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캐나다 원주민 그들에게 희망을 ④

물질문명이 주는 안일에 젖어 과거의 용맹하고 강인한 정신을 잃어버린 채 살던 미국과 캐나다 원주민들. 술과 마약, 범죄, 도박, 성적 문란이 횡행하던 원주민 마을에 마인드교육이 소개되면서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그 현자을 찾아 본지 취재팀이 달려갔다.

현재 캐나다에는 650여 곳의 원주민 마을이 존재한다. 재미있게도 원주민 마을 가운데에는 ‘네이션nation(나라)’이란 이름이 붙은 곳이 많다. 실제로 과거 원주민들은 부족마다 독특한 문화와 풍습을 영위한, 어엿한 독립국을 형성하며 살았다. 마을과 마을 사이의 거리도 차로 몇 시간을 달려야 할 정도로 멀다. 인구는 적게는 수백에서 많게는 수천을 헤아린다. 원주민 마을들 중 취재팀이 다녀온 곳은 매니토바 주의 노르웨이 하우스, 크로스 레이크, 넬슨 하우스 등 세 곳이다. 말로만 듣던 원주민 마을, 지금 그곳에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스틱을 들고 집 앞에 선 매튜.
스틱을 들고 집 앞에 선 매튜.

아이스하키 선수 지망생 매튜 “이제는 전혀 마약 생각이 나지 않아요!”
‘세상에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어!’

취재팀이 출발한 곳은 캐나다의 한가운데 위치한 매니토바Manitoba 주의 주도 위니펙Winnipeg이었다. 인구 약 78만 명인 위니펙은 두 개의 강이 관통하는 아늑한 분위기의 도시다. 하지만 위니펙 도심을 걷다 보면 허름한 차림의 원주민 노숙자들을 어렵잖게 만날 수 있다. 풍요로운 새 삶을 찾아 보호구역을 떠나 도시로 왔지만, 일자리와 살 집을 구하지 못해 길에서 그날그날 숙식을 해결하는 것이다. 실제로 위니펙 시민들 중 원주민 비율은 11.7%로, 이는 캐나다 대도시들 중 가장 높은 수치다.

위니펙에서 차로 8시간을 넘게 꼬박 달려 첫 목적지인 노르웨이 하우스Norway House에 도착했다. 위니펙호湖에서 북쪽으로 30킬로미터 떨어진, 인구 5천 명의 비교적 큰 마을이다. 과거 영국이 노르웨이 출신 전과자들을 보내 이곳을 개척했기에 노르웨이 하우스라는 이름이 붙었다. 1월에는 기온이 영하 27도까지 내려갈 만큼 춥고 척박한 땅이다.

마을 입구를 알리는 조형물
마을 입구를 알리는 조형물
세상을 비관하는 내용이 담긴화장실 벽의 낙서.
세상을 비관하는 내용이 담긴화장실 벽의 낙서.

마을 중심부의 광장에 차를 세웠다. 중심부라고는 하지만 마트와 음식점, 지역주민센터, 체육관 등 건물 몇 채가 세워진 것을 빼면 황량하다는 느낌이 들 만큼 썰렁했다. 우선 마을 분위기를 파악할 요량으로 주민센터로 갔다. 직원에게 마을 대표를 만나고 싶다고 했지만, ‘먼 곳으로 휴가를 가서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하는 수 없이 아침을 먹으러 마트로 발길을 돌렸다. 커피와 도넛을 주문한 뒤, 화장실로 갔다. 그런데 화장실 벽에 휘갈겨 적힌 낙서가 눈에 들어왔다. ‘세상에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어! 이 세상은 ×덩어리일 뿐이야’라는 낙서였다. 기껏해야 ‘철수♡영희’나 ‘화장실을 깨끗이 씁시다’ 같은 장난스런 낙서가 적힌 한국의 화장실과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문득 ‘이 낙서가 어쩌면 이곳 주민들의 심정을 대변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을 중심부 광장.
마을 중심부 광장.
매튜가 다시 활기찬 삶을 살게되어 기쁘다는 어머니.
매튜가 다시 활기찬 삶을 살게되어 기쁘다는 어머니.

잃어버린 꿈을 마인드교육으로 되찾은 매튜
노르웨이 하우스에서 고교생 매튜Matthew Robertson를 만날 수 있었다. 매튜는 한때 마약에 빠졌지만, 지난해 여름에 미국 LA와 뉴욕에서 열린 IYF 월드캠프에 참석해 마인드강연을 들으면서 마약을 거의 완전히 끊었다. 신기하게도 지금은 마약을 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나지 않는다고 한다. 기자가 ‘마을 광장의 주민센터에 갔다 왔는데, 대표를 만나진 못했다’고 하자, 매튜가 반문했다. “마을 광장이요? 거기에는 늘 마약 판매상이 두 명 정도 있어요”라고 했다. 순간 살짝 식은땀이 흘렀다. 어쩌면 내가 마주친 사람들 중에 마약 판매상이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매튜는 ‘여기서는 흔한 일이다’라며 살짝 미소를 지어 보였다.

“월드캠프에 참석하면서 원주민 마을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었어요. LA의 산타모니카 해변이나 뉴욕의 타임스퀘어도 가 봤고요. 마인드교육도 유익했고, 댄스와 태권도 아카데미, 카푸치노 만들기도 신기하고 재미있었습니다.”

한때 주니어 아이스하키 팀에서 주전으로 활약하며 대회에 나가 상도 받았다는 매튜. 마약의 굴레에서 벗어나면서 최근 다시 운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새로운 꿈도 두 가지나 생겼다. 하나는 아이스하키 선수가 되는 것, 또 하나는 형처럼 전기수리공이 되어 결혼해 아이를 낳아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이다.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어느덧 점심시간이 됐다. IYF 토론토 지부의 김지헌 지부장과 조은아 매니저 내외가 챙겨온 쌀과 전기솥으로 직접 밥을 짓고, 김치찌개에 삼겹살까지 마련해 근사한 점심상을 차렸다. 매튜는 한국사람이라도 된 듯 한국음식을 아무런 거부감 없이 맛있게 먹었다. ‘원주민 학생들은 기름이나 설탕이 많이 들어간 인스턴트 음식을 즐겨 먹기 때문에 입이 짧아 한국음식은 잘 먹으려 하지 않는다’는 게 김지헌 지부장의 설명이었다. 놀랍게 변한 그를 보며 좀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다음 일정을 위해 차에 올라야 했다.

 

크로스 레이크 마을 입구에 설치된실종자를 찾는 표지판.
크로스 레이크 마을 입구에 설치된실종자를 찾는 표지판.

크로스 레이크 마을의 실종된 마음 교류
갈 길 바쁜 우리를 붙잡은 다섯 개의 표지판
노르웨이 하우스에서 다음 행선지인 크로스 레이크 Cross Lake까지 거리는 114킬로미터, 차로 약 두 시간 거리였다. 만만찮은 거리지만, 캐나다 땅이 워낙 넓다 보니 오히려 가깝게 느껴질 정도였다.

크로스 레이크 역시 인구가 5천 명이 좀 못되는 큰 마을이다. 교차로에서 오른쪽으로 차를 돌려 마을로 들어서려는 순간, 예사롭지 않은 다섯 개의 커다란 표지판이 보였다. 차를 세워놓고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실종되거나 뺑소니 또는 의문사를 당한 사람(주로 청소년)들에 대한 제보자를 찾는 내용이었다. 인적이 드문 원주민 마을 외곽지역에는 이처럼 미제사건이나 강력범죄가 잦다고 한다.

두 주 동안 무려 140건의 자살시도
캐네디언 프레스Canadian Press의 보도에 따르면, 크로스 레이크는 2016년 초 두 달 동안 여섯 건의 자살사건이 발생했으며, 두 주 동안 140건의 자살시도가 이어져 비상사태가 선포된 지역이다. 비슷한 시기에 온타리오 주의 애터워피스컷Attawapiskat 원주민 마을에서는 하루에만 11명이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원주민들은 어떤 마음의 짐을 안고 살아가기에 마을 주민들의 자살률이 유독 높은 걸까? 그 답을 얻고자 마을 내 미키수 고등학교Mikisew High School의 블랙스미스Myrna Blacksmith 교감선생님을 만났다.

미키수고교의 블랙스미스 교감선생님.
미키수고교의 블랙스미스 교감선생님.

“무엇보다 이 지역이 격리되어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학교 선생님들은 중앙정부가 아니라 주 정부로부터 급여를 받는데, 주변지역 학교들보다 급여가 적어요. 선생님들이 잘 오려고 하지 않죠. 주민들이 살 집도 부족한 실정입니다. 어떤 집은 사람이 많아 돌아가면서 집에서 자기도 하죠. 학생들이 함께 시간을 보낼 곳도 없어요. 제가 어릴 때만 해도 마을은 하나의 공동체였어요. 다른 집 부모님이 곧 제 부모님이었습니다. 어른이 지나가다가 늦게까지 집 밖에서 노는 아이한테 ‘이제 집에 가야지’ 하면 집에 갔습니다. 요즘에는 ‘당신이 뭔데 간섭해요?’라는 답이 돌아옵니다.”

원주민들은 전에 있었던 기숙학교에서도 많은 고통을 받았습니다. 저희 아버지도 기숙학교에 다녔는데 그곳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서 절대 이야기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술로 고통을 달래셨습니다. 돌아가실 때쯤 이야기를 해 주셨어요.”

미키수고교의 수업 광경.
미키수고교의 수업 광경.
동양인인 기자가 신기했는지 동네 아이들이 다가왔다. 마치 남미 소녀들을 닮은 듯한 인상이었다.
동양인인 기자가 신기했는지 동네 아이들이 다가왔다. 마치 남미 소녀들을 닮은 듯한 인상이었다.

1867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캐나다 정부는 원주민들을 북방의 차디찬 땅으로 내몰았다. 초대 캐나다 총리였던 존 맥도널드는 “원주민을 위한 학교를 원주민 마을에 설치하면, 그 아이들은 부모 밑에서 역시 야만인이 될 뿐이다. 이들을 가능한 한 부모에게서 멀리 떼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원주민의 문명화라는 미명 아래 기숙학교가 시작됐다. 주로 가톨릭교회에서 기숙학교를 많이 운영했다. 대여섯 살짜리 아이들은 10여 년을 한 번도 집에 가보지 못한 채 기숙학교에서 지내며 혹독한 규율에 시달렸다. 영어 대신 원주민어를 썼다가는 사나흘을 독방에 갇혀 지내야 했다. 숙제를 하지 못했다고 뺨을 맞은 학생들도 있었다. 친형제자매라도 대화가 금지되었고, 선생님들이 성추행을 일삼기도 했다.

2015년 캐나다 진실화해위원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1996년까지 100여 년간 15만 명이 기숙학교로 보내졌으며, 그중 6천 명이 학교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숙학교에서 생활했던 원주민들은 지금도 그때의 정신적 고통에서 시달리고 있다.

LA와 뉴욕 월드캠프에 참석한학생들과 기념촬영을 했다.
LA와 뉴욕 월드캠프에 참석한학생들과 기념촬영을 했다.

“올해는 한국 월드캠프에 꼭 가보고 싶어요”
하지만 원주민 마을 캠프가 열리고 월드캠프를 통해 마인드교육이 보급되면서 이곳 청소년들의 마음에도 차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미키수고교 학생들 중에서도 LA와 뉴욕 월드캠프에 참석한 학생들을 여럿 만날 수 있었다. 마을을 떠나기 전, 작년 LA와 뉴욕 월드캠프에 참석한 고교생 도노반Donovan Trout을 만났다.

“여기서는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아요. 기껏해야 학교에 가서 운동을 하는 게 전부죠. 그래서 마약이나 술에 빠지는 사람이 많은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술을 마시면서 인생이 바닥으로 치달았어요. 그러다 월드캠프에 가서 마인드강연도 듣고, 명승지 구경도 하고, 새로운 친구들과도 어울리면서 마음을 여는 법을 배웠어요. 기회가 되면 한국 월드캠프에도 꼭 가보고 싶어요.”

‘원주민 학생들이 한국에 온다?’ 내심 상상만 해도 즐거웠다. 기자는 노트를 찢어 휴대폰 번호와 메일주소를 적어 주었다. “맛있는 것 많이 사줄 테니 한국 오면 꼭 연락하라”는 말과 함께.

 

술과 마약에 취한 청소년들이 지른 불로 완전히 타버린 넬슨 하우스 마을의 집들
술과 마약에 취한 청소년들이 지른 불로 완전히 타버린 넬슨 하우스 마을의 집들

넬슨 하우스 마을의 원주민 추장님과 소년
원주민 마을로 이어진 길은 어딜 가나 거칠다. 제대로 보수가 되어 있지 않아 군데군데 움푹 패인 데가 부지기수다. 포장이 안 된 진흙탕을 뚫고 나가다 보면 차는 온통 흙탕물을 뒤집어쓴다. 어떤 곳은 도로 한가운데 자갈이 잔뜩 깔려 있다. 비위가 약한 사람은 멀미는 기본, 심지어 타이어가 찢어지기도 한단다. 타이어와 휠이 심하게 혹사를 당하기 때문에 원주민 마을을 다녀온 차는 반드시 정비소에 가서 타이어 밸런스를 새로 맞춰야 한다.

마르셀 무디 추장
마르셀 무디 추장

동화에서만 보던 추장님을 만나다
크로스 레이크에서 넬슨 하우스Nelson House까지는 차로 4시간 정도(346킬로미터)를 가야 한다. 넬슨 하우스는 인근의 톰슨Thompson, 서던 인디언 레이크 Southern Indian Lake 등과 함께 니시차와야시크 크리네이션Nisichawayasihk Cree Nation에 속하는데, 인구는 약 2,500명 정도다.

넬슨 하우스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맨 먼저 지역주민센터로 향했다. 그리고 운 좋게도 말로만 듣던 추장 chief을 직접 만날 수 있었다. 덧붙이자면 추장은 4년 정도마다 투표를 통해 선출된다고 한다.

“이곳 인구의 60% 이상이 30세 이하의 청소년들입니다. 마약이나 알코올 중독, 범죄, 가정불화 등 다른 원주민 공동체에서 겪고 있는 문제점들을 저희 역시 겪고 있습니다. 저를 비롯해 마을 임원들도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부족한 점들이 많습니다. 지금은 종합체육센터를 짓고 있는데, 완공되면 청소년들을 위한 체육활동이나 프로그램을 실시할 계획입니다. 저희는 어떻게든 저희 청소년들을 건전하게 키우고 싶습니다.”

마르셀 무디Marcel Moody 추장은 원주민 청년들의 미래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습이었다. 추장과의 면담을 마친 후 차를 타고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원주민들의 주거환경은 한눈에 보기에도 열악했다. 울타리가 무너지고 출입문에 구멍이 났는데도 그대로 방치된 집, 깨진 유리창을 종이와 테이프로 엉성하게 막아놓은 집. 심지어 지붕이 홀라당 타버린 집도 있다. 술이나 마약에 취한 청소년들이 이유 없이 마을에 불을 질렀기 때문인데, 이를 반달리즘vandalism이라고 한단다.

배구부 동아리방 앞에 선 토니. 육중한 체구를 자랑하는 토니이지만 열성적인 배구부원이기도 하다
배구부 동아리방 앞에 선 토니. 육중한 체구를 자랑하는 토니이지만 열성적인 배구부원이기도 하다

넬슨 하우스의 최고 명배우 ‘토니’
마을을 한 바퀴 돌고 취재팀은 마을 입구 옆에 있는 고등학교로 향했다. 그곳에서 우리는 반가운 학생을 또 한 명 만날 수 있었다. 토니 스펜스Tony Spence였다. 두 팔을 활짝 벌려야 몸통을 완전히 끌어안을 수 있을 만큼 ‘넉넉한’ 체구의 소년이었다. 그런 토니에게 친구들은 ‘마인드강사’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월드캠프 때 팀별로 연극을 준비해 참가자들 앞에서 발표할 기회가 있었는데, 토니가 마인드강사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기 때문이다.

세 번이나 월드캠프에 참석하는 동안 토니는 캠프의 열렬한 팬이 되었다. 캠프 참가자들에게 나눠주는 매뉴얼과 명찰, 캠프 때 단축마라톤을 하면서 달았던 번호표 등을 지금도 기념품으로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었다. ‘캠프에서 어떤 프로그램이 가장 재밌었느냐?’는 질문에 그는 수줍어하며 좀처럼 대답을 하지 못했다. 웃기만 하던 토니는 한참만에야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토니는 캠프 매뉴얼과 명찰, 마라톤 번호표등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토니는 캠프 매뉴얼과 명찰, 마라톤 번호표등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2017년 LA, 뉴욕 월드캠프에 참석했을 때 왠지 망설여지고 가기 싫었어요. 그런데 막상 도착해 보니 2015~6년에 만났던 사람들을 다시 만나면서 더 이상 어색하지 않았고 오히려 즐거웠습니다. 팀별로 모이는데 아는 친구들과 같은 팀이 될 줄 알았어요. 그런데 크로스 레이크 등 다른 지역에서 온 학생들과 같은 팀이 됐습니다. 하지만 마음을 열고 친구가 되는 법을 알았기에 그 학생들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모임을 가진 것은 잊을 수 없는 추억입니다. 월드캠프에 참석하며 정말 행복했습니다.”

명배우에서 명강사로 변신하던 날
우리와 대화를 마치고 교실로 들어간 토니. 아직 수업이 끝날 시간도 아닌데, 가방을 챙겨 학교 밖으로 나왔다. 혹시 선생님 몰래 수업을 빼먹고 어디 놀러 가려는 것 아닐까? 물어보니 오후에 바로 이웃해 있는 초등학교에 일일 교사로 초빙되어 강연을 하기로 되어 있단다. 강연 주제는 ‘토니의 미국 여행 & 월드캠프 체험기’. 토니는 교실로 들어가기 전 로비에서 “초등학교 때 담임 선생님을 만났다”며 기자에게 촬영을 부탁하기도 했다. 여유를 부리는 모습을 보며 내심 불안했다. ‘수줍음쟁이 토니가 과연 강의를 잘할 수 있을까?’

수줍음쟁이 토니였지만 학생들 앞에 서자마자기다렸다는 듯 술술 발표를 진행했다.
수줍음쟁이 토니였지만 학생들 앞에 서자마자기다렸다는 듯 술술 발표를 진행했다.

하지만 기자의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학생들 앞에 선 토니는 밤늦게까지 만든 프레젠테이션 파일을 척척 넘기며 자신이 미국 여행을 다녀온 이야기를 술술 쏟아냈다. 이곳 넬슨 하우스의 아이들 중에는 원주민 마을 바깥 세상에 다녀온 아이들이 많지 않다. 아이들은 토니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함께 캘리포니아의 해변으로, 뉴욕의 타임스퀘어로 여행을 다녀왔다. ‘저 토니가 불과 몇 시간 전에 우리 앞에서 더듬대던 토니 맞아?’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월드캠프 때 참가자들에게 감동을 선사한 명배우가 명강사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헤어지기 전 토니와 포옹을 나누며 작별의 아쉬움을 달랬다.
헤어지기 전 토니와 포옹을 나누며 작별의 아쉬움을 달랬다.

“저는 친구들이 저를 ‘마인드강사’라고 부르는 게 좋습니다. 저를 남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으로 봐주는 것 같아서입니다. 그래서 저는 행복합니다. ‘언젠가 진짜 마인드강사가 되어 사람들 앞에 서고 싶다’는 생각도 있어요.”

마냥 개구쟁이 소년처럼 보이던 토니가 너무도 어른스럽게 느껴졌다. 이제는 위니펙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 우리는 처음 만났을 때처럼 다시 한 번 서로를 끌어 안았다. “토니, 한국에 오면 꼭 연락해.”

 

우울증의 터널에서 벗어난 행복한 소녀 나키샤
나흘 간의 취재를 마친 우리는 다시 9시간 동안 차를 달려 위니펙으로 돌아왔다. 위니펙에는 원주민 여대생 나키샤가 살고 있다. 가장 친했던 친구를 둘씩이나 자살로 먼저 떠나보내면서 심한 우울증을 앓았던 나키샤의 사연은 본 특집기사 제1편에도 소개된 적이 있다. 그 후로 나키샤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현재 그녀는 매니토바 주립대학교 1학년으로 희망에 찬 미래를 그리며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친구들을 잃고 저는 심각한 우울증을 앓았어요. 세상을 향해서도 마음을 닫으면서 제 삶에는 아무런 소망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월드캠프에 참석해 문화공연과 음악공연을 즐겁게 관람하고, 마인드강연을 들으면서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흘러가는지에 대해 배웠습니다. 낯선 친구들과도 말문을 트면서 마음을 열고 소통하면 행복해진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나키샤는 크로스 레이크 출신이다. 며칠 전 우리가 크로스 레이크에 다녀온 이야기를 하자 그녀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술과 마약에 빠져 미래에 대한 소망 없이 사는 또래 원주민 청년들을 그녀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제 생각에 원주민 마을의 가장 큰 문제점은 고립되어 있다는 거예요. 위니펙 같은 대도시에서 차로 몇 시간이나 떨어진 곳에 갇혀 있다 보니, 바깥세상으로 나오면 얼마나 많은 기회가 있고, 얼마나 넓은 세계가 있는지를 잘 모르고 살아요. 이렇다 할 일자리도 없고요. 그러다 보니 인생에 뚜렷한 목표나 소망이 없고, 그래서 유혹에 쉽게 빠지지요. 주변 사람들도 다들 술이나 마약에 젖어 사니까 ‘그래, 나도 한번 해보자’는 식으로 쉽게 술과 마약에 손을 댑니다. 목표가 없으니 열심히 공부를 할 필요도 못 느끼는 거죠. 저도 월드캠프에 참석하면서 더 넓은 세상을 알게 되었고, 새로운 꿈이 생겼습니다.”

간단하면서도 원주민들이 겪고 있는 문제의 원인과 해법을 정확히 짚어낸 답변이었다. 아직은 1학년이라 앞으로 무엇을 할지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는 나키샤. 기회가 되면 자신처럼 힘들고 고통스러운 삶을 사는 청소년들에게 도움을 주는 일을 하고 싶다고 한다. 아직 어리지만 대견한 꿈을 품은 그녀의 모습이 더없이 행복해 보였다.

 

3월 12일, 미키수고교에서 12학년 학생 100여 명과 교사들을 대상으로 김재홍 IYF 교육원장이 마인드교육을 진행했다.
3월 12일, 미키수고교에서 12학년 학생 100여 명과 교사들을 대상으로 김재홍 IYF 교육원장이 마인드교육을 진행했다.

마무리하며...원주민 문제, 유일한 해법은 ‘소통’이다
캐나다 땅에 유럽인들이 이주하기 시작한 것은 1600년대 중반이었다. 콜럼버스가 처음으로 유럽에 아메리카 대륙의 존재를 알린 이후, 점점 많은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왔다. 유럽인들은 원주민들에게 유용한 생활용품을 주는 대신 모피를 받아가는 무역을 하기 시작했고, 영국 정부는 자국민과 원주민들 사이의 무역을 감독하는 부처를 설치했다.

그런 유럽인들이 언제부턴가 원주민들이 살던 광활한 땅을 탐내기 시작했다. 총칼 등 우수한 무기를 앞세운 유럽인들은 원주민 부족들을 하나하나 침략했고, 결국 원주민들은 유럽인들과 조약을 체결하기로 했다. 자신들이 살던 땅을 유럽인에게 넘겨주는 대신 총, 담요, 가축 등 생활에 필요한 물건들과 연금을 받기로 약속한 것이다.

유럽인들은 원주민들을 사시사철 찬바람이 부는 춥고 척박한 북방으로 내몰았다. 정기적으로 연금을 주겠다는 약속도 온전히 지키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원주민의 문화와 생활방식을 말살시킬 목적으로 기숙학교를 세워 원주민 아이들을 강제로 입학시켰다. 원주민 여성들을 상대로는 납치, 강간, 살해 등 잔혹한 범죄가 자행되었다.

오늘날 원주민들이 고통스런 삶을 사는 이유는 바로 ‘고립’이다. 앞서 소개한 나키샤의 말대로 보호구역 안에서 갇혀 사는 동안 그들은 부담스런 일과 맞서 싸우는 법을 잊어 버렸다. 오랜 세월 계속해 백인들로부터 핍박을 받는 동안, 그들은 누구도 믿지 못하게 되었고 급기야 세상을 향해 마음의 문을 걸어 잠궜다. 고립된 마음은 더 큰 고립이라는 악순환을 낳았다.

마인드교육은 이들로 하여금 다시 세상을 향해 마음을 열고 소통하며 살도록, 끊어진 관계를 회복하는 과정이다. 캐나다 IYF에서는 앞으로도 계속 원주민들을 대상으로 마인드교육을 실시하는 한편, 원주민 청년들을 7월에 한국에서 열리는 월드캠프에 참석시킬 계획이다. 마인드교육을 통해 변화된 이들은 앞으로 나키샤나 토니처럼, 자신이 배운 행복한 마음의 세계를 다른 원주민들에게 전하는 메신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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