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투머로우

상단여백
HOME People 피플
나를 믿어주는 단 한 명이 있다면
최지나 기자 | 승인 2021.01.06 15:31

퇴근길 꽉 막힌 도로를 지나 경기도 양주에 자리하고 있는 ‘커뮤니티 케어센터’를 방문했다. 그곳에서, 만 18살이 되어 아동양육시설에서 나온 안지안 씨와 그의 멘토 역할을 하고 있는 조한나 씨를 만났다. “오느라 고생 많으셨죠? 식사는 하셨어요?” 조한나 씨의 물음에서 따뜻한 배려가 느껴졌다. 얼굴의 반을 마스크로 가린 채 진행된 인터뷰였지만, 두 사람의 말간 얼굴이 눈에 선하게 그려졌다. 기자가 본 그들은 친구이자, 자매이자, 인생의 선후배 같았다.

안지안
커뮤니티 케어센터의 맏언니이자, 센터 내에 있는 학생회 회장을 맡고있다. 현재는 대학에서 국어국문을 전공하며 작가의 꿈을 키우고 있다.
조한나
커뮤니티 케어센터 국장을 맡으면서 피아노 선생님으로도 활동하고있다. 보호 종료 아동들에게 고민상담사 ‘쪼 이모’로 통한다.

Q. 두 분은 어떻게 만나게 되었나요?

조한나: 저와 가장 친한 친구가 지안이가 지냈던 아동양육시설에서 생활지도원으로 근무했어요. 종종 친구를 만나러 온 지안이와 간단한 인사 정도를 나누는 사이였어요. 그땐 지안이를 친구에게 듣는 귀동냥으로 만나는 게 전부였죠. 그런데 지안이가 시설에서 퇴소하고 난 뒤에 혼자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 제 친구에게 다시 연락을 했어요. 그때 저도 지안이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게 됐죠. ‘커뮤니티 케어센터’는 지안이의 이야기를 접한 어른들이 모여 만들었어요. 만 열여덟 살이 되어 갑자기 어른이 된 아이들에겐, 모르는 걸 물어보고 어디로 가야 할지 함께 고민하고 방향을 제시해줄 어른이 필요했으니까요.

안지안: 양육 시설마다 1년에 한 번 축제를 크게 열어요. 저는 한나 샘(선생님)을 그때 처음 뵀어요. 생활지도 선생님의 초청으로 오셨을 텐데, 페이스북에서 종종 뵌 분이라 한눈에 알아봤죠. 그 후엔 제가 시설에서 나온 뒤 생활지도 선생님과 다시 연락하면서 한나 샘도 함께 만났어요. 제가 낯가림도 심하고 새로운 사람에게 경계심도 강한 편인데 한나 샘과는 순식간에 가까워졌어요. 그게 참 신기하죠? 이야기를 나누느라 밤을 새운 적도 많아요. 어디다 털어놔야 할지 몰랐던 힘든 일들을 하나씩 풀어놓을 때마다 관계의 실이 단단히 꿰어지더라고요. 저에게 시간을 내주는 한나 샘이 참 고마웠어요.

두 사람은 서로에게 고백하듯 고마웠던 일들을 풀어놓았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몇 년 전부터 지안 씨에겐 법적 보호자가 되어주는 가족, 그리고 함께 지내는 가족이 생겼다. 갑자기 두 가족이 생긴 지안 씨는 이런 변화가 즐겁지만 한편으론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그때에도 한나씨는 지안 씨가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손을 잡아주었다.

Q. 지안 씨에게 가족은 남다른 의미일 것 같습니다.

안지안: 처음엔 모든 게 좋았어요. 그렇게 갖고 싶었던 가족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제겐 가족이 가장 큰 상처이다 보니 가족이 생긴 그때부터 상처를 극복해가는 과정이 시작되었어요. 가족은 상처를 이겨낼 수 있도록 함께해주는 사람들이에요.

지안 씨와 함께 살고 있는 가족들과 생일에 찍은 사진.가족이 생겨 기념일을 챙기는 횟수도 늘고 기쁨도 커졌다.

지금까지 TV에서, 책에서, 상상 속에서 만든 가족만 마주했는데, 현실에선 좀 다르더라고요(하하). 저는 누군가에게 서운한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었어요. 기대할 대상이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제가 엄마를 ‘엄마’라고 부르는 순간부터 ‘나에게도 이런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기대가 생기더라고요. 반대로 엄마는 ‘딸’에게 책임감이 생기니까 제 투정과 부족한 것들을 마냥 다 보듬어주지 않으셨어요. 거기서 오는 서운함과 상처가 있었어요. 가끔씩 ‘나도 어렸을 때부터 가족이 있었다면 사소한 것부터 배울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하게 되고요. 산고는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 속에도 있더라고요(하하).

Q. 지안 씨가 겪는 과정을 한나 씨는 옆에서 다 지켜보았겠군요.

조한나: 지안이에게서 전화가 오면, 수화기 너머로 전해지는 기운만으로도 이 녀석의 상태를 알 수 있어요. 엄마와 아빠에게 직접 말하긴 어렵고, 혼자 끙끙 앓는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생겼다는 거죠. 지안이를 만나면 최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어줘요. 저에겐 당연한 일상이 지안이에겐 당연하지 않을 수 있으니까요. 제 기준을 내려놓고 이야기를 듣다보면 지안이의 입장과 엄마의 입장이 보여요. 그렇게 알게 된 엄마의 마음을 지안이에게 살짝 흘려주고, 지안이의 마음은 엄마에게 살짝 흘려보내줘요. 오작교 역할이 참 재미나요.

안지안: 처음엔 마냥 힘들었는데, 한나 샘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제가 알지 못했던 엄마의 마음이 보여요. 그 안에 담긴 사랑이 힘들고 서운한 것들을 이겨내는 감동을 만들어요. ‘그래, 이거지!’ 하면서요.

Q. 지안 씨가 언제 감동을 느꼈는지 궁금하네요.

안지안: 제가 어리긴 하지만 어찌 됐든 성인이 된 후에 만난 가족이잖아요. 그래서 부모님께서 쉽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기 어려우셨을 거예요. 제가 살아온 모습이 있으니까요. 처음에는 서로 다른 모습이 부딪힐 때면 ‘나는 혼자 살아야 할 운명인가봐’, ‘더 이상은 같이 못살겠다. 이렇게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데…’ 같은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가족이 되는 걸 포기하고 싶어서 모진 말을 많이 내뱉었는데, 엄마는 포기하지 않았어요. 가슴이 참 아플 거 같은데도 절대로 ‘힘들다, 그만하자’고 하지 않으셨어요. 그럴수록 더 많이 ‘사랑한다’고 표현하고 더 많이 안아주셨어요. ‘나를 포기하지 않는 사랑’을 만날 때 감동을 받아요.

조한나: 시설에서 지내는 아이들은 대체로 1년에 6명이 넘는 선생님들을 만나요. 선생님들이 두 달을 채우지 못하고 그만두는 걸 보면서 아이들은 ‘우리가 그렇게 힘든가?’라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 허물없이 지내던 분들과의 관계도 소원해지면서 어른을 향한 불신과 적대감을 갖기도 하죠. 자신들을 쉽게 포기하는 어른들을 많이 만나다보니 조금만 어긋나는 것처럼 보여도 “봐, 결국 이렇게 되잖아.” 하면서 관계를 빨리 정리하려고 해요.

그래서 아이들이 누군가를 믿고 다가가는 데까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기다려줘요. 그런데 이 친구들이 자신을 믿고 기다려 주는 걸 알아요. ‘나를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걸 신뢰하는 순간, 스스로도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있어’, ‘든든한 지원자가 있으니 내가 잘할 수 있다’ 하면서 포기하지 않게 돼요. 그런 변화를 목격할 땐 저도 감동을 받아요.

사진을 찍으며 친해졌다는 지안 씨와 한나 씨는지금도 자주 사진관을 찾는다.

지안 씨에겐 언제나 자신을 믿어주는 가족과 한나 씨가 생겼다. 그 덕에 지안씨는 스스로 포기하는 일이 줄어들었고, 어느 때보다 행복하다. 그래서일까? 지안씨의 이야기를 접한 많은 보호 종료 아동들이 커뮤니티 케어센터로 오고 있다고 한다. 지안 씨 한 명으로 시작된 이 센터가 이젠 제법 많은 아이들을 관리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안전핀 역할을 하고 있다.

Q. 지안 씨에게 동생들이 많이 생겼네요.

안지안: 센터에 저 혼자 있을 때에는 모두 절 챙겨주셨는데, 지금은 챙겨야 할 동생들이 많아졌어요. 참 신기한 게, 예전에 저는 나만 생각하는 사람이었는데 동생들이 생기니 저도 누군가를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아무래도 가족들과 한나 샘에게 배운 것 같아요(하하). 저에게 이분들이 있는 것처럼, 저도 동생들에게 그런 존재가 되고 싶어요. 믿어주고, 기다려주고, 어디로 가야 할지 알려주는 사람이요. 감사하게도 동생들이 저를 믿고 따라와주니 슬프거나 어려운 일에도 쉽게 휘청이지 않는 힘이 생겼어요.

조한나: 동생들이 많아졌다는 건 센터도 성장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짧은 시간 내에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건 아무래도 우리를 믿고 와준 아이들 덕분이겠죠. 현재는 보호 종료 아동을 지원하는 게 주업무지만, 앞으로는 그룹홈, 대안학교 운영까지 계획하고 있습니다. 저 또한 성장에 발맞춰 가기 위해 교육 자격증과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따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다만 아이들을 만나며 느끼는 기쁨만큼 고민의 깊이가 깊어졌습니다. 센터를 같이 운영하는 선생님들은 자주 모여 ‘어떻게 하면 더 지혜롭게 아이들을 이끌어줄 수 있을지’ 머리를 맞댑니다. 이 일을 더 잘 아는 분들을 찾아가 조언을 구하면서요.

Q. 지안 씨에게 그렇듯 한나 씨에게도 어른이 필요하군요.

조한나: 저도 모자란 부분이 있고, 감정에 휘둘릴 때도 있고, 쉽게 지치기도 해요. 그래서 주저앉아 있을 때 저를 일으켜줄 누군가가 필요해요. 그게 친구가 되기도 하고, 선배가 되기도 하지요. 덕분에 많이 단단해졌어요. ‘힘들다’고 할 때 그저 다독여주기만 하는 게 아니라 다시 일어설 힘을 주거든요. 다시 길을 찾아갈 수 있게요. 저도 아이들에게 그런 어른이 되고 싶어요. 힘들 때 그저 달콤한 위로를 건네는 게 아니라 방향과 힘을 제시해줄 수 있는 사람이요.

Q. 두 분의 만남은 서로의 삶에 많은 변화를 가져온 것 같아요. 각자에게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인가요?

안지안: 태어날 때부터 가족 없이 시설에서 지낸 게, 아물 수 없는 큰 상처이자 채울 수 없는 결핍이라고 생각했어요. 시설에서 지낸 18년 동안 사랑을 한 번도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며 지냈거든요. 그런데 아니었어요. 저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을 만나보니까 매 순간 사랑이 있었어요. 다만 사랑이 내가 원하는 모양,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만 나타나는 게 아니었는데 그걸 몰랐어요. 서로 다른 방법으로, 다른 모양으로 저에게 사랑을 주고 있다는 걸요. 물론 그걸 금방 까먹고 투덜대기도 하는데요(하하). 많은 방황 속에서도 제가 다시 털고 일어날 수 있었던 건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죠. 그걸 알고나니까 시설에서 지낸 게 얼마나 감사한지요. 저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앞으로도 많은 사랑을 받으며 살아갈 거예요. 이걸 알게 된 게 가장 큰 변화가 아닐까요?

조한나: 저는 ‘소소한 행복’을 느낄 수 있게 된 거요. 저는 지금까지 좋은 환경이 주는 것들을 누리면서 사는 게 행복이라고 여겼어요. 그런데 아이들을 만나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제가 자라온 환경이 행복한 거였다는 걸 알게 되었고, 아이들과 힘든 일을 함께 고민하고 헤쳐나가는 행복도 배웠으니까요. 종종 어떤 아이들이 세상과 이별을 택했다는 소식을 들어요. 그래서인지 살아 있기 때문에 느끼는 것들이 더 소중해졌어요. 아픈 것도, 힘든 것도, 고민할 일이 있는 것도요.

인터뷰 말미에 ‘작가’를 꿈꾸는 지안 씨는 조만간 책 출간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틈틈이 적은 글들을 엮어 책을 내기까지는 그녀의 꿈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다사다난했던 2020년을 보냈다. 예기치 못한 일들이 도미노 쓰러지듯 연이어 터지면서 누군가는 위태로운 한해를 보냈을지도 모른다. 2021년에는 혼자서 어려움을 해결하려고 하기보다는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어보면 어떨까? 아마 그 손을 잡아주고 싶어서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 손길을 따라 어려움을 이길 수 있는 지혜와 힘이 전해질 것이다. 지안 씨가 그랬던 것처럼.

보호 종료 아동이란?

법적으로 보호할 의무가 종료돼 보육원이나 공동생활 가정(그룹홈) 등의 보호시설에서 나와야 하는 청소년을 말한다. 아동복지법 제38조 제2항은 보호가 종료되는 시기를 ‘만 18세’로 규정하고 있다.

최지나 기자  415362@naver.com

<저작권자 © 데일리투머로우,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최지나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