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뉴스코 해외봉사단 우간다 송연주

아프리카 우간다로 해외봉사를 다녀온 송연주 씨. 봉사활동 사진 중, 그가 뽑은 최고의 사진은 네 남매와 함께 요리하며, 장난 치던 모습이 담긴 사진이었다. 사진 속 미소가 말하듯, 행복은 가까이에 있음을 알게됐다는 그에게 인터뷰를 청했다.

표지 사진의 느낌이 좋아요. 이때 뭘 만들고 있었나 봐요.

우선, 사진 인물부터 소개할게요! 주황색 옷을 입은 아이가 ‘죠비아’, 절굿공이를 들고 있는 ‘올리비에’, 아래에 손 하트를 만들고 있는 ‘엠마’, 제 품에 안겨 있는 아이가 ‘무꾸르’예요. 제가 한번은 ‘라카이’라는 지방에 파견받아 갔는데 그때 홈스테이하며 만났던 가족들이죠.

아주머니와 아저씨 그리고 네 명의 사랑스러운 아이들로부터 참 따뜻한 사랑을 받았어요. 그곳에서 지내는 동안 시간이 날 때마다 아이들에게 ‘토마토 송’ 등 댄스를 알려주며 놀거나 고민 상담도 해주곤 했는데, 정말 가까운 사이가 되었어요. 식사 준비도 종종 같이 했어요.

우간다의 주식인 ‘포쇼’는 옥수수를 빻아 고운 가루로 만들고, 여기에 끓는 물을 부어 반죽하여 만드는 음식이에요. 사진을 찍을 때 옥수수를 빻아 가루를 만들고 있었는데, 가루를 보자 장난기가 발동해 서로의 얼굴에 그림을 그리고 한참을 웃었어요. 그렇게 재미있게 현지 음식 만드는 법을 배울 수 있었지요. 우리나라에서 쌀밥을 짓는 것보다 몇 배는 어려웠던 것 같아요. 그 전에는 아무 맛도 나지 않는 포쇼를 먹는 것이 싫었는데, 직접 음식을 만들며 얼마나 많은 수고와 정성이 들어간 것인지 생각할 수 있었어요. 그 후 감사한 마음으로 포쇼를 먹을 수 있었답니다.

사진 속 표정이 무척 행복해 보이네요. 아프리카에 살며 힘든 것은 없었나요?

‘해외 봉사는 아프리카지!’라는 생각에 무작정 우간다에 가겠다고 마음 먹었는데, 실제로 우간다에 가보니 먹는 것, 씻는 것… 모두 불편해서 힘들기도 했어요. 하지만 현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금방 익숙해질 수 있었고, 정말 잘 지내다 왔어요.

두 번째로는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이 부담스럽고 싫을 때가 있었어요.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는 피아노 아카데미 진행, 독립을 기념하는 행사에서 10만 명의 관중들 앞에서 댄스 공연하기, 우간다 청소년들을 위한 캠프 기획 및 진행, 정부 관계자와 미팅을 하는 일 등 정말 다양한 활동을 했었어요. 처음엔 피하려는 마음이 컸지만, ‘내가 언제 이런 경험을 해볼 수 있을까. 도전을 즐기자!’ 하고 마음을 바꿨어요. 우간다에서 보낸 시간은 제 인생에서 두고두고 빛나는 추억이 될 것 같아요.

수많은 추억 중 가장 잊을 수 없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처음에는 모든 것이 불편했던 아프리카. 하지만 마음을 열자, 모든 것이 행복과 기쁨으로 다가왔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불편했던 아프리카. 하지만 마음을 열자, 모든 것이 행복과 기쁨으로 다가왔다.

하루는 단원들과 봉사활동을 하러 가는 길에 높은 파파야 나무를 봤어요. 열매가 주렁주렁 달린 게 신기하기도 하고, 배가 고파 먹고 싶은 마음에 길에 잠시 멈춰 서서 나무를 올려다보고 있었죠. 그런데 10살이 채 안 돼 보이는 어린아이들이 우리에게 다가와 파파야가 먹고 싶냐고 묻더니, 서로 파파야를 따주겠다는 거예요. 조그마한 아이들이 높은 나무 위를 맨발로 올라가 나무를 흔들었고, 한 아이가 떨어진 파파야를 줍더니 해맑게 웃으며 제게 달려왔어요. “내가 가장 먼저 파파야를 줬어!” 하며 기뻐하더군요. 그날 저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파파야를 먹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그 맛은 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행복’이란 늘 먼 곳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프리카에서 많은 친구들과 마음을 주고받으며 행복이 제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우간다에서 1년간의 해외봉사, 무엇을 배울 수 있었나요?

저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넌 너무 이기적이야’라는 말을 듣는 사람이었어요. 무엇이 문제인지 이해하지 못했죠. ‘남한테 피해 주지 않고 나만 잘 챙기면 되는 것 아닌가?’ 생각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다른 사람들을 돌아볼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 같아요.

우간다 사람들은 달랐어요. 제가 우간다에 처음 도착해 영어도 못 하고 우간다 음식에도 적응하지 못하고 있을 때, 우간다 사람들은 저에게 다가와 손짓 몸짓으로 말을 걸었어요. 저라면, 말도 안 통하고 답답하니까 대화하고 싶지 않을 것 같은데 그들은 계속 저를 찾아왔어요. 제가 표정에 변화만 있어도 “연주야, 무슨 일 있어? 나한테 말해 봐.” 하고 관심을 보였죠.

라카이라는 지역에서 어린이캠프를 했을 때, 페이스 페인팅을 담당했다. 100여 명의 아이들이 찾아 왔는데, 아이들이 기뻐하는 모습에 힘든 줄 몰랐다.
라카이라는 지역에서 어린이캠프를 했을 때, 페이스 페인팅을 담당했다. 100여 명의 아이들이 찾아 왔는데, 아이들이 기뻐하는 모습에 힘든 줄 몰랐다.
우간다의 한 초등학교에서 '강한 마인드'에 대한 강연을 했다.
우간다의 한 초등학교에서 '강한 마인드'에 대한 강연을 했다.

또 현지 음식을 거의 먹지 못하는 저를 본 현지 친구는 얼마 없는 용돈으로 ‘짜파티’라는 음식을 사주며 현지 음식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줬어요. 다른 분들도 “아보카도랑 먹으면 맛있어!” “이거 먹어봤어?” 하고 보살펴 주셨어요. 그러다보니 현지 음식에 완벽하게 적응할 수 있었어요. 나중엔 내 집처럼 모든 것이 편해졌어요. 그렇게 1년간 우간다에서 큰 사랑을 받으며 자연스레 저도 다른 사람의 마음을 살피고 배려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 돌아와 가족들과 대화를 나누는데, 다들 제가 무척 부드러워졌다며 좋아하셨어요.

연주 씨에게 우간다는 무척 특별할 것 같아요. 다시 돌아갈 생각도 있나요?

네! 지금 저는 간호학과에 재학 중인데요, 학교를 졸업해 간호사가 되어 우간다에 의료봉사활동을 하러 다시 가고 싶어요. 저는 이기적이고 경쟁사회에 익숙한 대학생이었는데, 우간다에서 받은 사랑이 너무 컸고, 그 사랑이 저를 바꾼 것 같아요. 이전엔 ‘학과 공부 너무 어려워서 못하겠어!’라는 마음이 컸는데, 이젠 열심히 공부할 힘이 나요.

한 시골 마을, 아이들이 나를 보더니 달려와 '무중구(흰사람)'하며 하이파이브로 나를 반겨주었다.
한 시골 마을, 아이들이 나를 보더니 달려와 '무중구(흰사람)'하며 하이파이브로 나를 반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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