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눈의 동양인 소녀가 커다란 눈의 아르헨티나 사람들에게 봉사를 하려니 처음엔 걱정부터 앞섰다. 하지만 마약과 폭력에 찌들어 살던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면서 하루하루가 기쁨으로 채워졌다. 어느새 아르헨티나 사람들도 그를 보면 싱긋 웃었다.

눈을 뜬 건지 감은 건지 알 수 없는 내 조그만 눈.

내 별명은 ‘눈뜨말’(눈 좀 뜨고 말해)이었다. ‘한국 사람보다 훨씬 큰 눈을 가진 아르헨티나 아이들이 나의 작은 눈을 좋아해 줄까?’
아이들이 날 좋아하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예쁜 눈망울로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내 눈이 정말 마음에 든다며 좋아해주었다. 만난 지 몇 분도 안되어서 우리는 서로의 눈을 마주치며 까르르 웃고 있었다. 예쁘고 귀여운 아이들의 미소가 조심스럽게 내 마음의 문을 열어주었다. 아르헨티나 땅을 밟은 지 2주가 되어 갈 무렵이었다. 지부장님께서는 우리에게 첫 번째 미션을 주셨다.

남극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 '우수아이'에서 새벽부터 6시간 동안 쉬지 않고 산을 올라 에메랄드 호수에 도착했다. 아름다운 호수 앞에서 기쁨의 점프!
남극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 '우수아이'에서 새벽부터 6시간 동안 쉬지 않고 산을 올라 에메랄드 호수에 도착했다. 아름다운 호수 앞에서 기쁨의 점프!

 “너희가 이 세상의 끝이라고 불리는 ‘우수아이아’에 가서 해외봉사에 대해 홍보도 하고, 그곳 아이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쳐봐.” 우리가 그곳에서 열린 첫 번째 한국어 아카데미의 강사가 될 것이라는 소식을 듣는 순간, 나는 잘 해보리라는 사명감에 불타올랐다. 구글 번역기부터 사전까지 모든 것을 동원해서 한국어 아카데미를 진행할 1시간 30분 분량의 대본을 준비해서 외우고 또 외웠다. 우리는 우수아이아를 향해 씩씩하게 떠났고 첫 한국어 아카데미의 막이 올랐다. 서툰 스페인어로 겨우 자기소개를 한 뒤 아이들에게 인사를 했다. 그런데 너무 긴장한 나머지 시흘 동안 달달 외운 대본은 저 멀리 우주 밖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첫 번째 한국어 아카데미를 절대로 망칠 수 없었다. 작전을 바꿨다. 칠판에 ‘ㄱ’을 쓰고 ‘ㄱ’과 닮은 계단 모양을 그리고 ‘ㄴ’을 쓰고 ‘ㄴ’과 닮은 내 코를 가리켰다. 우리는 그렇게 자음, 모음 하나하나씩 아이들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했다. 정말 바보들의 행진 같았다. 그런데 아이들에게 내 진심이 전달됐나 보다. 이 방법이 통한 것이다! 아이들이 자기 이름을 한국어로 쓰고 읽었다. 제대로 가르쳐 주지 못해 너무 미안했는데 정말 감격스러웠다.
“선생님! 정말 고마워요. 이곳에 와줘서 정말 고마워요!”
우리가 더 고마웠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눈빛으로 서로 통했다. 이렇게 우리는 첫 미션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우수아이아를다녀온 뒤, 난 열심히 스페인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아르헨티나 친구들과 자유롭게 대화하는 날을 꿈꾸면서.

한국문화 수업에서 색종이로 한복을 접어보았는데, 외국인 친구들은 너도 나도 실제로 한복을 입어보고 싶다며 관심을 보였다. 그야말로 인기 폭발이었다.
한국문화 수업에서 색종이로 한복을 접어보았는데, 외국인 친구들은 너도 나도 실제로 한복을 입어보고 싶다며 관심을 보였다. 그야말로 인기 폭발이었다.

돌멩이 대작전
우리의 첫 임무를 무사히 완수하고 지부장님께 보고를 드리려고 전화를 걸었다.
“지부장님! 저희 한국어 아카데미 잘 마쳤습니다. 이제 부에노스로 돌아가려고요!”
“그래. 수고했다. 그런데 너희들 미션이 하나 더 있어. ‘삐에드라 부에나’로 오면 설명해줄게.” 지부장님의 입에서 ‘삐에드라 부에나’를듣는 순간 우리는 지레 겁부터 먹었다. 그곳은 건축이 한창인 현장이었다. ‘건축 봉사’를 떠올리며 40시간을 달리고 달려 도착했다.
지부장님께서는 저 멀리서부터 두 팔 벌려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 ‘좋은 돌’이라는 뜻을 가진 곳 ‘삐에드라 부에나’. 예쁘게 생긴 돌이 많아서 지어진 이름이란다. 지명이 돌이라는 뜻이니까 돌들로 건물의 간판을 만들어 보라는 지부장님의 말씀. 우리는 400여 개의 돌멩이를 찾아 두 번째 미션을 완수해야 했다.
‘건물이 이렇게나 큰데 우리 둘이서 어떻게 글자를 다 새기지?’ 입이 딱 벌어졌다. 일단 그 많은 돌을 줍는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가 누구냐, 한국에서 온 굿뉴스코 단원들! 발만 동동 구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일단 무작정 돌부터 구하러 다녔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눈에 불을 켜고 땅만 보고 다니면서 검고 예쁜 돌을 마구마구 주웠다. 돌을 담고 붓고 또 담고 붓고. 점점 돌멩이가 되어가는 기분이었다. 산 넘어 산이라고 했던가. 돌멩이 모으는 일까지는 괜찮았다. 더 큰 문제는 일정한 간격으로 또 일정한 크기로 글자를 새기는 일이었다. 크고 예쁜 건물의 이름을 지어주는 일이라는 생각에 대충 할 수 없었다. 하루 종일 고민하면서 한 글자당 사이즈는 어느 정도로 할지, 한 글자당 돌이 몇 개가 필요한지 모든 것을 계산해서 도면을 그렸다. 그리고 박스를 주워서 글자 틀을 만들었다. 박스로 만든 글자 틀을 벽에 단단히 고정시키고 거기에 시멘트를 ‘퐁퐁퐁’ 묻혔다. 그리고 시멘트가 지나간 자리에 돌멩이를 ‘땅땅땅’ 붙였다. 나는 안전줄과 함께 사다리에 올라타 내 키보다 훨씬 높은 곳에 있는 돌멩이들을 하나씩 붙여갔다.

“야! 상희! 사다리 부러지겠다!”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니 얄미운 ‘산티아고 3인방’이 나를 쳐다보며 깔깔 웃고 있었다. 지부장님께서 분명 우리를 도와줄 천사들이 온다고 하셨는데, 알고 보니 그 천사들은 말썽꾸러기들이었다. 내가 시멘트를 묻히면 그 말썽꾸러기 친구들이 돌멩이를 붙였다. 이름이 없던 건물에 점점 이름이 생겼다. 마지막 돌멩이까지 붙이고 우리는 환호했다.
“와, 드디어 끝이다!”

돌멩이로 시작해 돌멩이로 끝나는 하루는 처음이었다. 해낼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일을 해내고야 말았다. 그때부터는 어떤 일이 주어지더라도 무섭지 않았다. 멀리서 오느라 피곤할 만도 한데 힘든 내색 없이 함께해 준 ‘산티아고 3인방’에게 고마웠다. 사실 이 장난꾸러기들은 전에 마약에 빠져 길거리를 방황하던 친구들이다.
마약이 일상처럼 자연스러운 나라. 마약, 술에 빠져 어두움에 허덕이는 사람들…. 지부장님께서는 소망 없이 사는 이 사람들을 정말 안타깝게 생각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이곳저곳 발품을 팔아 마인드강연을 시작했다. 잘못된 것을 바로 잡아주고 더 좋은 길을 제시해주는 일, 그 일을 굿뉴스코가 하고 있다. 어두웠던 자기의 삶이 바뀔 수 있도록 도와주어 고맙다며 이제는 자신들이 IYF를 위해 일하고 싶다는 사람들. 나는 그 변화의 이야기를 피부로 직접 느꼈다.
굿뉴스코는 단순히 봉사를 하는 곳이 아니다. 이 나라를 이끌어갈 청소년들에게 꿈을 심어 주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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