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ntral America(2)_자메이카에서 영어에 대한 자신감 얻은 임준환

임준환 씨에게 자메이카를 해외봉사국으로 택한 이유를 묻자 ‘영어를 배우고 싶었다’는 간단한 대답이 돌아왔다. 영어 울렁증으로 남모르게 고민하던 그에게 자메이카 행은 진지한 도전이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경찰공무원이 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는 경상도 청년 임준환 씨는 우직한 첫인상과 달리 자메이카에 대해 질문하자 신나게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말할 수 없는 고민, 영어
“중학교 1학년 때 영어단어 시험을 보면 항상 점수가 엉망이었어요. 어느날 암모니아 냄새를 맡으면 기억력이 좋아진다는 말을 듣고 화장실에 앉아서 2시간 동안 영어단어 20개를 외우고 다음날 자신만만하게 시험을 봤는데, 0점을 받은 거예요. 그때 우리 반에서 0점을 받은 학생은 저 하나뿐이었어요. 그날의 충격으로 저는 영어만 생각하면 속이 울렁거리는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어요.”
평소에 운동을 좋아하고 성격도 활발해 친구들과도 쉽게 친해지는 편인 그이지만 영어 앞에만 서며 소심쟁이가 됐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마찬가지로 외국인을 만나면 잔뜩 긴장해 아무 말도 못했다. 자존심 때문에 남들 앞에서는 영어 못하는 티는 내지 않았지만 스무 살이 넘은 남자가 영어 때문에 벌벌 떤다는 것은 그가 가장 감추고픈 약점이었다.

My age is...
2011년, 군대를 다녀오고 나니 벌써 23살이 됐다. 더 이상 놀고만 있을 수 없겠다는 생각에 경찰공무원을 준비하기로 했다. 그러나 역시 영어과목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그는 마냥 영어를 두려워 할 수만은 없겠다는 생각에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 큰 결단을 내리기로 했다. 영어에 대한 두려움을 벗어나고 싶어 다시
1년을 휴학하고 좋은 일을 하며 영어도 배울 수 있다는 해외봉사에 도전해 보기로 한 것이다.
2012년, 자메이카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리고 자메이카에 도착한 첫날 드디어 사건이 터졌다. 해외봉사단원들이 함께 1년을 보낼 현지인들에게 자기소개를 해야 하는 시간이 온 것이다. 물론 영어로 말이다. 드디어 그의 차례가 돌아왔다.
“제 이름은 임준환입니다 라고 말을 하고 나서 나이를 말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age’라는 단어가 생각나지 않는 거예요. 분명히 열심히 자기소개 내용을 외웠는데도 생각날 듯 말 듯하고 떠오르지 않더라고요. 그렇게 한참을 애쓰고 있는데, 쳐다보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제가 얼어붙어있다고 생각한 거예요. 지켜보던 자메이카 사람들도 당황해서 옆에 있던 다른 단원이 저 대신 ‘Thank you’라고 인사하고 발표를 마쳤어요.”
그때 그 순간 얼마나 부끄럽고 당황했던지 얼굴이 빨개지고 심장이 뛰는 걸 주체할 수 없었다고 했다. 몇 년 동안 숨겨왔던 영어실력을 공개석상에서 다 드러내버렸기 때문이었다. ‘쟤는 바보다’라는 소리 들을까 봐 무척 걱정했던 그에게 자메이카 사람들은 오히려 친근하게 다가와줬다고 한다. 자메이카에 와서까지 더 이상 자신의 약점을 숨길 수 없게 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말이 안 되더라도 무조건 영어를 내뱉고,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속마음을 자유자재로 표현하고 호탕한 성격을 가진 자메이카 사람들과 친해질수록 영어 때문에 움츠러져 있던 그의 마음이 조금씩 만개했다. 어느새 영어 울렁증에서 벗어나게 된 것이다!

 
 
도전의 포문을 열다
자메이카는 일 년 내내 햇볕이 뜨겁게 내리쬐지만 습기가 없는 화창한 날씨다. 햇볕이 강한 나라에서 봉사하는 그에겐 하루하루가 새로운 도전의 연속이었다. 자메이카 노동자들이 하는 일을 돕고, 초등학교 건물 벽에 페인트도 칠하고, 무료 교실에서 태권도를 가르치며 다양한 활동을 했다. 처음에 태권도를 가르칠 때는 영어가 능숙치 않아서 말로 설명하기보다 동작들을 하나씩 몸으로 보여주면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는 자메이카 사람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치고, 자메이카 학생들은 그에게 영어를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며 서로 도왔다. 문장을 외워서 말해보라는 현지인들의 조언에 따라 쉬운 문장부터 무조건 외우기 시작했다.
“그동안 이미 두 번이나 영어 외우는 것을 실패했지만 그때부터는 전혀 달랐어요. 이미 내 실력을 만방에 다 공개한 상태여서 나는 영어 못하는 사람이 되고 나니, 꼭 잘하려고 하지 않아도 돼서 마음도 편했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새 영어문장들이 하나하나 제 입에서 나오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문장들을 응용해서 더욱 다양한 표현들을 할 수 있게 됐어요.”
한번은 그와 친해지고 싶어서 두 명의 고등학생이 다가왔는데,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미안! 나와 친구가 되려고 하는 너희들의 마음은 정말 고마운데, 내가 빨리 영어를 배워서 너희들과 실컷 대화할게!” 하고 도망갔다고 한다. 그리고 3개월이 지났을 때는 신기하게도 그들과 영어로 능수능란하게 대화가 가능해졌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잔뜩 움츠려 있던 그가 어느새 무슨 일이든지 긍정적으로 도전하는 청년 봉사자로 바뀌어 있었던 것이다. 자메이카의 태양과 바다처럼 그의 일생 중 가장 뜨겁고 화창했던 일 년간의 봉사기간을 마쳤을 때는 동료단원들 중 그의 영어실력이 가장 일취월장해 있었다.

장학금 그리고 상
활동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복학한 그는 이제 영어뿐만 아니라 모든 과목에서 높은 성적을 받는 학생이 되었다. 처음으로 성적장학금도 받았다. 또한 영어말하기대회도 도전해 대구경북 본선에서 대상을 타고, 전국 결선에 진출해서는 1등을 수상했다.
과거의 그라면 절대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수상 소식을 전해 듣고 감동을 받은 학과 교수을 통해 그의 대회 영상이 학교 홈페이지에도 올라갔다. 또한 그 영상을 본 총장님의 추천으로 우수학생으로 선발되어 졸업식 때는 전교생 대표로 대구 시장상과 봉사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스스로를 영어도 못하는 ‘꼴통’이라고 생각하고 자책하며 살았는데, 자메이카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무조건 사람들과 부딪혀 도전하면서 자신감을 찾았고, 이제는 당당하게 경찰관의 꿈을 이루기 위해 공부하고 있다.  

장소제공 | 카페호두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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