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진 순경

우연히 ‘쓰러진 시민 살린 39세 늦깎이 순경’이라는 기사를 읽었다. 위급한 상황에서 시민의 생명을 구한 김혜진 순경의 발 빠른 대처 그리고 ‘반전 이력’이라는 말에 성큼 눈이 갔다. 4~5년간 직장 업무와 육아, 경찰 시험공부를 병행했고 더군다나 어린 시절 포기했던 꿈에 재도전해 37세 때 경찰에 입직한 이력이 그러했다. 꿈이 주는 그 간절한 마음에 충실하지 않았더라면, 주어진 삶을 부지런히 겹으로 살아내지 않았더라면 불가능했을 일이었다. 치열한 그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었다.

울산남부경찰서 교통안전계로 연락을 했더니, 김혜진 순경은 며칠 기다려달라고 했다. 당시 태풍 ‘카눈’이 올라오고 있는 상황이라서 비상근무를 완수하고서야 편하게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시민의 안전을 위해 항상 긴장하며 대기하는 업무이지만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날 줄 몰랐다.

제복은 어렸을 적 선망의 대상이었다. 제복을 입은 후부터 경찰의 의미가 좀 더 묵직하게 다가왔다. 오늘 하루도 시민의 안전 지킴이로서 부단히 노력하며 최선을 다한다. 사진제공 김혜진
제복은 어렸을 적 선망의 대상이었다. 제복을 입은 후부터 경찰의 의미가 좀 더 묵직하게 다가왔다. 오늘 하루도 시민의 안전 지킴이로서 부단히 노력하며 최선을 다한다. 사진제공 김혜진

신입 경찰로서는 뒤늦게 순경이 되셨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경찰이 되는 걸 꿈꿨습니다. 일단 제복을 입은 모습이 멋있었고요.(웃음)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안전을 유지하는 경찰의 업무에 큰 관심이 있었습니다. 남편에게 ‘오지라퍼’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사람들 일에 관심이 많고 나서서 돕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어르신들이 술 취해서 길거리에서 싸울 때도 모른 체하지 않고 달려가 말리곤 했죠. 시민을 돕는 경찰을 그래서 하고 싶었나 봐요.

20대 초반부터 본격적으로 경찰 시험을 준비하려고 했지만 일찍 결혼하면서 출산과 육아로 바쁜 나날을 보냈습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한 후, 생계에 보탬이 되고자 4년간 간호조무사로 일했어요. 하지만 경찰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쉽게 접을 수 없었습니다. 한참 TV나 여러 매체에서 경찰과 군인 관련 프로그램이 많이 나오던 때였습니다. 30대 후반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을 이루어보자는 강한 결심이 섰습니다. 4~5년간 시험을 준비한 끝에 37세의 나이로 울산 남부경찰서로 입직하게 됐습니다.

시험을 준비하면서 간호조무사 업무와 육아를 병행했다고요?

당시 우리 부부가 모두 공부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파트 타임으로 간호조무사를 하며 틈틈이 경찰 시험을 준비했습니다. 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시험 공부를 시작했는데 아직 엄마의 손길이 필요할 나이라 많이 챙겨 주지 못하는 점이 힘들기도 했습니다. 저는 항상 생각해요. ‘나 혼자 공부한 게 아니다. 아이들이 함께 해주었다.’고 말이에요. 아이들은 공부하는 엄마 옆에서 책을 보고, 때로는 곁으로 와 잠들기도 했어요. 측은하면서도 고마웠죠. 한편으로는 제가 공부하고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좋다고 여겼어요. 경찰 시험 마지막 관문인 면접에서 면접관님께 그 말을 했어요. “저는 공부하면서 아이들에게 미안하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하니까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것을 몸으로 보여준 것 같습니다.” 그게 제 마음이에요. 함께 수고해 준 가족에게 정말 고마워요.

가족과 함께. 자신과 비슷한 슬로 스타터 남편은 든든한 지원군이다. 어느새 사춘기가 된 딸들은 여전히 엄마를 자랑스러워한다. 사진제공 김혜진
가족과 함께. 자신과 비슷한 슬로 스타터 남편은 든든한 지원군이다. 어느새 사춘기가 된 딸들은 여전히 엄마를 자랑스러워한다. 사진제공 김혜진

가족들이 많이 응원해 주셨나요?

남편은 저처럼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다가 결혼으로 잠시 접어두고 가장 역할을 했죠. 나중에 다시 공부해 36살에 공무원이 되었어요. 우리 부부가 취업에 늦깎이인 셈이죠. 좀 더 일찍 공부를 시작한 남편이 공통 과목 공부법을 제게 가르쳐줬어요. 어떤 일을 오래 끌면 ‘포기하는 것도 용기’라며 말리는 경우가 있는데 남편은 “네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이니 한번 더 해봐라.”, 시험에 떨어져도 “다음엔 될 것 같은데, 한번 더 해봐.”라며 늘 용기를 줬어요. 아이들은 제 책상에 응원의 쪽지를 올려놓고 학교에 가곤 했어요. 고사리 손으로 쓴 글을 읽고 많이 울었네요. 공부하는 엄마의 수고를 덜어주려고 알아서 자기 일들을 잘 해내는 아이들이 얼마나 기특했는지 몰라요. 가족은 같이 꿈을 꾸고 같이 꿈을 이루는 존재예요. 경찰이 저만의 꿈이라고 생각했는데 최종 합격하고 보니까 가족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어요.

불합격의 고배를 마신 적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필기와 체력시험을 통과하고 마지막 면접시험까지 치뤘는데 최종 불합격 통보를 받았어요. 당시 3년 정도 공부하고 필기에 처음 합격한 거라서 좌절감이 컸어요. 순간 모든 걸 포기하고 싶더라고요. 아이들 교육, 경제적인 문제를 보고 있자니 내 꿈을 위해서 이런 고생을 감수해야 하나 싶었죠. 하지만 꿈을 접었을 때의 안타까움, 상실감을 너무나 절실히 느껴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다시는 그 감정을 되풀이하기 싫었어요. 가족에게 양해를 구하고 더 도전하기로 했고, 고맙게도 가족들은 절 응원하며 도와줬고요. ‘한때 불가능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결국에 가능한 것이 된다’, ‘힘들어도 결국 나는 된다’는 마음으로 임했고 그 후에 시험을 통과했습니다.

드디어 경찰이 되셨어요. 감회가 어떠세요?

간절하게 기다렸던 일이라 하루하루 행복하고 감사하게 지내고 있어요. 저는 현재 교통 관련 지원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행사나 집회가 있을 시 해당 장소의 교통을 정리하고 안전을 관리합니다. 집회가 있는 주말에도 현장에 나가야 할 때가 있어 바쁘기도 하지만 시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일이에요. 힘든 일이 있어도 즐겁게 하고 있습니다. 꿈을 이루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어요. 하지만 아무런 어려움 없이 쉽게 경찰이 됐다면 현재의 기쁨과 보람을 이토록 크게 느끼지 못했을 거예요.

김혜진 순경이 쓰러진 시민을 살린 일이 신문기사에 실렸다. 앞으로도 시민을 돕는 친근한 경찰이 되고 싶다고. 사진제공 머니투데이
김혜진 순경이 쓰러진 시민을 살린 일이 신문기사에 실렸다. 앞으로도 시민을 돕는 친근한 경찰이 되고 싶다고. 사진제공 머니투데이

쓰러진 시민을 살린 일이 기사에 나왔습니다. 당시 어떤 상황이었나요?

출근길에 도로 위로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었어요. 위급한 상황이 벌어진 것을 직감했죠. 가까이 가 보니 한 여성분이 쓰러져 있었고 의식이 없는 상태였어요. 바로 심폐소생술을 실시했고 곧 의식이 돌아왔습니다. 마침 도착한 구급차에 인계했고 여성분은 병원 치료 후 귀가할 수 있었습니다. 경찰직을 수행하면 이런 위급한 상황이나 혹은 위험한 사람과 맞닥뜨릴 때가 있어요. 물론 저도 사람인지라 두려운 생각이 들 때가 있지만 그 전에 몸이 먼저 반응할 때가 많아요. 시민의 안전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명감이 제 몸을 먼저 움직여요.

사람을 도울 때 행복을 느끼는 직업이네요.

그게 제가 경찰이 된 이유입니다. 경찰로서 집행해야 하는 업무는 엄격하게 수행해야겠지만 기본적으로 시민들이 언제든 도움을 요청할 수 있고, 저는 거기에 성심껏 답하고 싶어요. 아무래도 제 업무가 안전과 관련해 통제할 때가 많다 보니 가끔 항의를 받을 때가 있어요. 하지만 우리는 시민과 소통하고 상생해야 하는 입장입니다. 그럴수록 한 번 더 인사를 드려요. 그분들도 “괜찮다. 고생 많으시다.”며 말씀 한 마디를 해주세요. 음주단속을 나갈 때도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라고 시민들이 격려도 해주시고 어떤 운전자는 더운 데 땀 닦으시라고 물티슈도 건네주세요. 열 번 힘들어도 그 한 번에 힘을 얻는 것 같아요.

간혹 시민들이 민원 처리가 빨리 되지 않는다고 답답해 할 때가 있어요. 크든 작든 어떤 일을 시행하기 위해서는 많은 단계가 필요하고 협업하는 부분도 있기 때문에 시간이 소요될 수 있어요. 저희가 민원 해결을 위해, 시민의 안전을 위해 오늘 하루도 최선을 다한다는 걸 기억해 주셨으면 해요.

접어 두었던 꿈을 펼치는 늦깎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요?

꿈을 향해 목표를 설정하지만, 나이가 있는 상태에서 무엇을 시작하려고 하면 여러 제약이 보여요. 하지만 꼭 해야 하고 이거 아니면 안 되겠다는 간절한 마음가짐으로 나가다 보면 결국 꿈을 이룰 거예요. 목표를 한 번 이루면 그 다음 목표에 대해서 ‘내가 그것도 했는데 이것도 못 하겠나?’ 하는 마음가짐이 생겨요. 계속해서 전진해 나갈 수 있어요. 한 번 목표를 달성함으로 인해서 삶이 달라질 거예요.

그는 자녀에게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아서 인터뷰에 응했다고 했다. 두 아이가 건강하고 인성이 바르게 자랐으면 한다. 공부를 강조하지 않는 것은 하고 싶은 의지만 있다면 어떤 일이든 다 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라고. 굳이 말로 교훈을 주거나 설득하지 않아도 몸소 보여준 꿈의 도전은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교육이다. 갖은 이유로 자신을 합리화하며 일상에 주저앉아 버린 사람에게도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거울이 된다. ‘한때 불가능이라고 생각한 것이 결국엔 가능한 일’은 그에게만 해당되지 않을 터. 이젠 도전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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