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나라 제 11편

한국에서 땅을 계속 파면 아르헨티나가 나온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로 한국과 지구 정반대에 위치한 아르헨티나. 그래서 낮과 밤이 반대이며 계절도 반대로 돌아간다. 축구왕 마라도나와 메시의 나라, 열정 가득한 탱고의 나라, 쇠고기 음식 아사도가 그토록 맛있다는 아르헨티나. 지구 반대쪽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궁금하다. 그 나라의 매력이 점점 궁금해진다.

키워드로 보는 아르헨티나
정많은 백인들의 나라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남미 국가 사람들 중 외모가 가장 멋있다. 모델 같은 백인들과 고풍스러운 건물이 많아 마치 유럽에 온 듯한 느낌이 든다. 원래 원주민은 인디언들이었는데 스페인 지배 아래 있으면서 스페인과 이탈리아 계통의 사람들이 국민의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1853년, 유럽에서 이민자들이 몰려와 지금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그때 이민자들의 후손이고 그중 97%가 유럽인이다. 그리고 나머지는 주변국인 페루, 볼리비아, 칠레 등 남미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에 익숙했던 나는 처음 이곳에 와서 사람들을 만나며 답답한 느낌을 받았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성격은 여유롭고 느긋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쇄국정치를 하던 조선 시대에 아르헨티나에는 지하철이 다녔을 만큼 당시 경제가 급성장했고 국민의 복지를 챙기며 연금을 주는 선진국이었다. 경제가 성장하자 점점 밤늦게까지 즐기고 낮잠을 자는 문화가 발달하면서 삶에 긴장감은 사라지고 여유만 남게 되었다. 그러면서 부강했던 아르헨티나의 경제성장은 멈추었다.

제일 특이하게 느낀 문화는 인사예절이었다. 순수하고 정이 많아서일까? 처음 만나든, 알던 사람이든,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이 양 볼을 맞대고 볼키스를 한다. 이 인사를 안 하면 뭔가 아쉬워하며, 여러 사람을 만날 때는 한 명 한 명 모두에게 볼키스 인사를 나눈다. 처음에는 많이 당황스러웠지만 이젠 나도 자연스럽게 인사한다.

에비타, 에바 페론
1919년 아르헨티나 팜파스에서 농장 주인의 사생아로 태어난 에바 페론은 15살에 무작정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상경했다. 잡지모델도 하고 영화출연도 하다가 유명 연예인이 되었다. 1945년 후안 페론과 결혼했고 다음 해 후안 페론은 대통령이 되었다.

에비타로 불리며 노동자 및 하층민들의 위치에서 목소리를 내며 여성 참정권 도입 등 여성 운동에도 기여했다. 재단을 설립해 학교, 병원, 양로원을 세워 자선 사업을 하며 민중의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상류층 및 군부와의 관계는 안 좋아지고 건강도 악화되었다. 병마와 싸워가며 국민의 편에 서서 남편을 도왔지만 1952년 7월 33세의 젊은 나이로 숨을 거뒀다. 50년이 지난 지금도 추모 열기는 계속되고 있다. 후에 그녀의 이야기가 문학과 영화, 연극으로 다루어졌다. 유명한 노래 ‘Don’t Cry for Me Argentina’의 탄생배경이 된 인물이다.

못 말리는 축구 사랑
전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스포츠 축구. 아르헨티나의 축구 사랑은 더욱 유별나다. 동네마다 축구장을 쉽게 찾아볼 수 있고, 그곳에서 어린이나 어른이 축구하는 모습도 흔히 볼 수 있다. 거리에 나가면 국가대표팀 유니폼이나 자신이 좋아하는 축구 클럽의 유니폼을 입고 다니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남자 어린이는 보통 어릴 적부터 축구 클럽에 가입해 축구를 배우기 시작한다. 아르헨티나 모든 남성들은 웬만큼 축구를 할 줄 안다고 봐도 무방하다.

마라도나와 메시의 인기는 동네 곳곳의 마라도나 동상과 메시 유니폼을 입은 많은 사람을 보면 실감할 수 있다. 심지어 메시의 고향 로사리오에서는 메시의 이름을 따서 이름짓는 것이 흔했는데 지금은 너무 많은 메시가 생겨서 메시로 이름 짓기가 금지될 정도다. 신기했던 것은, 국가대표 팀 경기가 있는 날이면 중, 고등학교 학생들이 학교에 가지 않는 것이다. 축구를 너무 좋아해서 경기를 보기 위해 학교에 가지 않는 줄 알았는데 축구 때문에 휴교를 한 학교가 많았다. 그날은 나라 전체가 축제 분위기로 변해 국민들이 유니폼을 입고 응원 도구를 들고 신나게 행진하는 광경을 볼 수 있다. 이처럼 아르헨티나 국민들에게 축구란 삶 자체이며 자랑이자, 자부심이다.

ⓒFanny Schertzer
ⓒFanny Schertzer

축구의 신, 리오넬 메시
그는 1987년 로사리오에서 태어나 다섯 살부터 축구를 시작했다. 1998년 성장호르몬 분비 장애 진단으로 힘든 시기도 겪었지만 13세에 바르셀로나 유소년팀에 입단해 뛰어난 활약을 보였다. 2004년 FC바르셀로나에 입단하고 2006년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 최연소 선수로 출전해 6-0 승리에 기여하였다. 2009, 2010, 2011, 2012, 2015년에 국제축구연맹이 세계최고의 선수에게 주는 피파발롱도르에 선정되어 최초로 5회 수상자가 되었다. 축구의 신으로 불리는 그는 애국심이 강하며 동료 선수들과의 우호도도 매우 높다. 아르헨티나에서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Doha Stadium Plus
ⓒDoha Stadium Plus

축구 영웅 마라도나
그를 빼놓고 아르헨티나 축구를 논할 수 없다. 1960년 빈민가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 적부터 축구에 천부적 재능을 보였다. 16살 아르헨티나 프로리그 최연소 출전 기록을 가지고 있으며 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에 입단했다. 1978년에는 리그에서 22골을 넣어 득점왕이 되었다. 그의 재능을 탐내는 수많은 클럽에서 러브콜을 보냈고 1982년 바르셀로나팀을 거쳐 1984년 이탈리아 나폴리팀에서 활약했다. 1989년 당시 최고 권위였던 UEFA컵 우승을 차지했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 8강전에서 신의 손이라는 별칭의 골을 넣었고 상대팀 6명을 재치고 골을 터트린 장면은 역사적 장관으로 남아있다. 놀라운 실력을 보여준 그는 세계 축구선수들 사이에서도 호평을 받으며 축구 영웅이 되었다.

진짜 쇠고기구이를 먹고 싶다면?
하루는 지방에 가느라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20시간 동안 초록 풀밭과 소들만 보여 감탄한 적이 있었다. 아르헨티나는 남한의 28배나 되는 광활한 영토를 가지고 있으며 농경지만도 남한의 14배가 넘는다. 석탄, 석유, 천연가스 등 지하자원도 풍부하며 국민 1인당 연간 190kg의 육류를 소비할 만큼 목축업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아르헨티나에서는 돼지고기보다 쇠고기가 저렴하다. 정육점에 가면 은행처럼 번호표를 뽑아 고기를 구입할 만큼 아르헨티나인들에게 쇠고기는 매일 먹는 주식이다. 음식도 쇠고기를 이용한 요리가 주를 이룬다. 광활한 평원에서 좋은 풀을 먹고 자란 소들이라 그런지 오메가3도 풍부하며 한국에서 먹는 쇠고기의 맛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맛이 아주 좋다. 아르헨티나에 오면 상상 그 이상의 쇠고기 맛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소의 갈비뼈를 통째로 구운 아르헨티나의 대표 음식 아사도, 고기 붙은 뼈와 각종 야채를 삶아 만든 뿌체로, 신선한 토마토와 야채로 만든 엔살라다, 만두 모양의 엠파나다 등 맛있는 음식이 많다.

자연의 작품
기다란 모양의 지형 덕분에 다양한 기후의 명소들이 동시에 공존한다. 북쪽으로 가면 이과수폭포를 만날 수 있고 남쪽으로 가면 빙하를 볼 수 있다.

이과수 폭포
이과수 폭포

이과수 폭포
세계 3대 폭포 중 하나로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에 함께 맞닿아 있다. 커다란 국립공원 산책로를 구석구석 정글 탐험하듯 다니면서 이과수 폭포를 여러 방면에서 볼 수 있다. 악마의 목구멍이라고 이름 붙여진 곳으로 엄청난 양의 폭포수가 쏟아지는 걸 보면 웅장함에 매료되어 시간 가는 줄도 모른다. 특히 폭포 하단부에서는 보트투어를 할 수 있는데 폭포에 가까워질수록 보트가 금방이라도 뒤집힐 것같은 짜릿함과 폭포수가 튀어 시원함을 느낄 수 있다.

페리토 모레노 빙하
페리토 모레노 빙하

페리토 모레노 빙하
파타고니아에 위치한 빙하는 보자마자 숨죽이게 만드는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특히 물 위에서 도시가 움직이는 것같이 근처 호수를 향해 천천히 움직이는 빙하를 볼 수 있는데 눈부시게 하얗고 미묘한 빛깔의 빙하와 에메랄드빛 호수의 신비함에 오랜 시간 넋을 잃고 바라보게 된다. 1, 2월에는 유람선 투어를 하면서 거대한 크기의 빙하가 떨어지는 모습도 볼 수 있다. 트레킹하는 코스도 있는데 웅장한 빙하를 직접 밟아보고 느껴보는 것은 일생에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이다. 눈앞에 거대한 빙하와 직접 맞닥뜨리게 되었을 때의 벅찬 느낌은 직접 경험하지 않고서는 아무리 설명해도 모를 것이다.

굿뉴스코 연간 프로그램
아르헨티나에서는 굿뉴스코 연간 프로그램이 실행된다. 꿈을 잃은 그 나라 청소년들에게 나쁜 짓을 하지 말라고 하기보다 먼저 마음에 소망을 넣어주고 행복을 알려주고 싶었기 때문에 이들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아르헨티나 남쪽 끝에 위치한 우수아야는 세상의 끝이라고 불린다. 그곳에 가면 빙하를 볼 수도 있고 귀엽게 뒤뚱거리는 펭귄도 볼 수 있다. 굿뉴스코 해외봉사단 단원들과 함께 우수아야에 방문해 청소년들을 만나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그곳에 IYF지부를 세웠다. 굿뉴스코 해외봉사단들은 아르헨티나에 도착하자마자 얼마 안 되어 그곳으로 일주일 정도 여행을 떠난다. 현지 청소년들을 만나 영어캠프도 하고 지부 공사도 하면서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는 시간을 보낸다.

3월부터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5백여 명이 참가하는 아카데미를 준비한다. 한국어, 영어, 태권도, 댄스 클래스 등이 있으며 더욱 체계적으로 학생들을 교육하고자 단원들이 직접 교재를 만들어서 진행한다.

4월에는 강한 마음과 도전정신을 키우고자 2인 1조로 현지인과 함께 무전여행을 떠난다. 어려움에도 부딪혀보고 막막함에 걱정도 해보면서 한 달 동안 부쩍 마음이 강하게 자라는 절호의 기회이다. 7월에는 아르헨티나 청소년들과 굿뉴스코 단원들이 함께 소중한 추억을 쌓을 수 있는 청년 캠프와 엑스포가 진행된다. 함께 캠프를 기획하고 진행하면서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아 다투기도 하지만 서로 의견을 조율하는 동안 더욱 친해지고 어느덧 언어실력도 쑥 자란다. 이런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아르헨티나의 마약중독자가 변화되고 미혼모가 밝은 웃음을 찾는다. 많은 청소년이 찾아와 절망에서 벗어나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들을 위해 봉사하는 나와 굿뉴스코 단원들은 더 큰 행복을 느낀다.

아르헨티나 청소년들의 절망
전 세계적으로 청소년 문제가 심각한데, 아르헨티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낮이든 밤이든 길거리를 지나가다 보면 눈빛이 풀린 채 두세 명씩 거리에 앉아있는 젊은이들을 간혹 볼 수 있다. 처음에는 ‘아픈 친구들인가? 힘든 일을 해서 쉬고 있나?’ 생각하다가 뭔가 이상하고 무서워서 주변을 피해서 지나오곤 했었다. 나중에야 그 친구들이 마약을 해서 그런 걸 알았다. 젊은 친구들이 마약에 중독되어 꿈도 잃어 가고 인생을 망치고 있다니 너무 안타까웠다.

아르헨티나에서는 마약을 구하기 쉽다. 그렇기에 호기심 많고 자제력 약한 청소년들은 어린 시절부터 마약을 쉽게 접한다. 정부에서도 마약 문제를 위해 많은 노력은 하지만 뚜렷한 해결책이 없고 국가정책 또한 미비한 실정이다.

한번은 아르헨티나 최남단에 있는 우수아야라는 도시에 갔다. 이곳은 청소년들의 마약 문제뿐 아니라 자살문제도 심각했다. 무역자유지구인 덕분에 한국뿐 아니라 외국 기업들이 많이 들어와 있어서 그곳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보통 사람들보다 서너 배 돈을 번다. 하지만 젊은 사람들이 돈 관리를 할 줄도 모르고 일이 끝난 후 특별히 할 일도 없다 보니 마약을 하고, 심해지면 자살한다고 한다. 자연히 아르헨티나에서 자살률과 청소년 알콜중독률이 가장 높은 도시가 되었다.

또한 여자 청소년에 미혼모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아르헨티나는 지하자원과 농산물, 축산물이 풍부하여 아무리 가난해도 굶지는 않고 살 수는 있기 때문인지 절제력이나 끈기가 부족한 청소년들이 많다. 그러다 보니 청소년들이 성에 대한 욕구도 절제 하지 못해 미혼모들이 생긴다. 더욱이 미혼모들은 자신의 이런 문제를 긍정적으로 내놓고 이야기하지 못하기 때문에 쉽게 좌절하고 어려움을 겪으며 살아간다.

글 | 김도현 아르헨티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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