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크리스마스 칸타타 ②, 무대 위 스포트라이트

주옥같은 캐럴과 흥겨운 음악, 익살스런 연기로 관객들을 울고 웃게 만드는 크리스마스 칸타타 2막의 뮤지컬 ‘크리스마스 선물’. 극을 이끌어가는 주인공은 개구쟁이 아들 ‘앤드류’와 너무 바쁜 아빠 ‘짐’이다. 좌충우돌 말썽도 피우지만, 진심 어린 마음을 표현하며 모두에게 행복을 선물하는 앤드류 역의 소프라노 오으뜸 씨를 만났다.

연말에 가족들과 꼭 봐야 하는 공연으로 ‘크리스마스 칸타타’ 를 꼽는 분들이 많습니다. 해마다 전국 투어를 하는 소감이 어떻습니까?

저는 올해로 8년째 크리스마스 칸타타 무대에 오르고 있는데요.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공연으로 많은 분들과 감동을 나누며 따뜻하게 보낼 수 있어 행복합니다. 그라시아스 합창단과 함께 칸타타 투어를 하는 것이 저에게는 가장 큰 행운이죠.

그라시아스 합창단원으로서 활동해오고 있는데, 오으뜸 씨에게 2019년은 어떤 해입니까?

2019년은 한마디로 변화가 일어난 해죠. 제 이야기를 조금 하고 싶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노래와 춤을 유독 좋아했는데, 1등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어요. 입단한 뒤에도 늘 잘하는 사람이고 싶은데 제 마음처럼 실력이 빠르게 향상되지는 않더군요. 선배의 지적을 받거나 무대에서 실수하는 걸 못 견뎌했습니다. 또 언제부턴가 연습을 조금만 무리하게 하면 목소리가 금방 나빠졌어요. 그래서 합창단이 2014년도에 이탈리아와 스위스에서 열린 합창대회에 출전했을 때 저는 관중석에서 지켜봐야만 했죠.

약한 제 목소리 탓에 ‘앞으로 내가 노래를 계속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실망스러워했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단장님께서 이런 말씀을 해주셨어요. “으뜸아, 너는 대기만성형이야. 다른 사람들보다 느린 것뿐이니까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스스로에게 시간을 줘. 더디다고 절대로 포기하면 안 돼”라고요. 신기하게도 그 말씀이 맞았죠. 제가 가진 약점과 문제점들이 저를 만들어갔고, 결국 저를 강하게 해주었어요. 올해 있었던 일이 모두 그 결과로 나타난 것들이고요.

어떤 일이 있었기에 올해가 ‘변화의 해’라는 건가요?

올해 중순까지만 해도 최악의 해를 보낼 거라는 생각을 했어요. 유난히 슬럼프가 길었거든요. 장장 6개월간 목소리가 좋지 않았죠. 문제는 올해 6월로 예정되어 있었던 독창회였어요. 회복될 것 같았던 목소리가 점점 더 안 좋아지고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죠. 독창회 날짜는 다가오는데 불가능하다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하지만 동료들은 제 독창회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어요. 단장님께서도 제게 “으뜸아, 마라톤 완주하려는 사람이 넘어져서 이렇게 울고 있으면 어떡해. 내가 도와줄게”라고 하시면서 정확한 호흡법으로 노래할 수 있도록 세밀하게 지도해 주셨어요.

성악가들이 제대로 된 호흡을 하지 않으면 목소리를 잃을 수도 있습니다. 루치아노 파바로티나 미렐라 프레니 같은 대가들이 오랫동안 한결같이 좋은 소리로 노래하는 비결은 정확한 호흡을 하는 데 있어요. 독창회를 함께 준비했던 합창단원들은 알죠. 제 목소리가 얼마나 심각했는지요. 모두가 제 문제를 자신의 문제처럼 생각하면서 용기를 북돋워주고, 정확한 호흡으로 목소리를 회복하고 독창회 무대에 설 수 있도록 큰 힘이 돼 주었습니다. 합창단과 단장님은 제게 가족과 같습니다. 그분들의 도움으로 올해 6월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독창회를 관객들에게 선보일 수 있었습니다.

독창회가 변화를 불러온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군요.

올해 6월, 안양에서 열린 독창회에서 열창을 하고 있다.
올해 6월, 안양에서 열린 독창회에서 열창을 하고 있다.

네, 맞습니다. 특히 2가지 면에서 의미를 남겼는데요. 호흡의 중요성에 대해 더 깊이 인식하게 됐고, 제가 가족 같은 사람들 속에서 지내고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독창회 뒷부분에 제가 짧게 이야기하는 순서가 있는데 합창단원들 중에 훌쩍거리는 분들이 여러 명 있었다고 해요. 그때 제가 “저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게 노래하는 소프라노입니다” 라는 말을 했습니다. 말 그대로 너무 행복해서 한 말이었는데, 힘든 과정을 겪으며 주위 사람들의 마음을 볼 수 있었던 게 정말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칸타타 2막의 주역인 남자아이 앤드류 역을 올해 처음 맡았다고 들었습니다.

네, 앤드류 역으로 무대에 오른 건 올해가 처음입니다. 사실 4년 전에 앤드류 역을 제안 받아 잠깐 연습한 적이 있는데요. 그때는 제가 잘 해낼 자신이 없어서 결국 다른 배역을 맡았습니다. 올해 앤드류 역을 맡게 될 줄 몰랐는데, 감사하게도 이런 기회가 다시 제게 왔네요.

앤드류는 개구쟁이 남자아이에요. 직장 일이 많아 크리스마스도 함께 보내지 못하는 아빠를 미워도 하지만 누구보다 아빠를 사랑하는 캐릭터죠. 앤드류의 변화무쌍한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데, 저는 특히 앤드류가 가진 생동감과 소망, 기쁨을 관객들에게 전달하고 싶어요. 이번 18개 도시 순회 공연에서 어떤 앤드류가 등장할지 기대해주세요.

공연 일정을 보니 말 그대로 쉴 틈 없는 스케줄이군요. 9월에 미국에서 시작한 칸타타가 한국에서 연말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체력도 문제지만 성대에 무리가 많이 갈것 같은데요.

독창회 전에 목소리가 많이 안 좋았는데 호흡을 통해 소리 내는 연습을 계속하면서 불안정했던 목소리가 일정해지고 컨디션이 전체적으로 아주 좋아졌어요. 지난 가을에 미국 28개 도시 공연을 마치며 확신이 하나 생겼습니다. ‘내게 주어진 역할은 하늘이 허락한 것이구나. 이제 절대 피하거나 포기하지 않아!’ 올해 제가 앤드류 역을 하게 된 건 운명 같아요. 제게 혹독한 슬럼프나 독창회 과정이 없었다면 이런 확신을 가지지 못했을 것이고 정확한 호흡법으로 훈련할 기회도 놓쳤겠죠. 최상의 컨디션으로 30회의 미국 공연을 모두 소화했고, 현재도 좋은 소리를 유지하고 있어서 개인적으로 굉장히 감사합니다. 저는 칸타타에서 앤드류 역 외에도 다양한 역할을 맡고 있어요. 공연에 오신 다면 저의 색다른 모습을 많이 보실 수 있을 거예요.

그라시아스 합창단의 노래가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가장 큰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신념’이죠. 합창단은 세계 최고 수준의 공연을 선보이기 위해 노래와 음악뿐 아니라 연기, 춤까지 대가들의 지도 아래 끊임없이 연구하고 연습합니다.

한계를 넘는 시도와 연습이 바탕이 돼 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신념을 가지는 거예요. ‘우리 음악에는 놀라운 힘이 있다’ ‘우리가 부르는 노래와 연주에 관객들을 사로잡는 감동이 담겨 있다’는 신념이죠. 저는 무대에 오를 때 그것만 떠올립니다. 합창단원 모두가 비슷할 텐데요. 신념으로 하나된 마음이 사람들을 감동시킨다고 생각합니다.

칸타타 곡들 중 오으뜸 씨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가 뭔지 궁금하네요.

1막에 나오는 ‘The First Noel’인데요. 들을 때마다 감동에 젖습니다. 오페라 형식인 1막은 2천 년 전 유대베들레헴이 배경이에요. 로마의 지배를 받는 유대인들의 고통스러운 삶과 절망감을 표현하죠. 굉장히 무겁고 어두운 분위기로 흐르다가 아기 예수의 탄생을 노래한 곡 ‘The First Noel’이 흘러나오면서 분위기가 반전되는데, 희망과 기쁨이 싹트는 모습이 무척 감동적이에요. 절망적인 상황에서 희망을 느끼게 하는 곡이 ‘The First Noel’입니다.

어떤 소프라노가 되고 싶습니까?

그동안 그라시아스에서 활동하면서 함께 ‘The First Noel’처럼 희망을 전달하는 노래를 불러왔어요. 합창단은 ‘우리의 음악으로 세상이 따뜻해진다면 언제, 어디서나 노래 부른다’는 비전을 가지고 있거든요. 노래로, 슬픔에 빠진 사람들에게 위로와 웃음을 줄 수 있었던데서 보람을 느꼈고요. 듣기 좋은 목소리로 박수받기보다 진실성 있고 힘있는 노래로 희망을 느끼게 하는 소프라노가 되고 싶어요. 동료들과 함께 그런 노래를 오래도록 부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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