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투머로우

상단여백
HOME 해외봉사 해외봉사 이야기
아르헨티나와 함께한 316일커버스토리
고은비 기자 | 승인 2020.02.05 20:57

한국에서 꼬박 30시간 비행기를 타고 가야 도착하는 곳, 아르헨티나에서 1년간 해외봉사를 마치고 돌아온 한나 로오치 씨. 귀국하던 날, 공항에서부터 집에 와 잠자리에 들 때까지 아르헨티나에서 느낀 감동과 사랑을 가족들에게 말하느라 쉴 틈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녀가 아르헨티나에서 보낸 316일간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1 남미식 인사, 볼뽀뽀

‘아르헨티나’가 해외봉사 파견지로 확정되었을 때, 나는 지구 반대편에서 지낼 환경, 전혀 다른 문화를 생각하며 가슴이 뛰었다. 열정 넘치고, 쿨한 남미 문화가 내 마음에 쏙 들었다. 아르헨티나에 도착한 첫날, ‘나는 딱 여기가 체질이네!’ 하고 외쳤다. 날씨도, 음식도, 사람도 다 좋아 보였다. 하지만 그 생각은 며칠 가지 못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어느 대학교에 굿뉴스코 프로그램 홍보를 하러 갔을 때였다. 우리 봉사단을 발견한 현지 남학생이 다가왔다. 막 손을 들어 인사하려는데, 순식간에 볼뽀뽀를 하는 것이 아닌가. 남미에선 볼뽀뽀로 인사한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지만, 실제로 겪어보니 무척 당황스러웠다. 한국에선 남학생들과 말도 잘 섞지 않던 나였기에 화들짝 놀랐다. 괜히 그 현지 학생을 무안하게 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역시 실제로 부딪히는 건 달랐다. 그래도 1년이 다 되어 갈 때쯤에는 볼뽀뽀가 익숙해졌다. 나와 다른 문화를 받아들이는 것, 굿뉴스코 선배들의 체험담에 늘 등장하는 ‘오픈 마인드’를 몸소 체험한 것이다.

한국에선 절대 사람들과 눈도 마주치지 않았던 나였지만, 처음 본 사람에게도 거리낌 없이 볼뽀뽀로 인사를 건네고, 하루에도 같은 사람에게 5번씩 ‘안녕!’을 외치는 아르헨티나에서 지내며 조금씩 변해갔다. 귀국한 뒤로는 날 만나는 사람마다 “한나야, 너 정말 밝아진 것 같아!”라고 이야기했다. 아르헨티나의 문화가 내게 스며들어서인 것 같다.

#2 힘을 빼면 느낄 수 있는 것

아르헨티나에서 처음 했던 활동이 ‘한국어 아카데미’와 ‘영어 아카데미’였다. 말 그대로 한국어 및 영어를 가르치는 아카데미였다. 첫 수업을 앞둔 날 저녁, 나는 쉬이 잠이 들 수 없었다. ‘사람들 앞에서 서툰 스페인어로 무엇인가를 가르치다니….’ ‘수업을 잘못 준비한 건 아닐까?’ ‘학생들이 내 스페인어 실력에 실망하거나 놀리진 않을까?’ 오만 가지 걱정이 몰려왔고, 식은땀이 흘렀다. 하지만, 막상 아카데미를 시작하니 내가 걱정했던 것과는 정반대였다. 학생들은 집중해 내 수업을 들었고, 더듬거리는 내 스페인어를 지적하기는커녕 인내를 가지고 나를 도와주었다.

어린이 아카데미에 참석한 아이들과 함께 아르헨티나 유명지인 ‘라보카La Boca’에 소풍을 다녀왔다.

미국인인 아빠와 한국인인 엄마 사이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자란 나는 어릴 적부터 남다른 생김새에 늘 사람들로부터 주목을 많이 받았다. 이 때문에 난 늘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민감했다. 부족하거나 초라한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기 위해 철저히 노력했다. 부족한 모습을 들키기 싫어, 새로운 사람들과는 늘 거리를 두곤 했었다.

이 때문인지 나는 아르헨티나에서 늘 같은 싸움을 반복했다. 내 생각에 나는 나름 괜찮은 사람이었는데, 봉사활동 기간 동안엔 내 한계를 뛰어넘어야만 하는 일들이 많았다. 그때마다 실수가 드러나는 것이 견디기 힘들었다. 처음엔 떳떳한 봉사자가 되지 못했다는 사실에 속상해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람들을 대하는 것도 괜찮다는 것을 알았다. 어깨에 들어간 불필요한 힘을 빼자 비로소 현지인들과 친구, 가족이 될 수 있었다. 내가 부족한 사람이 될수록, 따뜻한 현지인들을 향한 감사도 더 커졌다.

#3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만난 사람들

아르헨티나 해외봉사자는 남극 우수아이아, 산티아고 델 에스테로, 피에드라 부에나 등 다양한 지역을 다니며 활동을 한다. 나의 봉사활동 종착지는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였다. 그곳에선 청소년센터 건축이 한창이었고, 우리도 이를 도왔다. 힘들다고 불평하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현지인 봉사자들이 즐겁게 일하는 모습을 보니 그럴 수 없었다. 그들은 아르헨티나 청소년들을 위해 일하고 싶어 온 사람들이었다. 3개월간 그들과 함께 지내며 많은 것들을 배웠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청소년 센터 건축이 이루어지고 있는 현장. 쓰다 남은 세라믹타일을 재활용해서 부엌에 깔 타일을 만들고 있다.

당시 아르헨티나 물가상승률은 점점 높아져 50%를 넘어서고 있었다. 내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지내던 당시에도 경제상황이 좋지 않았다. 지부의 세탁기가 고장나 있었지만 수리할 여유가 없어 손빨래를 해야 했고, 한국에선 7만 원이면 살 수 있는 전자레인지가 고장난 지 오래지만 새로 살 엄두도 못 내고 있었다. 모두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만난 현지인들은 외부 후원을 받으며, 오직 센터 건립에만 마음을 쏟고 있었다.

귀국을 앞두고 현지 친구들과 시내 여행을 다녀왔다. 먹는 것부터 이동수단까지 늘 나를 배려하는 친구들이 고마웠다.

자신의 삶을 챙기기보다 청소년들을 위해 묵묵히 일하는 현지인들의 모습을 보며, 한국에서 내가 원하는 것, 하고 싶은 것만 생각하며 살아왔던 내 삶이 부끄러웠다. 그곳에서 봉사활동을 마무리하며, 한국에 가서도 어떻게 이들을 도울 수 있을지 고민했다. 이젠 한국으로 돌아왔기에 센터 건축을 직접 도울 수는 없지만, 센터 건립에 사용될 자재를 마련하거나 후원금을 마련할 프로젝트를 진행해 아르헨티나에서 받아온 사랑에 조금이나마 보답하고 싶다.

고은비 기자  press4921@naver.com

<저작권자 © 데일리투머로우,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고은비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