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정부 시위 속에서 문을 열다 아이티 ‘드림 대안학교’

카리브해의 섬나라 아이티에 한국인이 운영하는 대안학교가 문을 열었다. 개교한 시점이 반정부 시위로 혼란한 시기여서 학교의 설립 배경이 궁금하다. 정규학교도 문을 닫고 시민들은 불안감에 휩싸인 때, 이 학교 학생들은 분위기에 맞지 않는(?) ‘희망콘서트’를 열었다고 한다. 절망에 익숙한 아이티 청소년들에게 희망의 불씨를 일으키기 시작한 ‘드림 대안학교’ 이야기를 들어본다.

희망의 불씨가 아이티를 새롭게 하길 바라며

2012년, 아이티에 도착한 해에 길거리에서 초등학교 저학년쯤 돼 보이는 아이를 만났다. 아이는 구슬땀을 흘리며 자기 몸집보다 훨씬 큰 리어카를 울퉁불퉁한 자갈길 위에서 밀고 있었는데, 우리집 담장 밑 그늘에서 잠시 멈춰 섰다. 리어카 안에는 물이 가득 담긴 커다란 대야가 있었다. “너는 꿈이 뭐니?” 어린 아이가 열심히 사는 모습이 기특해 보여 말을 걸자 아이는 “꿈? 그게 뭐에요?”라고 되물었다. 나는 ‘아이가 아직 어려서 모르나 보다’ 생각하고 “커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묻는 거야”라고 했더니 빤히 나를 보던 아이가 수줍게 입을 열었다.

“저는 학교에 가고 싶어요. 교복을 입는 게 꿈이에요.” 예상치 못한 아이의 대답에 나는 당황스러웠다. 학교에 가는 걸 한 번도 꿈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족쇄 같은 학교를 빨리 벗어나는 게 소원이었고, 선생님이 안 계시는 자율학습 시간이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이었다.

‘절망’이란 늪에 빠진 나라

내가 사는 아이티는 최빈국에 해당하는 나라다. 2010년에 발생한 대지진은 20만 명의 사상자를 냈고, 그로 인한 피해와 상처는 아직도 도시와 사람들 마음 곳곳에 깊이 남아 있다. 하루아침에 가족을 잃은 아이들은 남의 집에 얹혀살며 온종일 물을 길어오고 빨래를 하는 대가로 겨우 몸을 구겨 넣을 수 있는 잠자리와 최소한의 음식을 얻는다. 그마저도 없는 아이들은 길거리에 내몰려 구걸을 하거나 범죄에 노출된 채 비참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일면식도 없는 내게 아이를 데려와 내 손에 아이의 손을 쥐어주는 어머니들의 절절함은 내 가슴을 찢어지게 했다. 아이티에 대한 나의 첫인상은 한마디로 ‘온 국민이 거대한 절망의 늪에 빠진 나라’였다.

그런 아이티에 2019년 2월부터 전국적인 규모의 반정부 시위가 시작되었다. 도시 곳곳이 불길에 휩싸였고 교통이 마비되어 물자 공급이 중단되자 사람들의 생활이 더욱 어려워졌다. 학교는 모두 문을 닫았고 전기도 중단되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충격적인 것은 시위의 최전선에서 도시를 불태우고 총을 난사한 이들의 대부분이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이라는 점이었다. 앞날을 알지 못하는 아이들, 가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아이들, 아무런 교육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불과 몇 개월 사이에 절망의 늪에 삼켜져 버린 것이다.

나는 2012년부터 가정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이나 상처를 가진 아이들을 우리 집에 불러 모아 기거하게 하면서 교육하고 있다. 24시간 아이들과 함께 지내며 상담도 해주는데, 야생마 같았던 아이들이 기댈 곳을 찾아서인지 심리적인 안정을 되찾고 빠른 속도로 밝아지는 것을 본다. 게다가 자신들도 사회에 기여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대견하고 사랑스러운지 모른다.

최근 더욱 격해진 시위로 아이티 전국의 학교들이 3개월 동안이나 문을 닫았는데, 현지 사람들도 이런 사태는 처음 겪는 일이라며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시위에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에 갇힌 듯 절망스러워했다.

시위대가 ‘문을 여는 학교는 모두 불태워버리겠다’고 엄포를 놓는 바람에 텅 빈 학교들은 먼지만 수북이 쌓여가고, 불안해하는 학생들을 위해 정부나 학교가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한솔이가 변했듯이…

문득, 내 학창시절이 생각났다. 나는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 학교와 가정에서 문제를 많이 일으키는 학생이었다. 가난한 가정형편을 원망했고, 아무리 수업을 따라가려 해도 따라가지 못하는 내 자신을 보며 일찌감치 학업을 포기했다. 마음에서 모든 걸 포기하고 다니는 학교는 더 이상 의미가 없었기에 나는 급속도로 방황하기 시작했다. 세상을 향해 불만을 품었고, 아침에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술을 마시며 내 몸을 학대했다. 아무런 꿈이 없었던 나는 그저 하루하루 소소한 즐거움을 가져다주는 술과 담배에 나를 던져 버렸다. 그렇게 망가지기 시작해 시간이 갈수록 삶의 방향이 달라지는 친구들을 보니 나는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가고 있다는 생각에 더욱 괴로웠다.

그러다 문득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해외봉사단에 지원해 아프리카에 가보기로 마음을 먹었는데, 봉사단원들을 지도해주시는 선생님으로부터 그동안 내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이야기를 들었다. “너는 10년 후, 20년 후 세상을 비추는 별이 될 거야. 사람들이 너를 보면서 꿈을 품고 희망을 갖게 될 거야.” 나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모두가 내게 ‘너는 안 돼’라고 말했고, 나조차도 ‘나는 안 되는 놈’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분은 나를 볼 때마다, 심지어 내가 술에 자주 취해 있는 걸 알면서도 “한솔이는 달라질 거야”라고 하셨고, 단 한 번도 부정적인 표현을 쓰지 않으셨다.

그런데 신기하게 그 말이 조금씩 내 마음에 자리잡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어떠하냐에 상관없이 보내주는 무조건적인 지지와 신뢰는 내 마음과 삶을 변화시켰고, 나는 ‘나처럼 희망의 빛줄기를 본 적 없이 살아가는 이들을 위해 일하겠다’는 꿈을 꾸게 되었다.

그리고 2012년, 선교사가 되어 아이티에 발을 디뎠다. 아이티에서 만난 많은 학생들이 ‘나는 안 돼’ ‘우리는 끝났어’ ‘이미 늦었으니 될 대로 돼버리라고 해!’라고 말했는데, 나는 그런 그들에게 ‘그래, 너희는 안 돼. 절대로 변할 수 없어. 희망이 없어’라고 할 수 없었다. 그들과 똑같았던 내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나는 선생님께 들었던 대로 “아니야, 늦지 않았어. 너희들은 변할 거야. 다시 일어나 봐. 내가 옆에서 도와줄게. 같이 해보자!” 라고 말해주었고, 놀랍게 아이들이 변하기 시작했다.

희망으로 미래를 그리는 학생을 양성하는 학교

우리는 학교가 문을 닫은 수개월 동안 선교센터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영어와 프랑스어, 세계사, 음악, 태권도 등 다양한 과목을 개설했고, 아이들이 절대로 희망의 끈을 놓지 않도록 마음을 훈련시키는 마인드교육을 병행했다. 그런데 그리 길지 않은 시간에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절망에 먹혀버린 것 같았던 아이들 입에서 희망적인 표현들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하고, ‘내 꿈은요…’라고 말하는 아이들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리가 만든 어설픈 학교 울타리 안에서 이렇게 훌륭하고 사랑스럽게 성장해가다니!’ 아이들이 달라지는 모습은 우리에게 말할 수 없는 감동과 기쁨을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나라에 아직 희망이 있다는 작은 불씨를 보여주어 2019년 11월 24일, 드디어 우리는 세상을 바꿀 ‘아이티 드림 대안학교’의 문을 열었다.

개교식과 더불어 학생들과 ‘희망콘서트’를 준비했다. 몇 달째 계속되는 시위로 마음의 문을 꽁꽁 잠근 아이티 사람들에게 우리가 학교를 통해 얻은 희망을 전달해 주고 싶어서였다. 위험한 상황 속에서도 학생들은 매일 센터를 찾아와 수업을 듣고 콘서트를 준비했다. 거리는 절망이 가득했지만 학교에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게 신기하고 즐거웠다. 이들의 간절한 바람이 전해진 때문인지 행사 당일 500명 가까운 시민들이 모였고, 학생들은 최고로 멋지고 행복한 모습으로 그동안 준비한 공연을 선보였다. 사람들은 최근 들어 시위 외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인 행사는 없었다며 모두 놀라워했다. 또 자신들이 얼마나 비참한 삶을 살아왔으며, 지금은 얼마나 행복한지 담담히 이야기하는 학생들을 향해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우리의 작은 발걸음이 영향을 준 때문일까? 아니면 학생들의 희망이 어디론가 전달된 걸까?’ 신기하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곳곳의 학교들이 문을 열기 시작하더니 끝날 것 같지 않던 시위도 점차 사그라들었다. 현재 아이티 학교들은 모두 문을 열었고, 도시가 평소의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는데, 나는 우리 학교 학생들이 용기 내어 내디딘 발걸음과 이들이 피운 작은 불씨가 아이티 사태를 멈추게 하고 학교들의 문을 활짝 열었다고 믿는다.

아이티 드림 대안학교! ‘드림’은 꿈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항상 받기만 하던 아이들이 무언가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며 지은 이름이다.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 기쁨과 감사를 ‘드릴 줄 아는’ 학생들을 양성하는 ‘드림 학교.’ 얼마나 멋지고 아름다운 이름인가! 나 또한 망나니 같았던 나에게 많은 분들이 보내준 격려와 응원을 학생들에게 ‘드리고’, 학생들은 받은 사랑을 다시 다른 이들에게 ‘드리는’ 학교가 되길 꿈꾸며 일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원조를 받는 나라 중 한 나라인 이곳에서 희망으로 미래를 그릴 줄 알고, 드릴 줄 아는 학생들을 키우는 일에 내 삶을 바치고 싶다.

글=이한솔
대학생 시절 카메룬으로 봉사활동을 다녀온 후 인생의 방향을 새롭게 설정한 그는 현재 아이티에서 선교사와 해외봉사단 매니저, 대안학교 교장으로 일하고 있다.

드림 대안학교
아이티 남서부에 위치한 ‘레카이’ 지역에 한국인 선교사 이한솔 씨가 설립한 대안학교입니다. 아이티 반정부 시위로 대부분의 학교가 문을 닫자 청소년들을 위한 대안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수업을 개설했는데요. 주중에는 수학, 세계사, 과학, 영어 등 일반 교과를 가르치고 태권도와 인성교육 수업을 진행하며, 토요일에는 명작영화 감상 시간을 갖습니다.

일요일에는 한 주 동안 배운 수업 내용에 대해 평가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일반교과 외에 한국어·한국문화 체험하기와 합창, 댄스 수업도 인기가 있는데, 학생들이 다른 문화를 경험하고 노래 부르며 신체를 단련하는 활동에 참여하면서 배우는 즐거움을 느끼고 꿈을 키워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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