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회_배움의 열정

<태진이의 좌충우돌 자전거 여행>의 저자이기도 한 송태진은 아프리카에서 해외봉사 활동을 마친 후 자신이 겪은 진솔한 경험들을 활자를 통해 대한민국 젊은이들에게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이번호에서는 여름 방학 부룬디 대학생들의 배움에 대한 열정을 공유한다.

 
 
아프리카는 왜 발전하지 못할까? 여러 학자들로부터 식민지배의 후유증, 불공정한 국제무역 구조 등 다양한 원인이 제시되고 있다. 나 역시 부룬디에서 지내는 동안 이들은 왜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하곤 했다. 그리고 한 청년과의 만남에서 아프리카가 겪고 있는 고질적인 빈곤의 원인을 어렴풋이 엿볼 수 있었다.

부룬디 법대생과의 대화
하루는 홍보를 위해 부룬디 국립대학교를 방문했다. 부룬디에서 가장 훌륭한 대학인 이곳에는 전국의 수재들이 모인다. 이 학교의 학생들이 성장해 미래의 부룬디를 만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학에서 만난 어느 법대생에게 물었다.
“친구, 아프리카의 관리들은 뇌물을 요구하고 세금을 도둑질하지. 너는 그런 행동을 어떻게 생각해?”
“그건 정말 슬프고 나쁜 관습이야. 부정부패는 우리나라를 발전하지 못하게 만들어.”
“네 말이 맞아. 법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억울한 사람이 생기게 돼.”
“뇌물은 소수를 살찌게 하지만 그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고통 할 수밖에 없어.”
나는 젊은 법학도의 단호한 대답이 썩 만족스러웠다. 그래, 적어도 법을 공부하는 학생이라면 이런 소신이 있어야지. 아직 부룬디의 미래는 밝다!
“아주 좋아. 너는 법을 공부하니까 나중에 판사가 될 거잖아. 그때가 되면 부룬디의 부정부패도 끝날 것 같네.”
나는 눈앞의 법학도가 판사 복을 입고 대쪽을 휘두르며 뇌물을 들고 기어 다니는 돈벌레들을 박멸하는 상상을 하며 유쾌한 기분으로 물어보았다. 그는 대답했다.
“오, 친구. 나는 그럴 수 없어. 나도 그걸 보고 법대에 온 거라고.”
뭐라고? 내 귀를 의심하게 하는 그의 대답이 돌아왔다. 분명 방금까지는 뇌물의 문제점을 이야기하던 이 친구, 부룬디의 미래를 변화시킬 듯 위풍당당하던 법학도가 갑자기 가련한 춘향의 주리를 틀려고 기다리고 있는 변학도로 보였다.
그의 설명은 이렇다. 부정부패는 부룬디를 망하게 하고 있고 모든 국민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자신이 법대에 온 이유는 판사가 되어 그것을 없애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역시 뇌물을 좀 먹어보기 위해서다.
그는 물론 그의 가족들과 300명은 족히 넘을 친척의 친척들 역시, 그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뇌물을 받지 않기로 하면 가족들에게 미움을 받게 되고 주변으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게 될 것이다. 부정의 문제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거기에 맞서 싸울 힘은 없는 서툰 지식인의 비애였다.

대학에서 현지 학생들과 교류하는 일도 해외봉사의 중요한 부분이다.
대학에서 현지 학생들과 교류하는 일도 해외봉사의 중요한 부분이다.
아프리카에 전해지는 봉사정신
해외봉사단원들은 젊은 법대생에겐 생소할 마음의 세계를 갖고 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위해 살 때 진정한 행복을 얻는다고 생각
대학에서 현지 학생들과 교류하는 일도 해외봉사의 중요한 부분이다.

한다. 베푸는 것이 받는 것보다 낫고, 부자가 되려고 하지 말고 도움이 필요한 자를 위해 물질을 사용하라고 들었다.
많이 일하고 적은 보수를 얻는 게 좋은 일이라고 배웠고, 다른 사람을 위한 불가능한 꿈을 꾸라는 가르침을 받았다. 그러한 마음을 품고 봉사하기에 빠른 성공을 위해 요행을 부리지 않고 묵묵히 정도를 향해 나아갈 수 있고, 낯선 외국에서 겪는 차별과 어려움도 기쁨으로 넘어설 수 있다.
봉사단원들이 갖고 있는 건전한 마음의 세계는 아프리카의 청년들에게도 전달된다. 아프리카의 젊은이들은 우리의 활동을 의아하게 생각한다. 왜 돈도 안 받고 자청해서 힘든 일을 하느냐고 물어본다. 그때 우리는 이야기한다. 너를 위해서 내 젊음을 사용하는 게 행복하다고. 그리고 조금씩 그들도 우리를 좇아 다른 사람을 위해 살아가는 행복을 배운다. 오스카, 페니엘, 엘비스, 필벳…. 하나둘 함께하는 사람들이 늘어가는 걸 보며 우리는 아프리카가 변화될 즐거운 희망을 품는다.
다른 사람을 위해 사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많아진다면, 그리고 그 마음이 사회를 움직이는 큰 힘이 된다면 아프리카가 가난에서 벗어나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그 날을 꿈꾸며 행복한 해외봉사를 하고 있다.
아프리카뿐 아니라 한국의 대학생들 역시 대학시절에, 그 아름다운 시간을 자신이 아닌 남을 위해 살아가는 마음가짐을 배우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데 사용한다면 결코 후회하지 않을 청춘을 보낼 것이다.

모니터가 뚫어져라 집중하는 학생들
모니터가 뚫어져라 집중하는 학생들
클릭을 모르는 부룬디 엘리트
부룬디의 교육기관이 수도 부줌부라에 밀집되어 있다 보니 많은 학생들이 수도에서 기숙사나 하숙 생활을 하며 학교를 다닌다. 부줌부라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은 나름 지방에서는 연필심 좀 씹던 친구들이라는 뜻. 그렇게 열심히 공부를 하던 학생들은 방학이 되면 그리운 고향으로 돌아간다. 고향이라는 곳이 대부분 시골 - 수도 부줌부라도 시골 같긴 하지만 - 이다보니 그들은 방학 동안엔 책을 잠시 덮어두고 부모님의 농사일을 돕는다. 학교가 방학에 들어가는 것에 맞춰 우리의 무료교실 수업 역시 방학을 시작한다.
우리는 한국의 전자회사에서 후원해 준 노트북 7대로 컴퓨터 수업을 시작했다. 아직 TV는커녕 라디오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한 가난한 부룬디의 주민들은 최첨단 기계의 갑작스런 등장에 흥분하며 들썩였다. 무료로 컴퓨터 교육을 한다는 소문이 퍼지기 무섭게 사방에서 수업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몰려왔다. 그저 컴퓨터를 한번 보고 싶어서 찾아온 사람들도 꽤나 많았다. 그들은 노트북의 납작한 형태를 보더니 자신들이 알고 있는 컴퓨터 - 브라운관 모니터를 갖고 있는 데스크톱 컴퓨터 - 와 다르게 생겼다며 신기해했다.
앞집 변호사 아저씨부터 뒷집 가정부 아줌마까지 온 동네 사람들이 컴퓨터를 배우고 싶어 했다. 하지만 단 7대의 노트북으로 부줌부라 사람들을 모두 가르칠 수는 없었다. 우리는 50명을 선발해 25명씩 두 반을 만들었다. 그나마 전자제품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젊은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반을 꾸려 반별로 일주일에 두 번, 한 달에 8번씩 수업을 했다. 나중엔 장년층을 추가 모집해 특별반을 운영하기도 했다. 컴퓨터 수업의 인기는 꽤나 뜨거웠다.
선택 받은 25명과 함께한 첫 수업 시간. 컴퓨터 한 대마다 건장한 청년들이 서너 명씩 어깨를 맞대고 끼어 앉았다. 간단한 컴퓨터 이론으로 첫 교육을 시작했다. 컴퓨터를 구성하는 본체와 모니터, 키보드 등의 이름과 원리에 대해 이야기했다. 한국에서는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 수준의 강의지만 컴퓨터를 접할 기회가 드문 부룬디의 학생들에게는 그야말로 ‘신지식’이었다. 심지어 키보드로 문장을 작성한 후 엔터를 눌러야 한 줄이 넘어간다는 사실에도 눈이 휘둥그레지며 놀라워했다.

 
 
그런데 그들 사이로 눈에 띄는 청년이 한 명 보였다. 그의 이름은 샤드락. 그는 내가 이야기하는 내용을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 지긋이 미소를 짓고 있다가 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주변의 학생들에게 ‘보충 설명’을 해주었다. 자연히 학생들은 현지 언어를 사용하는 샤드락의 말을 귀담아 듣게 되었고, 주목을 받게 된 이 친구는 신이 난 나머지 나중엔 자리에서 일어나 나보다 더 많이 떠들어댔다. 수업 분위기가 엉망이 되어 가고 있었다. CPU에 대해 설명할 때였다.
“CPU는 컴퓨터의 두뇌라고 볼 수 있는 장치입니다. CPU가 빠르게 계산을 하기 때문에 다른 장치들이 연결되어 하나로 작동할 수 있는 거죠.”
아니나 다를까 내 말이 끝나자 이번에도 그는 일장 연설을 쏟아냈고, 학생들은 감탄사를 내뱉으며 놀라워했다.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이봐요. 학생. 아까부터 나보다 말을 더 많이 하는 것 같은데요.”
“아, 선생님. 저는 학생들이 수업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주고 있어요.”
“나는 그런 거 부탁한 적 없는데. 방금은 무슨 설명을 한 거예요?”
“CPU에 대해서 추가로 이야기했습니다. CPU는 영어로 ‘Central Processing Unit’이라고 하고, 프랑스어로는 UCT 즉, ‘Unite Centrale de Traitement’라고 하며….”

줄줄줄 박학한 지식을 쏟아내는 샤드락은 부룬디 국립대학교 컴퓨터공학과 신입생이었다. 입학 허가만 받고 아직 새 학기를 시작하지는 않은 상황이었지만, 컴퓨터 관련 책을 꽤 읽었는지 이론적으로 아는 것이 많았다. 이 친구, 머리에 쌓아놓은 지식을 자랑하고 싶어 근질거리던 차에 컴퓨터 수업이 생긴다는 소식을 듣고는 냉큼 달려온 것이다. 컴퓨터 교실의 다른 학생들은 부룬디의 떠오르는 IT 유망주 샤드락이 눈앞의 꼬맹이 한국인 선생은 물론 빌 게이츠보다도 컴퓨터를 잘 아는 건 아닐까 상상하는 듯 했다. 이래서는 교육이고 뭐고 될 수가 없었다. 그의 잘난 입을 좀 꿰매 줄 필요가 있었다.
“네, 아주 훌륭하네요. 그런데 학생은 CPU를 본 적이 있나요?”
“그게… 실제로 본 적은 없어요.”
“그럼, 컴퓨터를 이용해서 문서를 작성하거나 이메일을 보내본 적 있나요?”
“타자 연습을 해본 적은 있는데 그런 건 못 해봤습니다.”
“컴퓨터 교육은 이론도 중요하지만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가 더 중요해요. 내가 이론을 자세히 가르치지 않는 건 너무 문자적인 지식에 신경을 쓰다가 실기를 소홀히 할까 봐 그런 거예요. 그러니까 굳이 학생이 나서서 보충 설명을 해줄 필요는 없어요. 오히려 더 혼동을 줄 수 있거든요.”
똑똑한 샤드락은 즉각 내 말을 이해하고 ‘보충 설명’을 자제하며 수업에 집중했다.
나와 컴퓨터 수업을 함께한 학생들은 그냥 동네 한량들이 아니라 부룬디의 엘리트라고 볼 수 있는 유명 대학교의 학생들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엔터를 누르고 클릭을 하는 동작도 서툴렀다. 특히 더블 클릭이나 드래그 앤 드롭 같은 꽤나 정교한 마우스질을 한번 할라치면 한 시간 정도는 온 몸을 부들부들 떨며 연습해야 가능할 정도였다. 환갑이 다 되신 우리 아버지보다도 타자 치는 속도가 느림은 물론이다.

컴퓨터 수업에서 그림판으로 로고 그리는 법을 배웠다.
컴퓨터 수업에서 그림판으로 로고 그리는 법을 배웠다.
열정은 종이키보드를 닳게 하고
모르는 게 많은 만큼 학생들은 열정을 갖고 공부를 했다. CPU를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기능은 달달 외우고 있던 샤드락처럼 눈앞의 지식은 알든 모르든 무엇이든지 받아들이고 흡수했다. 컴퓨터를 분해해서 CPU를 보여주었을 때 샤드락은 전설로만 듣던 훈민정음 해례본을 발견한 고고학자 같은 표정을 지으며 황송해 했다.
컴퓨터를 배우고 싶다는 열정은 부족한 교육환경도 넘어서게 했다. 컴퓨터 1대에 서너 명이 붙어 교대로 실습을 했고, 키보드가 부족해 실제 크기로 인쇄한 종이키보드로 타자 연습을 했다. 수업 중간에 정전이 되어 일주일에 두 시간뿐인 귀한 기회를 날리는 경우도 있었다. 여러 악조건이 있었지만 학생들은 그러한 문제마저 바위에 비문을 더 깊이 새기는 과정으로 여기며 겸손하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당연히 그들의 실력은 빠르게 성장했다.
그런 그들에게 종이키보드로 연습하라고 했다면 한국 대학생들은 농담으로 여길 것이다. 그러나 부룬디 학생들은 종이키보드를 14살 때 받은 연애편지처럼 소중히 다뤘다. 종이가 접히는 것도 두려워 책받침 사이에 조심스레 끼워서 갖고 다녔고 틈날 때마다 꺼내 연습을 했다. 그리고 놀라지 마시라. 그들의 종이키보드는 닳아서 구멍이 났고, 한 달 만에 분당 타자속도가 300타를 넘는 학생들이 나타났다.
나를 곤란하게 했던 샤드락은 수업을 받으며 우리에게 마음을 활짝 열었다. 수업이 없는 날에도 매일 찾아와 같이 살다시피 하며 우리와 봉사를 함께했다. 뜨거운 열정을 품은 데다 성실하기까지 한 그는 컴퓨터도 아주 빠르게 습득해서 나중엔 수업의 보조교사로 활약했고, 교육원의 각종 컴퓨터 문서 작업을 맡아 처리하는 최고의 자원봉사자가 되었다.

단원들이 해외봉사 이후 성장하는 이유
부룬디의 학생들은 교육을 받을 수만 있다면 장비가 열악하거나 지도 방법이 어설픈 것에 개의치 않았다. 그들에게는 기회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오랜 내전 속에서 태어나 컴퓨터를 배울 기회도, 만질 기회도, 볼 기회도 없던 그들이 어렵게 잡은 하늘의 축복을 단지 불편하다는 이유로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것은 뭐든지 배우고 습득하려고 하는 그들의 순수하고 낮은 마음. 부족한 환경 속에서 전념으로 기회를 잡아 배움으로 이어가는 그들의 모습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그들에 비하면 나는 모든 것이 풍족한 한국에서 얼마나 많은 기회들을 발로 차고 스스로 포기해 버렸던가. 부룬디 대학생들이 갖고 있는 배움의 간절함 앞에서는 자연스레 나의 태만을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해외봉사활동을 하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단원들이 봉사활동 이후 한 단계 도약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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