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은찬(한국교통대학교 영어영문학과 2학년)

내 삶에서 정말 굴곡이 많았던 시기를 꼽자면 군시절이 아니었나 싶다. 어려서부터 우리 집은 그리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가족들이 언제나 함께 있었고 화목했다. 자주 싸우긴 했지만, 나를 진심으로 아껴주는 형이 있었고, 늘 바쁘셨지만 마음으로 우리를 키워주신 부모님이 계셨다.

그런 내 삶에서 군입대는 큰 난관이자 어려움으로 다가왔다. 군대란 단체생활을 하는 곳이기에 다른 사람 생각을 하며 지내야 하지만, 나는 나 하나만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군대에서 계급이 낮을 때는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이 없기에 나는 그저 선임들의 눈치를 보도 할 일을 찾아 하며 최대한 조용히 살았다. 하지만 계급이 조금씩 높아지면서 내 사나운 성격은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후임병들의 사소한 실수에도 화를 내고 자주 괴롭혔다. 하지만 나는 그런 내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 왜냐하면 내 선임들은 그보다 더 작은 잘못에도 화를 내고 더 심하게 나를 괴롭혔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영창, 즉 부대 안에 마련된 감옥에 와 있었다. 말로 듣긴 했지만, 내가 오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곳이었다. 정말 쇠창살이 있었고, 그 안에서 하루종일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주먹 쥔 손을 무릎에 붙인 자세로 지내야 했다. 손가락이라도 까딱했다가는 얼차려를 받아야 했다. 식사로는 쇠창살 사이로 밀어 넣어주는 식판에 담긴 밥을 먹었다. 당시 내가 복무하던 부대는 내가 정말 가고 싶은 곳이었고, 그곳으로 자대를 배치받기 위해 정말 많은 노력을 했다.

그런데 그 사건으로 나는 다른 부대로 전출을 가야 했다. 너무 싫었고, 내 인생에서 마음이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다. 영창에서는 책을 읽는 것이 유일한 오락거리였다. 하지만 정자세로, 하루에 한 권 읽는 것만이 허용되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책만 읽으니 한두 시간 만에 책한 권을 다 읽을 수 있었다. 그 외 에는 시간이 정말 많이 남았다. 그 시간 동안 나도 모르게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도대체 왜 이렇게 힘들게 지내야 하는 걸까? 다른 부대에 간다면 나는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을까? 혹 다시 영창으로 돌아오는 건 아닐까?’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영창에 들어가는 순간까지도 난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그리고 내가 왜 영창에 들어와야 하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내 속에는 반항심이 자리잡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조금씩 생각을 하는 동안 나는 내가 했던 행동들을 내가 아닌, 내게 괴롭힘을 당했던 후임들의 관점에서 바라보기 시작했다.

일이등병일 때는 선임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면서 ‘나는 선임이 되면 후임을 잘 챙겨줘야지. 절대 괴롭히지 말고 가족처럼 대해줘야지’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나 역시 계급이 높아지면서 어느 새 나는 내 기분과 감정만을 기준으로 판단하게 되었다. 내가 세상의 중심이라는 오만한 생각을 하며, 마치 내가 세상을 만들고 움직이는 ‘신’이라도 된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나를 괴롭혔던 선임들보다 내가 더 나쁜 선임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사고를 한 단계 더 깊이 하는 순간부터 내 억울함은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고, 오히려 그 후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많이 들었다.

영창에서 생각하는 시간을 충분히 가질 수 있어 정말 감사했다. 그 전까지는 늘 내 기분이나 감정에 따라 행동하거나 상황을 판단했다.

그런 내게 ‘생각’이라는 게 존재했을 리 없다. 그 사건을 계기로 한 단계 더, 두 단계 더 깊이 생각하는 습관이 생겼다. 후임들을 함부로 대하는 습관도 조금씩 고쳐나갈 수 있었다. 나를 꺼리던 사람들의 태도도 조금씩 바뀌었다.

‘왜 내 주변에만 늘 문제가 생기는 걸까?’ 하고 불평하는 일도 사라졌다. 해결책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순간 내 마음에 올라오는 일차원적인 생각이 아닌, 조금만 더 깊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해결책이었다. 내 관점에서만 생각하다 보니 객관적인 관점에서 사건을 바라보는 눈이 어두워져 있었던 것이다. 새롭게 전출을 간 부대에서, 나는 더 깊은 생각을 함으로써 전보다 훨씬 행복하고 기억에도 남는 군생활을 할 수 있었다. 한쪽 면으로만 바라보면 너무도 슬프고 우울한 ‘영창’에서의 생활을 계기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었다. 영창에서 생각할 시간을 가지지 못했더라면, 지금쯤 영창보다 더한 진짜 감옥에 가서 울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지 않았을까.

한번은 ‘자기는 보지 못하지만, 남들 눈에는 모이는 내 모습’에 대해 마인드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크게 공감이 되는 강연이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을 보지 못하기에 자신이 괜찮은 사람, 별 문제 없는 사람이라고 쉽사리 믿어 버린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해 주는 이야기를 좀처럼 받아들이거나 남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못한다. 그리고 결국 다른 사람은 물론 자신까지 불행하게 만든다. 마치 내가 군대에서 나 자신을 너무 믿었다가 영창에 갔던 것처럼 말이다. 내 관점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그 마음을 헤아리는, 더 깊이 생각하는 마음을 갖는다면 세상은 좀 더 아름다워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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