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젊음을 팔아 그들의 마음을 사고 싶다- 언어 극복기

나는 어렸을 때부터 영어 배우기를 정말 좋아했다. 길에서 지나가는 외국인과 눈이 마주치면 꼭 ‘Do you like ice cream?’라고 한번 묻는 그런 아이였다. 영어가 너무 좋았던 나는 중·고등학생 때는 펜팔 사이트에서 만난 외국인 친구들과 이메일을 주고받았고, 좋아하는 미국 드라마가 있으면 대본을 구해서 따라 읽으며 재미있게 공부했다. 배우면 배울수록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할 수 있어서 영어가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중3 때에는 교환학생으로 미국에서 10개월 동안 고등학교를 다닐 기회가 생겨서 직접 사람들과 대면하며 생생하게 배울 수 있었다. 이렇듯 내 학창시절은 영어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했는데, 그 열정에 기름을 부었던 때가 바로 굿뉴스코 해외봉사였다.
 미국에서도 다문화의 중심인 뉴욕으로 파견된 나는 다른 봉사자들에 비해 어느 정도 의사전달이 가능했던지라 오피스 팀에 들어갔다. 영어로 서류를 작성하거나 콜센터에서 봉사하는 게 나의 주요 업무였다. 하지만 나 역시 전화를 받는 것은 겁나는 일이었다. 얼굴을 마주보고 대화하는 거야 몸짓과 표정으로 분위기를 전달할 수 있지만,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만으로 대화하는 건 쉽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뉴요커들은 말하는 속도가 매우 빨랐고, 미국식발음뿐만 아니라 인도식 영어, 이슬람식 영어 등 다양한 억양의 영어들이 난무했다. 이런 상황에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내가 혹시 조금이라도 알아듣지 못해서 잘못된 정보를 전달해서 행사를 망치진 않을까, 뉴요커들이 내 영어를 듣고 무시하진 않을까 두려운 생각들이 앞섰다. 하루는 봉사단원들이 개최한 행사에 참석하고 싶다며 센터 위치를 문의하는 전화를 받았다.
“센터는 44번가의 6번로와 7번로 사이에 있습니다~!”
“뭐라구요?”
“44번가의 6번로와 7번로 사이에 있습니다.”
“네? 잘 못 알아듣겠어요.”
“음, 44번가의, 6번로와, 7번로 사이에 있다고요.”
“당신 악센트 때문에 뭐라고 하는지 너무 알아듣기 힘드네요. 됐어요.”
그렇게 전화를 끊어버렸다. 영어회화는 나름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나로서는 너무 충격이었다. 내 악센트 때문에 행사에 관심 있던 사람도 떠나버리다니. 순간 전화를 받는 일이 무서워졌지만,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전화를 안받을 수는 없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하던 중에 전화를 받을 때 실제로 상대방과 대화하는 장면을 머릿속에 그려보기로 했다. ‘상대방은 어떤 점을 궁금해 할까? 왜 그런 질문을 던졌을까?’ 보이지 않는 상대방의 표정을 상상하며 목소리에 집중했다. 내 평소에 말투가 직설적이어서 쉽게 오해를 받았던 걸 기억하며 목소리를 예쁘게 내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하루에 80명씩 다양한 발음과 억양을 가진 사람들과 통화했다. 한 달이 지나자 ‘깡’이 생겨 어떤 발음을 가진 사람과 대화해도 겁나지 않았고, 여유가 생기자 상대방 이야기에 더 귀를 기울일 수 있었다. 듣기 실력이 저절로 향상되었음은 물론이고, 문의 전화를 하는 사람의 입장을 계속 상상하다 보니 나도 더 상세하게 답변해줄 수 있었다. 신기한 것은 이상한 내 억양 때문에 전화를 끊었던 뉴욕 사람들이 ‘정말 친절하고 자세하게 설명해주었다’며 고마움을 표현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나와 통화했던 사람이 직접 센터에 찾아와 만나면 더욱 반가웠다.
종종 자신이 어떤 고민이 있어 센터를 방문하는지 개인적인 인생 이야기를 들려주는 분도 있었다. 그럴 때면 나도 내가 굿뉴스코를 만나 어떻게 변했는지 이야기하고, 그렇게 대화하는 동안 문의자와 전화상담자가 아닌, 사람 대 사람으로 공감할 수 있었다. 미국에서 봉사하는 동안 영어를 할 수 있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고, 그럴수록 일부러 애쓰지 않아도 영어 실력이 점점 더 향상되는 것을 느꼈다.
굿뉴스코 해외봉사단으로 미국에 다녀온 이후 나는 세계를 무대로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생각에 영문 기자를 꿈꾸게 되었다. 그래서 봉사를 마치고 복학 할 때, 꿈을 이루는 데에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해서 영어 통번역학과로 전과했다. 요즘에는 내 영어실력에 기본기가 부족한 것을 느끼고 읽기 쉬운 청소년 소설로 재미있게 공부하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영어를 좋아하긴 했지만, 꿈이 생긴 요즘은 영어 공부가 전보다 더 즐겁다. 물론 전공 공부를 하다가 모르는 단어들이 한 무더기 쏟아져 나올 때면 머리에 쥐가 날 때도 있지만, 머지 않아 기자가 되어 다양한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글을 쓰는 내 모습을 상상하면 답답한 순간마저 행복한 시간으로 도치되어 버린다.

김은우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통번역학과)
굿뉴스코 해외봉사로 일 년 동안 미국에 해외봉사를 갔다. 여러 인종과 문화속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며 사람들의 삶 이야기를 듣는 일에 흥미를 느껴기자를 꿈꾸게 되었다. 세계를 누비는 영문 기자를 꿈꾸며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통번역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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