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봉사 가기 전의 나는 취업을 앞두고 스펙을 쌓느라 노심초사하던 대학4학년이었다. 하지만 우즈베키스탄에서 지냈던 값진 1년 동안 내가 앞으로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지 생각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지금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고 있지만 7년 전 그때를 생각하면 그리운 것들이 참 많다.

 
 
쵸이낙과 피욜라
우즈베키스탄에서 지내는 동안 어느 가정을 방문하든 꼭 쵸이낙choynak이란 찻주전자와 피욜라piyola란 찻잔으로 차를 대접받았다. 가난한 가정형편이지만 차茶라도 대접할 수 있다는 것에 흡족해하는 우즈베키스탄 사람들. 그들에게 찻잔의 화려한 외형이나 차의 종류는 중요하지 않았다. 대접하기 위한 차, 과시하기 위한 차가 아닌 인정人情을 나누는 차였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가 내가 마시는 차는 트렌드의 하나요, 나를 표현하는 수단의 하나가 돼 버렸다. 요즘같이 찬바람이 불 때면 마음까지 따뜻하게 했던 우즈베키스탄의 차 한 잔이 생각난다.
 
리뾰시카
스탄 지역의 전통 빵 ‘리뾰시카’는 서양의 바케트처럼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운, 맛있기 그지 없는 빵이다. 특히 우즈베키스탄의 리뾰시카는 쫄깃하고 담백하며 고소하여 그 뛰어난 맛을 자랑한다. 화덕에서 갓 구운 빵을 몇 조각으로 잘라 조개가 입을 열 듯 벌어진 빵 사이에 버터나 잼을 그 안에 발라서 먹으면 어떤 화려한 고급 빵 못지않는 맛이 있다. 우리나라 돈으로 몇 백 원이면 살 수 있는 리뾰시카는 하루하루 고되게 살아가는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의 부담 없는 주식이 된다. 물론 이마저도 돈이 없어 못 먹는 사람들이 많지만 리뾰시카가 있기에 스탄 나라 사람들은 넉넉지 않은 돈으로 배를 채울 수 있는 것이다.

침블락의 만년설
5월경에 카자흐스탄의 옛 수도 알마티 남쪽 위치한 침블락에 방문했다. 녹색의 넓은 평원 위의 우뚝 솟은 침블락의 만년설은 무척 진귀한 광경이었다. 반팔을 입고 바라본 만년설은 마치 갓 겨울이 끝나고 또 다시 시작될 겨울을 준비하는 듯 했다. 자연이 봄과 겨울을 반복하는 것처럼 인생도 그와 같은 희노애락이 찾아온다. 살다보면 인생에 봄이 오고, 겨울도 오고, 침블락의 만년설처럼 봄과 겨울이 함께 찾아오기도 한다.
당시 나는 러시아어가 너무 어려워서 해외봉사를 포기하려고 했다. 다른 단원들이 즐겁게 대화할 때 나만 아무 말 못하고 있는 처지가 한심했고 무슨 일이든 즐겁지 않았다. ‘이럴 바에는 한국에 가야지’ 하고 마음먹었을 때, 하얀 서양인 얼굴에 검은 머릿결을 가진 마리나라는 여자아이가 유독 나에게만 고민 상담을 해왔다. 마리나와 조금이라도 대화해보고 싶어서 러시아어를 공부했고 대화가 서서히 가능해졌다. 내 마음은 이미 어려운 상황에 짓눌려서 이겨내기 힘들었지만 나를 좋아해주고 함께해야 할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면서 러시아어를 배웠고 이후 많은 사람들과도 자유롭게 대화하고 봉사할 수 있었다.


지금도 힘들 때마다 침불락의 만년설을 떠올린다. 언제든지 찾아오는 겨울이 있지만 힘들다고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포기하면 내 뒤에 바짝 뒤따라로는 봄을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글Ⅰ최정민 (상명대학교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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