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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하지 않아도 괜찮은 이유, 제가 알려드릴게요”팬시 디자이너 김예진
최지나 기자 | 승인 2021.02.05 16:14

“초등학교에 막 입학했을 때부터 문방구에 가는 게 제 하루 일과였어요. 문방구 문을 열면 제 세상이 펼쳐졌거든요. 알록달록하고 아기자기한 문구들을 구경하다 보면 시간가는 줄 모르고 막연히 나도 이런 걸 만드는 사람이 돼야지 생각했어요.”

초등학생 시절부터 예진 씨의 팬시 사랑은 남달랐다. 하지만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도 ‘재능이 없는 것 같아서…’, ‘내 길이란 확신이 생기지 않아서…’ 등등의 이유를 대며 포기하고 싶은 순간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녀도 그런 순간들마다 꿈에서 돌아서려 했지만 선물처럼 찾아온 특별한 시간의 덕을 톡톡히 보았다.

김예진
시각디자인을 전공했으며, 2015년에 굿뉴스코 해외봉사 단원으로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에 다녀왔다. 현재는 금홍팬시 디자인연구개발부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팬시 문구로 사람들에게 행복을 전할 것을 고민하는 중이다. 사진 속 문구류는 그가 디자인한 것들이다

Q. 팬시 디자이너에 대해 설명을 부탁드려요.

쉽게 이야기해서 노트, 수첩, 펜, 색연필 등 각종 문구류에 옷을 입히는 일을 합니다. 노트를 예로 들면, 표지의 앞면과 뒷면 디자인은 어떻게 할지, 노트를 폈을 때 어떤 느낌이 나게 내지를 디자인 할지, 스프링 노트라면 스프링의 색은 무엇으로 할지 등등을 선택해서 노트에 가장 잘 어울리는 옷을 입힙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문구류는 학생들의 전유물 같았는데, 요즘은 키덜트Kidult라고 귀여운 제품을 좋아하는 성인들도 많아져서 팬시 디자인의 폭이 넓어지고 종류도 많아졌습니다. 노트북 파우치부터 이어폰 케이스까지 우리가 자주 접하고 사용하는 물품의 옷을 만드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Q. 어렸을 때부터 꿈이 분명해 진로를 선택하는 데 수월했을 것 같습니다.

팬시 디자이너가 되려면 보통 시각디자인을 공부한다고 해서, 저도 대학에 갈 때 시각디자인과를 선택했습니다. 여기까지는 수월한 편이었던 것 같아요(하하). 대학에 들어간 후엔 나 자신에게 실망도 많이 하고, ‘디자이너가 되기엔 재능이 부족하지 않나?’ 하며 끊임없이 제 꿈을 의심했어요. 그 발단이 대학교 첫 수업이었어요. 교수님께서 4절 도화지를 한 장씩 나눠주면서 어떤 입체물이든지 만들라고 하셨어요.

저는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 사이에, 다른 친구들은 성을 만들고, 차를 만들고, 제가 상상하지 못했던 입체물을 만들어 내더라고요. 한 사람씩 돌아가며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는데,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몰라요. 재능이 뛰어난 친구들이 정말 많더라고요. 저도 고등학교 시절까지 나름 그림 잘 그린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정말 잘하는 친구들을 만나니까 제가 우물 안 개구리 같았어요. 수업을 들으면 들을수록, 과제를 하면 할수록 그런 생각이 깊어졌어요. ‘난 이미 한참 뒤떨어졌어.’ ‘디자이너가 내 길이 아닐지도 몰라.’ ‘졸업은 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얼마나 했는지 모릅니다.

Q. 스스로 자신을 의심하는 시간이 힘들었겠네요.

대학교 1학년 때를 돌아보면, 저는 일 년 내내 열등감에 휩싸여 지냈어요. 초등학생 때부터 가진 꿈이 흔들리다 보니, 제 미래를 천천히 생각해볼 시간이 필요했어요. 학교를 다니는 동안에는 수업을 따라가는 것도 벅차고, 밀린 과제를 해내느라 정신없이 지냈거든요. 그래서 1학년을 마치고 해외봉사를 선택했습니다. 목회자인 아버지가 특별히 청소년 활동과 대학생 해외봉사에 관심이 많아 저도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졌고, 친척 언니가 굿뉴스코 해외봉사를 다녀온 뒤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대학에 가면 꼭 해외봉사를 가야겠다’고 다짐했거든요.

지금이 기회라는 생각에 1학년을 마치고 아프리카 나이지리아로 떠났습니다. 많은 곳 중 왜 아프리카를 선택했느냐는 질문에 ‘TV나 미디어를 통해 아프리카를 접할 때마다 아프리카 사람들을 돕고 싶었다’는 예진 씨. 1년 동안 자신을 내려놓고 다른 사람들을 돕다 보면 키가 자라듯 마음 씀씀이도 자랄 것을 기대했다고 한다. 예진 씨는 마음이 자라난 만큼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도, 여유도 생기길 바랐다.

Q. 나이지리아에서의 생활이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나이지리아는 정말 재밌는 나라예요. 즐거운 일이 있을 땐 귀가 아플 정도로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고, 갈등이 있을 땐 다신 안 볼 것처럼 격렬하게 싸워요. 그러곤 언제 싸웠냐는 듯이 훌훌 털어버리죠. 처음엔 사람들의 그런 모습에 적응을 못 했어요. 저는 항상 다른 사람이 날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하고, 하고 싶은 말을 했을 때 상대방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생각하느라 표현을 주저할 때가 많았거든요.

그런데 화끈하게 표현하면서도 서로 잘 어울리며 사는 나이지리아 사람들 덕분에, 그렇게 사는 법을 배웠어요. 그곳 사람들이 기쁜 일이 있는 김예진, 화가 난 김예진, 일이 잘 안 풀리는 김예진 등등 저의 여러 모습을 그대로 받아주었어요. 사람 사람마다 개성이 강하다 보니, 사람을 대할 때 선입견을 갖지 않고 대해주더라고요. 덕분에 소심하고 남과 비교하는 제 습관들을 조금씩 지울 수 있었어요.

Q. 습관을 바꾼다는 게 쉽지 않은데 큰 변화가 있었네요.

그것도 저에겐 엄청난 변화였지만, 더 큰 변화는 그 다음에 있었어요. 제가 지냈던 곳 주변에 초등학교가 있어서 매주 미술 수업을 하러 갔어요. 제 수업 시간이 되면, 어린 학생들이 저를 기다리다가 학교 정문까지 뛰어와 제 손을 잡고 교실로 들어갔어요. 매번 저를 기다려주는 아이들이 너무 고마웠어요. 수업을 마치고 나면 ‘이 아이들을 위해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을까?’ 곰곰이 생각했죠.

환경미화 전 교실 벽면은 학습 자료들로 도배되어 있었다.

그 학교 교실에는 형광등이 없어서 햇빛에 의지해서 수업을 해야 했어요. 날이 흐리거나 비가 오는 날에는 오전에도 수업을 할 수 없을 만큼 캄캄했지요. 그리고 교실 벽에 붙여놓은 학습 자료들이 글씨도 작고 아이들 키에 비해 높이 있어서 아이들이 보기 쉽지 않았어요. 그런 교실을 아이들에게 꿈을 키울 수 있는 교실로 만들어주고 싶었어요.

많은 걸 바꿀 순 없겠지만 교실 분위기라도 바꿔보자는 마음으로 교실 환경미화를 시작했어요. 어둡고 칙칙했던 벽에 노란 페인트를 칠하고 그 위에 ‘소원나무’를 그렸어요. 아이들이 자신의 꿈을 적어넣을 수 있게요. 그리고 학습 자료들을 큼지막하게 키워 보기 편하게 하고 그림으로 표현해 이해하기 쉽게 했어요. 다른 벽에는 아이들이 더 넓은 세상을 만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세계지도도 붙이고요.

환경미화를 마친 다음날, 새롭게 변한 교실을 보고 학생들이 “와~!” 하고 감탄하며 기뻐했어요. 그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해요. 저에게 다가와 고맙다고 인사하는 아이들을 보며 오히려 제가 더 고마웠어요. 제 실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재료가 넉넉했던 것도 아니어서 꾸미면서 부족함을 느꼈거든요. 그런데 너무 기뻐하는 아이들을 보며, 비록 부족할지라도 누군가를 행복하게 할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어요. 앞으로도 다른 사람을 위해 내 재능을 사용한다면 빛이 난다는 걸 배웠죠.

페인트를 다시 칠하고, 벽에 소원나무를 그린 모습.

나이지리아에서 경험한 일들을 이야기하는 예진 씨의 얼굴에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아마 그때 다시 찾은 웃음일 것이다.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며 잘해야만 한다는 틀에 스스로를 가뒀던 그녀는 나이지리아에서 그 틀을 열 열쇠를 찾았다. 자신이 그린 그림을 보며 행복해하는 아이들, 그림을 그려줘서 고맙다며 작은 선물을 건네는 사람들이 그 열쇠였다.

Q. 한국으로 다시 돌아온 뒤 학교 생활은 어땠나요?

1학년 때 저는 항상 어떻게 해야 점수를 잘 받을 수 있는지 고민하고, 과제를 할 때에도 ‘이렇게 해도 되는 건가?’ 하며 제가 만드는 작품에 대해 확신이 없었어요. 그런데 나도 충분히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경험하고 나니, 점수에 일희일비하지 않았어요. 점수가 생각보다 덜 나오면, 그 이유를 찾아 보완할 수 있으니 어쩌면 더 좋은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아프리카에 다녀온 경험이 작품에 반영되니까 작품 설명을 할 때 신이 나더라고요. 열등감을 벗으니 ‘뭐든지 해보자’라는 방식으로 삶의 태도가 변했어요. 그래서 디자인과 관련된 일뿐만 아니라 대학생 때 할 수 있는 다양한 활동에도 도전해 보았습니다.

Q. 어떤 활동을 했는지 궁금합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은 공모전에 도전한 거예요. 저는 아프리카에 다녀온 후 아프리카를 그리워하는 향수병을 얻었어요(하하). 그래서 어떻게 하면 다시 갈 수 있는지 백방으로 기회를 찾았고, 글로벌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해외탐방을 지원하는 공모전을 발견했어요. 선발되면 5백만 원의 해외탐방비를 지원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공모전에 응모할 프로젝트의 초점을 ‘어떻게 하면 한국을 적극적으로 알릴 수 있을지’에 맞춰 고민하다가, 아프리카 학생들이 드라마 등을 통해 한국을 접하지만 한국 음식을 먹어보지는 못했다는 게 생각났어요. 그래서 당시 인기 있는 TV 예능 프로그램이었던 ‘윤식당’을 모티브 삼아 한국 음식을 맛볼 수 있는 ‘별식당’ 프로젝트를 만들어 공모전에 참가했습니다. 프로젝트를 발표하던 날, 아프리카 전통의상을 입고 아프리카에 다녀온 경험과 함께 프로젝트의 취지를 신나게 설명했어요. 발표를 들은 심사위원들이 “음식 상하지 않게 조심해 야겠네요!”라고 하며 합격도장을 쾅 찍어주셨죠.

그렇게 다시 아프리카로 떠났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별식당’을 운영하는 것뿐 아니라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기회도 얻었습니다. ‘별식당’을 운영하던 곳 주변에 초등학교가 있었는데, 새롭게 단장 중이었어요. 학교에서 담에 그림을 그릴 사람을 찾고 있는 걸 알고 제가 그리고 싶었지만, ‘별식당’을 운영하는 데에도 시간이 빠듯했기 때문에 포기하고 있었죠. 그런데 같이 간 친구들이 “안 하고 가면 후회할 거야. 식당은 우리가 책임질게 가서 그려!”라고 후원해줬어요. 결론적으론 ‘별식당’도 반응이 정말 좋았고, 벽화도 잘 완성할 수 있었어요. 특히 벽화를 그리는 동안 아이들이 제 주변을 떠나지 않았어요. “이 그림은 뭐예요?”라고 묻고, 그림이 하나씩 완성될 때마다 “이거 별이죠?”, “이것 봐, 벽에 꽃이 피었어!”라며 웃고 행복해했어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그림 그리는 맛을 제대로 보고 돌아왔습니다.

그 외에 대학을 졸업하기까지 잡지사에서 학생 기자로도 활동했습니다. 그때 기사 기획부터 글쓰기, 그리고 제가 가장 기피했던 편집 디자인을 차근차근 배울 수 있었습니다.

Q. 기자는 전공과 상관없는 일이었을 텐데, 어땠나요?

처음 학생 기자를 할 때 ‘나에게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게 아니라, 해볼 기회가 생겨서 잡았을 뿐이었어요. 그런데 그곳에서 배운 게 지금 일하는 데 굉장히 도움이 돼요. 저는 자유롭게 그리는 걸 좋아하는데, 편집 디자인은 정해진 면을 무엇으로 채우고 어떻게 배치할 것인지가 중요하기 때문에 세심함이 필요하고 비율을 잘 조절해야 해요. 그런 것이 어려워서 가능하면 안 하려고 피했는데, 학생 기자를 하면서 꾸준히 배울 수 있었어요. 나중에 팬시 디자이너가 되어 일하다보니, 편집 디자인이 모든 디자인의 기본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때 배운 게 도움이 많이 돼요. 노트나 다이어리를 만들 때는 물론이고, 전체적인 비율이 중요한 작업을 할 때 좀 더 수월하게 할 수 있으니까요.

벽화를 그리기 시작하면, 이곳 저곳에서 아이들이 몰려와 그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Q. 대학 시절에 했던 활동들이 꿈을 이루는 과정들이었네요.

그 당시엔 몰랐는데 지금 와서 돌아보면 그렇더라고요. 어쩌면 지금도 그 과정에 서 있는 것 같아요. ‘팬시 디자인으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 확신이 없었는데,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조금씩 확신을 찾아가고 있어요. 제가 다니는 ‘금홍팬시’의 모토가 ‘마음을 전하는’인데요. 소비자들이 우리 제품을 사용하면서 ‘이 회사가 만드는 건 완성도가 높다, 소비자를 생각했구나’라고 느낄 수 있도록 제품 하나 하나에 신경을 써요. 저 혼자 일하면 작은 부분들을 많이 놓치는데, 선배 디자이너들과 팀장님이 제가 미처 신경쓰지 못하는 부분들을 챙겨주고 가르쳐주세요. 그때마다 ‘조금만 더’의 차이가 특별함을 만든다는 사실을 배우죠. 그렇게 만들어진 제품을 사용하고 만족해하는 소비자들을 볼 때면 뿌듯하고 행복합니다.

예진 씨와 인터뷰를 한 다음날, 책상 위에 있는 물건들을 둘러보았다. 노트, 펜, 테이프, 포스트잇…. 어느 책상에나 있을 법한 것들이 놓여 있었다. 평범하고, 당연히 있는 것들이지만 없으면 불편하고 찾게 되는 것들. 이런 팬시 제품들과 예진 씨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주변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사람, 하지만 누군가에게 행복을 줄 수 있다는 열쇠를 찾아 꿈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 그리고 없으면 찾게 되는 사람 말이다.

최지나 기자  41536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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