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ntral america(5)_멕시코

일본 애니메이션 <짱구는 못말려>는 어린 시절 권세희 씨의 위안거리였다. 대학생이 된 후 짱구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해서 괴로워했던 그는 멕시코에서 참된 자신을 발견한다.

▲ 권세희(굿뉴스코 멕시코 12기, 성신여자대학교 2학년)
▲ 권세희(굿뉴스코 멕시코 12기, 성신여자대학교 2학년)
몸도 마음도 지쳐버린 짱구, 해외봉사를 만나다
어린 시절, 나는 맞벌이하시는 부모님이 출근하실 때부터 퇴근하실 때까지 만화 <짱구는 못말려>만 봤다고 한다. 성격도 얌전해 친구들과 놀기보다 혼자 TV로 <짱구는 못말려>를 보며 초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나는 짱구를 닮아가기 시작했다. 느린 행동과 엉뚱한 생각, 바보 같은 말투…. 이해속도도 느려 초등학교 2학년 때 공부를 포기했고, 중학교 때는 낙제생이 되어 있었다. 성적표를 받고 충격을 받은 나는, 초등학교 교과서부터 수십 번을 되풀이해 읽으며 공부했고, 한 학기 만에 반 1,2등을 차지하는 기적을 이뤄냈다. 고등학교 때도 열심히 공부해 대학에 입학했다.
그동안 짱구 같은 내 모습이 싫어 절대 나서는 법이 없었고, 하고 싶은 것들도 꾹꾹 참았던 나는 ‘더 이상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 변화를 시도했다. 어리숙한 내 모습을 감추려 열심히 나를 꾸미고 짱구 같지 않게 말하는 연습도 했다.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어 못하는 술도 많이 마셨다. 날 무시하는 사람도 없었고, 친구들도 많이 생겨 하루하루가 신이 났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몸과 마음이 지쳐가는 것을 느꼈다. 원래 내 모습은 못난 짱구였지만 사람들 앞에서 잘난 척, 잘하는 척하느라 몸은 힘들었고 마음도 텅텅 비어 있었다. 내가 시도한 변화는 날 지치게 했다. 그러던 중, 굿뉴스코 해외봉사로 미국에 다녀온 오빠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오빠는 자신을 낮추며 겸손하게 말하고, 작은 것에도 감사하고 행복해 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1년 동안 오빠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호기심이 생겼고, 굿뉴스코가 내게도 새 삶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굿뉴스코에 지원해 멕시코로 떠났다.

나의 부족함을 인정했을 때 모든 문제가 사라졌다
내가 상상하던 것과 달리, 한국과 정반대편에 있는 멕시코는 문화도 정반대였고, 그래서 멕시코에 도착한 후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무뚝뚝한 한국 사람들과 달리 멕시코 사람들은 너무 밝게 친절했다. 멕시코의 인사법인 볼키스는 나를 몹시 당황하게 했다. 또 멕시코 음식에는 기름, 설탕, 소금 등이 잔뜩 들어 있었고, 스페인어는 내게 외계어처럼 들렸다.
고산지대인 멕시코시티를 제외하면 살을 에는 듯 추워 겹겹이 껴입고도 동료들과 딱 붙어 자야 했다. 추운 날씨 속에서 입에 안 맞는 음식을 먹고, 난생처음 화장실 청소를 하는 기분은 지금 생각해도 고개가 절레절레 저어진다. 엄마가 보고 싶어 눈물이 나는 날도 많았다.
문화, 음식, 언어, 날씨, 생활…. 모든 게 낯선 가운데서도 조금씩 적응해 가던 중 베라크루즈라는 도시에 가게 됐다. 멕시코 무역의 요지인 항구도시로, 1년 내 더운 날씨를 자랑한다. 특히 4~6월은 하도 햇볕이 뜨거워 피부가 타 죽는다고 아우성칠 정도로 덥다. 생전 겪어보지 못한 끔찍한 더위, 긴소매를 입어도 기어이 물어뜯는 지긋지긋한 모기들과 시도 때도 없이 튀어나와 날 울리는 엄청난 크기의 바퀴벌레들! 결국 나는 두 손을 들고 말았다. 어려움이 있으면 동료 단원들에게 털어놓으면 마음이 가벼워지겠지만, 한국인 한 명 없이 현지인들과 지내느라 더 힘들었다. 안 그래도 총알처럼 빠르게 지나가는 스페인어에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는데, 스페인어로 한국어 아카데미와 마인드 강연까지 해야 했다. 막막했다.
‘멕시코에 오기 전 상상했던 생활은 이게 아니었는데, 왜 여기서 이러고 있지?’ 완전히 지친 끝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마인드 강연집 <나를 끌고 가는 너는 누구냐(나끌너)>를 읽던 중 정답을 발견했다. <나끌너>를 읽으면서 내가 어려움을 느끼는 이유와 어려움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내 노력으로 아무것도 잘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내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다른 사람들의 도움도 구하지 않고, 결국에는 폐만 끼치는 미련한 사람이 나였음을 깨달았다. 내 마음은 고립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때부터 내 마음은 완전히 달라졌다. 현지인들에게 마음을 열고 친구가 되었고, 어려움이 생기면 도움을 청했다. 마음 속에서 커다란 벽 같았던 문제들이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친구들과 대화하며 차근차근 스페인어를 배우는 동안, 부담이 사라졌고 그들의 문화도 이해할 수 있었다. 봉사자였던 나는 뭔가 열심히, 또 잘해야 하는 줄로 생각했다. 하지만 어려울 때 도움을 구하고, 배울 마음을 갖는 게 한없이 부족한 내가 할 일이었다. 그렇게 다른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며 나의 한계를 넘을 수 있었고, 그 기억은 내 마음 속에 큰 행복으로 남아 있다.

 
 
당연하게 생각하던 것들이 감사로 다가오다
친절하고 웃음이 푸근한 멕시코 사람들이지만, 그 뒤엔 어둠이 숨겨져 있었다. 행복한 가정에서 걱정 없이 자란 나와 달리, 가정불화나 이혼은 그들에게 흔한 일이었다. 청소년들도 술, 담배, 마약까지 쉽게 접할 수 있어 청소년 문제도 심각했다. 한국에 있을 때 주변에서 술담배를 하는 친구들을 보지 못했기에 그런 멕시코 청소년들의 모습이 굉장히 낯설고 충격적이었다.
베라크루즈에서 3개월 간 매주 마약 재활훈련소에서 마인드 강연을 했다. 중독자들이 갇혀 생활하는 어두컴컴한 방, 음산한 분위기, 머리가 빙글빙글 도는 기분 나쁜 냄새, 초점 흐린 그들의 눈빛까지! 처음에는 너무 무서워 가기가 정말 싫었다. 서툰 스페인어로 하는 내 얘기를 그들은 잘 들어 주었고, 나도 마음이 열려 어느새 그들과 마음을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점차 그들이 무섭기보다, 한창 젊은 나이에 마약에 빠져 재활훈련소에 들어온 그들이 안타까웠다.
멕시코 청소년들의 또 다른 문제는 미혼모다. 길거리에서 학생 커플을 수없이 볼 수 있고, 사람이 있든 없든 장소를 불문하고 심한 애정행각을 서슴없이 한다. 그래서인지 아기를 안고 집에서 주부 생활을 하는 여학생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다들 미소를 띤 밝은 모습이었지만, 아이를 키우느라 몸과 마음이 지쳐 있었고, 학교 다니는 친구들을 부러워하며 자유롭게 미래를 그릴 수 있는 학창시절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었을 뿐인데도 기뻐하는 걸 보며 그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물질적 도움이 아닌 마음을 나눌 상대임을 알았다.
그런 멕시코 청년들을 보며 ‘이들이 마음의 세계에 대해 좀 더 일찍 배워 삶을 절제하고, 올바른 길을 걸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국이든 멕시코든 학교에서는 지식만 가르치지, 마음을 강하게 키워주거나 절제를 가르치지 않는다. 인생의 많은 문제들이 약한 마음에서 비롯되는데, 이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참 안타까웠다. 또한 나를 감싸주는 가족과 집이라는 울타리가 소중하게 느껴졌고 감사했다. 주변 사람들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해서 전혀 감사를 느끼지 못했던 것이 부끄럽고 반성이 되었다.

 
 
당당하게 빛나라, 짱구야!
해외봉사 기간 동안 멕시코 사람들보다 훨씬 느리고 할 줄 아는 것 하나 없는 짱구인 내가 한 것이라곤, 말도 안 되는 스페인어를 쓰며 말도 안 되는 행동들만 한 것이 전부다. 해외봉사단원이라는 것만으로 나에게 다가오고 챙겨주고 도와주는 멕시코 사람들과 함께 지내며 내 마음은 행복으로 가득 찼다.
앞으로 내가 어떤 어려움을 만나든, 그것은 어려움이 아니라 나를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할 것이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굿뉴스코 해외봉사를 통해 나는 이 말을 실현시킬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어둠 속에서 홀로 서 있던 짱구에게 빛을 비춰 준 멕시코에서의 1년이 내 인생도 빛나게 이끌어 줄 것을 기대해 본다.

권세희 (굿뉴스코 해외봉사단 멕시코 12기, 성신여자대학교 2학년)

담당Ⅰ전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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