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크리스마스 칸타타 ③, 무대 위 스포트라이트

크리스마스 칸타타에서 헤롯 역으로 열연하며 주목을 받고 있는 바리톤 신지혁은 노래를 시작한 지 9년 만에 터닝포인트를 맞았다. 무대를 압도하는 강렬함과 객석을 파고드는 감미로움으로 관객을 설레게 하는 그는 노래로 소통하며 행복을 느끼는 성악가이다.

크리스마스 칸타타 1막에서 헤롯 왕 역을 맡았습니다. 상당히 비중 있는 역할인데, 캐스팅됐을 때 소감이 어땠습니까?

2018년 미국 투어를 앞두고 헤롯 왕 역에 발탁되었는데요. 굉장히 무게감 있는 역할인데다 인물의 심리를 잘 전달해야 하는 캐릭터여서 제대로 소화할 수 있을지 처음에는 확신이 없었습니다. 나이 든 헤롯을 연기하기에 제 목소리가 너무 젊다고 느꼈고, 그래서 중후한 목소리를 내려고 애쓰다 보니 성대에 무리가 가기도 했죠. ‘내게 안 맞는 역할은 아닐까?’ 하는 고민을 좀 했습니다.

헤롯은 단순하게 왕이 된 인물이 아닙니다. 심리 상태도 시시각각 변하고요. 왕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아이들을 죽일 정도로 강하고 무자비하다가도 불안감에 휩싸여 어쩔 줄 모르기도 합니다. 그런 인물을 연기하기가 무척 어색했어요. 그래서 헤롯을 계속 생각하고 연구할 수밖에 없었죠. ‘이런 때는 이런 심정이었겠구나. 이런 때는 어땠을까?’ 하면서요. 그렇게 인물과 가까워지고 심정이 헤아려지면서 연기하기가 점점 편해졌습니다.

헤롯 왕 역을 맡은 이후에 신지혁 씨가 여러 면에서 달라졌다는 분들이 많습니다.

제 노래와 연기의 기량이 담대해졌다고 생각합니다. 헤롯은 무대를 압도해야 하는데, 사실 처음에는 좀 불안했습니다. 그러다 변화를 맞은 계기가 있는데요. 작년에 미국 덴버 시에서 공연할 때, 로키산맥에 내린 폭설 때문에 장비를 실은 트레일러가 공연장에 늦게 도착한 일이 있습니다. 공연이 취소될 위기에 놓였다가 극적으로 세팅을 마쳐 예정시간 1시간 후에 결국 막이 올랐죠. 1막이 시작되고 헤롯 역으로 무대에 올라 칼을 뽑아 휘두르는 연기를 하려는 순간, 불가능할 것 같았던 공연을 할 수 있게 된 데 너무 흥분했는지 수천 명의 관객들이 보는 앞에서 그만 미끄러지고 말았습니다. 아무렇지 않은 듯 일어나서 노래를 부르고 내려왔지만 공연을 망쳤다는 자책감과 좌절감이 너무 컸죠.

그런데 단장님께서 오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오늘 그 연기 좋았어요. 좀 더 연구해보면 어떨까요?” ‘미끄러진 게 좋았다고?’ 뜻밖의 이야기에 놀랐지만 그때부터 진지하게 다시 연구했습니다. 그리고 술에 취한 헤롯이 격한 감정에 휩싸여 비틀거리다 넘어지는 모습으로 표현해보기로 했죠. 그 연기를 지금까지 해오고 있습니다.

한 단계 성장하는 데 실수가 큰 역할을 한다고 봅니다. 제가 가진 문제점이나 약점이 오히려 새로운 변화를 일으키는 계기를 만들어주기도 하고요. 그런 생각으로 완벽한 공연을 하려고 하기보다 무대를 믿고 담대하게 노래했는데, ‘신지혁이 좋아졌다’는 이야기를 듣는군요.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어떤 점을 중점적으로 연습합니까?

사진 | 김진욱
사진 | 김진욱

노래와 춤, 연기 등 3가지 분야를 연습하는데요. 모두 호흡에 중점을 두어 연습합니다. 정확한 호흡과 발성이 전달력 있는 노래와 연기를 가능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맡은 인물들을 분석하고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되짚어보는 데도 시간을 많이 할애합니다. 특히 헤롯은 심경이 자주 변하는데 그때마다 호흡이 어떻게 변하는지 연구하죠. 사람들은 상황에 따라 다르게 호흡합니다. 생각에 잠길 때, 놀랄 때, 기쁠 때,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호흡이 다 다르지 않습니까? 호흡을 제대로 하면서 그 호흡에 노래와 대사를 실려 보낼 때 소리가 바깥으로 뻗어나가고, 진정성을 느끼게 합니다. 관객은 진실이 담긴 표현에 공감하는 거고요.

감정표현이나 곡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호흡이 중요하다는 이야기가 무척 새롭습니다. 호흡을 우리 삶에 적용해본다면 무엇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까?

‘바탕, 기초’라고 해야 할까요? ‘항상 기억하고 살아야 할 중요한 것’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노래를 하다 보면 좋은 소리를 내는 데 치중할 때가 많아요. 내가 내는 소리를 의식하다보면 호흡을 잊어버리는데, 호흡을 제대로 하면 좋은 소리는 자연스럽게 나오죠. 결과에 치중하기보다 정말 중요한 게 뭔지 기억하는 마음가짐이 ‘호흡’이 아닐까 합니다.

성악가로서 성장해온 과정이 궁금합니다. 소리가 변화하는데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저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 ‘아나똘리 키셀료브로’ 교수님을 사사했는데요. 교수님께서는 자유로운 표현과 감정을 중시하셨습니다. 앉아 계시다가 벌떡 일어나 다가오셔서 ‘감정을 담아야 해!’라고 말씀하시곤 했죠. 그 감정이 지금 저로 호흡하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작년에 헤롯 역에 발탁되고, 특히 올해 독창회를 치르면서 큰 변화를 겪었습니다. 준비과정에서 많은 걸 배울 수 있었고 기량이 한층 성장했다는 평가도 받았는데요. 레가토*를 표현하는 면에서 더욱 그렇습니다.

무언가를 풍성하게 가지고 있는 사람은 넉넉하게 나누어 줄 수 있지 않습니까? 음악에도 그런 원리가 적용된다고 생각하는데요. 독창회 이후에 제게 좀 더 깊고 멀리 전달할 수 있는 풍성함이 형성됐다고 봅니다.

*음과 음 사이가 끊이지 않도록 매끄럽게 연주하라는 의미의 음악용어.

그라시아스 합창단은 크리스마스 칸타타 공연을 매년 100회 가까이 하시는 걸로 압니다. 올해 북미 투어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공연은 무엇입니까?

애틀랜타 인피티니에너지 아레나에서의 공연입니다. 8천 명의 관객들이 공연장을 가득 채웠는데, 그들이 음악에 마음을 활짝 연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죠.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부를 때는 객석에서 휴대폰 조명이 하나둘 켜지더니 공연장이 온통 불빛으로 반짝거렸습니다. 노래를 따라 부르고 손뼉 치며 반응하는 사람들을 보니 큰 공연장이었지만 가깝게 느껴지고 하나가 된 것 같아 너무 행복했습니다.

그에 비해 한국 관객들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표현에 좀 인색하지 않은지요.

한국 관객들은 굉장히 진지한데 그런 점이 저희들에게는 도움이 됩니다. 사람들의 반응이 항상 좋고 열광적이면 늘 우리가 잘했다는 생각을 할 겁니다. 그러면 발전이 없겠지요. 진지하게 보고 때로는 냉정하게 평가해주시는 관객들 덕분에 공연의 수준이 향상된다고 봅니다. 공연이 정말 훌륭할 때 뜨겁게 반응하는 분들이 한국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좋은 음악이란 어떤 음악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감동을 주는 음악이죠. 감동을 주려면 가사와 내용이 잘 전달돼야 합니다. 저는 노래를 부르기 전에 누구의 이야기인지, 누구에게 들려줄 건지, 어떤 배경을 가진 노래인지 파악을 하는데요. 이런 점들에 대해 명확히 알면 알수록 전달을 잘할 수 있습니다. 잘 전달하기 위해 발음과 음정, 감정표현도 물론 중요하고요. 아무리 노래를 잘 불러도 전달하지 못하면 감동은 줄 수 없을 겁니다.

노래는 신지혁 씨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새로운 시작’요. ‘소망’이기도 하고요. 음악을 하면서 꿈꿀 수 없었던 것들을 꿈꾸게 되었습니다. 이루어지길 바라는 것들도 생겼고요. 19살에 그라시아스 합창단 단원이 되면서 노래가 삶의 전부가 되었는데, 이후의 삶은 이전과 많이 다릅니다. 학창시절에는 공부하고 대학을 졸업해서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는 생각만 했거든요. 그런데 제 인생에 노래가 찾아오면서 전혀 다른 것들을 꿈꾸며 살게 됐습니다.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노래를 부르고 싶습니다. 그라시아스 합창단은 음악 안에 소중한 메시지를 담아 전하는 합창단입니다. 사람들이 제 노래에 마음을 열고 그 안에 담긴 감사, 행복 같은 메시지에 공감하기를 바라죠. 부족한 점이 많아 더 많이 성장해야 하는데, 무대가 저를 최고의 바리톤으로 만들어 가리라는 소망을 품고 있습니다.

12월 22일 공연으로 올해 칸타타 투어가 막을 내리는데요. 공연에 관심을 가질 독자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어느 때보다 행복하고 의미 있게 보내야 할 연말인데요.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어렵고 혼란스러운 시기여서 우울한 마음으로 지내는 분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희가 준비한 크리스마스 칸타타를 보시면서 그동안 잊고 지냈던 가족이나 주위 사람들의 소중함을 떠올리고, 행복과 기쁨을 되찾는 감동적인 경험을 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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