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우 (대구가톨릭대학교 경영학과 4학년)

작년에 해외봉사단원으로 멕시코에서 활동하면서 한국에서는 생각할 수도, 돈을 주고 살 수도 없는 소중한 경험을 하고 돌아왔다. 매주 토요일이면 30명 넘는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쳤고, 1,500명 넘는 사람들 앞에서 댄스 등 공연도 했다.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부족한 스페인어로나마 행사 홍보를 하는가 하면, 행사의 담당자를 맡아 프로그램 체크와 진행 등 운영 전반을 맡기도 했다. 소심한 성격에 부담스러운 일이 있으면 피해버리는 나로서는 한국에 있었다면 해보지 못했을 일들이다. 아니, 안했을 것이다.

수많은 경험들 중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어느고등학교에서 5주 동안 선생님이 되어 학생들에게 한국어와 한국 음식, 한국 문화 등 매주 다른 주제로 한국에 대해 가르친 일이다. 그런 경험 자체가 처음인데다 스페인어로 수업을 진행해야 해서 첫 수업 때는 몹시 긴장되었지만, 학생들이 잘 듣고 반응까지 해줘 너무나 기뻤다. 그러다 보니 온 마음을 다해서 준비하기보다 차츰 ‘이 정도만 하면 될 거야. 괜찮아’라는 안일한 마음으로 수업을 준비하게 되었다.

마지막 수업에는 김밥을 같이 만들기로 했다. 김밥 만들기는 한국에서도 해 보았고 멕시코에 와서도 몇 번 해 봤던 터라 더 준비에 소홀히 하고 생각도 깊이 하지 않았다.

‘그냥 이럭저럭 하면 되겠지. 그래도 학생들은 김밥 만들기를 재미있어 할 거야!’

하지만 막상 수업 당일, 내가 생각한 대로 되는 일은 하나도 없었다. 김밥을 잘 만들려면 밥을 맛있게 지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학생들에게 압력밥솥을 준비해 오라고 했다. 하지만 멕시코 학생들이 압력밥솥을 처음 사용한다는 것은 미처 생각지 못했다. 학생들은 밥이 미처 다 되기도 전에 뚜껑을 열고, 밥을 젓고, 뚜껑을 연 상태로 가만히 놔두는 등 압력밥솥을 전혀 사용할 줄 몰랐다. 생각도 못한 일이었다. 정말 당황스러웠고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수업시간은 무려 4시간이나 되었지만, 준비가 부족해 진행 자체가 이뤄지지 않았다. 같이 수업을 진행하는 선생님도 ‘왜 이렇게 수업준비에 소홀했냐? 스페인어를 모르면 사전을 찾아보라’며 언성을 높였다. 가뜩이나 답답하고 나 자신에게 화가 나 있는 상황에서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더 짜증스러웠다. 결국 김밥은 완성되지 못했다. 학생들이 가장 중요한 재료인 ‘김’을 준비해 오지 않은 것이다. ‘김밥을 만든다고 했으니 당연히 김은 가져오겠지’ 하고 생각한 탓에 학생들에게 김을 가져오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을 잊어버린 것이다. 이곳은 멕시코이고, 이들에게 김밥은 전혀 생소한 다른 나라 음식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황당한 실수였다.

수업이 끝나고 학생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학생들의 표정도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고, 나 또한 즐겁지 않았다. 애써 웃는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마음에서 나온 웃음은 아니었다. 빨리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바랐다.

‘앞으로 이런 부담스런 일은 하지 말아야겠다. 앞으로 여기는 다시 못 오겠지?’

학생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것도 귀찮았다. 형식적인 인사만 나누고 얼른 그 자리를 떠나고 싶었다. 그런데 멕시코인 선생님이 “하나, 둘, 셋!” 하고 숫자를 세더니 학생들이 일제히 웃으면서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저희 학교에 와 주셔서 고마웠어요.”

“한국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어 즐거웠어요. 다시 와 주세요!”

학생들은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나를 안아주었다. 그런 학생들에게 너무 미안했고, 한편으로는 너무 감사해서 눈물이 나왔다. 순간 내가 한국이 아닌, 멕시코에 와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생각도 짧고 스페인어도 서툰 내가 한국을 알고 싶어 하는 멕시코 학생들에게 한국을 소개하는 일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다. 하지만 나는 내가 수업을 잘했느냐, 못했느냐에만 마음이 매여 있었던 것이다.

한국에 있을 때 부모님이 이혼하시고 경제적으로 어려워지면서 나는 공부와 일을 같이 해야 했다. 형이 일을 하고 있긴 했지만, 나는 ‘집에 경제적으로 도움은 주지 못할망정 부담을 주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다. 무슨 일을 하든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아르바이트를 하더라도 남들보다 잘해서 조금이라도 돈을 많이 벌고 싶었다. 그렇게 지내는 동안 내 마음은 점점 지쳐갔다. 그런 부담에서 벗어나 쉬고 싶었고, 강박에 시달리는 나 자신을 바꾸고 싶었다.

마지막 수업이 끝나고 주차장에 가서 한참을 울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미안해서 그리고 행복해서 그렇게 울어 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 수업을 통해 ‘진정한 행복은 돈이나 좋은 결과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는 데서 나온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어설펐지만 함께이기에 행복했던 그 김밥 만들기 수업이야말로 멕시코가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이다.

저작권자 © 데일리투머로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