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봉사단원 4인방이 경험한 특별한 도전 스토리(4)_김병조

“무용수들은 완벽한 모습을 무대 위에서 보여주기 위해 연습에 몰입하지만, 잘하려는 욕심이 앞서면 오히려 실수를 하게 돼요. 반면, 몸에 힘을 빼고 음악을 느끼면 자유롭게 춤을 출 수 있지요.”
김병조 씨는 올해 국립무용단 6년차 단원. 자신만의 특별한 색깔을 작품 속에 투영해 예술로 승화하는 무용가로, 지난 2012년 ‘제8회 젊은 작가전’에서 창작안무로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았다. 그의 춤은 보는 이들을 편안한 서정성에 젖게 하는 매력이 있다. 게다가 굿뉴스코 활동을 통해 익힌 봉사정신이 투영되어 따듯함까지 느껴진다. 젊은 나이에 지금의 철학을 갖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생활 속 마음가짐이 오롯이 배어 나오는 예술성은 어떻게 형성됐을까?


 
 
김병조 씨는 쑥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미국에 가기 전에는 왕자병이 심했다”라고 고백했다. 남학생 비율이 10명 중 1명일 정도로 남학생이 드문 무용학과 분위기에 물들었던 탓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가 재학했던 시기에는 듀엣파트너가 필요한 여학생들의 ‘남학생 쟁탈전’이 아주 치열했다. 맛있는 간식을 사주고 학업을 이모저모 도와주는 등, 그는 남학생이란 이유만으로도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학교생활을 할 수 있었다.

“뉴욕에 가보니, 저는 그저 말 못하는 동양인에 불과하더라고요.(웃음) 해외봉사를 하며 저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알게 됐어요.”

브로드웨이의 공연을 보고 싶어 지원했던 뉴욕이지만, 현지 생활은 하루하루가 전쟁과 다름없는 ‘삶의 현장’이었다. 그 역시 매일같이 청소와 건물 보수 공사, 페인트칠 등 각종 궂은일을 하며 ‘겉멋’을 잃어버렸다. 단체 생활을 통해 다른 단원보다 무용 외적인 부분에서 허술하다는 것을 알게 되며 성격도 점점 겸손하고 부드러워졌다. 그렇게 더욱 멋있는 무용학도로 거듭났다. 자투리 시간에는 어설픈 영어를 익히며 현지인들을 위한 자선공연 안무를 많이 만들었다. 이듬해 2월 귀국 후, 그는 ‘굿뉴스코 귀국 발표회’ 전국투어에서도 동문 댄스팀인 ‘라이쳐스 스타스’로 댄서와 스태프 일을 하며 북미 대륙 단원의 공연준비를 도왔다. 국립무용단은 귀국발표회를 위해 3주간 합숙하던 중 우연히 오디션 소식을 접하고 입단할 수 있었다. 기대도 하지 않고 본 시험이 ‘합격의 행운’으로 이어져 함께 지내던 단원들에게 열화와 같은 축하를 받았다.

“잘 알려진 것처럼, 국립무용단은 경쟁률이 70 대 1로 매우 높습니다. 무용을 전공한 전국 대학생들이 3, 4년씩 뼈 빠지게 준비해서 입단오디션을 보지요. 저는 제가 잘하는 것보다, 관객이 저를 좋게 봐주는 편이 더 멋있는 공연이 되는 것을 알았을 뿐이었어요. 심사의원들께서도 실수에 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웃을 수 있는 내면을 좋게 평가하셨던 것 같아요.”

촉망받는 무용가가 됐지만, 그는 늘 한결같다. 무거운 짐을 실어 나르며 자선공연의 무대를 꾸미던 추억이 떠올라 스태프진의 노고도 잘 보듬어준다. 이런 이유로 주변에서도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맘씨 좋은 선생님’으로 통하고 있다. 롱런의 비결이 ‘겸손’이라는 진실을 몸소 보여주는 삶이다.

김병조_2006년 굿뉴스코
2006년 굿뉴스코 해외봉사단원 5기로 미국 뉴욕을 다녀왔다. 세종대학교 무용학과를 졸업, 국립발레단의 연수단원을 거쳐  2007년 국립무용단에 입단했다. 현재 교수라는 꿈을 위해 동 대학원에서 학업을 닦으며 강사로 활동 중이다.

취재와 사진 | 배효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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