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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 교사가 사는 법 “선생님이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영어교사 이지은
고은비 기자 | 승인 2020.12.14 17:15

이지은 씨를 만나기 위해 서울 중랑구에 위치한 대안학교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학교 정문을 지나 교무실로 가는 길에 만난 학생들은 처음 보는 기자에게 하나같이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인터뷰가 시작되고, 호기심 가득한 학생들이 교무실 창문으로 고개를 삐죽삐죽 내밀었다. 촬영이 시작되자 “선생님 이뻐요!” 하는 응원 소리가 들렸다. “학생들이 예쁘네요.”라고 하자 이지은 씨는 웃으며 “그래서 제가 여기에 있을 수밖에 없어요.”라고 답했다. 대안학교 교사가 된 것을 후회한 적 없다는 26살의 초보 교사, 어릴 적에 별다른 꿈이 없었던 그가 가슴 벅차게 행복한 일을 하며 사는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이지은
건국대학교 영어교육과를 졸업해 현재 링컨학교의 영어교사로 재직 중이다. 나이는 젊지만 누구를 만나도 학생들 이야기가 자연스레 나올 만큼 학생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교사다.

Q. 인터뷰 약속을 잡을 때 무척 바쁘신 것 같던데요.

네, 코로나19 까닭에 오랫동안 온라인으로 수업하다가 얼마전부터 대면 수업을 시작해 그런 것 같아요. 며칠 동안 떠나는 현장 학습 같은 활동은 못 하는 대신 체육대회, 일일 국토걷기 같은 소규모 활동들을 늘리고 있어요. 그런 일정이 좀 많아서 바쁘긴 하지만 아이들을 다시 볼 수 있어서 정말 좋습니다.

Q. 근무하고 있는 고등학교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우리 학교 이름은 ‘링컨학교’이고요, 서울시 교육청에 소속된 ‘위탁형 대안 교육기관’입니다. 수십 번의 실패에도 도전하고 포용했던 링컨의 신앙, 지도력, 인성을 귀감으로 삼아 지식 위주의 교육에서 벗어나 자신을 발견하고 계발하는 인성 중심의 교육과정으로 인재를 키우는 것이 우리 학교의 목표입니다. 현재 고등학교 1, 2, 3학년 각 15명씩 모두 45명의 학생들이 재학중입니다.

링컨 학교는 학력이 인정되는 인가형 대안학교로 일반 교과목과 우리 학교가 중시하는 가치를 담은 대안 교과를 가르치며, 영어 특성화 학교답게 영어 교육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또한 악기 연주.합창.미술.댄스 등의 예체능 활동, 독서와 시 쓰기, 음악 캠프와 가족 캠프, 국토대장정, 문화체험, 동아리 활동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모든 교육은 올바른 인성 함양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Q. ‘인성 교육 중심’이 구체적으로 어떤 건지 궁금해요. 실제로 근무하면서 대안학교라서 다르다고 느낀 적이 있나요?

먼저 학생들이 체험하는 활동이 많다는 점이 좋았어요. 그리고 학교가, 선생님 한 분 한 분이 학생들을 대하는 마음이 매우 특별하게 느껴졌어요. 작년에 한 학생이 전학을 왔는데, 수업 때마다 경직되어 있는 것 같았어요. 하루는 이 학생이 제 옆자리에 계신 담임 선생님과 상담을 마치고 나가면서 눈물을 흘리는 거예요. 선생님께 여쭈니 이유를 말씀해 주셨어요. 그 학생이 중학생 때까지 운동을 했는데, 가르치는 사범이나 교사에게 혼이 많이 났다고 해요. 특히 무얼 물으면 그것도 모르냐면서 호되게 야단을 맞았대요. 그런데 담임 선생님이 “모르는 게 있으면 언제든지 선생님들께 와서 물어. 선생님들은 항상 두 팔 벌려 기다리고 있어.” 하니까 묻어둔 눈물이 터졌던 거예요.

학교에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잘하는 학생들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학생들도 있어요. 그런데 저를 포함한 모든 선생님들이 부족한 아이일수록 더 많은 애정과 관심을 주는 것 같아요. 학생들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지도하며 부족함을 감싸주는 따뜻한 마음, 그런 사랑이 아이들에게 전해질 때 아이들이 밝아지는 것 같아요.

Q. 아이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 눈이 반짝이네요. 교사에 대한 꿈은 언제부터 키웠나요?

큰 계기가 있지는 않았어요. 중학생 때 친구에게 공부를 가르쳐준 적이 있는데 주변에서 잘 가르친다고 해서 ‘내가 가르치는 데에 소질이 조금 있나 보다’ 했어요. 재미도 있었고요. 교육과 언어에 관심이 있어서 대학을 교육공학과로 진학해 영어교육까지 복수전공했죠.

Q. 일반 학교의 교사도 있는데 일부러 대안학교 교사로 지원하신 건가요?

대학 졸업을 앞두고 대안학교에서 봉사할 기회가 종종 있었어요.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는 학생 서너 명을 가르쳤는데 순수하고 예뻤어요. 시간이 갈수록 아이들과 가까워졌죠. 그 후 사립 중학교로 교생 실습을 나갔는데 분위기가 사뭇 달랐어요. 학교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교과목 위주의 입시 중심 교육 까닭에 교사와 학생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 있는 것 같았어요. ‘임용시험에 합격해도 이렇게 산다면 행복할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무엇보다 대안학교 학생들이 그리웠어요. 오랜 고민 끝에, 대안학교 교사로 지원했습니다.

1학년 학생들과 함께 강화도로 체험활동을 떠났다. 고구마를 캐며 흙과 가까워지는 시간. 아이들은 역시 밖에서 활동할 때 가장 생기가 넘친다.

Q. 학생들과 1:1 지도 상담하는 경우도 많을 것 같습니다. 그럴 때 학생들에게 주로 어떤 이야기를 해주나요?

학생들이다 보니 교우 관계에 대한 고민이 많아요. 서로 부딪히는 일도 많고요. 그런 문제로 힘들어하는 학생들에게 ‘두리안’ 이야기를 해줘요.

“열대 과일 두리안은 냄새가 아주 고약하지만, 한번 맛을 보면 그 맛을 잊지 못한대. 살다 보면 나와 맞는 사람도 있지만 맞지 않는 사람도 만나게 돼. 얼핏 보면 싫고 나와 절대 맞지 않을 것 같아도, 그 사람의 마음을 한 번 두 번 만나면 그때부턴 두리안 냄새 같은 그의 단점이 문제가 되지 않아. 먼저 마음을 열고 친구와 이야기해 봐. 서로 마음을 아는 친구가 많아질수록 네 마음이 쉴 곳이 많이 생길 거야.”

아이들이 제 이야기를 듣고 갈등이 있는 친구에게 말을 걸고, 화해하고, 금방 친해져요. 그런 걸 보면 너무 고마워요. 순수한 아이들의 모습에 제 부족함이 비춰질 때도 많고요. ‘내가 어렸을 때 이런 것을 알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도 해요.

Q. 어린 시절 어떤 학생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어릴 적부터 부모님이 별거하셨어요. 두 분이 나를 사랑하지 않으니까 그런 선택을 했다고 생각했어요. 엄마와 살면서 아빠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았고, 형편이 넉넉하지 못해 화목한 가정에서 부유하게 사는 친구들이 부러웠죠. 그래서인지 저를 지키려는 성향이 강했어요.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열심히 공부했고, 사람들에게 말을 세게 하고 차갑게 대했어요. 내 성격과 맞지 않는 친구에겐 다가가지 않았고, 갈등이 생기면 실패한 관계라고 여겼어요. 자연히 인간관계가 좁아졌죠.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고 열심히 살았지만, 어느 순간 돌아보면 곁에 남은 친구가 없어 쓸쓸했어요. 스스로 잘 살고 있다고 여겼지만 잘 지내지 못했죠. 그런 제 삶에 터닝 포인트가 된 것은 인도에서 1년간 했던 해외봉사였어요.

디마푸르에 있는 조그마한 초등학교로 교육봉사를 갔다. 동요와 댄스를 배우며 세상 가장 행복해하던 아이들. 수줍은 미소로 우리를 신기하게 쳐다보던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Q. 삶의 터닝 포인트가 될 정도라면 인도에서 많은 일들이 있었나 봅니다.

그곳에서, 제가 나름대로 터득한 ‘삶의 법칙들’이 틀렸다는 걸 알았어요. 제가 활동한 지역은 나갈랜드 주였어요. 그곳은 한국의 1960년대 모습 같았어요. 흙으로 된 길에 개, 소, 닭이 지나다니고 아이들은 맨발로 돌아다녔어요. 그런데 사람들의 마음은 참 순수했어요. 누구와도 친구가 되고, 옆 사람의 아픔에 공감하며, 먹을 것이 부족해도 기꺼이 양식을 나누어주었죠. 행복해지려고 자신만을 위해 살던 저였는데, 시간이 지나 돌아보니 놀랍게도 나갈랜드 사람들을 위해 살며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있었어요. 인도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 ‘나에게 이런 미소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활짝 웃고 있어요.

하지만 함께 간 단원들과는 다툼이 좀 있었어요. 그곳에서도 여전히 내 마음에 맞지 않으면 배척했으니까요. 두 명의 동생과 함께 있었는데, 특별한 이유 없이 ‘안 맞는 것 같아서’ ‘날 싫어하는 것 같아서’ 마음을 닫고 지냈어요. 한번은 인도에 큰 행사가 열려 다른 주에서 활동하던 친한 언니를 만나 그런 부분을 털어놓았어요. 그러자 언니가 “그건 아주 간단해. 네가 마음을 열지 않아서 그런 거야.

부담스럽고 싫지만 네가 먼저 다가가서 이야기해 봐. 분명 달라질 거야.”라고 말했어요. 언니 말을 듣고 돌이켜보니, 자격지심이나 오해로 먼저 마음을 닫고 다가오는 동생들에게 상처를 준 내 모습이 보였어요. 행사로 무척 바빴지만 용기를 내어 두 사람에게 내 잘못이라고 사과했어요. 그랬더니 동생들이 울면서 어려웠던 점을 이야기하고 너무 고마워하는 거예요. 함께 펑펑 울며 한참을 이야기했어요. 그때 한 동생이 “우리, 꼭 두리안 같다!” 했어요. 참 신기한 경험이었어요. ‘나는 우리 관계가 실패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가까워질 수 있구나’ 하고요.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마음이 흐르는 것이 그렇게 기쁜 일이라는 걸 처음 느낀 거죠.

Q. 1년 뒤 한국으로 돌아와 삶이 어떻게 변했나요?

부모님과 속마음을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어요. 엄마는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차분히 이야기해 주셨고, 아빠는 가정을 지키지 못한 것이 본인의 책임이라며 “너에게 미안했어. 늘 너를 지지하며 네 길을 응원하고 싶다.

아빠는 우리 딸 팬fan이야.”라고 하셨죠. 오랫동안 두 분을 오해하며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잠시 ‘이런 사실을 조금만 빨리 알았더라면…’ 생각도 했지만, 이제라도 마음을 확인할 수 있어서 행복했어요. 그 후 대안학교에서 봉사활동을 시작했고 그 일을 계기로 이곳에서 일하게 되었으니 그것도 큰 변화인 것 같아요.

그때 대안학교가 좋았던 이유도 학생들과 대화하며 마음을 주고받는 게 너무 즐거웠던 것 같아요.

Q.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한 후 느낀 ‘소통의 즐거움’에 대한 이야기도 궁금하네요.

학교에 처음 왔을 때 선생님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어요. 제 첫인상이 딱딱하고 차가워서 선생님들도 저에게 선뜻 다가오지 못했다고 해요. 그런데 제가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어려움이 있으면 선생님들에게 찾아가 “이런 부분을 잘 몰라서 실수했어요.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고 묻자 저를 반겨주셨어요. 나중에는 선생님들과 작은 고민도 나누는 사이가 되었어요.

제 가장 큰 고민은, ‘학생들이 내 말투에 상처를 받지 않을까’였어요. 습관이 된 강한 말투가 가장 고치고 싶은 단점이었거든요. 고민 끝에 ‘내 약점을 인정하고 학생들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자’고 결론을 내렸어요.

“선생님은 말투가 강해서 의도와 달리 너희들이 상처를 받을까봐 매일 고민이 많아. 혹 상처를 받았다면 선생님이 너무 미안해.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너희들이 잘못한 것은 야단칠 거야. 그건 너희가 꼭 알아야 하고, 알아두면 유익하기 때문에 이야기하는 거야. 절대 너희가 밉고 싫어서가 아니야.”

학생들에게 제가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학생들을 향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자주 이야기했어요. 그러자 가끔 아이들을 따끔하게 야단쳐도 언제 그랬냐는 듯 다가와 재잘재잘 사랑스럽게 이야기해 주는데, 참 고마워요.

Q. 앞으로 어떤 교사로 성장하고 싶나요?

대단한 건 아니지만, 매일 아침 제 모난 말투 때문에 아이들이 상처받지 않고 저와 자유롭게 대화하길 바라면서 일기를 써요. 그리고 제 카카오톡 프로필에 제가 좋아하는 책의 한 문장을 찍어서 올려놓은 적이 있는데, 이런 내용이에요. “삶 속에서 행복을 느끼는 것보다 더 귀한 것이 없다. 교사들이 가장 행복할 때는 학교에서 가르치는 학생들의 눈이 반짝반짝 빛날 때이고, 자신에게 배운 학생들이 어려워하는 공부를 잘하게 될 때이다.” 이 내용이 100% 공감이 되었어요. 아이들이 저에게 다가와 모르는 것을 묻고 제가 가르쳐줄 때 아이들이 정말 사랑스럽고, 저도 참 행복해요. 이제 2년차 교사라 모르는 것도 많고 부족하지만, 아이들이 언제나 다가와 모르는 것을 묻고 어려움도 함께 나눌 수 있기를 바라고 있어요.

영어교사 이지은 씨는 사람들과 마음이 흐를 때 행복한 것 같았다. 인터뷰를 마치고 보니, 오랜 세월 두꺼운 옷으로 자신의 모습을 가리던 그가 그 옷을 벗고 얇은 옷으로 갈아입은 듯 홀가분해 보였다. 함께하는 기쁨을 느끼며, 자신이 찾은 행복의 비밀을 학생들에게 가르쳐주며 사는 그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고은비 기자  press49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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