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이후 우리 삶에 많은 변화가 생겼고, 예상치 못했던 ‘처음’을 맞아야 했다. 김정윤 씨 또한 코로나로 사업이 어려워져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올해부터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전주시 곳곳을 다니며 견과류 제품을 소개하고 거래처를 확보해 물건을 납품하는 일이다. 낯선 일을 한다는 것이 어색하고 불안할 텐데, 그는 어디를 가든지 ‘우리 제품을 알아보는 사람이 반드시 있다’는 믿음으로 사람을 만나며 즐겁게 일한다. 업종 전환 두 달 만에 고정 거래처 150군데를 확보했다는데, 그에게 어떤 특별함이 있는 걸까?

혼자서 많은 거래처를 관리하려면 무척 바쁠 것 같습니다.

월요일이 가장 바쁩니다. 한 주 동안 쓸 물건을 미리 파악해서 주문하고, 거래처를 다니며 납품해야 하거든요. 모든 거래처를 하루 만에 다 가지 못하기 때문에 화요일이나 수요일까지 합니다. 동시에 새로운 거래처 영업도 하고요. 그러다 보니 밤늦게까지 일할 때가 많아요. 아내는 저를 보고 안쓰럽다고 해요(웃음). 물론 몸은 힘들지만 거래처가 한 곳 한 곳 늘어나는 게 신기하고 감사할 따름이에요.

올해 1월부터 이 일을 시작했다고요.

몇 년 전부터 제가 하던 일은 ‘특별 판매’라고, 지하상가나 빈 가게에서 자릿세를 내고 며칠간 견과류를 대량으로 판매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19가 발생한 이후 수입이 점점 줄어들었어요. 그때 저보다 먼저 그 사업을 시작한 선배님과 함께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견과류 외 다른 상품들도 팔아보며 애를 썼지요. 하지만 작년 12월에 3차 코로나 대유행이 시작되면서 더 이상 버틸 수 없었습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올해부터 판매 방식을 바꾸기 시작했죠. 솔직히 처음에는 이 방식이 통할 거라는 자신이 없었습니다. ‘의류사업을 하다 실패한 적이 있는데 이번 일도 결국 망하는 건 아닐까?’ 아이가 둘에 제가 사업을 준비하면서 진 빚이 있기에 걱정이 더 컸어요. 이번에는 실패하면 안 된다는 압박감도 있었고요.

지금은 그때와 많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이러다 실패하면 어떻게 하지?’라는 걱정이 앞섰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오늘은 어떤 분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기대도 하고, ‘어떻게 하면 좀 더 좋은 제품을 준비할 수 있을까?’ ‘고객들에게 어떤 제품이 필요할까?’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까?’ 등을 고민해요.

변화의 계기가 궁금합니다.

같은 상황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진 것이 그 시작이었습니다. 사업을 앞두고 마음이 무척 답답했을 때 저를 잘 아시는 목사님을 찾아간 적이 있어요. 제가 하는 모든 말은 “이것 때문에 안 될 것 같아요” “저런 것 때문에 힘들어요”로 끝이 났습니다. 그런데 제 이야기를 들으신 목사님은 이런 말씀을 해주셨어요.

“강물처럼 마음에도 흐르는 길이 있어. 네가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절망이 될 수도 있고, 소망이 될 수도 있어. 거절당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한 곳 한 곳 문을 두드려 봐. 하루 종일 일해서 거래처 한 곳을 얻어도 ‘하나님이 한 곳만 얻게 하셨네. 한 곳만 해도 정말 감사하다’라고 말할 수 있어. 소망을 품고 살아봐. 이삭을 줍는 마음으로 일을 해나가다 보면 언젠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마음껏 후원하는 사람이 될 거야.”

돌아오는 길에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후원하는 사람이 된다고…?’ 처음에는 내가 볼 때는 실망하고 걱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저렇게도 바라볼 수 있다는 게 신기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동안 매일 걱정 속에서 살았는데 한번 그렇게 살아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날 안양에 사는 선배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어요. 전주에 와서 며칠 같이 일해 주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선배님과 전주 곳곳을 다니며 이틀 동안 14곳의 거래처가 연결되었습니다. 정말 놀랐고, 감사했어요. ‘이 코로나 시기에 누가 우리 제품을 사겠어? 안 될 거야’라는 생각이 정말 잘못된 것이었죠. 제가 절망적인 면만 보며 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바꾸었어요. 그 다음 주부터는 혼자서 본격적으로 거래처를 구하러 다녔습니다.

결과는 어땠나요?

장사가 그렇듯, 일이 잘 풀리는 날도 있고 잘 풀리지 않는 날도 있었습니다. 같은 날이라도 제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곳이 있고, 잡상인 취급하며 화를 내는 곳도 있었지요. 일이 잘 될 때는 좋지만, 거절당하면 금세 풀이 죽고 자신감이 없어졌습니다. 연속해서 거절당하거나 무시라도 당할 때면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죠. 그런데 그럴 때면 선배한테서 전화가 왔어요. 처음에는 ‘바빠 죽겠는데 왜 전화를 하는 거지?’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제가 또 실망하고 있을까봐 전화한 것이었습니다.

“장사라는 게 원래 하루도 같은 그림이 없잖아. 그런데 지금 안 된다고 끝이 아니야. 혼자 있으면 상황에 따라 마음이 흔들리기 쉬워. 나도 그래. 그래서 자주 통화하고 이야기하는 게 좋더라. 늘 변하는 상황을 바라보며 일희일비하지 말고 담대하게 일하자.”

그 말이 큰 힘이 됐어요. ‘선배는 이렇게 일하는구나. 나는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을 보고 어려워했는데 이번에는 이 말을 들어야겠다’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더 이상 주저할 수도 없고, 물러날 곳도 없었으니까요. 그때부터 담대하게 일을 했습니다. 지금은 누가 무시하거나 거절당해도 툭툭 털고 나와요. 그리고 ‘내 물건을 사주는 사람이 반드시 있을 거야’라고 믿고 다시 다른 곳을 찾아갑니다.

그렇게 두 달간 150개의 거래처를 확보한 거군요.

정말 신기했어요. 새로운 방식으로 일을 시작한 지 두 달이 지나 150개의 거래처를 뚫었다는 사실이 뿌듯하고 무척 기뻤지요. 그런데 다음날 새로운 거래처를 확보하기 위해 하루 종일 돌아다녔는데 모든 곳에서 거절을 당했습니다. 원래 저라면 그런 상황에서 힘들어하고 슬퍼해야 하는데, 그날은 이상하게 차분히 생각을 정리했어요. ‘그렇지, 원래 이렇게 하루 종일 돌아다녀도 아무도 거래하지 않을 수 있는 일이었지.’ 그렇게 생각하니까 우리 제품을 받아준 거래처 한 곳 한 곳이 정말 소중한 곳으로 여겨졌어요. 그때부터는 수십 곳을 다녀서 한 곳의 거래처를 얻어도 ‘한 곳밖에 못 했네’가 아니라 ‘한 곳도 참 감사하다’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목사님이 제게 이야기해주신 길을 걷기 시작한 거예요. 나중에 그날 일을 목사님께 말씀드리자 “그래, 그렇게 하면 돼. 잘 되겠다.” 하고 기뻐하셨습니다.

두 달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많은 걸 배운 것 같습니다.

요즘 저는 장사도 장사지만 인생을 배우는 중입니다(웃음). 늘 잘하려고, 잘 살려고만 했지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지는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었어요. 돌아보면 저는 늘 ‘나는 왜 이런 게 부족하지?’ ‘아이들은 왜 이렇게밖에 못하지?’ 하면서 쉽게 실망하고 절망했습니다. 제가 생각하고 기다려온 행복의 기준에 맞지 않았으니까요.

그런데 지난 두 달 동안 장사를 하면서 제 삶에 감사한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못난 아빠인데 아이들이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자라주는 것이 감사하다.’ ‘일이 힘들긴 하지만 내가 돈을 벌 수 있어서 감사하다.’ ‘내가 어떤 일을 해도 끝까지 나를 믿어주고 곁에서 응원해주는 아내가 참 고맙다.’ 달라진 게 없는 똑같은 환경에서 전혀 다른 마음으로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물론, 아내와 아이들도 더 행복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사랑스러운 두 아이와, 내게 큰 힘이 되어주는 아내.
사랑스러운 두 아이와, 내게 큰 힘이 되어주는 아내.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우선, 거래처를 1천 곳이 넘게 확보하고 싶습니다. 아직은 사업의 시작 단계이기때문에 자본금도 더 필요하고 또 빌린 돈을 갚기도 해야 하지만, 저는 확신합니다. 머지않아 어려운 주변 분들을 위해 한 달에 몇 백만 원씩 돕고 후원할 수 있게되리라는 사실을요. 지금의 저를 보면 김칫국부터 마신다고들 하겠지요(웃음).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보니, 코로나 때문에 고통 받는 분들이 정말 많더라고요. 그런 분들을 만나면 가끔 저에게 일어났던 변화들을 이야기합니다. 지금 이 시기가 많은 분들이 저처럼 어쩔 수 없이 새롭게 시작하거나 변화해야 하는 순간이잖아요. 구체적인 방법은 아직 모르지만 그분들에게도 마음에 소망과 힘을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뷰 말미에 그와 ‘처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처음 해외봉사를 갔을 때 행복했던 순간, 첫 직장에 갔을 때의 설렘, 첫 사업이 실패했을 때의 좌절, 결혼해서 아빠가 되었을 때의 심정과 실수담을 들려주었다. 중간에 무엇인가 생각났는지, 인터뷰에 이런 말을 전하고 싶다며 쑥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돌아보면 학교에 들어갈 때도, 직장에 들어갈 때도, 결혼해서 아빠가 될 때도… 저는 늘 처음이었어요. 우리는 누구나 오늘 인생을 처음 살아가는 ‘초보’잖아요. 그래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 방황하기도 하고, 낙심하기도 하지요. 그런데 주변에 조금만 귀를 기울이고 배우면 행복하게 사는 법을 배울 수 있는 것 같아요. 운전을 배우고 일을 배우듯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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