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봉사, 스무살 그들의 선택_경험#2

1년 전, 코로나로 온 세계가 멈춰 있을 때 남다른 선택을 한 젊은이들이 있습니다.
166명의 굿뉴스코 해외봉사단원이 그들입니다.
얼마 전, 한국에 돌아온 단원들이 그곳에서 받아온 선물 보따리를 풀어놓았더군요. 떠올리기만 해도 벅차오르는 추억과 경험을 여러분께 전달해 드립니다.  편집자 주

 

무너진 꿈을 일으켜, 우크라이나에 용기를

해외봉사를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졌다. 독일은 유럽에서 가장 많은 우크라이나 난민을 받았고, 오펜바흐에 있는 우리 지부 또한 70여 명의 난민을 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우크라이나에서 만든 세계 최대 크기의 화물기 ‘므리야’가 러시아의 미사일 격추로 파괴되었다는 뉴스가 있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절망하지 않았고, 국민들 마음의 ‘므리야’(우크라이나어로 꿈을 뜻한다.)는 무너뜨릴 수 없다고 말했다. 이를 본 우리는 우크라이나 학생들과 함께 화물기의 이름을 딴 프로젝트를 만들었다. 전쟁 중에도 꿈을 잃지 않는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모습을 알리자는 취지로 세계문화댄스 페스티벌 참가를 결정하고, 공연할 팀원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런데 남자 무용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우크라이나 남자들은 전쟁 중 징집 대상으로 우크라이나를 떠날 수 없기 때문이다. 국가 위기 상황에서 당연한 일이지만, 우리는 난민들을 위로하기 위해 기획한 프로젝트 또한 국민 사기를 위해서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남학생들이 국경을 넘을 수 있는 방법을 계속 찾았다. 어디선가 문화부의 허가가 필요하다고 해서 공연 팀에 지원한 청년들의 허가 요청 서류를 우크라이나 문화부에 제출했다. 그리고 초조한 마음으로 남학생들은 국경으로 이동해서 기다렸다. 우여곡절 끝에 문화부에서 출국 허가를 받았다. 단, 무조건 대상을 받아 오라는 조건으로 말이다.

팀원들의 숫자가 채워지자, 하루도 빠지지 않고 밤낮으로 연습에 매진했다. 그런데 한 가지 난관이 더 있었다. 7월에 한국에서 열리는 세계문화댄스 페스티벌에 참가할 비행기값이 없었다. 우리는 4월부터 자선행사를 열어서 길거리 공연으로 모금을 벌였고, 마트와 식당, 기업들을 방문해 후원도 받았다. 다행히 60여 명의 비행기표가 다 마련되어 모두 함께 한국에 갈 수 있었다.

세계문화댄스 페스티벌에서 대상을 수상한 우크라이나 므리야 팀.
세계문화댄스 페스티벌에서 대상을 수상한 우크라이나 므리야 팀.

지난해 6월 30일, 전주에서 열린 세계문화댄스 페스티벌. 므리야 댄스팀은 전쟁의 참화 속에서도 꿈을 포기하지 않았음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그리고 상황이 하루 빨리 호전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무대에 올랐다. 우리의 진심이 관객들에게도 전해졌는지 공연하는 내내 관객들의 환호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커다란 우크라이나 국기를 힘차게 흔들며 하나가 된 우리의 마음이 공연장을 감동의 물결로 덮었다.

“대상은 바로 우크라이나 므리야 팀입니다!” 우리 이름이 불리자 모두 서로를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 이후 한국의 지상파 방송국을 비롯한 여러 언론에서도 취재를 했고, 뉴스에도 방영되며 국내 순회공연을 다녔다.

프로젝트를 무사히 마치고 독일로 돌아온 후, 우리는 므리야 댄스팀과 함께 곧바로 ‘미라클 칸타타 공연 투어’를 준비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3년 만에 열리는 이 행사는 유럽 봉사 지부의 대표적인 하반기 활동이다. 우리는 두 달여간 공연을 준비해 유럽 26개국 37개의 도시를 방문하며 크리스마스를 주제로한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특히 독일의 베르스도르프에서 250여 명의 우크라이나 난민들을 만났다.

행사가 끝난 뒤 난민들에게 감사 인사를 받을 때면 투어를 준비하며 쌓였던 피로가 눈 녹듯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그들의 행복한 미소가 지금도 생생히 떠오른다. 이제는 봉사 활동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진심으로 그들이 행복해지길 바라는 마음은 변함이 없다. 빠른 시일 내에 우크라이나 상황이 호전되어서 므리야가 다시 날아오르듯 우크라이나 난민들의 꿈도 계속되길 바란다!

글 김주용 독일 해외봉사 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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