <그와 내가 있는 삽화>, <내 사랑 엄지>, <딸>을 출간했다.

최지나 기자  41536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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