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이와 눈을 마주치며 웃고 있는 남학생, 너도나도 손을 힘차게 들고 있는 아이들, 이런 모습을 뚫어지게 보는 또 다른 아이들…. 3월호 표지 사진은 이런저런 호기심을  자아낸다. ‘저 남학생이 어떤 재미난 이야기를 하는 걸까?’ ‘아이들은 무슨 발표를 했을까?’ 이 사진의 주인공은 지난해 우간다로 해외봉사를 다녀온 하경훈 씨다. 그가 어떤 인연으로 사진 속 아이들을 만나게 된 것인지 따라가 보자.

봉사 기간이 끝나가는 무렵, 나와 단원들은 우간다의 ‘라카이’라는 지방으로 마지막 체험 여행을 떠났다. 우리를 좋게 봐주신 분의 소개로 어느 초등학교에서 아카데미 수업을 할 수 있었다. 아이들에게 노래와 율동을 알려주겠다고 했더니, 순식간에 80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모였다. 내가 하는 말이 잘 들리지 않았는지 아이들이 나를 빙 둘러쌌다. 우리가 준비한 노래는 ‘올챙이와 개구리’이었다. 아이들에게 노래를 한 소절씩 가르쳐준 후, 배운 내용을 발표해 볼 사람이 있느냐고 묻자 너도나도 손을 들었다. 아이들은 내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최선을 다해 배우려 했다. 삐걱거리는 나의 몸짓을 반짝거리는 눈망울로 보고, 환호해주던 그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라카이에서 지냈던 시간을 돌아보면, 단수로 물이 안 나오고, 길을 잃는 등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많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일들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예상하지 못한 즐거움이나 감사도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런 즐거움을 알게 되기까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 내게 필요했다.

중고등학교 시절, 나는 방송부 활동을 했다. 처음에는 ‘방송’과 관련된 일이 좋아서 시작한 일이기에 즐겁게 활동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부담이 늘어갔다. 교칙 상 방송부에서 활동하려면 성적이 좋아야 했고, 평소 행실도 바른 모범생이어야 했다. 방송부는 공부든 일이든 다 잘하는 부서라는 이미지가 굳어져 있었다. 그게 나쁘지 않았고, 어느새 나는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이런 삶의 방식은 대학 입학 후에도 계속되었다. 학업과 다양한 대외활동을 병행했는데, 무엇을 해도 스트레스, 부담으로 다가왔다. 시간이 지날수록 지쳤고, 그런 삶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방법을 궁리하다 찾은 것이 해외봉사였다. 외국에 나가 자유롭게 남 돕는 일을 하다 보면 마음의 여유를 찾을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아프리카 우간다로 떠났다.

우간다 명소 중 빼놓을 수 없는 곳이 ‘퀸 엘리자베스 국립공원’이다. 봉사단 식구들과 함께 이곳을 방문했을 때 사파리 차 안에서 숨죽이며 사자를 지켜봤다.
우간다 명소 중 빼놓을 수 없는 곳이 ‘퀸 엘리자베스 국립공원’이다. 봉사단 식구들과 함께 이곳을 방문했을 때 사파리 차 안에서 숨죽이며 사자를 지켜봤다.

나는 왜 이곳에서도 괴로운 거지?

출발할 때 겨울이었던 한국과 달리, 도착한 우간다는 더운 여름날이었다. 대부분 콘크리트 바닥이 아닌 흙바닥이었고, 하늘과 자연은 무척 아름다웠다. 현지인들의 생김새와 분위기, 언어 등 모든 것이 한국과 달랐다. 처음에는 다른 세계로 온 것 같아 신기하기도 했지만, 이러한 ‘다름’이 내 마음에 자유를 주지는 못했다.

우간다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첫 번째 체험 여행을 떠났을 때였다. 여기에 오기 전, 나는 해외봉사단 선배들로부터 ‘체험 여행’에 대해 익히 들었다. 이를 통해 소중한 친구도 사귀고, 박진감 넘치는 경험을 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내가 마주한 현실은 달랐다. 여행에 동행했던 현지인 친구의 행동이 산만하게 느껴졌다. 하필 우리가 찾아간 곳이 그 친구의 고향이라 중간에 친구를 만나러 간다고 사라지는 등 돌발행동을 했다. 또한, 언제 어디에서 보자는 약속을 해도, 한두 시간 늦는 것이 기본이었다. 이것을 일명 ‘아프리카 타임’이라고 하는데, 시간 개념이 달라서 나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이런 나날이 계속되자, 나는 지부장님께 전화를 걸어 울분을 토했다. 지부장님의 답변은 이랬다.

“경훈아, 같은 상황이라도 우리가 마음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전혀 달라. 현지인들이 시간을 제대로 안 지키는 단점이 있지만, 분명히 장점도 많이 있어. 네가 그걸 찾아보면 좋겠다.”

사실 처음에는 ‘그래도…’ 하며 지부장님에게 나의 상황을 더 설명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게 큰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친구의 장점이 무엇인지 꼽아보았다. ‘그 친구가 늘 먼저 우리가 잘 곳과 먹을 음식을 고민해주고 알아봐 주었잖아. 그 덕분에 활동할 수 있었어.’ ‘그 친구가 현지어로 통역해주지 않았다면, 현지인들과 대화도 한번 못했을지도 모르잖아.’ 생각을 아주 조금 바꾸어 보니, 그를 쉽게 판단하고 싸우려 했던 나의 경솔한 모습이 보였다. 아무튼, 그 덕분에 나는 여행을 별 탈 없이 마치고 잘 돌아올 수 있었다.

컴퓨터 아카데미 수업을 맡아 진행했다. 내 말을 놓치지 않으려 열중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컴퓨터 아카데미 수업을 맡아 진행했다. 내 말을 놓치지 않으려 열중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체험 여행 이후 며칠은 별문제 없이 지나갔다. 하지만 그 평화는 얼마 가지 못했다. 나는 우간다에서도 방송과 관련된 활동을 담당했다. 코로나로 인해 대부분의 행사를 온라인으로 진행했기에 해야 할 일이 매우 많았다. 방송일을 함께 맡은 현지인들은 장비를 제대로 다룰 줄 몰랐고, 내가 하나하나 알려주면서 일해야 했다. 처음에는 화기애애한 분위기였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갈등이 심해졌다.

“왜 이렇게 늦게 오는 거야?” “내가 이야기했는데 왜 안 하지?” “이러니까 문제가 생기잖아!” 그뿐만이 아니었다. 행사 진행을 위한 모든 준비를 해두어도 갑자기 정전되거나 인터넷이 끊기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런 일을 당할 때면, 나를 나무라는 사람이 없음에도 무척 괴로웠다. “잘할 수 있었는데! 환경이 받쳐주지 못해서 이렇게 된다니까!”

행사 몇 분 전에 전기가 나갔던 어느 날,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나를 보며 무엇인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의 여유, 자유를 얻기 위해 이곳에 왔는데 나는 왜 또 괴로운 거지?’

모르면서, 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고민 끝에 지부장님을 찾아갔다.

“아프리카에 온 지 몇 달이 됐는데 이곳에서 저는 또 스트레스받고 괴로워하고 있어요. 이렇게 살고 싶지는 않아요.”

지부장님은 그날 내게 이런 이야기를 하셨다.

“아주 간단해. 우리는 잘하는 것도 있지만, 못 하는 것도 있어. 그런데 사람들은 부족한 점들을 쉽게 잊고 잘하는 것만 기억하곤 해. 그렇게 되면 타인을 쉽게 판단하고, 불평할 수밖에 없어. 주변 사람들과 흐르지 못하고, 무척 좁아지는 거야.

그런데 자신이 부족한 부분이 있다는 걸 마음 중심에 두는 사람은 누구를 만나도 배우려는 마음을 가져. 그리고 그런 자신을 품어주는 사람들에 대한 감사를 느끼며 살아. 그래서 연약한 사람들을 만나면 품을 수도 있지. 그런 사람들은 자신이 넘어져도 괜찮으니까 새로운 일에 쉽게 도전하면서 넓어지게 돼. 경훈아, 어떤게 더 좋은 것 같아? 아프리카 사람들은 좀 부족해도, 이곳에서 감사를 느끼고 자신만 아니라 타인을 돌아보면서 살아. 네가 잘하는 것도 있지만, 부족한 부분들도 있어. 네 마음의 위치를 그곳에 둔다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어.”

사실 ‘마음에 따라 삶이 달라질 수 있다’라는 말은 지부장님이 늘 우리에게 하시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나는 안다고 착각하고, 한 번도 배워보려 한 적이 없었다. 처음으로 진지하게, 지부장님이 해주셨던 이야기를 하나하나 깊게 생각했다.

‘나는 마음의 위치를 어디에 두고 있었지?’ ‘왜 배우려는 마음은 갖지 못했을까?’ 내 마음 중심에는 내가 괜찮은 사람,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 있었다. 그 때문에 주변 사람들을 무시하고, 상처 주고, 불편하게 만들고 있었는데 정작 나는 그걸 보지 못하고 있던 것이다. 그 사실을 발견하니 그런 나를 따라주고, 나를 이해해주었던 현지인들이 고마웠다. 불평불만뿐이던 내 마음에 감사라는 마음이 생기다니, 신기한 일이었다.

우간다 최대 방송국 NTV가 봉사단에게 유익한 프로그램을 공유해주어 고맙다는 뜻으로 감사장을 수여했다.
우간다 최대 방송국 NTV가 봉사단에게 유익한 프로그램을 공유해주어 고맙다는 뜻으로 감사장을 수여했다.

우간다에서 받은 도전과제

하루는 지부장님께서 나를 부르시더니 “우리가 청소년들을 위해 제작한 좋은 영상들이 많은데, 이걸 우간다의 방송국에서 방영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나랑 방송국에 가보자.”라고 하셨다. 며칠 뒤 나는 지부장님과 함께 우간다에서 가장 큰 방송국인 NTV라는 방송국의 사장을 만나러 갔다. ‘이게 과연 될까?’ ‘안되면 어떡하지?’ 무척 떨렸다. 그분은 처음에 우리를 경계하는 듯했지만, 봉사단이 우간다에서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영상에 담긴 내용이 무엇인지 확인하시곤 흔쾌히 승낙해 주셨다.

그날 나는 지부장님과 다른 방송국들을 찾아다니며 영어로 우리를 소개했다. NTV처럼 방영을 그 자리에서 승낙해 주는 곳도 있지만, 끝까지 거절하는 곳도 많았다. 하지만 지부장님은 실망하거나 자책하지 않고 또 다른 곳으로 가서 문을 두드리셨다. 그날 지부장님과 함께 다니며 그런 생각을 했다. ‘지부장님도 거절을 당하는구나. 왜 나는 모든 결과가 좋아야만 한다고 생각했을까? 실패해도 또 다시 두드리면 되는구나.’ 내가 우간다에서 지내며 잘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게 아니라, 좀 못해도 배우면 되겠다는 생각이 드니 마음이 편해졌다. 그날 이후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익숙한 일보다 낯설고 때론 어려운 일에도 도전하기 시작했다. 예상하지 못한 어려움도 만났지만, 그게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제야 나는, 해외 봉사에서 찾고 싶었던 진짜 마음의 자유를 느낄 수 있었다.

‘라카이’ 체험 여행 중 방문한 초등학교에서 아카데미 수업을 마친 후 기념사진을 찍었다. 푸른 자연만큼이나 아이들의 미소가 아름다웠다.
‘라카이’ 체험 여행 중 방문한 초등학교에서 아카데미 수업을 마친 후 기념사진을 찍었다. 푸른 자연만큼이나 아이들의 미소가 아름다웠다.

그렇게 좁은 시각에서 벗어나니 주변 사람들의 마음이 보였다. 지부장님은 우간다에 학교를 지어 배움의 기회가 더 많아지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자주 하셨다. 실제로 우간다 학생들은 배울 기회만 있으면 어디든 몰려들었다. 그런 모습을 계속 보니 어느새 내 마음에도 같은 꿈을 꾸고 있었다.

몇 달 전 나는 우간다에서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젠 그리운 얼굴을 더 이상 보지 못하기에 섭섭한 마음도 있지만, 우간다에서 받은 또 하나의 ‘도전과제’를 시작하는 기분도 들었다. 마음에서 이런 소리가 들렸다. ‘나를 위해서 공부하고, 돈 벌며 살 수도 있지만, 무엇이든 학생들을 위한 학교를 짓겠다는 마음으로 해보자. 실패하면, 뭐 또 두드려 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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