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3일, 한국항공대학교 3학년 안해석 씨는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말라위 전통의상을 입고 아카펠라를 불렀다. 해외봉사를 다녀온 그의 친구, 후배들도 같이 행사를 준비했다. 지극히 내성적인 그가 얼굴도 모르는 낯선 사람들 앞에 서서 이야기하게 된 이유가 뭘까?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은 저마다 사연을 담은 사람들의 바쁜 걸음이 모였다 흩어지는 이동 인구가 많은 곳이다. 정신없이 발걸음을 옮기며 바삐 어디론가 사라지는 사람들 틈 사이로 발길을 멈춘 외국인들이 한참 동안 카메라의 셔터를 눌렀다. 카메라 렌즈에 마이크를 잡고 당차게 말하는 안해석 씨가 있었다.
한국항공대학교 경영학과 안해석 씨(23세)는 첫인상부터 밝고 활기차다. 그의 미래 꿈은 한국 항공 경영자. 미래 항공계의 훌륭한 경영리더가 되고 싶어 굿뉴스코 해외봉사를 통해 도전정신을 배웠다는 그는 생동감 넘치는 말투와 몸가짐에서 밝은 미래가 그려졌다. 2013년 굿뉴스코 서울 지역 회장도 맡은 그는 지난 3월 한국직업방송 <잡매거진>에 출연하여 아프리카 봉사에 관해서도 설명한 바 있다. 어디서든 마이크를 잡고 브리핑하는 안해석 씨. 180센티미터의 훤칠한 키에 씩씩해 보이기만 한 그는 사실 무대 공포증과 울렁증이 있어서 실전에서 늘 일을 그르쳤다고 과거를 회상한다.

 
 
친구의 공부시간을 빼앗는 귀찮은 존재
10대 소년 안해석은 학업에 관심 없이 늘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우정을 맹세하던 철부지였다. 하지만 그가 생각하는 것만큼 우정은 길지 않았다. 한번은 후배와 친구들이 싸웠는데 나중에는 부모 싸움으로까지 번졌다. 친구들은 그 자리에 없었던 안해석 씨를 응징하려고 학교에서는 친절히, 방과 후에는 태도가 돌변하여 매질을 해댔다. 그런 어려움을 겪은 그는 친구 간의 우정, 인간관계까지 회의를 느꼈다. 더군다나 어머니의 암 판정 소식에 하늘이 무너져 내렸던 그는 그래서 책을 손에 들고 공부하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입학 후에는 성적이 1, 2등인 친구들을 부지런히 찾아다녔지만, 그는 귀찮은 존재일 뿐이었다. 성적이 3등인 친구에게 찾아가서 공부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엄격했던 고등학교 1학년 선생님 덕분에 엉덩이를 의자에 붙여서 공부하는 습관도 들였다. 그 결과 하위권 성적이 상위권으로 껑충 뛰어올랐고 고3이 되어서는 반에서 2등을 할 정도가 되었다. 교과목 선생님을 한 번도 무시한 적이 없다는 그는 수업시간을 활용하며 열심히 공부하고 또 공부했다.
하지만 평소 쉽게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 명문대 입학에서 낙방하면서 다시금 좌절했다. 소심한 성격 때문에 그는 결코 행복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주변 사람들이 재수를 권할 만큼 그의 실력을 아쉽게 여겼지만, 그는 한국항공대학교에 입학했다.

꿈의 씨가 뿌려진 수업시간
1학년 ‘항공 경영’ 수업시간, 국제 항공 세미나인 ICAO 모임에 자주 다니는 박진우 교수는 수업시간에 학생들이 장차 항공계를 쥐락펴락할 사람이 될 것이라는 비전을 이야기했다. 문제는 교수님의 비전과 달리 학생들은 코웃음을 치고 믿지 않았던 것. 순간 박 교수는 정색하며 1, 2학년밖에 안된 학생들의 편협한 사고를 꾸짖었다. 친구들을 따라 웃던 안해석 씨는 번뜩 정신이 들었고, 그도 항공산업 경영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의 가슴에 꿈의 씨가 뿌려진 것이다.

▲ 1. 말라위 친구, 다른 단원들과함께 암벽 산을 등반했다.  2.“태권도 마스터, 꼬레아! 꼬레아!”라고 부르며 따르던 말라위 아이들.
▲ 1. 말라위 친구, 다른 단원들과함께 암벽 산을 등반했다.  2.“태권도 마스터, 꼬레아! 꼬레아!”라고 부르며 따르던 말라위 아이들.

1차 도전, 해외봉사
항공산업 경영자가 되기에 앞서 평소 내성적인 성격으로 그르친 일이 많았던 그는 적극적인 사람이 되고자 해외봉사를 선택했다.
“2003년 아르헨티나에 해외봉사를 다녀와서 통역하며 지냈던 11살 위인 쌍둥이 누나 중 한 명의 경험처럼 저도 대학 시절을 보람차게 보내고 싶었죠. 누구나 준비하는 스펙, 영어의 큰 문턱을 넘고 저만의 스토리를 만들고 싶었어요. 특히 유럽과 미국은 나이가 들어도 갈 수 있지만 젊을 때는 아프리카 땅을 밟고 도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안해석 씨는 이런 남다른 경험치가 차별화된 세계관을 형성시켜줄 거라고 확신했다. 2011년 그가 선택한 아프리카 말라위. 몇 주로 끝나는 단순 봉사가 아닌 1년간 현지인들과 직접 생활하며 경험하는 해외봉사를 선택했다. 말라위는 아프리카에 있지만 자연과 집이 아름답게 잘 어울려 전원적인 모습을 담고 있다. 아프리카 특유의 선한 웃음, 순수한 눈망울이 더욱 매력적인 말라위 사람들. 누구나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그곳에서 2개월간 집중적으로 공부했다.
“평소 ‘How tall are you?’를 익히고 영어로 말하기는 쉽지만 ‘너는 키가 몇이니?’를 생각해서 영어로 말하기란 쉽지 않아요. 그래서 말라위에서 자주 ‘How long?’을 연발했죠.”
그렇게 영어를 말하고 표현하기 어설픈 그도 2개월 후 자신감을 얻고, 지부장님이 전해주는 생활 지침과 교육 프로그램, 봉사활동 등에 필요한 마인드 교육 시간에 영어 통역을 하겠다는 미션에 도전했다.
“어떤 일을 선택할 때마다 늘 떠오르는 부담을 한번 뛰어넘고 나면 오히려 전에 없던 용기가 생겨요.”
물론 그는 해외봉사를 온 태국, 중국, 케냐 학생들에게 영어로 의사를 전달하는 한계도 느꼈다. 무모할 만큼 소통의 어려움도 있었다. 익숙지 않은 영어를 말하느라 매시간 진땀이 날 정도였지만 그에게는 더없는 기회이기도 했다.
통역을 계기로 그의 실전 영어는 빠르게 성장했다. 적극적인 자세로 영어를 익히자 어린아이가 말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점차 사람들 앞에서 마인드 강연을 통역하며 자신감도 얻었다. 

 
 

2차 도전, 21개 정부 부처를 직접 발로 뛰다
한국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일들을 말라위에서는 능히 감당해내야 하는 일이 많았다. 교육 아카데미에서부터 시작해서 대학생 캠프 기간에는 말라위 고위관료를 초청하는 부담스러운 일도 생겼다. 1년이 지난 지금도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까?’ 생각할 정도였던 그는 ‘말라위 정부의 장˙차관 및 VIP 인사들을 초대해보라’는 미션을 맡아서 직접 국회를 찾아갔다. 한국이라면 당치도 않을 도전에 그는 용기를 내서 일단 부딪혀보자는 생각을 했다. 22살의 그는 무모하지만 용감했고,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캠프 초청장을 들고 첫 방문을 했던 농림부 건물 앞에서 저는 30분을 우두커니 서 있었죠. 달리 할 일이 없었어요. 문득 거절당하고 쫓겨나서 돌아가는 것이나 시도도 해보지 않고 돌아가는 것이 마찬가지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인생에서 가장 무거웠던 한 발을 내디뎠는데 길이 열렸어요. 일단 농림부에 들어가서 짧은 영어로 이야기도 나눴죠. 물론 영어가 정확하게 전달되지 않아서 웃지 못할 실수도 있었죠. ”
하지만 그 뒤로 법무부, 청소년부, 보건복지부, 외무부, 국방부 등 21군데를 찾아 다니며 장관 3명, 차관 3명, 비서실장 7명을 직접 만나서 초청장을 내밀었고, 그때 그는 자신이 살아있는 듯한 희열도 느꼈다. 

수천 명 앞에서 사회를 보다
2012년 3월, 말라위에서 한국으로 귀국한 안해석 씨는  아프리카에서 겪은 뜨거운 열정만큼 한국에서도 학업과 문화행사를 겸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대학생들이 쉽게 경험할 수 없는 대형 행사 사회를 맡으며, 전국 10개 도시 행사에서 가족, 친지, 친구, 교수님 등 수천 명이 참석하는 ‘귀국발표회’에서 여섯 번이나 사회를 보았다. 무대에서 상황을 즐기고 진정성이 담긴 목소리로 관객들에게 호소했던 그는 이제는 예전과 달리 사람들 앞에서 크게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는 누구와도 눈을 맞추며 이야기를 나누고 들을 수 있는 담력이 생겼다.

멘토 강연자 못지 않는 바쁜 대학생활
2012년 4월 홍익대학교 문화 거리행렬에서는 시민들과 흥겹게 다문화를 나눴고, 2012년 7월에는 각국 장관들이 참여하는 대학생 리더스 포럼을 주최했다. 영어로 기획, 발표를 준비하며 누구보다 영어를 쓰는 쾌감을 느꼈던 그다. 올해도 부산에서 열리는 리더스 포럼을 좀 더 혁신적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2013년 4월,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열린 다문화 컬처에서도 사회를 맡았다.
이제 누구도 그를 내성적이거나 소심하다고 평가하지 않는다. 불과 2년 전과 180도로 달라진 안해석 씨는 계속 성장하고 있다. 누구보다 배로 노력하지만 늘 수포로 돌아갔다며 소심한 성격을 탓했던 그는 이제 달라졌다. 누구에게든 먼저 말을 걸고, 이야기를 경청하는 청년으로 성장한 것이다. 미래 꿈과 기회가 없는 아프리카 청소년들을 위해 아프리카 항공산업의 발전에 이바지하고 싶은 그는 오늘도 공부에 매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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