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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자니아, 별 하나에 추억을
김유은 | 승인 2019.09.23 14:53

밤이면 별이 보이는, 천장 없는 샤워장에 걸핏하면 물과 전기가 끊기는 불편한 환경. 게다가 말도 안 통하는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과 지내기가 처음에는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밤하늘의 별을 볼 때마다 탄자니아에서의 추억을 떠올리며 빙그레 미소 짓곤 한다.

‘마쿠루’에서 진행한 키즈캠프에서 친했던 그레이스, 헤키마와 집으로 돌아갈 때.

내가 굿뉴스코 해외봉사단원으로 활동하며 지냈던 탄자니아 다르에스살람 지부의 샤워실은 천장이 하늘을 절반만 가리고 있다. 비가 오는 날이면 빗물을 맞으며 씻어야 하고, 저녁에는 밤하늘의 별을 헤아리며 씻곤 했다. 빨래를 할 때면 물을 후원해주는 5분 거리의 가게에서 물을 떠와야 하는데, 물이 가득 담긴 물통을 들고 거리를 오가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탄자니아의 날씨는 또 어찌 그리 더운지! 하지만 더운 날씨가 나쁘기만 한 건 아니다. 반나절이면 빨래가 바짝 마르니 말이다. 자주 끊기는 수도와 전기도 처음에는 불만이었지만, 점차 물과 전기를 아껴쓰는 버릇을 들이게 되었다. 그리고 물과 전기가 24시간 나오고, 스위치만 켜면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나오는 한국에서의 생활이 얼마나 풍족했는지 새삼 깨달았다.

전기가 끊기는 날은 오전에만 잠깐 활동을 하고, 해가 지면 단원들이 옹기종기 방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국에서는 어디서나 스마트폰 메신저로 소통했지만, 탄자니아에서는 얼굴을 보고 대화하는 환경에 익숙해져야 했다. 마음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놀랍게도 스마트폰 메신저보다 직접 대화를 하는 게 훨씬 편하고 즐겁다는 걸 알게 되었다.

우리 지부에는 다양한 국적을 가진 단원들이 모여 지냈다. 난생처음으로 한국은 물론 중국, 태국, 캄보디아, 멕시코, 아르헨티나 등 세계 각국에서 파견 온 16명의 친구들과 소통하며 지내게 됐다.

키즈캠프에서 내가 가르쳤던 ‘그레이스’는 내게 먼저 마음을 열고 다가와서 대화를 나눴다.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만큼 서로 가치관과 문화가 달라 부딪힐 때도 있었다. 고심 끝에 초반에는 같은 나라나 같은 언어권에서 온 단원들끼리 팀을 짜서 함께 지냈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생각 차이로 서로 오해가 생기거나 다투기도 했다. 그렇다고 대화를 하지 않을 수는 없는 법! 대화 없이 서로를 이해하기란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아웅다웅 다투고 갖가지 사건을 겪으며 서로를 알아가고 가까워지는 게 행복했다. 특히 중국에서 온 ‘신디’ 언니와의 특별한 사건을 잊을 수 없다.

어느 날, 신디 언니를 비롯한 중국 단원 세 명과 함께 ‘쿠라니시’라는 지역으로 어린이캠프를 진행하러 갔다. 아이들에게 노래도 가르치고 게임도 하고, 마지막으로 선물을 나눠준 뒤 캠프가 끝나면 아이들을 부모님께 데려다주는 일정이었다.

캠프 세 번째 날, 그날도 여느 때와 같이 아이들을 데려다 주는 길이었다. 마을입구에 다다랐을 무렵, 이제 길이 익숙해졌다고 생각한 우리는 현지 남자단원에게 ‘여기서부터는 우리끼리 가겠다’고 말하고 신디 언니와 함께 숙소로 돌아갔다. 가는 길에 언니 사진을 찍어주려고 언니의 카메라를 받아 셔터를 누르려던 찰나, 현지 남자가 “헤이, 치나(스와힐리어로 중국인)!”라며 다가오더니 내가 들고 있던 카메라를 낚아채 도망가 버렸다.

너무 당황한 나머지 소리도 못 지르고 가만히 서 있던 나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남자를 쫓아갔다. 주변 현지인들도 같이 달리며 도와주었지만, 남자는 이미 달아난 뒤였고 경찰도 범인을 잡지 못한 채 사건은 무마되었다. 해외에 나온다고 큰맘 먹고 산 언니의 카메라를 잃어버려 미안한 마음에 울고 있는 나를 보며 되려 언니가 위로를 해 주었다.

“아하디(나의 스와힐리어 이름), 울지 마. 지금은 힘들지만 나중에 돌이켜보면 추억으로 기억될 거야.” 신디 언니는 탄자니아의 환경에 불만도 많았고, 다른 단원들과 종종 트러블도 있었다. 그래서 언니를 향해 ‘어려운 사람’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언니의 넓은 마음을 보며 내 마음도 열렸다.

지역주민센터에서 마인드강연을 마치고 나오니 사람들이 감명 깊었다며 같이 사진을 찍자고 했다.

하지만 그때부터 내게 탄자니아 사람들은 ‘믿을 수 없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그동안 만났던 탄자니아 사람들은 모두 정 많고 순수한 사람들이었는데, 그 일을 겪으면서 단번에 마음이 닫혔다. 지부장님이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자초지종을 물으시길래 이야기를 해 드리니 오히려 나를 꾸중하셨다. 그때까지 당연히 ‘나는 아무 잘못이 없고 카메라를 훔쳐 간 사람이 잘못’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분은 ‘낯선 땅에 왔으면서도 현지인과 동행하지 않고 여자들끼리 다니니까 생긴 일’이라고 하셨다.

그 말씀을 듣고 생각해 보니, 사고 당시 우리와 함께 있던 현지 사람들은 마치 자기 일인 양 우리를 도와주고 걱정해 주었다. 현지 남자단원도 이런 사고가 생길 것을 알고 늘 우리와 함께 아이들을 데려다준 것이었다.

‘내가 하나만 봤구나. 카메라를 훔친 사람은 한 명이었지만, 나를 걱정하고 도와준사람은 열 명이 넘는데…. 내 주변에는 이렇게 나를 생각해주는 사람들이 많았구나.’

그 사건 이후, 나는 탄자니아 사람들과 더 가까워졌다. 한국으로 돌아오던 날, 헤어지면서 현지 사람들과 서로 부둥켜안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불편한 환경에, 언어도 통하지 않는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과 함께 지내는 게 처음에는 도전처럼 느껴졌다.

무전여행을 하던 중 얻어 탄 차에서 내린 곳에서 ‘다음 도시까지 어떻게 가나?’ 막막해 하고 있는데, 그곳 상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친해졌다. 그들의 도움을 받아 다음 도시로 무사히 갈 수 있었다.

어려운 문제 앞에서 선뜻 뛰어들기보다 피하고 싶다는 생각이 컸지만, 한 걸음씩 다가갈 때마다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세계를 만났다. 작은 것에도 감사함을 느낄 수 있게 되었고 타인과 소통하는 즐거움을 배웠다.

한국에 돌아온 지금은 복학해서 학교를 다니고 있다. 전에는 내성적인 성격이라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는 수업이 늘 두렵고 떨렸는데, 이제는 즐겁게 친구들과 눈을 마주치며 발표를 한다. 그리고 밤하늘의 별을 볼 때마다 탄자니아에서의 추억을 떠올 리며 빙그레 미소 짓곤 한다.

글=김유은(17기 탄자니아 굿뉴스코 해외봉사단)

김유은  info@dailytw.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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