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회 설탕과 콩에 얽힌 음식 여행

<태진이의 좌충우돌 자전거 여행>의 저자이기도 한 송태진은 아프리카에서 해외봉사 활동을 마친 후 자신이 겪은 진솔한 경험들을 활자를 통해 대한민국 젊은이들에게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이번호에서는 아프리카 부룬디 음식 문화와 한국의 음식 문화와의 차이점을 통해 편견을 깨고 적응하는 스토리를 담아냈다.

 
 
병을 부르는 파인애플
아프리카에 관한 흔한 고정관념 하나는 ‘아프리카 사람들은 너무나 가난하기 때문에 입에 들어갈 수 있는 건 뭐든지 먹는다(?)’이다. 짐작하겠지만 ‘땡! 땡! 땡’이다. 절대 그렇지 않다. 오히려 한국인보다 더한 편식쟁이들이 아프리카 사람들이다. 기근이 발생할 정도의 극한 상황이 아니라면 아프리카인들도 음식에 관해선 깐깐하기 그지없다.
부룬디에서 누리는 호사 중 하나가 열대과일을 싸게 먹을 수 있다는 것. 한국에선 쪼들리는 대학생이었기에 먹을 엄두를 못 냈던 비싼 망고와 파인애플이 고작 몇 백 원이다. 게다가 화물선에 실려 바다를 건너오느라 지쳐버린 한국의 파인애플과는 달리 농약 한 방울 뿌리지 않은 100% 무공해 파인애플이 동네 시장에 널려있다. 밭에서 막 따와 꼭지도 아물지 않은 싱싱한 파인애플은 군침까지 돌게 만든다.
샤드락을 비롯한 몇몇 부룬디 친구들과 함께 파인애플을 먹을 때였다. 생과일에 눈이 뒤집혀 접시 바닥에 고인 과즙까지 흡입하는 나와는 달리 친구들은 몇 조각 먹더니 포크를 내려놓았다.
“샤드락, 파인애플 많은데 왜 조금 먹어? 더 먹어도 돼.”
샤드락은 아주 진지하고 묵직하게, 어린 조카에게 가문의 숨겨진 비밀을 알려주듯 나에게 충고했다.
“쏭, 파인애플에는 설탕이 잔뜩 들어 있어. 너무 많이 먹으면 병에 걸릴 거야. 너도 적당히 먹는 게 좋아.”
파인애플을 많이 먹으면 병에 걸린다고!? 이렇게 달콤하고 환상적인 유기농 과일이 병을 일으킨다니. 나는 말도 안 된다고 반박했지만 친구들은 병을 불러오는 무시무시하고 위험한(?) 파인애플에 더 이상 포크를 꽂지 않았다.
하루는 우리를 도와주는 현지 자원봉사자들을 대접하기 위해 소고기를 준비했다. 지부장님은 비싼 소고기를 어떻게 요리하면 봉사자들이 기뻐할지 고민하다가 특별히 한국의 전통 요리인 불고기를 만들기로 했다. 부족한 식재료를 끌어 모아 어렵게 만든 불고기가 식탁 위에 오르고…. 나는 해외 생활 중에 모처럼 느끼는 한국의 맛을 음미하며 감동에 젖었다. 그런데 옆에 있던 피에르는 고기를 몇 점 먹더니 실망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문제는 이번에도 설탕이었다. 요리에 설탕이 너무 많이 들어가서 못 먹겠다는 냉정한 시식 평. 세계인을 홀리는 음식 한류의 첨병, 자랑스러운 불고기가 달다는 이유로 외면당하다니. 아프리카인들은 가난하기 때문에 어떤 음식이든 좋아할 거라고 여겼던 나의 무지가 깨져버렸다. 아무튼 그날 현지 친구들이 포크를 깨작거린 덕에 나는 본의 아니게 불고기를 포식할 수 있었다.

커피만큼은 설탕을 듬뿍
식사를 마치고 음료로 커피가 나왔다. 부룬디 커피는 케냐, 에티오피아와 함께 아프리카산 커피 중 세계적으로 품질을 알아준다. 산업이 제대로 발전되지 않은 이 나라에서 그나마 외화를 벌어다 주는 효자 작물이다.
그런데 이 친구들 커피에는 설탕을 아끼지 않는다. 잔이 넘치도록 아빠 수저로 세 숟갈씩 팍팍 넣는다. 설탕 때문에 불고기를 안 먹은 피에르, 병에 걸릴까봐 파인애플을 거부하는 샤드락 등 열심히 건강 챙기던 그들이 유독 커피는 달달하게 호로록 잘도 마신다. 불고기 한 냄비보다 커피 한 잔에 설탕이 더 많이 들어있겠다고 하니 그냥 웃는다. 이 편식쟁이들, 이럴 거면 애초에 설탕이 몸에 안 좋다고 말을 말든지.

 
 
콩 요리에 얽힌 빈부격차
우리나라와 다른 부룬디의 음식 문화는 의외의 순간에 발견되곤 한다. 지역 사회 지도자들과 모임을 가진 뒤 식사를 하던 날이었다. 아무래도 지위가 있는 손님들이다 보니 부엌에서는 평소보다 음식 준비에 공을 들였다. 부룬디의 쫀득한 주식 ‘우부갈리’, 토마토소스에 졸인 소고기 스튜, 삶은 콩에 고소한 팜유를 섞은 콩죽 등 현지인들이 좋아하는 요리에 손맛을 듬뿍 넣어 정성껏 상을 차렸다.
“이게 뭐야, 빨간 콩이잖아!”
한 중년 부인이 갑자기 인상을 쓰며 투덜거렸다. 그녀의 외침은 작은 파장을 만들어 주변을
술렁이게 했다. 기분이 잔뜩 상해 있는 부인에게 무슨 일인지 물었다.
“부인,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이걸 봐요. 콩죽을 빨간 콩으로 요리했잖요.”
빨간 장미도 아니고 빨간 콩으로 요리한 건데 뭐가 문제지? 입 안의 빨간 콩 찌꺼기를 불쾌하게 뱉어내는 부인의 반응을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 다른 현지 친구들에게 콩죽을 대접할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 혹시 그 부인만이 유별나게 편식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지만 다른 손님들도 콩죽의 재료가 빨간 콩인 걸 알고는 입에 대지 않았다. 식사가 끝난 후 잔반통에는 먹다 남긴 빨간 콩이 수북하게 쌓였다.
알고 보니 부룬디에서는 소득 수준에 따라 먹는 음식에 미묘한 차이가 있었다. 우리가 내놓은 빨간 콩은 주로 서민들이 먹는 콩이었다. 반면 부자들은 노란 콩을 즐겨 먹는다. 노란 콩은 빨간 콩보다 식감이 더 부드럽고 맛도 좋다. 가격이 더 비싼 건 당연한 이야기. 노란 콩과 더불어 완두콩도 고급 콩으로 분류되어 고가에 팔린다.
그렇다고 빨간 콩이 저질(?) 콩인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부룬디에서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는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노란 콩은커녕 빨간 콩도 황송하다. 그들은 흰색, 검은색, 보라색, 얼룩무늬 등 총천연색이 마구 뒤섞인 콩을 먹는다. 현지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혼란스러운’ 맛이다. 가장 싸고 맛도 떨어지지만 가난한 사람들이 애용하는 콩이었다.

 
 
콩 요리로 소득 수준을 안다
한국 사람들이 밤고구마와 물고구마, 그리고 호박고구마의 미묘한 맛의 차이를 구분하듯, 부룬디 사람들은 다양한 콩의 맛을 구분하고 등급을 매긴다. 그렇게 구분되는 콩의 등급으로 부를 과시하기도 하고, 손님에게 예의를 차리기도 한다. 예를 들면 장례식장이나 결혼식장에서는 손님에게 완두콩을 대접한다. 가난한 집이라고 해도 섞인 콩을 써서는 안 된다. 빚을 내서라도 좋은 콩으로 요리를 하는 게 그들만의 예의다. 교육원의 친구들이야 나이도 젊고 우리와 잘 아는 사이니까 섞인 콩으로 죽을 끓이든 소고기에 설탕 범벅을 하든 감사하게 먹었지만, 지역 유지들인 이번 손님들에게는 빨간 콩이 격식에 맞지 않는 재료였다. 호텔 만찬에 번데기 통조림이 나온 격이랄까. 부룬디의 음식 문화를 제대로 몰라 벌어진 실수였다.

고구마는 서민 음식(?)
부룬디 사람들에게 음식은 자존심이 걸린 중요한 문제다. 빨간 콩 이외에도 부룬디 부자들은 고구마를 잘 먹지 않는다. 가난한 사람들의 음식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들은 고구마 대신 감자나 비토케(요리용 바나나)를 먹는다.
반면 가난한 사람들은 고구마 부스러기에도 감사해한다. 외국인으로서 해외봉사자들은 부룬디의 부자와 빈민 모두와 어울릴 수 있는 특권을 가지고 있다. 현지인들의 삶의 방식과 마음을 엿볼 수 있는 아주 좋은 방법은 그들과 같은 음식을 먹고 즐기는 것이다. 한국인이라는 틀을 버리고 같은 음식을 먹으며 빨간 콩이나 노란 콩에 담긴 미묘한 문화를 알아갈 때 현지인들과 동화되는 감정을 느낄 수 있다.

 
 
나의 기준을 버릴 때 문화 차이를 극복할 수 있다
‘그까짓 음식 대충 먹지, 별것 아닌 것에 까다롭게 군다’고 치부할 수도 있지만 그런 닫힌 생각은 현지인을 이해할 수 없게 한다.
내게 익숙한 문화의 틀 안에서 아프리카를 바라보면 낯선 그들의 모습에 실망을 하기도 하고, 오해를 품기도 한다. 급기야 현지인들을 나와는 다른 ‘이상한’ ‘미개한’ ‘말이 안 통하는’ 사람으로 규정해버리고 마음에 높은 담을 쌓을 수도 있다. 한국인의 사고방식으로는 파인애플을 거부하고 커피에 설탕을 퍼붓는 현지인이 미련하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생각일 뿐 현지인들에게는 내가 모르는 문화적인 이유와 전통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자신의 기준과 틀로 그들을 ‘이상하다’고 단정 지어버린다면 그 사람은 아프리카에서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한다. 만약 해외봉사단원이 그런 마음을 갖고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영어로 풍월을 읊는 뛰어난 인재라도 현지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구멍 난 그물로 물고기를 잡으려는 것과 같다.
사실 문화를 받아들이는 융통성이야말로 해외봉사단원의 기본적이고 중요한 자질이다. 해외봉사활동이 행복하게 될지 불행하게 될지는 나의 능력이나 노력, 파견국의 사정에 달린 게 아니다. 나의 기준을 버리고 현지인들의 문화를 깊이 경험해보는 것에서, 바로 해외봉사 활동의 진정한 맛을 경험할 수 있다.

 
 
송태진
2008년 부룬디로 1년간 해외봉사를 다녀온 그는 아프리카를 행복으로 가득 채울 꿈을 품은 맹랑한 공상가다. 2012년 손정아와 결혼해서 현재 인터넷 방송국에 재직하며 아프리카와 청소년을 위한 일을 계획하고 있다.

 
 

손정아
2007년 부르키나파소로 해외봉사를 다녀온 후 아프리카에서 얻은 행복으로 살아가는 아프리카 중독자이다. 해외봉사로 맺은 인연을 따라 필자인 송태진과 결혼했다. 현재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 중인 그녀는 청소년들을 위한 따뜻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일러스트 | 손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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