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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은 제가 가야할 방향을 알려주었습니다”소방관 권세준
최지나 기자 | 승인 2021.01.05 11:26

유난히 추웠던 날, 소방관 권세준 씨를 만나러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 위치한 소방서를 찾았다. 야간 근무를 마친 뒤 잠깐 단장하고 나온 그가 노곤하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하지만 그는 시종일관 환한 미소로 진지하게 고민하며 질문에 답했다. “한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는데 질문을 들으니 생각하게 되네요.” 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히 풀어놓았다.

그는 20대의 대부분을 무얼 하면서 살지 고민하고 선택하고 방황하면서 보냈다. 그런 시간이 있었기에 어떤 일을 할 때 심장이 뛰고 즐거운지 알게 됐다며, 갈팡질팡하며 보낸 시간에 고마움을 전했다.

권세준
연세대 재학 중 굿뉴스코 해외봉사단으로 1년 동안 미국에 다녀왔다. 그곳에서 사람들을 도우며느낀 행복이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었다. 한국으로 돌아와 소방관이 된 그는 오늘도 자신의 손길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찾아간다.

Q. 권세준씨의 학창시절은 어땠나요?

그저 친구들과 놀고 운동하는 걸 좋아하는 평범한 학생이었습니다. 좀 다른 게 있었다면, 아버지가 선생님이셔서 혹시나 아버지께 폐를 끼칠까 봐 더 바르게 지내려고 했던 것 같아요. 또 부모님뿐만 아니라 학교 선생님, 주변 어른들이 공부가 중요하다고 말씀하시니까 공부도 열심히 했고요.

Q. 대학에 들어가서는 어땠습니까?

고등학생 시절에 시험을 보면 수학, 화학 점수가 높게 나왔어요. 그래서 단순히 ‘공대에 가면 되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실제 대학에 가서 공부를 하니 지루하고 흥미가 생기지 않았습니다. 그렇다 보니 수업에 자주 빠지게 되더군요. 학교를 다니는 동안 제 머릿속엔 공부에 대한 고민보다 ‘색다른 경험을 해보고 싶다’ ‘삶에 변화를 주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했습니다.

그러던 중 해외봉사를 알게 되었고, ‘저곳을 가면 내가 찾는 게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하나로 미국으로 해외봉사를 갔습니다. 다행히 그곳에서 색다른 경험을 한 건 물론, 살면서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다른 종류의 행복을 느꼈습니다.

한번은 미국 대학생들과 함께 ‘영어캠프’를 준비한 적이 있었습니다. 멕시코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쳐주기 위해 한 달 넘게 합숙을 하며 프로그램을 만들었어요. 그런데 멕시코에 가서 보니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멕시코 정부와 갱단이 ‘마약 전쟁’ 중이었고, 그래서 경비가 삼엄했습니다. 정부에서 시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곳곳에 경찰과 군인들을 배치해놓아서, 학교 정문에는 탱크와 총을 든 경찰들이 서 있고, 머리 위로는 헬기들이 날아다녔습니다. 그런 광경을 처음 접한 저는 잔뜩 긴장한 채 짐을 풀고 학생들을 만나러 갔는데, 저와 다르게 학생들은 마냥 해맑았습니다. 한국에서 온 제가 신기한지 하루 종일 제 주변을 맴돌고, 무얼 가르쳐주든 열정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미국으로 다시 돌아가는 날, 한 아이가 이야기했어요.

“선생님, 멕시코에 와줘서 너무 고마워요. 선생님들이 오시기 전까지 슬픈 일이 많았어요. 저하고 아주 친한 친구들이 총에 맞아 죽었거든요. 그런데 선생님들이 오셔서 다시 웃을 수 있었어요. 멕시코를 잊지 말아 주세요. 꼭 다시 와주세요.”

마냥 해맑은 아이들인 줄 알았는데, 마음에 슬픔과 아픔을 가진 아이들이었어요. 그런 아이들이 저를 만나 다시 웃을 수 있었다니…. 그 아이가 한 말이 오랫동안 뇌리에 박혀 저를 행복하게 했습니다. 학교에 다닐 때에는 열심히 노력해서 목표를 성취하거나 남들과의 경쟁에서 이겼을 때 기뻤는데, 봉사를 해보니 내가 조금 고생하더라도 어떤 사람이 행복할 때, 고마워할 때 저도 행복하더라고요.

그곳에서 ‘평생 이런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꿈이 생겼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대학에 복학하지 않고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길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Q. 그래서 어떤 길을 찾으셨나요?

미국은 기독교 국가여서 사람들이 신앙의 힘으로 치유되고 변화되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래서 선교사가 되려고 기숙형 신학교에 들어갔습니다.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 사람들의 마음을 치료하는 일을 하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신학교에서 지내보니 제 뜻대로 안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잘 적응하며 배우는 것 같은데, 저는 부딪히지 않고 넘어가는 게 없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저라는 사람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얼마나 고집이 세고, 얼마나 남을 의식하면서 사는지를요.

제가 대학을 그만두었을 때, 주변 사람들에게서 “그래도 졸업은 해야지.”, “어렵게 들어간 대학인데 너무 빨리 포기하는 거 아냐?”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대학을 포기하고 택한 길인 만큼 잘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정반대로 흘러갔습니다.

스물여섯 살에 권세준 씨는 스스로 신학교를 나왔다. 그의 친구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하거나 꿈을 향해 달려가는데 혼자만 대학 졸업장도 없이 제자리를 빙빙 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한동안 무얼 해야 할지 몰라 이리저리 헤매기도 하고, 섣부르게 대학을 그만둔 것을 후회하기도 했다면서 기자의 질문에 대답을 이어갔다.

Q. 그 후에는 어떻게 지냈나요?

과외를 하며 생활비를 벌었고, 이따금 답답한 마음을 풀려고 여행을 다녔습니다. 미국도 다시 다녀왔고요. 한 번 더 다녀오니, 남았던 미련을 그곳에 두고 올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지내고 있을 때, 부모님이 아프리카에 있는 에스와티니로 의료봉사를 다녀오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하셨습니다. 의사인 아버지 친구분을 돕기만 하면 된다는 말에 이때 아니면 언제 또 가볼까 싶어서 따라갔습니다.

그곳에서 제가 환자를 직접 돌볼 일은 없었지만, 오랜만에 행복을 느낀 시간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프면 병원에 가는 게 당연하지만, 아프리카 사람들은 평생 병원에 한 번도 못 가본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그래서 의료봉사단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마을 사람들 모두 진료를 받으려고 아침부터 줄을 길게 섰습니다. 치료받는 분들 모두 반창고 하나, 연고 하나에도 너무 고마워했습니다. 괜히 제 마음이 뿌듯하고, 그곳에 있는 것 자체가 힐링이었습니다.

2015년, 에스와티니로 의료봉사를 간 그는 한 학교에서 치과 수업을 진행했다. 수업 때 배운 칫솔질을 시연하는 학생을 보며 대견한 듯 웃고 있다. ⓒ굿뉴스월드

순식간에 2주가 지나고 한국으로 돌아갈 시간이 됐는데, 전 떠나는 게 너무 아쉬워서 한 달을 더 머물며 잠비아, 남아공, 레소토 의료봉사 일정에도 참여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환자를 돌보던 의사 선생님들의 모습이 잊히지 않았습니다. 저도 평생 남을 도울 수 있는 의사가 되고 싶어서, 의대에 진학하고자 수능 공부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Q. 마음을 치료하는 선교사에서 몸을 치료하는 의사로 꿈이 바뀌었네요.

그렇게 말하니 그렇네요(하하). 오랜만에 시작한 공부가 쉽진 않았습니다. 그래도 목표가 생기니까 재밌게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결과는 좋지 못했지만요. 수능을 보고 나오는데 ‘의대 갈 점수는 안 되겠구나’라는 느낌이 왔습니다.

그때 다시 앞으로 뭘 할지 고민했습니다. 제 점수로 갈 수 있는 대학에 진학한다면 어디로 가야 할지 찾기도 하고, 무엇 때문에 대학에 가려고 하는지 이유를 묻기도 하고요. 그중에서 가장 신중히 생각한 건 ‘내가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한지’였습니다. 제가 가장 행복했을 때가 언제였는지를 떠올려보니 답이 나오더군요. ‘누군가를 도와주고, 그 사람이 행복할 때’였습니다. 그래서 그런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렇게 선택한 일이 소방관이었다. 스물아홉의 권세준 씨는 소방관이 되기 위해 다시 공부를 시작했고, 1년 뒤인 2020년 1월에 소방관이 되었다. 10년이란 시간을 기 회비용 삼아 그는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일을 찾았다. 실패하고 방황하면서 찾은 길이기에 그는 일하는 순간순간이 행복하다고 말한다.

Q. 직접 일하면서 느끼는 행복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소방관이 하는 일이 생명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다 보니 위급한 사람들을 구할 때 큰 보람을 느낍니다. 그리고 크진 않지만 소소한 도움이 될 때 느끼는 행복도 많습니다. 제가 근무하는 곳 근처에는 노약자들과 장애인 분들이 많이 살고 계십니다. 휠체어를 타시는 분들의 경우에 바퀴가 바닥에 끼거나, 추운 날씨에 길이 얼어 이동을 못 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런 신고를 받고 출동하면 어렵지 않게 일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분들 입장에선 너무 고마워하시니까 참 행복하더라고요. 최근에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빌라에 사는 분이 외출 후 집으로 가다가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으셨어요. 계단에 앉아 도와줄 사람이 오기를 한참 기다리다가 신고하셨는데, 출동을 해보니 얼마나 오래 기다리셨는지 온몸이 꽁꽁 얼었더라고요. 그분을 집으로 데려다 드리고 건강에 이상이 없는지 확인하고 나오는데, 그분이 고맙고 미안하다며 귤이 가득 든 봉지를 손에 쥐어주셨습니다, 제가 드리는 도움이 별거 아닌데 상대방과 제 마음이 따뜻해지니 일할 맛이 납니다.

Q. 앞으로 어떤 소방관이 되고 싶은지요?

소방관이 된 지 얼마 안된 신입이라서 현재 주어진 일부터 잘 해나가고 싶습니다. 목숨을 걸어야 하는 위험한 일을 맞닥뜨릴 때 아직 긴장을 많이 하거든요. 그럴 때 선배님들이 큰 힘이 됩니다. 누구보다 빠르게 상황을 파악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떤 위험이 있을지 알려주십니다. 선배님들처럼 현장 경험을 많이 쌓아 시민들에게 신뢰를 주는 소방관으로 성장하고 싶습니다. 틈틈이 소방 관련 자격증도 취득해 다양한 분야에서 쓰일 수 있는 소방관이 되고 싶습니다. 언제든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게요.

인터뷰를 마치고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 소방차가 있는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소방차 앞에 선 그를 촬영하기 위해 카메라 셔터를 누르려는 순간, 별안간 사이렌이 울렸다. 화재 출동을 알리는 소리였다. 사무실에 있던 소방관들이 뛰어나와 옷을 갈아입고 출동하는 데 10초가 채 걸리지 않았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죠? 정말 빠르네요.”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생명을 구하기 위해 1분 1초를 다툰다는 소방관의 삶을 눈앞에서 목격한 셈이다.

권세준 씨와 인터뷰하며 그가 10년간 걸어온 길을 빠르게 더듬어보았다. 길을 잃기도 하고, 앞이 보이지 않아 잠시 멈춰 서기도 하고, 부족한 자신을 발견하기도 하고, 모자란 실력에 고개를 떨구기도 했지만, 결국 그는 자신에게 가장 맞는 길을 찾았다. 아픔을 맛본 뒤 찾은 행복의 길이기에 그는 오늘도 뜨거운 마음으로 현장을 달린다.

최지나 기자  41536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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