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에 입학한 뒤 대학교 1학년 때까지, 나의 지난 시간은 기나긴 밤과 같았다. 어릴 적부터 소심하고 행동이 느렸던 나는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했다. 느린 내가 싫었다. 그럴 때마다 내게 가장 큰 위로가 되었던 분은 부모님이었다. 엄마는 몸이 불편했지만 막내딸인 나를 무척 사랑하셨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나는 엄마와 나란히 걸어가다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지면 잠시 엄마와 떨어져 걸었다. 엄마에게 너무 미안했다. ‘나를 가장 사랑하시는 부모님에게 내가 상처를 주다니….’ 스스로를 자책했고, 미워했다. 그때부터 나는 누구에게도 내 마음을 이야기할 수 없었고, 더욱 고립되었다.

그렇게 지내던 중 아는 이모의 초대로 1년 동안 해외봉사활동을 하고 돌아온 대학생들이 준비한 귀국발표회 공연을 볼 기회가 있었다. 공연을 보는 내내 그들의 행복한 미소가 잊히지 않았다. 나도 행복해지고 싶다는 생각에 무작정 해외봉사단에 지원했다. 내가 지원한 나라는 태국이었다.

태국에 도착하던 날, 공항에서 봉사단의 태국 지부장님과 태국 사람들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나는 정말 봉사활동 열심히 하고, 태국어도 열심히 배우면서 행복하게 살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나의 다짐과 실제 생활은 달랐다. 처음 접하는 태국어는 생각보다 너무 어려웠다. 무엇보다 매일 사람들을 만나 우리가 하는 행사를 홍보해야 했는데, 늘 혼자 생각하며 사는 게 익숙한 나에겐 버겁기만 했다.

이런 내 속사정을 태국 사람들에게도, 함께 간 동료 단원들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이야기할 생각을 못 했다.

한번은 콜롬비아에서 온 봉사단원과 ‘왕짜오’와 ‘치앙마이’라는 지방에 갈 기회가 생겼다. 사이가 제일 좋지 않은 콜롬비아 친구와 단 둘이서 지방에 다녀와야 한다는 생각에 걱정이 앞섰다. 그런데 왕짜오로 떠난 첫날, 내 걱정은 눈 녹듯 사라졌다. 그곳에서 우리는 함께 나무와 꽃을 심으며 행복한 추억을 쌓았고, 태국 현지인 집에서 홈스테이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무엇보다 하루 종일 함께 다니며 그 친구와 서로의 속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그러면서 우리는 무척 가까워졌다.

콜롬비아 친구와 왕짜오에서 즐거운 추억을 쌓았다.
콜롬비아 친구와 왕짜오에서 즐거운 추억을 쌓았다.

그때 처음으로 ‘서로 마음이 흐른다는 것, 대화한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느낄 수 있었다. 그때부터 나는 태국 사람들에게도 내 이야기를 곧잘 했다. 내 태국어 실력이 부족하면 콜롬비아 단원이 도와주어 나는 많은 태국 사람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사람들은 내가 태국어를 잘하든 못하든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었고 친구가 되어 주었다. 난 늘 내 못난 모습 때문에 고립되어 지냈는데 그곳에서 가장 자유로웠고, 행복했다.

우리는 두 번째 목적지인 치앙마이로 떠났다. 전에는 억지로 했지만 그땐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더 이상 싫지 않았다. 치앙마이에 있으면서는 한국 지부장님과 틈만 나면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국어로 말할 수 있으니 무슨 말이든 할 수 있어서 더 좋았다. 그때 누구에게도 한 적 없던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를 용기를 내어 꺼냈다. 지부장님은 이렇게 이야기해주셨다.

“세라야, 사람들이 너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보다 네 마음이 그 문제에 매이느냐 매이지 않느냐가 더 중요해. 그리고 삶 속에는 깜깜한 밤도 있지만 밝은 아침도 있어. 지금은 네 마음에 어려움이 있지만 밝은 빛이 들어오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아.”

신기하게도, 그 이야기를 듣자 내 마음속에 늘 자리 잡고 있던 미움과 원망과 후회가 사라졌다. 내 삶에는 어두운 밤만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밝은 아침도 있다는 말이 내게 큰 울림이 되었다.

태국에서의 생활은 늘 나의 생각과 달랐다. 하지만 그 덕분에 나는 ‘나도 사람들과 어울리며 행복할 수 있다’는 걸 배웠다. 그리고 ‘삶에 밤도 있지만 아침도 온다’는 걸 알았다. 집에 돌아가면 가장 먼저 부모님에게 내 마음을 모두 표현하고 싶다. 미안했던 이야기, 사랑한다는 이야기, 보고 싶었다는 이야기…. 그리고 태국에서 행복했던 순간들 모두 이야기하고 싶다.

글 정세라 (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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