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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낯에도 내가 아름다운 이유
서수빈 | 승인 2020.06.17 09:04

‘저 사람은 날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중학생 때부터 나에겐 이상한 버릇이 있었다. 친구들부터 편의점 알바생, 버스 혹은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사람들까지…, 나는 사람을 마주할 때면 습관적으로 나와 외모를 비교하며 그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걱정했다. 특히 나에게 불친절하게 대하는 사람을 만나면 그 모든 것이 내 부족한 외모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학창 시절, 통통한 편이었던 나는 학교 복도를 지나갈 때 주위 친구들이 ‘뚱뚱하다’며 수군거리거나, ‘못생겼다’며 비웃는 것을 등 뒤로 느끼곤 했다. 그때부터 나의 열등감이 시작되었고, 이를 가리려고 옷과 화장법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대학생이 되어선 화장하지 않은 얼굴로는 절대 밖에 나가지 않았다. 아르바이트를 해서라도 내가 원하는 옷은 모두 사야만 했다. 하지만 내 마음속 공허함과 자괴감은 커져만 갔다.

혼자 있는 시간에는 휴대폰을 놓지 않고 SNS를 통해 예쁜 사람들을 구경하기에 바빴다. 수업도 제대로 듣지 못해 내용을 놓치기 일쑤였고, 24시간 동안 외모에 대한 고민만 하고 있는 내 모습이 한심하고 점점 지긋지긋해졌다. 새로운 행복을 만나고 싶었던 나는 아는 사람의 추천으로 해외봉사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고, 아프리카 짐바브웨로 1년간 해외봉사를 떠났다.

피부도, 마음도 그곳에선 모두 ‘무장해제’

짐바브웨에 가자마자 나는 그동안 나의 실체를 ‘숨겨 주었던’ 옷, 화장품과 이별했다. 무더운 날씨로 흘러내리는 땀 때문에 옷은 최대한 가볍고 잘 마르는 걸 입어야 했고, 화장 역시 지속성이 떨어져 어쩔 수 없이 민낯으로 다녀야 했다. 처음에는 나를 보는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질 때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숙이거나 돌렸다.

무전여행을 떠났다가 내 생에 가장 긴 발표를 영어로 해냈다. 어설픈 첫 도전이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다.

짐바브웨에 간 지 한 달 즈음, 시골 마을로 무전無錢체험여행을 떠났다. 히치하이킹으로 목적지까지 도착했고, 두 발이 닿는 곳이라면 어디든 다녔다. 우리는 굿뉴스코 봉사단의 활동을 소개하고, 짐바브웨에서 느낀 점에 대해 발표하거나 한국어를 가르치는 수업을 열기도 했다.

낯선 곳을 여행하는 즐거움도 있었지만, 영어 실력이 그리 좋지 않았던 나에겐 미션 수행이 만만치 않았다. 한번은 버스에 올라타 승객들에게 봉사단에 대해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영어로 빽빽하게 적은 노트를 힐끔힐끔 보며 겨우 내 소개만 마쳤는데, 식은땀이 흘렀다. 부족한 영어 실력에 부끄러워지려던 그때, 갑자기 박수와 호응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어보니 승객들이 다 초롱초롱한 눈으로 내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었다. 작은 이야기에도 반응해주는 사람들 덕분에 나는 아주 즐겁게 발표를 다 마칠 수 있었다.

하라레 중앙 교도소에서 댄스 공연을 했다. 우리의 서툰 공연에도 재소자들은 순수한 웃음으로 화답해주었다(빨간 셔츠 차림이 필자).

이 여행을 했던 2박 3일 동안 만난 짐바브웨 사람들은 매우 신기했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이고, 돈 한 푼 없는 외국인들에게 ‘이곳까지 찾아와줘서 고맙다’고 환영하며 자신이 먹어야 할 음식을 우리에게 나눠주고, 친구가 되고 싶어 했다. 우리가 만났던 사람들 중 나의 외모가 어떠한지 혹은 내가 돈이 얼마나 많은지, 영어를 잘하는지 등 조건을 따져 나를 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가난해도 밝고 사람과의 만남을 소중히 여기는 짐바브웨 사람들을 만나며 나는 자신을 처음으로 돌아보았다. 나는 늘 사람들이 어떻게 볼지에 대해 걱정만 했고, 주변 사람 생각은 할 줄 몰랐던 것이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날까지 나는 화장을 거의 하지 않고 지냈지만, 짐바브웨 사람들의 마음을 만난 뒤로는 나의 민낯이 전혀 부끄럽지 않았고, 자유로웠다.

나도 몰랐던 나의 숨겨진 모습

나를 포함한 짐바브웨 해외봉사단원들은 1년간 학생들부터 고아와 노인 등 취약계층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위해 봉사활동을 했다. 월요일엔 고아원 교육봉사, 수요일엔 고등학교 교육봉사…. 요일별로 정해진 활동들을 했는데 나는 화요일을 가장 기다렸다. 짐바브웨 수도 하라레에 위치한 중앙교도소에서 재소자 대상으로 ‘원데이 수업’이 열리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어 아카데미’ ‘음악 아카데미’ ‘태권도 아카데미’ ‘마인드 교육’ 등을 진행했는데, 나는 한국어 수업을 맡았다. 교도소에서 수업을 한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땐 두려운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하지만 첫 수업이 열린 날, 어린아이같이 순수한 재소자들의 모습을 보며 생각이 달라졌다. 그들의 개인적인 사연을 직접 들어보진 못했지만, 희망이 움트기 어려운 삶을 살고 있는 그들에게 새로운 마음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벅찼다. 수업을 마칠 즈음 학생들이 나에게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하고 큰소리로 인사해주던 모습, 한국 드라마의 OST를 다 함께 부르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어린이 캠프를 진행하면서 강아지 모양, 하트 모양 풍선을 나눠주자 나는 인기 선생님이 되었다.

그레이스의 깜찍한 발언

한국에서 난 내가 많은 것을 가져야, 잘나야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원하는 것들을 나름 누리며 살았지만 마음은 언제나 허전했다. 그에 반해 해외봉사를 하는 동안에는 민낯으로 다니고, 하고 싶은 것도 먹고 싶은 것도 절제하며 살았지만 현지인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감사를 느꼈고, 그들을 위해 땀을 흘리며 행복했다. 그곳에서 ‘나는 언제 진짜 행복한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

한번은 고등학교에서 봉사활동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배가 고파서 기운 없이 터덜터덜 걷고 있었는데 멀리서 그레이스가 나에게 달려와 내 손에 무언가를 쥐어주었다. 손을 펴보니 옥수수알이 한 움큼 가득 있었다.

“언니는 웃는 게 정말 예뻐. 내가 슬플 때 언니 눈을 보면 기분이 좋아져, 이거 먹고 힘내!” 웃으며 말하는 그레이스를 바라보며 나도 함박웃음을 지었다.

자랑한다고 할지 모르지만 나는 짐바브웨 사람들에게서 ‘웃는 모습이 이쁘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다. 풀 메이크업에 잔뜩 꾸민 모습이 멋진 모습이라고 생각했는데, 내 마음이 행복할 때 내가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 된다는 사실을 멀리 짐바브웨에 와서 알았다.

글쓴이 서수빈
지난해 아프리카 짐바브웨로 해외봉사를 다녀왔다. 한국에 돌아온 그는 이제 더 이상 외모 스트레스에 시달리지 않는다. 대신 학생들을 진정으로 행복하게 만드는 청소년 교육 복지사를 꿈꾸기 시작했다.

서수빈  info@dailytw.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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