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팅게일은 죽었다> 김민경 작가

전신을 감싸는 레벨D 방호복을 입고 고글을 쓰고, 숨이 턱 막히는 N95마스크를 끼고, 라텍스 장갑 두 겹을 착용하고 이중 덧신으로 신발을 감싼다. 이 모든 장비를 착용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15분. 고글에 눌린 머리가 지끈거린다. 찜질방에 온 듯 온몸이 습하고 숨이 막힌다. 그 상태로 환자들을 확인하다 응급상황이 발생하면 달려가 처치를 하고, 한숨 돌리자마자 정신을 집중해 다른 환자의 혈관을 찾는다. 숨가쁜 이 현장은 코로나19와 싸우는 의료진들의 일상이다. 지난해 봄, 의료진이 부족하다는 뉴스를 보고 대구 의료현장에 파견을 다녀온 김민경 씨는 그 환경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는 올해도 의료파견을 가고 싶다고 한다. 현재의 위험을 무릅쓰고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의료진은 약 600명에 달한다(2020년 12월 기준). 이들이 이런 선택을 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민경 씨와 전화로 이야기를 나누며, 그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일러스트 방튜터
일러스트 방튜터

Q. 올해도 파견 신청을 희망하신다고요.

마음 같아선 벌써 신청했을 텐데 가족들에게 아직 이야기를 못했어요. 지난해에 제가 다녀온 걸 듣고 많이 놀랐거든요. ‘작년에 내가 어떻게 의료파견을 신청할 수 있었을까?’ 생각해보면, 이런 이유였던 것 같아요. 먼저, 퇴직 간호사지만 지금과 같은 위기 상황에서 도울 수 있는 무기를 가지고 있잖아요. 무엇보다 현장에서 한 사람의 인력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 같아요.

저처럼 간호사 면허증은 있지만 의료 현장에서 물러난 분들이 코로나 현장에 많이 지원하시는데, 누구보다 그 환경이 얼마나 힘든지 알기 때문에 간호사들의 고통을 분담하고 싶어서가 아닐까 생각해요. 제가 간호사로 근무하던 당시 응급환자가 겹쳐 정말 바쁠 때면, 조금 여유 있는 사람이 작은 업무라도 도와주면 큰 힘이 되었거든요. 그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알기에 그곳에 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Q. 간호사로는 얼마나 일하셨나요?

4년간 일했어요. ‘환자의 몸도 마음도 케어하는 멋진 간호사’를 꿈꾸다 현실의 벽에 부딪혀 방황하고 힘들어할 때도 있었지만, 제 인생에서 정말 소중한 것을 배우고 느낀 시간이었어요. 인생의 가치관도 많이 바뀌었고요.

Q. 말씀하신 ‘소중한 것’이 어떤 것인지 궁금하네요.

내가 이 일을 하는 이유, ‘간호의 본질’에 대해 스스로 답을 찾아가면서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본질이라는 단어가 거창할 수 있는데요, 사실 제가 간호대학에 진학할 때는 큰 사명감은 없었어요. 제가 선택할 수 있는 전공 중 간호학과가 있었고, 배우면 사람들을 실제로 도울 수 있다는 생각 정도였지요. 간호대학을 졸업할 즈음에 문득 ‘간호란 무엇일까?’라는 고민을 했어요. 그래서 현장에서 오랫동안 일하신 교수님, 실습 중에 만난 수간호사님에게 간호의 본질에 대해 여쭈었어요.

교수님은 “사람은 누구나 위로가 필요합니다. 특히 아픈 환자들은 더욱 필요로 합니다. 그것을 내가 해줄 수 있다는 것에 의미를 두었던 것 같습니다.”라는 답을 주셨고, 수간호사님은 “같은 간호를 해도 사람마다 반응이 달라요. 간호는 사람을 대하는 일이라 매력적이에요.”라고 답해 주셨어요. 두 분의 이야기에는 ‘사람’이라는 공통점이 있었죠. 당시 이런 걸 느끼려면 진심을 가진 간호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실제로 일을 시작해보니 현실은 제가 생각했던 것과 달랐어요.

Q. 어떤 게 달랐나요?

심리적인 압박이 상상 이상이었어요. 제가 일을 시작한 곳이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였어요. 병원 특성상 전국 각지에서 병이 심한 분들이 최종적으로 찾아오는 경우가 많았죠. 제가 일했던 당시에는 간호사 한 사람이 12명에서 14명의 환자를 담당했어요. 암 병동이다 보니 갑작스러운 응급상황이 많은데, 그런 일이 한꺼번에 몰릴 때면 심장이 타들어 가는 듯했어요. 사람 목숨이 걸려 있는 일이라는 것, 시간 안에 일을 끝내지 못하면 다른 선생님이 일을 떠맡게 된다는 것 등 모든 것이 부담스러웠어요. ‘

좋은 일’이라는 막연한 기대는 현실에서 사라지고, 생명과 직결된 일을 하며 느끼는 거센 물살이 두려워 자꾸 도망가고 싶었죠. ‘내가 해가 되는 존재인 건 아닐까?’ ‘이 모든 부담과 압박감을 견뎌내고 좋은 간호사가 될 수 있을까?’ 그래도 간호사는 제가 택한 일이잖아요. 힘들지만 바로 포기하고 싶지 않았어요. 무엇보다 존경했던 간호사 선생님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저도 그들이 느낀 것을 느껴보고 싶었어요. 이 일을 제대로 경험해보지 않고는 판단할 수 없다고 생각했죠.

Q. 바람대로, 민경 씨도 선배님들이 느꼈던 것을 느낄 수 있었나요?

일을 오래 하고 경험이 쌓이다 보니 기술적인 부분들은 숙달이 되더라고요. 어느 순간부터 응급상황에서 제대로 처치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환자를 한 사람으로 진심으로 만나 이야기하고 바라볼 수 있었어요. 그런 저의 말투, 손짓, 눈빛이 환자분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어 저를 바라보는 눈빛이 달라지는 걸 느꼈습니다.

Q. 특별히 기억에 남는 환자분이 있나요?

제가 담당한 환자 한 분이 40도가 넘는 고열에 시달리다 돌아가신 적이 있었어요. 임종이 가까웠을 때 널뛰는 맥박과 빠른 호흡수 때문에 알람이 울렸고, 제가 병실로 들어가 환자 가족분들을 보면서 저도 안쓰럽고 마음이 아팠어요. 그래서 조금이나마 환자분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들은 없는지 살펴서 정리하고, 보호자와 함께 힘을 합쳐서 자세를 바꿔드렸어요.

며칠 뒤 그 환자분은 결국 돌아가셨고, 그분 아내는 한참 동안 눈물을 흘리셨어요. 의사 선생님이 사망했다고 선고한 뒤 저는 사후 처치를 하고 씁쓸하게 병실을 나섰고, 동시에 가족들이 병실로 들어갔어요. 한참 가고 있는데 병실에서 나온 아내분이 저를 부르며 걸어오시는 거예요. 그리고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했어요. 선생님 덕분에 그이가 편하게 가신 것 같아요.”라고 하며 저를 따뜻하게 안아주시는데, 그 감사 인사가 제 마음에 깊이 와 닿았어요. 가족의 죽음을 맞이한다는 건 고통스러운 일이잖아요. ‘내가 하는 일들이 그 고통을 조금이나마 덜어줄 수 있는 일이구나.’

환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지켜본다는 건 간호사에게도 힘든 일이에요. 그래서 제 감정이 소진되는 것을 막으려고 환자분과 나 사이에 선을 긋는 연습을 미리 해보기도 했지만 쉽지 않더라고요. 그 와중에 환자분의 가족까지 위로해야 하는 건 부족한 제 역량으로는 정말 부담스러운 상황이었어요. 하지만 제게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해주시는 분들을 만나며 제가 하는 일의 의미를 느낄 수 있었어요. 시간이 흘러 가족들의 심정을 헤아리고 다독이며 때로는 안아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조금씩 갖게 된 것 같아요.

그리고 환자분들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너무나 소중한 하루하루를 조금이라도 덜 불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돕는 일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 알게 되었죠. 그래서 저의 작은 배려와 도움으로 환자분이 활짝 웃어 보일 때면 밤을 지새우고 환자와 함께 고생하는 게 힘들게만 느껴지지 않았어요. 무엇보다 그 순간 함께 살아 있어서, 간호사와 환자로 만났지만 그것도 소중한 인연이라 생각했어요. 간호사로 일하면서 함께 살아 있음의 소중함을 느꼈던 것 같아요.

Q. 간호사 일을 그만두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20대였지만 간호사로 일하며 죽음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고, 내 인생도 유한하며 소중하다는 것을 느꼈어요. 그러면서 삶을 다시 보게 된 것 같아요. 전에는 저도 무조건 성공해야 한다는, 성공 욕심이 있었어요. 사람들이 다 인정하는 위치에 올라가야 할 것 같았죠. 그런데 죽음에 대해 생각하면서 그런 막연한 생각들이 사라지고 오늘, 지금 이 순간 내 영혼이 즐거운 일을 하며 살고 싶었어요. 사실 누군가를 간호하는 일은 저와 정말 잘 맞는 일이었어요. 그런데 밤새도록 한 환자분만 간호하다 지쳐버렸던 어느 날, ‘이 에너지를 더 많은 사람에게 전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고민을 시작했던 것 같아요. 그때 남편이 제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어보면 좋겠다고 했어요.

남편은 제가 간호 일을 하다가 어려움을 겪었을 때 힘이 되어준 사람이에요. 그때도 “네가 느끼는 것들을 너만 가지고 있지 말고 글로 써보면 좋겠다. 네가 느끼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도 충분히 의미가 있고 좋을 것 같다.”라고 했고, 둘 다 직장을 그만두고 책 편집 일을 시작했어요. 그렇게 해서 2019년에 책을 냈죠. 이 책이 많은 분들에게, 특히 간호사를 진로로 생각하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랐어요. 제가 간호사의 길로 들어설 땐 간호사의 현실에 대해 전혀 몰랐으니까요.

책을 출간한 후에는 강연도 다녔어요. 그러다 2020년 봄을 맞았는데, 그때 대구에 코로나 확진자가 급증하고 있으며 의료진이 부족하다는 뉴스를 보았지요.

민경 씨의 삶을 존중하고 응원해 주는 든든한 남편. 두 사람은 삶의 가치관이 놀랍도록 비슷해 첫 만남에 8시간 동안 쉼 없이 이야기를 나눴다고 한다.
민경 씨의 삶을 존중하고 응원해 주는 든든한 남편. 두 사람은 삶의 가치관이 놀랍도록 비슷해 첫 만남에 8시간 동안 쉼 없이 이야기를 나눴다고 한다.

Q. 대구에서 지내는 동안 간호사로 일하며 느꼈던 것들이 다시 생각났을 것 같아요.

아산병원에서 일할 때와는 상황이 조금 달랐어요. 파견 간호사는 본원 간호사를 서포트하는 역할이거든요. 본원 선생님들이 환자를 파악하거나 해야 하는 일들이 있을 때 제가 기능적으로 돕는 거였죠. 당시 요양병원에서 온 환자분들이 많아서 간호조무사의 일손도 부족해 그 일도 도왔고요. 항생제를 투약하고, 혈압을 측정하고, 기저귀 갈기나 식사 준비 돕기 등의 일을 했어요.

본원 간호사 선생님들을 보며 뭉클할 때가 많았어요. 하루는 무연고자 환자분의 상태가 악화되어 산소 수치가 떨어지고 있었어요. 그때 가래를 뽑아내면 수치가 좋아지는데, 그 일을 하는 게 감염 위험이 높아요. 그런데 어떤 선생님이 정말 열심히 하시더라고요. 결국 가래가 묽어지면서 산소 수치가 많이 좋아졌어요. 숨을 가쁘게 쉬던 환자분이 다시 편안히 숨을 쉬셨죠. 가래를 빼낸 선생님이 그 모습을 보고 “얼마나 답답하셨을까?”라고 하더라고요. 그 선생님을 보면서 ‘간호사 라는 직업이 그렇지….’ 하며 지난날의 제 모습이 떠올랐어요. 진심이 없으면 그런 말이 나오지 않잖아요.

그리고 생각했어요. ‘부디 간호사 처우가 좋아지면 좋겠다. 이 좋은 일을 계속할 수 있으면 좋겠다.’ 제가 책을 쓰기 시작한 이유 중 하나도 간호사에 대한 의식이 바뀌고 처우가 개선되길 바라는 마음이었어요. 너무 힘들어서 좋아하는 일을 그만두지 않게요.

Q. 지금의 민경 씨가 있기까지 수많은 사람과 함께하고, 그 영향을 받은 것 같습니다.

그렇네요. 이참에 제게 영향을 준 분들을 더 이야기하자면, 의료진 외에 식사 준비나 방역 등 현장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돕는 분들도 많잖아요. 그분들을 보면서 ‘일선에서 일하는 의료진들부터 거리두기를 실천하는 분들까지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로 돕고 있었기에 지금껏 우리 사회가 버틸 수 있었고, 내가 이렇게 살 수 있었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이곳에서 의료진을 응원하는 글을 쓰든 직접 가서 2주를 돕든 4주를 돕든, 함께하는 마음이 모여서 마침내 사회를 이전처럼 활기차게 되돌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간호학과 진로를 고민하던 예전의 자신을 떠올리며 특강을 준비한다.
간호학과 진로를 고민하던 예전의 자신을 떠올리며 특강을 준비한다.

함께한다는 것은 때로는 불편이, 때로는 희생이 따르기에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함께’를 택하며 살아가는 민경 씨의 마음이 어떠한지 궁금했다. 그리고 그와 이야기를 나누며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진심으로 환자를 간호했던 선배의 이야기, 같이 걸으며 응원을 아끼지 않았던 남편, 감사하다며 따듯하게 앉아주었던 환자의 보호자, 활짝 웃어주었던 환자분, 대구에서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 간호사 선생님, 간호사들을 위해 탈의실을 꼼꼼히 방역해주던 봉사자….

타인과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며 다른 사람을 위해 기꺼이 달려가고 싶어 하는 오늘의 민경 씨가 있기까지 수많은 사람이 그와 함께 있었다. 아름다운 꽃은 흙의 영양분과 비, 그리고 햇빛이 함께할 때 피어날 수 있다. 민경씨는 앞으로도 소중한 간호의 일을 걷게 될 후배들을 격려하고, 치열하게 코로나19 환자를 간호하고 있을 동료들을 응원하려 한다. 그와 같은 사람들이 이곳저곳에서 일어나, 꽃처럼 따뜻한 품을 가진 이들이 더 많이 피어나기를 희망해본다.

<나이팅게일은 죽었다>

김민경 씨가 4년간 간호사로 일하며 기록했던 하루하루의 흔적들이 모여 책이 되었다. 간호사의 삶 뿐만 아니라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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