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과 스페인에서 온 해외봉사자들이 전주에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코로나로 바깥 출입이 쉽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한국행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해 연락했고,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전주의 한 대안학교에서 그들을 만날 수 있었다.

4명이라서 시끌벅적할 거란 예상과는 다르게, 그들은 조용하고 차분했다. 한국에 온 소감을 물으니 “가장 한국적인 도시가 전주라고 생각했는데, 이곳에서 봉사할 수 있어서 기쁘다.”라며 짧게 한국말로 대답했다. 때론 자원봉사자로서 뿌듯하다가도, 한국이라는 생소한 문화와 4명의 각기 다른 취향에 눈물짓기도 했다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5년이나 10년 후, 한국은 이들의 삶 속에 어떤 의미로 남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그들의 동고동락同苦同樂을 엿보며 인터뷰를 진행했다.

4월호 커버스토리의 주인공은 한국으로 해외봉사를 온 봉사단원들이다. 나시카, 발레리아, 수비, 리나(왼쪽부터)는 3개월 전 한국을 찾았다. K드라마를 보다가, BTS를 좋아하다가, 결국 한국을 동경하게 되었다는 그들. 전주의 한옥마을에서 즐거운 한때를 카메라에 담았다.
4월호 커버스토리의 주인공은 한국으로 해외봉사를 온 봉사단원들이다. 나시카, 발레리아, 수비, 리나(왼쪽부터)는 3개월 전 한국을 찾았다. K드라마를 보다가, BTS를 좋아하다가, 결국 한국을 동경하게 되었다는 그들. 전주의 한옥마을에서 즐거운 한때를 카메라에 담았다.

한국으로 해외봉사를 온 이유가 궁금해요.

수비: 해외봉사를 오기 전부터 한국에 대한 관심이 많았어요. K드라마를 즐겨봤고, BTS 팬이었거든요. 자연스럽게 한국을 동경해서 2019년에는 혼자서 서울로 여행을 왔어요. 한국에 대한 판타지가 있던 터라, 드라마에서 보던 것들이 서울에 다 있을 것만 같았거든요. 실제로도 그랬고요.(하하) 여행을 마치고 다시 영국으로 돌아왔을 무렵,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었는데, 한국으로 해외봉사를 갈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는 거예요. 해외봉사를 가면 여행보다 깊게 한국을 들여다볼 수 있고, 영어를 가르치면서 한국어도 배울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심장이 막 뛰었어요. 그렇게 해외봉사를 오게 됐어요.

리나: 저도 수비와 마찬가지로 K드라마를 무척 좋아했어요. 그 덕에 기본적인 한국어를 배웠죠.(하하) 한국어 실력이 좋아질수록, 더욱 제대로 배워보고 싶더라고요. 그때 인스타그램에서 ‘한국어 수업’에 참여할 학생들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봤어요. 기회다 싶어서 얼른 신청했죠. 한국에서 해외봉사를 온 학생들이 제게 한국어를 가르쳐주었는데, 공부를 하면 할수록 한국 문화가 궁금하고, 꼭 한국에 가보고 싶었어요. 제게 한국어를 알려준 친구들이 해외봉사활동 프로그램으로 이곳을 왔으니, 저도 그 프로그램을 통해서 한국으로 가면 되겠구나 싶어서 봉사단에 지원서를 냈습니다.

나시카: 저 같은 경우엔, 리나가 학교 선배였는데요. 학교를 다닐 땐 전혀 모르는 사이였어요. 우연히 간 한국어 수업에서 처음 만났는데, 같은 학교에, 집도 가깝고, 무엇보다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사가 비슷하다 보니 가까워졌어요. 한번은 ‘한국으로 간다’는 리나의 말에, 저도 관심이 생겼어요. 그러나 이곳에 오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외국에 와서 봉사하는 단원들 때문이었어요. 매번 최선을 다해 가르치는 모습에 감동을 많이 받았거든요. 막상 이곳에 와서 이론으로만 접하던 한국 문화를 직접 겪고 배우니까 참 흥미로워요.  

발레리아: 저는 공부를 하고 싶어서 한국으로 유학을 왔어요. 몇 년 전 한국에서 열린 국제댄스페스티벌에 참석했는데요. 그때 ‘나중에 꼭 다시 오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지금은 대학교에서 공부하고, 그 외 시간엔 이 친구들과 같이 봉사활동을 하고 있어요. 한국어가 더 빠르게 늘기도 하고, 먼 타지에서 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보니 외롭지 않게 지내고 있어요.

한국에 대한 관심이 모두를 이곳까지 오게 했군요. 직접 와보니 어떤가요?

나시카: 영국에서는 웃어른들에게 예의를 갖추는 문화가 거의 없어요. 그런데 한국은 어른들을 대하는 예절이 있더라고요. 높임말을 사용하는 것 외에도 행동이나 몸에 배인 습관들을 보며 하나씩 배우는 중이에요. 그리고 영국에선 알지 못하는 사이면 그냥 지나치기 마련인데, 한국에선 친근하게 먼저 ‘언니’ 하며 다가와주어서 정말 깜짝 놀랐어요. 지금은 저도 모르게 ‘이모’, ‘삼촌’, ‘언니’, ‘오빠’ 하면서 먼저 다가가 말을 겁니다.

리나: 저 역시 학생들이 저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서 인사 예절이나, 높임말을 배우곤 하는데요. 가장 놀랐던 건 인사성이 정말 밝다는 거예요. 제가 만나는 대상이 학생이고, 제가 선생님이다 보니 그럴 수도 있는데요. ‘만날 때마다 인사를 하는 게 맞는 건가?’ 싶을 정도예요. 그만큼 인사를 중시하는 걸 많이 느껴요. 그리고 그 다음으로 놀랐던 것 중의 하나가 교육 시스템이었어요. 영국이나 스페인에선 모든 학생들이 아닌 대학을 가고 싶은 학생들이 공부를 해 열심히 하는 반면에, 한국 학생들은 대부분이 공부를 열심히 하더라고요. 스페인어는 생소해서 학생들이 어려울 법도 한데, 발음이나 단어를 항상 먼저 물어봐서 신기했어요.

한국의 교육열이 높은 편이긴 합니다. 생소한 문화도 있지만 적응하기 어려운 문화도 있을 것 같아요.

발레리아: 한국은 좌식문화가 있다 보니, 어딜 가든 자주 바닥에 둘러앉아요. 아빠다리도 배우고 엄마다리도 배웠는데, 몇 분만 지나도 다리가 저리고, 허리가 아파서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요.(하하) 어느 날 저녁, 방에 들어가서 보니 우리 다 복숭아뼈가 똑같이 빨갛게 물들었더라고요. 지금은 다들 없던 굳은살이 복숭아뼈에 생겼어요.(하하)

리나: 이건 한국 문화에 적응하면서 겪는 어려움은 아닌데요. 저희 4명이 같이 살고 있어요. 저랑 나시카는 학교 선후배로 만나서 여기까지 같이 왔고, 그러다 보니 서로의 성격도 잘 알고 가장 친해요. 그래서 나시카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알고 있는 줄 알았는데, 이곳에서 자주 티격태격해요.(하하) 수비랑 발레리아의 경우에는 성격이 유연한 편이라, 뭔가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올 때 “너희가 먼저 좋은 거 선택해.” 하는 편이죠. 저랑 나시카는 양보하는 편은 아니라서 그런 거 같아요. 티격태격하고 난 다음에는 둘 다 고집이 세서 서로 하고 싶은 말은 많고, 듣고 싶은 말은 없죠.(하하) 이제는 무언가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공평하게 가위 바위 보를 해서 결정해요.

나시카: 같이 살다보니 서로 이해해줘야 하는 면이 있는 반면 지켜야 하는 부분도 있잖아요. 그런데 제가 정리정돈을 잘 못해서 친구들에게 피해를 주는 일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또 제가 고집이 세다 보니까, 제 잘못인 걸 알면서도 앞에서 인정을 잘 안해요. 괜히 자존심이 상해서요. 이야기하기 싫어서 입을 닫고 했는데, 그때마다 친구들이 많이 힘들어했죠. 그런데 서로 안보면 괜찮을 거 같은데, 계속 같이 지내야 하잖아요. 밥도 같이 먹고, 잠도 같이 자고, 봉사도 같이 하고요. 이런 갈등을 피하지 못하고 계속 마주하는 게 힘들더라고요.

누군가와 같이 산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에요. 피치 못한 갈등이 생길 때 어떻게 해결하나요? 

수비: 같이 산다는 건, 정말 새로운 경험이에요. 이곳으로 오기 전까지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더라고요.(하하) 서로 갈등이 생기는 이유는 무척 사소해요. 옷을 아무데나 벗어둔다든지, 쓰레기를 치우지 않는다는 등의 이유죠. 갈등이 생기면 우선 이야기해요.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말해주고요. 서로 맞춰야 하는 부분은 조율하기도 해요.

다만 불평으로만 끝나지 않게, 충분히 대화하는 편인 거 같아요. 이때 누군가가 속상해서 입을 닫지 않게 하는 게 관건이죠. 모두가 다 ‘네가 잘못했어, 이런 게 틀렸어’라는 지적을 받으면 자존심 상하잖아요. 그런 점을 염두에 두고 이야기하니까 진짜 가족이 되어가는 기분이에요.

발레리아: 방금 이야기한 것처럼 같이 지내고 이야기하다 보니까, 혼자 숨어서 울고 싶어도 울지를 못해요. 자연스럽게 내가 왜 눈물이 나는지 설명해야 하는 상황이 오더라고요. 스페인에 있을 때 가장 친했던 친구들과도 이런 말을 하지 않았는데, 여기서는 자꾸 내 속에 있는 생각을 꺼내야 하고, 서로 이해한 게 맞는지 확인하다 보니, 말을 많이 하게 되는 거 같아요. 그런데 이렇게 해보니까, 혼자 생각하고 혼자 판단했던 때보다 훨씬 좋은 점을 많이 느껴요. 오해도 없어지고, 상황이나 감정이 깔끔해지거든요. 사실 숨기고 싶은 저만의 콤플렉스가 있었는데, 이미 다 들켜버려서 숨길 게 없어요. 그래서 더 편해진 것 같아요.

쉽지 않은 경험을 하고 있네요. 고향에서는 어떻게 지냈나요?

리나: 저는 감정의 기복이 심한 편이에요. 특히 꽁꽁 싸매고 있던 제 이야기를 꺼내려고 하면, 갑자기 눈물이 흐르고, 긴장이 돼서 심장이 빠르게 뛰어요. 그래서 엄마 말고 다른 사람한테 제 속마음을 꺼낸 적이 없어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엄마와 둘이 살았는데요. 갑자기 어머니가 많이 편찮으시더니, 세상을 떠나셨어요. 고등학생 때였는데 그때 처음으로 아버지와 살게 되었어요. 모든 일이 제겐 갑작스러웠어요. 그렇게 저의 유일한 친구였던 엄마가 사라지고 난 뒤엔 그 누구와도 깊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고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며 혼자 다녔어요. 제 주위에 있는 친구든, 가족이든, 선생님이든… 누구든지 간에요.

그 당시 제 유일한 낙이 한국 드라마를 보는 일이었어요. 한국에 오기 직전까지 그렇게 지냈죠. 정확히 말하면 지금도 그런 편이에요. 이 이야기를 하는 동안에도 눈물이 나네요. 그런데 수비와 나시카, 발레리아를 만나면서 말이 많이 늘었어요. 이렇게 말 많고, 자기표현을 잘하는 친구들은 처음이거든요. 이 친구들 덕에 저도 조금씩 표현하는 법을 배우고 있어요.

수비: 저는 영국에서 두 얼굴의 여자였어요.(하하) 가족들 앞에서는 착하고 말 잘 듣는 딸이었지만, 친구들을 만나면 파티에 가고 술을 마시고… 이렇게 사는 게 훨씬 재밌어서 그 삶을 즐기면서 지냈어요. 원하는 대로 살면서도 일요일에는 교회를 갔고요. 가족한테는 제 모습을 숨기고, 밖으로는 제 마음대로 살다 보니, 제가 원하는 대로 일이 흘러가지 않으면 화를 내기 일쑤였어요. 화를 내도 마음대로 안되면 그냥 관계를 끊어버리거나, 포기해버렸죠. 그런데 한국에서는 제가 원하는 대로 안되는 게 태반이에요. 한국에서 배운 것 중 하나를 꼽는다면 ‘인내심’이에요. 일이 잘 안풀릴 때 다시 생각하고, 기다리고, 해결책을 찾다 보면 조금씩 일이 해결되고, 생각이 조금씩 깊어지더라고요. 제 마음대로 살았을 때는 끝이 항상 공허하고 외로웠는데, 이곳에서는 그런 갈증이 해소되는 걸 많이 느꼈어요.

발레리아: 저는 스페인에 있을 때 가족들의 보살핌 속에서 별다른 어려움 없이 지냈어요. 필요한 게 생기면 가족들이 챙겨주었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발 벗고 해결해주었죠. 그런데 코로나 팬데믹이 발생하면서 많이 우울하고 무서웠어요. 이 문제는 가족들이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잖아요. 밖을 나서는 것도 무섭고, 친구들도 만나지 못하고, 평범한 일상이 무너지니까 두렵더라고요. 그 와중에 한국으로 유학을 와보니, 언어도 안 통하고 저를 챙겨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더라고요. 그때 처음으로 ‘내 주변에는 항상 나를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었구나.’를 깨달았던 거 같아요. 지금은 이 친구들 덕분에 한국어 실력도 많이 늘고, 모르는 걸 물어볼 수 있어서 잘 지내고 있어요. 

나시카: 13살 때부터 가족들과 떨어져 기숙사가 있는 학교에서 지냈어요. 그러다 보니, 혼자 사는 게 익숙하고, 웬만한 일들은 혼자 알아서 해결하는 버릇이 있어요.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게 어색하고요. 그런데 지금 이곳에서 함께 사는 훈련을 받는 거 같아요. 혼자 살아온 시간이 길어서인지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하지만,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게 좋아요. 물론 남을 배려해야 하는 부분을 미리 배웠어야 했는데, 배우지 못해서 미안하기도 하지만요.

아직 한국에 머물 시간이 많이 남았습니다. 이 시간이 여러분들의 미래에 어떤 의미로 남을 것 같나요?  

수비: 제 미래를 아직 알 순 없지만, 현재 삶을 충실히 배워나가고 싶어요. 한국어도 그렇고, 함께 사는 법도 그렇고요. 아직까지는 제가 뭘 하고 싶은지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이렇게 배우다 보면 어느새 꿈이 하나 생기지 않을까요? 이 시간은 ‘제 스스로를 찾아가는 시간’으로 남을 것 같아요.

리나: 저는 소심한 성격에다가 부끄럼도 많아요.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낯도 많이 가리고요. 처음 이곳에 와서 자기소개를 할 때도 얼마나 떨었는지 몰라요. 그런데 학생들을 가르치며 앞에 서다 보니 어느새 말도 잘하고, 아이들을 대하는 것도 많이 늘었어요. 여전히 많이 부족하지만 ‘안돼’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하고 있는 자신을 보니, 이 시간이 제 삶을 ‘해보자’라는 방향으로 이끌어갈 것 같아요. 

발레리아: 제가 살기엔 스페인이 더 편하지만, 이곳에서 배운 것들이 훨씬 많아서 앞으로도 차근차근 배우고 싶어요. 제가 감사해야 할 손길이 얼마나 많은지 알고 나니, 앞으로도 이렇게 도움을 받으며 살면 되겠구나 싶어요. 그리고 학생들을 가르치며 느끼는 보람이 크더라고요.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게 쉽지 않은데 포기하지 않고 배우는 학생들처럼, 저도 포기하지 않고 봉사활동도, 학업도 무사히 마치고 싶어요.

나시카: 저는 남을 돕는 일을 항상 동경해왔어요. 학교 다닐 때는 응급구조대원이 되고 싶어서 공부했었는데, 이곳에 오니까 실무를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남을 도울 수 있는 마음 형성이 더 중요하더군요. 한국에서 해외봉사를 하는 동안 남을 배려하는 태도, 어려움을 넘는 방법을 배우다 보면, 남을 돕는 역량을 갖추지 않을까 싶어요.

인터뷰를 마치고 기자는 “한옥마을에는 자주 갔어요?”라고 물었다. 그들은 “매번 갈 기회가 생길 때마다 주변에 코로나 확진자가 나와서 아직 한 번도 못갔어요.”라고 답하며 아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렇게 그들과 한옥마을로 향했다.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조용하고 차분했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아이처럼 마냥 즐거워했다. 궁금한 것이 생기면 서툰 한국말을 써가며 이것저것 내게 물었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인터뷰하러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봄이 오면 자연스레 겨울이 물러가듯, 따뜻한 봄날의 외출은 코로나로 움츠려진 일상에 활력을 넣어주며 아쉬웠던 마음을 포근히 달래주었다. 일정을 마치고 다시 서울로 올라오는 차 안에서 기자는 “한국에서의 1년은 제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습니다.”라며 지금을 추억할 그들을 상상해보았다. 미래에 어떤 일을 하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지금 이 시간이 밑거름이 되길 바란다.

취재 최지나 기자  사진 박종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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