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나라소개 제2편] 루마니아

강준길 특파원

 

여러분은 ‘루마니아’ 하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혹시 구 동유럽의 공산국가, 드라큘라의 전설이 시작된 나라, 체조 선수 나디아 코마네치의 나라가 생각나지 않나요? 저는 10년 전, 루마니아에 처음 왔을 때 이런 이미지가 떠올랐습니다.

제가 유럽의 많은 나라를 방문해 보았지만 루마니아만큼 아름다운 자연을 가진 나라는 드물었어요. 자동차를 타고 산을 올라가 양치기들과 한가롭게 풀을 뜯는 양떼들, 들판에 뛰어노는 말들, 소 떼와 염소 떼를 보고 있노라면 마치 고대로 돌아간 것 같은 착각을 느낍니다.

산 곳곳마다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병풍처럼 펼쳐져있는 고성古城과 중세 때 조성된 유럽풍의 건물들을 바라보면 마치 귀족과 백작들이 문을 열고 나올 것만 같습니다. 그 중에서도 도시 브란에 있는 브란 성은 드라큘라의 전설이 시작된 곳으로, 많은 사람들이 브란 성을 방문해 유명해졌습니다. 전설과 달리 실제 성 주인은 가시공 블라드인데, 그는 오스만제국으로부터 루마니아를 지킨 영웅이었습니다. 하지만 백성들에게는 폭군으로 인식됐습니다. 그래서 소설 드라큘라의 실제 모델이 되기도 했습니다.

루마니아 유명 관광 도시인 ‘시나이아’에는 루마니아 초대왕 카를 1세가 지은 펠레슈Peles 성이 있습니다. 루마니아의 독립을 쟁취한 백성들의 환희와 소망을 담은 작품입니다. 유럽에 있는 많은 성 중에서, 펠레슈 성 내부에 있는 목제 조각품 하나하나에는 정교함과 예술적 아름다움이 표현되어 묻어있습니다.

독일에서 물줄기가 시작된 도나우 강은 루마니아에서 강줄기가 끝납니다. 유유히 흐르는 도나우 강은 마치 불안정한 이 땅을 묵묵히 지켜온 온화한 어머니의 모습 같습니다. 루마니아의 동쪽에는 흑해가 펼쳐져 있습니다. 그래서 여름이 되면 동쪽 해변에 끝없이 펼쳐진 해수욕장에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와서 여름의 더위를 즐깁니다. 루마니아는 강과 산, 바다의 아름다운 자연이 있어서 한번쯤 방문해도 좋은 나라입니다.

 

공산정권에서 자본주의 사회로 변모하다

로마의 라틴어 표기인 ‘로마누스’에서 유래된 루마니아. 국민들은 로마의 라틴어에 기반한 루마니아어를 사용합니다. 로마시민의 후예라는 사실과 동방정교의 종교를 지켜왔다는 데 대한 자부심이 큰 루마니아 시민들은 2차 세계대전 이후 30년간 독재자 차우스셰쿠의 공산정권의 통치를 받았었습니다. 1989년에야 루마니아는 비로소 자본주의 사회로 회귀했습니다.

오늘날 공원에서 시집을 읽고 있는 할머니들, 공원에서 뛰어노는 시민들, 소득 수준은 낮지만 문화 수준이 높은 사람들을 쉽게 만나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사회체제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청소년들이 반항과 갈등 속에서 갑작스러운 자유를 어떻게 사용할지 몰라 방탕하게 흘러가기도 합니다. 지금 루마니아에는 굿뉴스코의 건강한 정신과 마인드가 진정으로 필요합니다.

 

순수하고 정이 많아 친절히 말을 걸어오는 사람들
천민정 특파원

옛 추억 속에서 시간이 멈춘 듯한 나라

루마니아! 전 루마니아가 참 좋습니다. 이름만 들어도 집과 같이 편안할 정도로 루마니아는 어느새 나에게 고향과 같은 곳이 되었습니다. 사람들도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계절에, 루마니아만의 깊은 풍미를 느낄 수 있는 음식, 복잡한 도로와 회색빛 아파트마저도 아주 친근하게 느껴집니다. 매일같이 울려대는 응급차의 사이렌 소리(사고가 나지 않았는데도 교통 체증에 먼저 가려고 울림)도 이젠 하루라도 들리지 않으면 오히려 무슨 일이 있나 싶을 정도예요.

10년 전 처음 루마니아에 왔을 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길거리에 빵을 사기 위해 사람들이 길게 줄지어 서 있는 모습입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불편해 하거나 짜증을 내지 않고 당연하다는 듯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공산주의 사회의 영향으로 사람들은 습관처럼 줄을 서는 것이었습니다. 한국에서 상상할 수 없는 관공서 공무원들의 불친절한 태도와 느린 서비스 시스템에 얼마나 당황스러웠는지 몰라요. 일이 처리될 때까지 한두 시간이라도 서서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한국의 빠르고 친절한 서비스에 길들여진 저에겐 굉장한 문화충격이었습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이런 문화 덕분에 저는 기다리는 법을 배웠고, 조급하게만 살아왔던 삶에서 벗어나 루마니아에서만 느낄 수 있는 삶의 여유를 가지게 됐어요. 물론, 유럽연합에 가입한 지금은 빠른 속도로 사회가 발전해가고 있습니다.

가난 속에서 형성된 소박하고 순수한 민족성

루마니아 사람들은 낙천적이고 순수합니다. 결혼을 한 남성들은 아주 가정적이고 저녁시간이나 주말에는 항상 가족과 시간을 보냅니다. 공원에는 가족 단위로 여가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정이 많아서 시장에 들르면 모든 사람들이 친절히 말을 걸어와 미소를 짓습니다. 길을 물어보면 옆에 있던 사람들도 귀기울여주며 길을 가르쳐주거나 목적지까지 안내해주기도 합니다. 반면 이전 공산주의 사회의 영향으로 발생한 여러 사회 문제와 낮은 임금으로 인해 대학을 졸업한 청년들은 서유럽으로 진출하려는 경향이 큽니다. 또한 최근 이혼율이 증가해 가정 문제로 상처 받고 방황하는 청소년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런 청소년들이 다른 사람들과 교류하며 자유롭게 속마음을 표현하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이 필요한 실정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행정용 건물인 인민궁전
세계에서 가장 큰 행정용 건물인 인민궁전

‘부쿠레슈티’에서 찾은 밝은 빛
유소율(굿뉴스코 12기)

 

내 별명은 베베

루마니아의 수도 부쿠레슈티의 별명은 ‘동유럽의 파리’이다. 멋진 광장과 시원하게 뻗은 시가지, 세계에서 가장 큰 행정용 건물인 ‘인민궁전’ 등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택가로 들어서면 칠이 벗겨진 잿빛 아파트가 많고, 그 아파트 틈새에서 쓰레기를 줍는 집시들이 있다.

현지인 친구들과 부쿠레슈티의 중심가인 우니리를 걸을 때마다 친구들은 ‘소율이’가 사라졌다며 나를 찾아 헤맸다. 루마니아 사람들의 큰 덩치에 가려져서 작은 내가 잘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린 친구들은 내가 언니인데도 불구하고, 귀엽다며 항상 베베(아기)라 불렀다. 하지만 베베라는 호칭으로 불릴 때마다 사랑받는 느낌이 들어 기분이 좋았다.

사실 그동안 내가 살아온 환경과 형편은 사랑받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키 작고 못생긴 내 앞에 놓인 형편들이 너무 무서웠고 인정하기 싫었다. 술을 많이 드셨던 아버지와 돈을 아낄 줄 몰랐던 엄마, 치매를 앓는 할머니, 그리고 그로 인해 일어나는 문제들…. 사랑하던 사람들이 나를 배신하고 멀리하던 모습 때문에 나는 두려움에 갇혔다.

고등학교 3년 생활의 기억 대부분도 학교 체육시간에 강당 무대 위에 놓인 그랜드피아노 의자 뒤에 숨어, 죽기 전 해야 할 일들을 ‘목록’으로 썼던 기억만 난다. 난 외로웠지만, 사람들을 마주하면 무서웠고, 머리가 아팠다. 그래서 늘 어둠 속에 숨었고 ‘벽’을 쌓았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난 항상 불안했고 쫓겨 다녔다. 사람들에게 나를 이야기할 수 없었고 무서웠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스치는 사람들이 싫었고, 그래서 항상 원룸에 틀어박혀 있었다. 명절 때마다 친구들이 보낸, 명절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가족 윷놀이 동영상이나 사진들은 내 모습을 초라하게 했고, 이런 나를 커튼으로 가리고 싶어졌다.

나는 부쿠레슈티 어느 낡은 주택가의 쓸쓸한 ‘잿빛 풍경’을 마주 대하면서 어린 시절 자주 보았던 다 깨어진 회색집의 시멘트 벽돌담이 떠올랐다.

굿뉴스코 해외봉사단원 워크숍에 참석해서 마인드 강연을 들으며, 초라한 나도 꿈을 갖고 싶었다. 꿈은 누구나 품을 수 있고, 이룰 수 있었다. 나는 그런 희망을 가지고, 동유럽 루마니아를 지원해 새로워질 나를 꿈꾸며 내 마음속에 제2의 고향이 될 루마니아로 왔다.

내 마음과 닮은 안드레아의 마음

루마니아에서 한국어 교실을 운영하면서 만난 ‘안드레아’는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의 가정 폭력 때문에 일찍이 엄마와 단둘이 지내왔다. 안드레아를 처음 만났을 때 그녀의 회색빛이 맴도는 에메랄드 색의 눈매가 정말 예쁘다고 느꼈다. 그런데 정작 그녀는 자신이 못생겼다며 항상 자신감이 없었고 주눅 들어 있었다. 안드레아가 한국어 수업을 조용히 듣던 어느 날, 그날따라 그녀의 눈은 유달리 슬퍼 보였다. 그녀의 눈빛은 내 마음의 잿빛 풍경과 너무나도 닮아 있었다.

“무슨 안 좋은 일이 있어요?”

그녀는 나에게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았다.

“그냥 내 문제야. 난 내 자신이 싫어. 난 너와 이야기하고 싶은데 내 마음이 차갑게 얼어붙어서 수업을 마치고 빨리 밖으로 나갔어. 그리고 나에 대해 생각해봤는데 난 너무 초라하고 항상 마음이 불안해.”

대화를 하면서 알게 된 안드레아의 마음은 나와 똑같은 ‘잿빛 풍경’이었다. 그 잿빛은 벽이 되어 안드레아의 마음을 가로막았고, 이 벽을 무너뜨려주면 그녀가 슬픔에서 해방될 것 같았다. 하지만 나에게는 아무런 해결 방법이 없었다. 나부터가 마음에 스스로 담을 쌓고 그 담 뒤로 도망쳐서 또 혼자 슬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원하고 노력해도 이 세상에 할 수 없는 일들이 있다고 말하는 ‘현실의 벽’을 느꼈다.

코리안 캠프를 마치고 루마니아 친구들과 드라큘라성에 들른 유소율 단원(맨 오른쪽).
코리안 캠프를 마치고 루마니아 친구들과 드라큘라성에 들른 유소율 단원(맨 오른쪽).

잿빛 풍경 속 같은 내 마음에 밝은 빛이 들어와

나는 천 미터를 달릴 때마다 항상 그 ‘벽’이 벅찼다. 결승점을 보고 달려야 했지만, 나는 벽만 보고 좌절부터 했다. 사람들 틈에서 작아져서, 어두운 잿빛 풍경을 마음에 품고 숨어있는 ‘나’. 나는 두려워 넘지 못하고 뚫을 용기가 없어서 먼 길을 둘러 다니며 그 벽을 살피는 동안 어두운 풍경 속에 갇혀 있어야만 했다. 그 안에 갇힌 내 모습을 안드레아를 통해 비춰보게 되었다. 우리는 똑같이 벽을 뚫어야 할 마라톤 경기에 참여하고 있었던 것이다. 반면에 벽을 그냥 뚫고 지나가는 당당함, 강한 믿음이 필요했다.

어두운 잿빛 풍경을 밝게 해줄 ‘빛’이 필요했다. 그 믿음이라는 빛을 얻기 위해선 먼저 ‘예전의 나’를 버려야 한다는 것을 봉사활동을 하며 배울 수 있었다.

루마니아에서의 1년은 나를 기죽게 하던 ‘현실의 벽’을 뚫고 지나가는 방법과 이를 위해 나를 내려놓는 믿음의 빛을 알게 해주었다. 그리고 그 방법을 안드레아와 함께 공유해갔고, 잿빛 풍경에 갇혀 있던 우리는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밝은 빛 아래로 나오게 되었다. 마음의 어둠은 사라져갔고, 안드레아와 함께 그린 마음 풍경엔 햇빛이 가득 들어차게 되었다.

나는 루마니아의 잿빛 수도 ‘부쿠레슈티’에서 내 마음의 잿빛 풍경을 분명하게 보았다. 그리고 그 속에 존재하는 ‘벽’이 무엇인지도 보았다. 이 암울한 벽을 뚫고 지나가기 위해 필요한 것이 믿음과 긍정의 힘인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렇게 마음의 ‘빛’을 찾게 되었다.

굿뉴스코 프로그램

루마니아는 아시아와 유럽의 길목에 위치하여 북쪽은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조, 남쪽으로는 오스만투르크의 문화가 공존하고 있다. 공산정권 붕괴 후 28년이 흘렀음에도 아직까지 과도기의 많은 문제점이 해결이 되지 않은 상황이다. 2007년 유럽연합에 가입 후 서유럽의 높은 임금과 사회복지제도를 도입하려 하였으나, 실제 국민들은 낮은 임금과 실업 등 많은 사회문제를 안고 있다. 불안한 사회 문제 속에서 한국 캠프와 마인드 강연을 통해 루마니아 젊은이들이 서로 교류하며 생의 변화를 경험하는 장場이 되고 있다.

1. IYF 아카데미

루마니아 학생들을 위한 아카데미에서는 드라마 ‘대장금’ ‘별에서 온 그대’ 등 한국 드라마를 소개하여 많은 사람들이 한국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더불어 루마니아에서는 한국어를 배울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아 한국어 아카데미는 언제나 인기 만점이다. 한국 대학생들이 직접 아카데미를 가르치며 루마니아 대학생들과 교류하고, 서로의 문화를 알아가는 소중한 시간을 가진다.

2. 한국어 캠프 및 마인드 강연

매년 전반기와 후반기에 두 번 열리는 한국어 캠프에서 봉사단원들은 한국을 소개하고 문화를 알리는 홍보대사로 활동한다. 현재 루마니아의 몇몇 대학들과 고등학교와 MOU를 체결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굿뉴스코 봉사단원들은 무엇보다 사회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청소년들에게 깊은 사고력과 올바른 마인드를 전하고 있다.

3. 크리스마스 미러클

매년 10월부터 12월까지 유럽 전역에서 ‘크리스마스 미러클 투어’를 진행한다. 한 달 간 센터에서 교육 후 유럽 20개 나라를 순회하며 공연하는 이 행사는 굿뉴스코 대학생 봉사 단원들에게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적인 경험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공연을 본 많은 시민들이 크리스마스의 기적을 맛봤다며 행복한 소감을 쏟아내고 있다.

4. 유럽 무전여행

한 나라뿐 아니라 여러 나라를 넘나드는 여행을 하고 싶다면 ‘루마니아’를 추천한다. 굿뉴스코 대학생 봉사자들이 꿈꾸는 발칸 반도 주요 도시로의 여행은 그 어떤 여행보다 신비롭고 아름다운 경험을 선사해줄 것이다. 새로운 나라,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시각을 넓히는 무전여행에 도전해 보자.

사르말레 sarmale
사르말레 sarmale

루마니아 음식들

사르말레sarmale는 오랜 시간 소금에 절인 양배추에 쌀과 간 고기를 넣고 말아서 오븐이나 냄비에 끓여 먹는 루마니아의 대표적인 음식이다. 양배추의 신맛과 향신료가 어우러져 독특한 맛을 내 갈수록 즐겨 먹게 된다.

치오르바ciorba는 우리나라 국과 같지만 신맛이 더해져 정말 시원하고 깊은 맛을 낸다. 그 외 옥수수가루로 죽처럼 만든 머멀리거mamaliga와 고기완자 같은 미치mici를 주로 먹는다.

드라큘라 성이라고도불리며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브란 성
드라큘라 성이라고도불리며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브란 성
왕가의 여름 별궁으로 사용되었던 펠레슈 성
왕가의 여름 별궁으로 사용되었던 펠레슈 성

생애 잊을 수 없는 특별한 해외봉사활동을!
아디나Adina

제 이름은 아디나, 한국 나이로 24살입니다. 저는 2년 전 IYF를 만났습니다. 처음으로 참석한 한국어 캠프에서 매우 열정적으로 일하는 자원봉사자들을 보며 그들을 닮고 싶었습니다. 현재 저는 루마니아 IYF에서 봉사단원 팀을 관리하고, 공연뿐만 아니라 여러 흥미로운 행사들도 함께 기획합니다. 루마니아에서 29명의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한국 문화를 나누며, 마음의 세계를 배우고 있습니다. 봉사자들은 매우 친절하고 책임감이 넘치는데 특히 얼굴에 미소가 넘칩니다.

루마니아의 음식은 다양하지는 않습니다. 사람들은 고기 파티를 좋아하며 케이크 등의 후식을 즐깁니다. 물가가 매우 저렴해서 여행객들이 부담없이 여행을 즐길 수 있습니다. 루마니아에서만 할 수 있는 흑해 여행, 등산, 드라큘라 성 방문, 워터파크 등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 많습니다. 여러분, 루마니아에 온다면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추억과 친구들을 만날 것 입니다. 저와 루마니아는 당신이 가장 특별한 해외봉사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도와 드리고 싶습니다.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저작권자 © 데일리투머로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