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 전 부사장 장동철

현대자동차에서 29년간 몸담았던 장동철 씨에게 직장생활 중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물었다. “후배로부터 ‘선배와 함께 일하게 돼 행복하다’는 말을 들었던 날이 생각나네요.” 그의 대답은 망설임이 없었다. 현직 시절, 리더의 주요 덕목으로 ‘소통’을 강조한 그는 매일 아침 직장 동료와 후배들을 생각하며 편지를 썼다. 그렇게 17년간 모인 편지가 무려 3,000통이 넘는다. 최근에는 후배들의 성원에 힘입어 편지를 엮어 책으로 출간했다. 직장에서 ‘다시 만나고 싶은 상사’, ‘어려울 때 찾아가는 상사’로 불렸다는 그를 만나서 ‘소통 비결’을 들어보았다.

장동철​​​​​​​ ​​​​​​​한양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했다. 현대자동차 신입사원으로 입사해서 인사팀장, 인사담당 전무를 역임하고 현대모비스 부사장에 이르기까지 만 29년간 근무하고 퇴임했다. 현직 시절 ‘즐겁게 일하는 직장’,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일에 몰입하는 업무환경’을 만드는 일에 가장 많은 에너지를 썼다. 퇴직한 지금 그는 평소 좋아했던 ‘여행’과 ‘글쓰기’에 공을 들이며 인생의 2막을 열어가고 있다.
장동철 한양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했다. 현대자동차 신입사원으로 입사해서 인사팀장, 인사담당 전무를 역임하고 현대모비스 부사장에 이르기까지 만 29년간 근무하고 퇴임했다. 현직 시절 ‘즐겁게 일하는 직장’,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일에 몰입하는 업무환경’을 만드는 일에 가장 많은 에너지를 썼다. 퇴직한 지금 그는 평소 좋아했던 ‘여행’과 ‘글쓰기’에 공을 들이며 인생의 2막을 열어가고 있다.

퇴직 후에도 후배들과 자주 연락을 주고받으시는지요.

고맙게도, 후배들에게 연락이 오네요. 만날 때마다 아침 편지를 화두에 올리며 출판을 제안해 줬는데 그 한마디가 힘이 되어서 출판까지 결심할 수 있었어요. 요즘에는 아내와 같이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코로나바이러스가 잠잠해진 후로 부지런히 해외여행을 다녔는데, 최근에 한국에 돌아오니 그리운 이들이 한번 만나 밥을 먹자고 하더군요. 직장에 다닐 때도 후배를 만나면 새로운 영감을 얻을 때가 많았는데,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오늘도 저녁에 만나기로 한 후배가 있는데 기대가 됩니다.

매일 아침 전했던 편지가 후배들에게 ‘통’한 걸까요.

상사가 매일 아침에 편지를 보내온다면, 부담스러울 수 있잖아요. 아마 실제 그랬던 후배도 분명히 있었을 거예요.(웃음) 다행히도 다수가 제 편지를 좋게 봐줬어요. ‘70%만 함께 해줘도 성공이다.’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편지를 쓰기 시작한 건 2003년부터였어요. 입사 13년 만에 인사 팀장이 되었는데, 조금 이른 승진이었어요. 며칠간 잠을 잘 이루지 못했습니다. 리더가 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거든요. 리더십과 관련된 책을 몇 권 구입해 읽었어요. 그러다 결론을 내렸죠. ‘조직원과 리더의 정서적 공감대가 잘 형성됐을 때 조직의 성과가 더 높아질 수 있다.’라고요. 정서적인 공감대를 형성해줄 것으로 제가 떠올린 방법이 바로 지극히 ‘클래식한’ 편지였어요.(웃음)

편지에 주로 어떤 내용을 담았나요?

편지를 쓸 때 나름의 규칙이 있었어요. 먼저, 아침에 일찍 출근해서 직원들이 오기 전에 마감했어요. 수신 대상은 조직 구성원들로 한정하고, 내용은 그날마다 떠오르는 이야기를 썼습니다. 업무 얘기는 철저히 배제했죠. 제 생각이나 가치관, 때론 저희 가족사도 편지에 담았어요. 후배들이 ‘아, 이분은 이런 생각을 하는구나.’ 하고 저에 대해 더 알 수 있다면, 목표를 달성한 것이었죠.

상사가 지시를 내렸는데, 그 지시가 불분명할 때가 있어요. 본인이 이해를 못했거나, 지시한 사람이 말을 잘못했거나 둘 중 하나죠. 그럴 때 필요한 게 ‘소통’이잖아요. 그런데 상사를 찾아가는 게 불편하면 ‘물어봤다가 핀잔이나 받을지도 몰라.’ 하고 자신만의 생각으로 일할 가능성이 커져요. 거기서 문제가 생깁니다. 언제든지 저를 찾아와 묻고 대화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것 같아요. 편지도 그중 하나였고요.

그는 튀르키예 카파도키아 여행 중 수많은 열기구가 새벽하늘로 떠오르는 장면을 사진에 담았다. 운이 좋은 편이었다. 열기구는 아무 때나 뜰 수 없다. 대기가 안정적일 때만 뜰 수 있다. 직장생활도 비슷한 점이 있다. 상사가 부하직원들을 먼저 믿어주어야 한다. 신뢰가 쌓였을 때 후배들도 개인의 능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다. 사진제공 장동철
그는 튀르키예 카파도키아 여행 중 수많은 열기구가 새벽하늘로 떠오르는 장면을 사진에 담았다. 운이 좋은 편이었다. 열기구는 아무 때나 뜰 수 없다. 대기가 안정적일 때만 뜰 수 있다. 직장생활도 비슷한 점이 있다. 상사가 부하직원들을 먼저 믿어주어야 한다. 신뢰가 쌓였을 때 후배들도 개인의 능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다. 사진제공 장동철

아침 편지 외에 다른 노력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회사 임원으로 일하던 시절, 시간이 날 때마다 직원들을 만나러 갔어요. 처음에는 파티션 아래로 고개를 숙이고 제 눈을 피하는 사람들이 많았죠. 그런데 하루, 이틀… 매일 찾아가니까 어느새 눈을 마주치며 대화하더라고요. 회의할 때는 팀원들의 의견을 최대한 수용했어요. 제가 책임질 수 있는 한에서, 회사에 해를 끼치는 일만 아니면 모두 오케이했죠. 누구든 자신의 의견이 채택되면 보람도 느끼고, 책임감도 생겨요. 반대로 그런 제가 ‘No’를 외치면 큰 충격에 빠지더군요.(웃음)

일하다 문제 상황이 발생할 때는 감정적으로 대하지 않으려 애를 썼어요. 담당자와 대화하면서 이 문제의 본질은 무엇인지, 왜 해야 하는지 정확히 전달하고 조용히 지원해 주었죠. 이외에도 결혼기념일을 챙겨준다든지, 회식 메뉴를 고르는 방법에 변화를 준다든지 여러 시도를 했어요. 사실, 제일 중요한 건 평소에 후배나 동료들이 ‘이 사람은 나를 진심으로 응원하구나!’, ‘소통하고 싶어하구나!’ 하고 느끼는 것이라 생각해요.

‘소통’을 잘하면 좋다는 건 누구나 알지만, 수십 년 동안 꾸준히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 건 쉽지 않은 일인데요.

조직에서 혼자 힘으로 100을 해낼 수는 없다는 걸 저는 잘 알아요. 아주 뛰어난 사람은 70까지는 할 수 있겠죠. 하지만 나머지 30은 구성원들과 함께 고민해야 하는 거예요. 저도 팀장이 되기 전에는 혼자서 묵묵히 제 일을 하는 사람이었어요. 말수도 적었죠. 그런데 팀장이 되니까 혼자서는 다 해낼 수가 없겠더군요.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걸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느꼈다고 표현할 수 있겠네요. 그러니 소통을 잘하는 것이 제게 큰 과제였죠.

그리고 조금 더 근본적인 이유를 찾는다면, 그렇게 살 수 있었던 건 저희 부모님 덕분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한 번도 “잘해야 해.” 혹은 “이건 안돼.” 하고 윽박지르신 적이 없어요.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제가 스스로 깨달을 때까지 기다려주셨어요. 첫 대입 시험에 낙방하고 방에 틀어박혀 있을 때가 있었어요. 그때 아버지가 조용히 문을 두드리고 괜찮다며 제 손을 잡고 밖으로 나오셨죠. 그런 사랑이 누군가와 대화할 수 있는 마음의 공간을 만들어 준 것 같아요. 또 섬세하게 구성원을 살피고, 그들을 기다려주는 것도 부모님께 배운 부분이고요.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여행에서 찍은 항구. 비슷한 듯, 각기 다른 모습의 배들이 줄을 맞춰 모이니 장관을 만들어낸다. 후배들에게 썼던 편지 중 이런 내용이 있었다. “다르다는 것 때문에 갈등을 느끼고 다소 불편하긴 해도, 때로는 그런 다름이나 다양성이 사회를 잘 돌아가게 하기도 합니다. 다름을 인정하며 더 넓은 세계로 향하는 당신이기를 바랍니다.” 사진제공 장동철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여행에서 찍은 항구. 비슷한 듯, 각기 다른 모습의 배들이 줄을 맞춰 모이니 장관을 만들어낸다. 후배들에게 썼던 편지 중 이런 내용이 있었다. “다르다는 것 때문에 갈등을 느끼고 다소 불편하긴 해도, 때로는 그런 다름이나 다양성이 사회를 잘 돌아가게 하기도 합니다. 다름을 인정하며 더 넓은 세계로 향하는 당신이기를 바랍니다.” 사진제공 장동철

가장으로서 가정에서도 소통을 잘 하실 것 같아요.

저희 가정은 세 아이와 우리 부부까지 다섯 식구입니다. 앞서 직장에서의 삶에 대해 말했는데요. 사실, 저는 무엇을 하든 가정이 첫 번째 순위였어요. 바쁜 와중에도 주말이면 항상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했죠. 또 저도 아이들에게 공부 잘하라는 말은 한 번도 한 적이 없었어요. 오랜 날 동안 제가 다정다감하고, 친구 같은 아빠인 줄 알았어요. 과거형입니다.(웃음) 지금은 아이들이 모두 성인이 되었는데, 하루는 “아빠는 좀 독선적인 부분이 있었어요. 우리를 잘 인정해주지 않아 속상할 때도 있었고요.”라고 말하는 거예요.

직장에서는 “부사장님처럼 저희를 인정해주는 분이 없습니다.”라는 소리를 들었는데, 집에서는 아니었나 봐요. 저는 그걸 전혀 몰랐어요.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생각해 봤어요. 직장에서 저는 늘 승진이 빨랐고, 많은 사람이 따라줬어요. 큰 굴곡이 없었죠. 또, 매일 마주하는 사람이 소위 ‘엘리트’라 불리는 청년들이었고요. 이런 저런 이유로, 사람을 바라보는 나름의 기준이 생겼던 것 같아요. 그 영향으로 아이들과 대화할 때 진정한 공감이나 위로, 인정을 못 해준 거죠. 또한, 우리가 직장 상사에게 기대하는 것은 크지 않아서 상사가 내게 조금만 마음을 써줘도 고맙지만, 가정에서 아이들이 아빠에게 기대하는 바는 훨씬 크잖아요. 아쉽게도 제가 거기엔 못 미친 거죠.(웃음) 언젠가 아이들이 그런 제 모습도 이해해 줄 날이 오겠죠?

소통 전문가도 가정에서 어려움을 느낀 적이 있다니 왠지 위로가 되네요. 마지막으로, 직장에서 ‘불통’으로 고민하는 분들에게 응원의 한마디를 부탁드립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들 사이의 소통은 더 어려워질 거예요. 과거와 달리 각자의 개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대입니다. 아이들도 개인의 생각, 개인의 행복이 중요하다고 배우죠. 그만큼 사람들의 생각과 성향은 더욱 다양해질 겁니다. 하지만 자신의 의견을 존중해 줄 때 보람을 느끼고, 자신을 응원하는 사람에게 고마워하는 건 다르지 않을 거라 봅니다. 리더의 자리에서 소통을 고민하는 분이라면, 그 해답은 결국 사랑, 애정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여러분들이 받았던 사랑, 따스함을 떠올려 보세요. 그리고 그걸 다시 후배들에게 전해보는 겁니다.

사회 초년생이나 나이가 어린 직원이라면, 여러분과 가치관이 다른 사람을 만날 때 마음 문을 조금만 열어봐요. 가끔은 ‘저 사람이 저렇게 하는 의도는 무엇일까?’ 하고 생각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도 영 힘겨울 때는 믿을 만한 선배 한 사람을 찾아봐요. 그리고 그냥 ‘너무 힘듭니다.’ 그렇게라도 표현해 보세요. 혹시 모르죠. 꽤 괜찮은 인생 선배를 얻게 될지요.

≪제법 괜찮은 리더가 되고픈 당신에게≫ 저자 장동철 씨가 직장 후배들에게 17년 동안 보낸 편지 3,000여 편 가운데 120여 편을 가려 담은 것이다. 성장하는 인생, 직장에서 일하는 방식과 태도, 리더십에 대한 고민, 가정 생활과 소소한 행복을 담았다
≪제법 괜찮은 리더가 되고픈 당신에게≫ 저자 장동철 씨가 직장 후배들에게 17년 동안 보낸 편지 3,000여 편 가운데 120여 편을 가려 담은 것이다. 성장하는 인생, 직장에서 일하는 방식과 태도, 리더십에 대한 고민, 가정 생활과 소소한 행복을 담았다

​​​​​​​그를 만나기 전, 그의 책을 구입해 읽었다. 일과 삶에 대한 다양한 주제의 편지가 있었는데, 가장 흥미롭게 읽었던 부분은 가정생활과 소소한 행복에 관한 편지였다. ‘아내를 응원합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수많은 후배에게 자신의 허물도, 자랑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인터뷰하던 날에도 비슷한 질문을 떠올렸다. 나도 소통이 어려울 때가 있더라며 소탈하게 고백하는 모습을 보면서.

속마음을 오픈하려면 마음의 공간이 필요하다. 상대방으로부터 어떤 공격이 들어올지 모르니까. 때문에, 마음 문을 닫는 걸 택하는 사람도 많다. 그런데 그는 어쩐지 자꾸 연다. 그러니 나도 입을 열어도 괜찮을 것만 같다.(그 때문일까? 장동철 씨에게 답신을 보내오는 후배들이 꽤 있었다.) 그가 했던 말을 다시 생각해본다. ‘사랑이 마음에 공간을 만들어준다. 받았던 사랑을 곱씹어보라. 그게 즐거운 소통을 만드는 가장 쉬운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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