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지현의 소심한 성격을 고친 이야기

사람은 누구나 감추고 싶은 자신만의 약점들이 있다. 피자 가게에 전화걸기 조차 두려워할 정도로 소심했던
윤지현 씨는 자신의 그런 성격이 가장 큰 약점이었고 해외봉사로 이를 해결하기 위해 아프리카까지 갔다. 그리고 자신의 한계를 넘어 전 세계의 가난한 나라의 경제 발전와 여성들을 위해서 일하고자 하는 열정을 품은 그녀의 이야기를 자세히 소개한다.

글 | 전진영 기자 인물사진 | 배효지 기자 디자인 | 김현정 기자
 

 
 

그녀는 여덟 살 때 해외로 발령받은 아버지를 따라 독일에 가서 살면서 국제학교를 다녔고 영어를 사용했다고 한다. 그리고 4년이 지나 한국으로 돌아온 후, 딱딱한 45분 수업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했다. 게다가 한국어도 국어책에서 배운 그대로 말하다 보니 생각을 표현하는 어휘력에도 한계가 있어서 좋고 싫은 것을 분명히 표현하는 그녀의 직설적인 화법에 상처받는 친구들이 많았다. 영어 단어를 섞어서 말하고 누군가 잘한다고 칭찬해주면 겸손한 모습을 보이기보다 오히려 잘했다고 좋아하며 우쭐해하기도 했던 그녀는 친구들 눈에 잘난 척하기 좋아하는 얄미운 아이로만 보였다.

“워낙 소심한 성격인 데다가 상황이 그렇게 되니 더 이상 친구들과 잘 지낼 자신이 없었어요. 그래서 중학교 때부터는 공부에만 집착했죠. 잘 이해되지 않았던 국어나 사회 과목들은 무조건 달달 외우고 자신 있는 영어로 평균성적을 올렸어요. 고등학교에 가서도 친구들이 저를 무시하지 않도록 공부하면서 성적 올리기에 급급했어요.”

▲ 도마뱀을 잡았다고 자랑하는 탄자니아 아이들과 함께 기분 좋은 한때를 보내며.
▲ 도마뱀을 잡았다고 자랑하는 탄자니아 아이들과 함께 기분 좋은 한때를 보내며.

이렇게 살다가는 바보가 되겠다
어렸을 때 겪었던 문화차이로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것에 큰 두려움을 가지게 된 윤지현 씨는 이후에도 같은 문제로 고통을 겪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이화여자대학교 경제학과에 입학했지만 새로운 환경에서 만나는 인간관계 때문에 힘겨운 대학생활을 시작했다. 성격을 조금이나마 바꿔보고자 단대 집행부에 들어갔다. ‘활발하고 외향적인 사람들 틈에 있으면 조금이라도 성격이 변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졌지만, 워낙 동료들과 취미생활도 다르고 평소 좋아하지 않았던 술자리와 잦은 모임들이 오히려 스트레스였다. 클래식 기타 동아리에도 가입해서 친구들과 공연하기를 즐겼지만 동아리 회원으로서 요구하는 것이 많다고 느껴서 오래가지 못했다.
계속되는 인간관계의 실패는 그녀에게 더 큰 좌절을 안겨다 주었다. 앞으로 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에 취직한다면? 결혼할 때 성격이 문제가 된다면? 자신의 미래를 하나씩 더듬어 생각해보니 성격이 변하지 않고는 누구와도 행복한 만남을 가질 수 없고 어떤 환경에서도 불편한 삶을 살 수밖에 없는 바보가 될 것이 분명했다. 그녀는 자신의 인생을 반전시킬 수 있는 획기적인 계기가 필요했고 1년 간의 ‘해외봉사’가 마지막 선택이었다.

▲ 아프리카와 인도에서 주로 먹는 짜파티라는 전병을 만들 때.
▲ 아프리카와 인도에서 주로 먹는 짜파티라는 전병을 만들 때.

나를 변화시켜 줄 아프리카로
처음부터 선진국을 지원했던 그녀는 워크숍에서 신선한 충격을 느꼈다. 척박하고 기아로 허덕이는 아프리카 땅에서 돌아온 선배들의 경험담을 들는 것은 그야말로 신기함 자체였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도 큰맘 먹고 성격을 바꾸고자 아프리카로 지원국을 변경했고 2008년 2월에 아프리카의 지붕이라 불리는 킬리만자로가 있는 나라, 탄자니아로 떠났다.
“탄자니아에 간 첫 번째 목적은 봉사활동보다는 제 자신을 바꿔보려는 게 더 컸어요. 그런데 저와 함께 1년을 활동했던 7명의 여학생 봉사단원들이 저와 정반대로 성격이 활발하고 드세서 또다시 부딪혔죠. 자기에게 왜 기분 나쁘게 말하냐고 저한테 따질 때마다 서러워서 울기도 많이 울었어요. 하지만 한 번도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나는 좀 다른 경우이고, 저 친구들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던 거죠. 친구들의 반응에 오히려 더 서운했어요. 점점 ‘저 친구가 나에게 비켜 달라고 했는데 내 얼굴이 보기 싫어서 그런 것일까?’ 하는 지나친 잡생각들만 많아졌어요. 매일 그런 생각만 하느라 마음이 너무 복잡했어요.”

내 마음속의 지우개
탄자니아는 높은 산과 드넓은 초원으로 이루어진 나라다. 기온이 서늘하고 바다를 접하고 있어서 다른 아프리카 나라보다 해산물을 비롯해 다양한 먹거리가 풍부해, 음식문화가 발달했다. 그녀는 남들보다 배로 많이 먹었지만 지나치게 생각이 많아서 살찔 틈 없이 오히려 말라갔다. 일주일마다 무료 피아노 클래스를 열고 여러 대학교와 도시를 다니면서 봉사활동을 했지만 마음에 걸린 문제 때문에 보람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하루는 그런 그녀를 본 봉사단 팀장 단원이 “너의 그 복잡한 생각을 버리는 연습을 해봐, 그러면 너의 잘못된 습관들도 달라질 거야”라고 충고했는데, 이것이 가장 큰 해결책이었다.
“그때부터 인간관계에 대한 걱정들이 올라와서 제 마음을 괴롭힐 때면 지우개로 벅벅 지워내듯이 머릿속의 생각들을 지우는 연습을 했습니다. 신기하게도 복잡했던 생각들이 정리됐고, 제 주변의 환경들이 달라져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드디어 그녀를 끈질기게 괴롭혀 왔던 성격의 굴레에서 벗어나던 순간이었다. 마음을 꽁꽁 묶어둔 ‘생각’이라는 가느다란 철사줄이 하나씩 풀려나갔다. 체중도 조금씩 늘어서 건강해졌다. 이후로는 부담스러운 것을 피하는 소심함에서 벗어나 몇 십 명의 아프리카 사람들 앞에서 행사 사회를 보고 강연도 하면서 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커다란 규모의 일들을 맡았다. 청소년 단체 박람회에서 전통문화공연 활동을 했을 때는 탄자니아 대통령이 한국 봉사단원들의 얼굴을 보기 위해 찾아오기도 했다.
1년 봉사임무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그녀의 몇몇 친구들은 정말 놀라워했다. 뜬금없이 그녀가 아프리카 해외봉사를 간다고 했을 때 무슨 문제가 있어서 가는 줄 알고 걱정했지만, 건강하게 돌아온 그녀를 보고는 “너 정말 여유롭고 긍정적으로 변했어. 어떻게 아프리카 갈 용기가 생겼어? 정말 좋아보여서 다행이야”라고 축하했다.

안타까운 마음을 전해 받고
“탄자니아에서 만났던 어느 한국인 선교사님 사모님이 작년 2012년에 귀국하셔서 만날 기회가 있었어요. 그분은 아프리카 사람들이 비참하고 가난하게 살며 행복을 경험하지 못하고 에이즈나 말라리아 등으로 일찍 세상을 떠나는 현실에 정말 가슴 아팠다고 하시며, 제가 아프리카 사람들을 위해서 살길 바란다고 하셨어요. 그분의 안타까운 마음이 그대로 제 마음에 전해졌어요. 아프리카를 위해 일하기 위해, 먼저 국제기구에 대해서 알아보기 시작했어요.”

▲ 매주 한 번씩 무료 피아노클래스를 열어 청소년들을 가르쳤다.
▲ 매주 한 번씩 무료 피아노클래스를 열어 청소년들을 가르쳤다.
사실 그녀는 어렸을 적 꿈인 외교관을 포기한 상태였다. 하지만 탄자니아에서 만났던, 까맣고 큰 눈망울로 그녀를 쳐다보면서 뭐 하나라도 얻어보겠다고 졸졸 따라다니던 아이들에 대한 기억들이 항상 가슴에 한쪽에 선명히 남아 있다. 그녀는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며 마음을 주고 받은 때의 벅찬 감정들을 지울 수 없었다. 윤지현 씨는 자신의 경험과 전공을 살려 유엔에 들어가서 아프리카 사람들을 돕기로 마음먹었고 올해에는 대학원에 진학했다.

농업부 여성 장관님의 조언
대학원 공부는 매우 광범위하고 난이도도 높아서 힘에 겨울 때도가 있다는 그녀지만 어렵다고 좌절하려고 할 때마다 신기하게도 좋은 기회를 만났다. 그녀가 공부하는 국제개발대학원에는 세계 개도국들의 국가개발을 담당하는 실무자들이 와서 함께 공부하면서 오히려 실질적인 사례들을 덤으로 배우고 있다. 그리고 지인의 추천으로 제 14, 15차 한중일환경부장관회의TEMM의 부대행사로 열린 청소년 포럼에 한국대학원생 대표로 참석하여 세계의 지속가능한 발전에 대한 환경 문제들을 더욱더 폭넓게 공부할 수 있었다. 또한 2012 한·아프리카 포럼에서는 의전으로 활동하며 아프리카 각국 외교부 장차관들을 가까이서 모실 수 있는 기회도 있었다.
“쉬는 시간에 아프리카에서 오신 어느 여성 농업부 장관님이 저에게 어떤 분야에 관심이 있는지 물으시고는 ‘우리나라에서 농업이 아직까지 주 기간산업인데, 많은 여성들이 농업분야에 종사하고 있음에도 여성에 대한 복지는 아주 심각할 정도로 형편없습니다. 아프리카 발전을 위해서 여성들의 인권신장과 삶의 질의 변화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일해 줬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조언하셨어요. 그때부터 제가 유엔에 들어간다면 아프리카 여성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고, 이를 위한 공부의 방향에 대해서도 정확한 길이 잡히더라고요.”

도전에는 주저함이 없다
윤지현 씨가 갓 대학에 입학했을 때는 한 번도 국제무대에서 일해보리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의 앞날이 암울하기만 했기 때문에 단지 변하고 싶어서 아프리카 해외봉사에 도전했고, 기대했던 대로 인생의 큰 전환점을 마련했다. 자신만을 바라보던 그녀는 남을 위해 살고, 꿈을 갖게 됐다.
“21살 한 해 동안 아프리카 사람들과 함께 먹고 자고 생활했던 시간들이 제 인생에서 가장 소중합니다. 그것은 책에서 읽고 머리로만 이해했던 것과 또 다른 세계였습니다. 처음으로 마음을 다해 공부했고, 무척 재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또 앞으로도 아프리카에서 보고 배운 것들을 간직하며 공부할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합니다.”


뭐든지 먼저 한 발 먼저 내딛는 것이 힘들다고 하지만 일단 시작하면 주저함이 없다. 아프리카에서 경청과 올바른 인간관계에 대해 배운 그녀가 이제는 보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그들의 이야기 속에서 조언과 도전할 기회를 얻고 있다. 그 과정 속에서 아프리카를 위해 일할 그녀 자신의 미래도 찾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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