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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경험이 평생 가더라고요"해외봉사 두 번 다녀온 장은진
김소리 기자 | 승인 2019.10.10 23:13

부르키나파소와 탄자니아에서 3년 봉사한 이후에 아프리카 없는 인생을 생각할 수 없게 됐다는 장은진 씨. 직장을 구할 때도 ‘아프리카와 관련 있느냐’부터 따졌고, ‘아프리카에 함께 갈 사람’을 조건으로 내걸어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평범한 회사원의 모습이지만 그에게는 아프리카를 무대로 펼칠 큰 꿈이 숨겨져 있었다.

장은진
부르키나파소와 탄자니아에서 봉사한 것을 계기로 아프리카 컨설팅 회사에서 일해 왔고, 현재는 반도체 관련 회사에서 해외기술 영업과 아프리카사업 발굴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인프라구축 사업으로 아프리카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 그의 꿈이다.

삼형제 중 둘째인 장은진 씨는 어렸을 때부터 수학을 좋아했다. 공식을 따르면 정해진 답이 나오고, 무엇이 틀렸는지 확인할 수 있다는 ‘안정감’이 수학을 좋아하게 된 이유였다. 직업을 선택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안정적이고 변화가 크지 않은 ‘선생님’이 마음에 쏙 들었다. 대학에 진학해 해외봉사활동을 다녀오기 전까지 그는 예측이 가능하고 편안한 삶을 추구했다.

수학 선생님이 되기 위해 전북대학교 수학과에 입학한 장은진 씨는 대학생 시절에 해보고 싶은 것은 다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1학년을 마치고 형이 다녀왔던 굿뉴스코 해외봉사단에 지원했는데, 나라 선택을 두고 고민하다 서부 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에 가기로 결정했다.

“이왕 가는 거 제일 난코스를 택해 힘겹게 지내다 오고 싶어서 더운 곳을 골랐죠. 부르키나파소는 봉사자들 사이에서 다이어트 코스로 불리는 굉장히 더운 나라예요. 실제로 지원한 사람들을 보니 대부분 뚱뚱했고, 제가 90킬로그램으로 제일 가벼웠죠. ‘1년을 뜨겁게 지내자’ 작심하고 갔기 때문에 지낼 만했습니다. 귀국할 때는 75킬로그램이었고요. 하하.”

부르키나파소에서의 모든 것, 고생 아닌 즐거움이었다

부르키나파소에서의 1년은 그에게 생각하지 못했던 꿈을 선물했다.

그는 부르키나파소의 대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쳤는데, 교사가 꿈이었던 그가 얼마나 열정적으로 가르쳤을지 짐작이 갔다. 당시 수업에 참여했던 현지인들 중에 지금까지 봉사단과 연락하며 센터를 방문하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처음 겪는 불편한 환경에서의 봉사활동이었을 텐데, 즐거웠던 일만 기억하는 그가 신기하기만 했다.

“깊은 시골 마을에 간 적이 있어요. 외국인이 한 번도 간 적이 없는 마을인데, 사람들이 모두 나와서 저희를 반기는 거예요. 바가지에 물을 담아 뭔지 모를 하얀 가루를 타주면서 마시라고 했어요. 그리고 한 명씩 차례로 저희에게 악수를 건넸죠. 그런 환영은 처음 받아봤는데,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반기는 그들의 마음이 느껴졌거든요. 무전여행은 또 어땠는지 아세요? 수도에서 1,800킬로미터 떨어진 ‘보보-디울라소’라는 도시에 가는데 히치하이킹 세 번 만에 도착했어요. 가는 길에 당나귀고기도 먹어 보고 땅콩 농사를 짓는 마을에서 땅콩도 실컷 먹고, 아주 재미있었죠. 물론 오래 걷고 배가 고파서 주저앉기도 했지만 단원들과 함께하니 다 이겨내고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당시 부르키나파소 봉사단을 이끌었던 지부장은 불어공부를 지독하게(?) 시키는 것으로 유명했다. 단어와 문장 시험을 통과해야 망고나 돼지고기요리 같은 별식을 먹을 수 있었고, 불어로 말하도록 유도하는 기발한 프로그램에 자주 참여해야 했다. “불평할 때도 있었지만 지부장님 열성 덕분에 불어로 통역에 번역까지 할 수 있게 됐으니 감사했죠. 귀국한 뒤에 교내 불어말하기대회에 나가서 2등상을 받았어요. 불문과 성적도 3등 아래로 내려간 적이 없고요. 친구들이 ‘대체 넌 정체가 뭐냐?’라고 농담을 하곤 했습니다.”

남다른 삶은 한국에서도 이어지다

부르키나파소의 한 대학에서 사진전을 열어 봉사단의 활동을 소개하는 장은진 씨.

아프리카에서 ‘남을 위해 시간을 쏟고 마음을 주고받으며 사는 맛’을 본 장은진 씨는 한국에 와서도 비슷한 삶을 이어갔다. 졸업할 때까지 한 대안학교에서 수학교사로 봉사하며 학생들의 상담자 역할을 했고, 잠시라도 짬이 나면 대학교에서 아프리카를 소개하는 다양한 행사를 열었다. 친구들은 그런 그에게 ‘취업준비는 언제 할 셈이냐’고 다그치듯 물었는데, 그가 바쁜 와중에도 토익시험에서 고득점을 받자 두 친구가 ‘나도 은진이처럼 살아보고 싶다’며 해외봉사단에 지원했다.

졸업한 뒤 군대 문제가 남아 있었던 그는 다시 한 번 아프리카를 경험하면서 군 복무를 할 수 있는 코이카 협력요원에 지원해 보기로 했다. “지금은 제도가 없어졌는데, 당시 코이카에서 대체복무가 가능한 협력요원을 시험과 면접을 치러 선발했어요. 경쟁이 꽤 치열했죠. 아프리카에 가고 싶어서 지원하긴 했지만 출신학교와 성적이 주요 선발요건이라서 큰 기대는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서울대 학생들과 제가 뽑힌 거예요. 부르키나파소와 대안학교에서 꾸준히 봉사한 경험을 보고 ‘이 녀석이라면 아프리카 오지에서 포기하지는 않겠구나’ 생각한 것 같아요.”

되돌아 다시 생각하며 느끼는 감사

이번에 그가 간 곳은 동부 아프리카의 탄자니아였다. 영어와 스와힐리어를 사용하고 서부 아프리카와는 생활방식도 사뭇 다른 나라인데, 수도에서 1,500킬로미터 거리에 있는 ‘키고마’ 시의 한 학교에서 2년간 수학교사로 일하는 것이 그가 받은 임무였다. 업무는 학교장의 허락 하에 스스로 계획해 진행하는 방식이었고, 정해진 한도 내의 재정지원을 받아 학교에 필요한 ‘현장사업’도 추진할 수 있을 만큼 권한도 주어졌다. 키고마에서의 경험은 그에게 ‘무슨 일이든 과감하게 시도해볼 수 있지만 항상 책임이 따른다’는 점을 느끼게 해주었다.

탄자니아 키고마의 학교에서 교사들과 함께.

아프리카의 열악한 환경을 견디지 못해 조기에 귀국하는 봉사단원들도 많았다. 그는 부르키나파소에서의 1년이 아니었다면 자신 역시 포기한 사람 중에 하나였을 거라며 다행스러워했다. “부르키나파소에서 현지인처럼 생활했기 때문에 탄자니아에서 불편한 게 거의 없었어요. 물과 전기가 없는 곳에서도 살고 무일푼으로도 지내봤거든요. 그때 웬만한 불편함은 이길 수 있는 강인함이 제 안에 만들어진 것 같아요. 탄자니아에서는 매달 일정액의 체류비를 매달 받았으니 부르키나파소에 비하면 호화롭게 생활한 거죠.”

장은진 씨는 키고마에서 가장 의미 있는 시간으로 학생들의 집을 일일이 방문해 그들의 부모님과 대화를 나눈 것을 꼽았다. 교육비가 한 학기에 5천 원 정도인데도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고 밭일이나 물건 파는 일을 시키는 부모님들에게 학교에 보내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고, 한국과 세계 여러 나라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그들이 살고 있는 테두리 밖에 다른 세계가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어요. 저도 대학에 가고 아프리카를 경험하면서 생각이 많이 달라졌거든요. 눈앞의 현실이 전부인 그들이 미래를 그리면서 꿈꿀 수 있다면 삶은 달라질 거예요. 수학도 가르치고 학교를 위한 일도 하지만 내일을 희망하며 사는 삶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코이카와 연계사업을 진행하는 키고마의 학교.

탄자니아에 너무 잘 적응하는 그였지만 ‘키고마에 사는 몇 안되는 외국인’이라는 점이 부담스러울 때가 있었다. 한번은 굿뉴스코 봉사단 탄자니아 지부장을 만나 외국인으로서 혼자 사는 어려움을 이야기했는데, 다르에스살람에서 활동하는 대학생 봉사자들과 같이 지내보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했다. 함께하는 맛을 아는 그였기에 봉사단 후배들과 생활해보기로 결정하고 학생들을 맞았다.

“대학생 한두 명이 한 달씩 교대로 와 있다 갔어요. 저는 학교에 가고 그 친구들은 계획한 활동을 하다가 저녁에 돌아왔죠. 그들과 지내는 시간이 너무 좋았습니다. 일찍 깨워서 밥도 해먹이고 저녁에는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듣고 피드백도 해줬지요. 한번은 한 친구가 무전여행을 떠났는데, 영어를 잘 못해서 무사히 다녀올지 걱정스러웠어요. 그런데 아주 씩씩한 모습으로 돌아왔죠. 얼마나 기특하고 고맙던지 ‘부르키나파소에 있을 때 우리 지부장님도 이런 마음이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서툴지만 도전하는 후배들에게 작은 거라도 해주고 싶어서 맛있는 음식을 많이 사주었던 기억이 납니다.”

소통할 때 삶이 업그레이드된다

영어, 스와힐리어 실력은 수준급이고 불어는 대화할 정도이니 장은진 씨는 4개 국어가 가능한 인재였다. 처음 입사한 아프리카 컨설팅 회사는 신입사원 같지 않은 그의 적응력과 도전적인 태도를 보고 인턴기간을 건너뛰고 정직원으로 채용했고, 아프리카 현지와 협상해야 할 일들은 모두 그에게 맡겼다. 그가 외국어와 업무를 빠르게 익힌 비결이 궁금했다. “부르키나파소에서 ‘받아들이고, 대화하는 법’을 배웠어요. 마음을 표현하고 상대방이 하는 말을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게 중요하다는 걸 자주 느꼈죠. 그렇게 마음이 통하기 시작하면 대부분의 문제가 해결됐습니다. 언어는 자연스럽게 빨리 배울 수 있었고요.

저희 집은 아들만 셋인데, 모두 말이 없어서 하루 종일 말 안하고 지내기도 했어요. 그런데 생전 처음 간 나라에서 사람들과 마음을 맞추어 일해야 하니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대화해야 했죠. 단원들과 부딪히기도 하고 현지인들과는 말이 안 통해서 오해하기도 했는데, 자꾸 속마음을 표현하다 보니 대화하는 게 점점 재미있어졌습니다. 이렇게 말 많은 사람이 될 줄은 저도 몰랐죠. 하하.”

장은진 씨의 꿈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아내와 탄자니아에서.

유창한 외국어 실력과 대화 속에서 상대방의 마음을 캐치하는 능력을 지닌 사람은 어떤 인생 계획을 세울까 궁금했는데, 그는 역시 아프리카였다. 얼마 전까지 그는 전자정부시스템을 아프리카에 구축하는 일을 하다가 최근에 반도체 관련 회사로 이직했다. 해외사업으로 확장해가는 회사여서 아프리카 사정에 밝은 사람을 찾던 중 장은진 씨를 스카우트한 것이다. 그는 이직을 결정하면서 대표에게 그동안 자신이 아프리카 사업을 준비해온 점을 설명했는데, 대표는 그의 비전에 공감하며 무슨 일이든 시도해보라고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아프리카의 산업기반시설을 구축하는 일을 하고 싶어요. 해안가에 있는 나라들은 그나마 나은데 부르키나파소 같은 내륙 국가들은 물류가 안 돼서 발전하지 못하고 있거든요. 몇 가지만 갖추어져도 국가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치는데, 우리나라에서 시행하는 공적 원조자금도 알아보면서 다양한 길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탄자니아 보안기기 업체와 MOU를 맺은 후.

장은진 씨는 대학생들이 장래에 대해 너무 많은 고민을 하느라 정작 자신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지 못하는 점을 아쉬워하며 취업하기 전 무조건 아프리카부터 다녀올 것을 권했다.

“아프리카에서 봉사단원으로 지내면 신기하게 굉장히 단순해져요. 다른 고민거리도 많지만, 대부분의 문제가 ‘덥다, 배고프다, 물이 안 나오네’ 이 셋 중 하나 때문인 경우가 많거든요. 그런 상황이 지나가면 일상과 나 자신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뭔지, 인생에서 중요한 건 뭔지’ 고민 할 여유도 생겨요. 그렇게 정리된 마음의 바탕 위에 무언가 쌓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학생 시절에 자신이 처한 환경을 벗어나 새로운 경험을 해보세요. 넓게 보면서 가면 삶이 풍요로워질 겁니다. 아프리카는 제게 그런 인생을 선물해 준 곳이에요.”

김소리 기자  sori35@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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